소설리스트

천살검협-311화 (311/334)

EP.312 이부 십삼장 - 십만대산, 척후 (3)

* * *

깨달음이 스쳐 지나가는 중 제갈산은 곧장 외쳤다.

“남궁 형! 다가오는 적들을 물려주시오!”

일단은 몸을 옭아매는 압박감을 털어내는 게 먼저다.

방법을 찾을 때까진 유일한 수가 남궁진천밖에 없을 터.

남궁진천은 흥! 코웃음 치며 말했다.

“발목을 잡는군.”

화아아아악!

짙푸른 기파가 공간을 점했다.

그 순간이었다.

“끼아아아악!”

드디어 몰려오는 적들의 정체가 드러났다.

제갈산의 눈이 찢어질 듯 크게 뜨였다.

‘괴이?’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생김새의 괴물들이었다.

기본적인 골격은 인간의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라고는 절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새까맣고 말랐으며, 그 형상은 녹아내리는 오물이 인간의 형상을 흉내내고 있다고 표현하는 게 옳을 지경이었다.

뿐만 아니었다.

팔뚝 길이만큼 뻗어 나온 손톱이나 아래턱이 존재하지 않는 얼굴은 기괴함을 머리끝까지 차오르게 했으며 그로인한 거부감에 압박감은 더 심해진다.

‘강시? 원령? 그도 아니면 시귀?’

존재하는 것부터 존재할 수 없는 것까지 여러 것들이 제갈산의 머릿속에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끝내 결론 내리길,

‘배교… 그렇다면 악귀.’

알려지지 않은 음험한 수를 쓴다는 그들이라면, 악귀가 옳을 것이다.

“못생겼군.”

남궁진천이 검을 휘둘렀다.

쩌어어억!

달려들던 괴이들이 장작처럼 세로로 쪼개져 죽었다.

하나 끝이 아니었다.

물량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듯 괴이는 사방에서 짓쳐들었다.

‘무력이 낮진 않다. 하나, 초월에 이른 남궁 형을 상대할 정도는 또 아니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이 악귀들이 얼마나 더 있을지 모른다는 것.

“제갈 놈아! 방법이 없는 게냐!”

염소소가 외쳤다.

제갈산의 머리가 핑핑 돌아갔다.

압박감은 거부감, 그리고 불안감에서 온다.

그것이 심해질수록 몸의 통제권은 점점 사라진다.

눈앞엔 악귀가 달려들고 있다.

세 가지 기전의 연결점을 찾아야 했다.

하여 고민했고, 결국 답을 내리니.

‘…그래.’

가정해보자.

이 모든 기이한 주술이 하나의 목적을 공유한다고 치잔 말이다.

‘정신에 간섭하는 주술이다.’

골자를 세운다.

‘속의 불안감이나 두려움이 짙을수록 몸의 통제권을 상실해 나간다.’

그것은 물리적 형태의 영향이다.

하나, 기전이 감정을 이용한 형태.

즉, 최면에 가깝다.

‘악귀들이 우리가 있는 곳을 알고 찾아왔다.’

악귀의 존재유무는 그렇다 쳐도 그들이 이곳까지 찾아온 방법을 생각하자면 나오는 답이 있다.

‘천리향?’

마치 천리향처럼, 이리 통제권을 잃어가는 순간 공포의 냄새 따위가 퍼진 것은 아닐까.

악귀들은 그것을 찾아온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파훼법은 분명하다.

“잠시 제 진법에 몸을 맡겨 주십시오!”

제갈산은 겨우 팔을 움직여 옥돌을 꺼냈다.

두려움은 곧 미지에서 오는 법.

기전의 파악은 제갈산의 속에 있는 두려움을 희석시켜 주었다.

몸의 통제권이 돌아온다.

즉, 가설이 옳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하나, 염소소와 목리원의 통제권도 되돌릴 방법은 분명하다.

“저항해선 안 됩니다!”

타닥!

옥돌이 펼쳐진다.

그것은 환영을 자아내는 진법이었다.

이번에 제갈산이 보여준 진법은 다름이 아니었다.

즐거운 추억 따위로 몸의 긴장을 풀어 기절시키는 류의 진법이다.

이이제이.

최면은 최면으로 잡는 법.

“아…?”

염소소와 목리원의 눈이 멍하니 풀렸다.

하나, 그들이 기절하지는 않았다.

초월은 초월, 역시 최면의 중화 속에서도 이성을 붙잡기는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짝!

제갈산이 손뼉을 치자 두 사람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직 멀었는가!”

남궁진천의 목소리에 흠칫 두 사람이 떨었다.

몸의 통제권이 돌아왔음을 확인하곤 주먹을 꽉 쥔다.

이내 정관이 깃든 눈빛으로 고개를 든다.

“일단….”

“…예, 이것들부터 처리하지요.”

두 사람이 검과 비수를 뽑아 남궁진천에게 가세했다.

상황의 정리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그 사이에 달려든 악귀가 50이 넘는다.

겨우 상황을 정리한 후 살핀 것은 악귀들의 정체였다.

“…인간이다.”

염소소가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괴이 따위가 아니다. 이것은 인간이야. 인간을 가공한 것이다.”

막 악귀 하나를 해부하고 낸 결론이었다.

“어떻게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장기가 모두 녹아있는 채로 움직였다. 강시… 그래, 그것과 비슷한 류라고 말하면 되겠구나.”

뿐만 아니었다.

“…아 아이는 맹의 아이다.”

악귀의 오물투성이 살점 속에서, 염소소가 꺼낸 것은 맹의 패였다.

“이놈들이 기어이 선을 넘는 것이지.”

지긋지긋하다는 듯 이를 갈며 내뱉는 말에 세 사람이 흠칫했다.

이들이 정말로 인간이라면 마교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잔인한 수를 쓰고 있다는 결론이 나오는 까닭이었다.

하나 새삼스러운 분노는 뒷일이다.

당장 중요한 것은 이 상황의 타계법.

“제갈 놈아, 아직도 주변의 변화는 느껴지지 않느냐?”

제갈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사특한 의식이라면 확실히 제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의 일입니다.”

“흐음… 일단 돌아가야 하나.”

“그또한 무리입니다.”

“음?”

제갈산은 미간을 좁혔다.

“저희, 지금 이곳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내린 결론이었다.

십만대산에 들어온지 꽤 시간이 지났다.

더불어 정확한 길을 기록하며 따라오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돌이켜 보니 지나온 길이 기록된 형태와 달랐다.

즉, 그런 말이다.

“최면에 빠져있는 동안 길도 다르게 보고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상황이 악화됐다.

“그,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오?”

목리원이 당황하며 물음에 제갈산은 자신이 아는 유일한 답을 줬다.

“어쩌긴….”

이 사특한 의식을 파훼한다.

방법은 그것뿐이다.

*

약 두 시진.

체감상 그만큼의 시간이 지났다.

제갈산이 또 하나 알게 된 것이 있었다.

‘현실의 시간이 체감하는 시간보다 느리게 흘러간다.’

이곳에서의 시간 흐름은 체감하는 것보다 느리게 간다.

즉, 오래 있으면 있을수록 몸과 마음의 피로도가 더없이 차오른다.

위험하다.

인간의 정신력이란 것은 결국 소모품이고, 그런 만큼 긴장 상태에서의 회복이 늦어질수록 실수가 잦아진다는 말일 테니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맹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 정도일까.

하나하나가 맹의 주전력이라 할 만한 초월의 무인들이 이 자리에 있다.

선발대였던, 그리고 이미 목숨이 끊어진 맹의 척후보단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있을 터였다.

‘물론 영원하진 않지. 방법을 찾아야 한다.’

생각하니 또 머리가 지끈거려온다.

대관절 어떻게 이 진을 빠져나가라는 것인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사고를 회전시키던 중이었다.

“대체 어디로 가야할지 의문이구려.”

목리원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염소소 또한 정신적 피로를 느끼며 공감했다.

위험하다.

슬슬 막막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우선 진정부터 시켜야 한다.

생각하며 입을 열려는 순간 남궁진천이 선수를 쳤다.

“멍청하군.”

세 사람의 시선이 남궁진천을 향했다.

남궁진천은 심드렁한 얼굴로 말했다.

“이래서 제가 똑똑한 줄 아는 것들이 문제다. 방법은 정해져 있는 것을.”

쯧쯧 혀를 차는 모습이 꽤나 여유롭다.

제갈산은 헛웃음을 흘렸다.

“남궁형, 방법은 있어서 그리 말하는 것이오?”

짜증이 났다.

본래 이런 사람인 것은 알지만 이 순간 유독 그 사실이 아니꼽게 느껴진다.

아, 공간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겠지.

그 사실을 알면서도 감정을 통제하는 게 어려웠다.

그렇게 한껏 날 선 말이 쏘아진 그 순간.

“못 찾겠으면 다 부수면 되는 것 아닌가.”

“그게 무스….”

화아아아악―!

남궁진천의 기파가 끝없이 펼쳐졌다.

제갈산의 눈이 찢어질 듯 크게 뜨였다.

“이 미치….”

“부수다보면 뭐든 하나는 걸리겠지.”

꽈아아아앙―!

남궁진천이 돌발행동을 시작했다.

근처에 있는 모든 초목과 땅거죽, 하늘에 까지 사방팔방으로 검기를 쏘아 날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만! 그만 두시오!”

제갈산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을 느끼며 외쳤지만 그를 말릴 수는 없었다.

아니, 도리어 그 외침이 남궁진천을 자극했다.

꽈아아아앙―!

남궁진천의 검기가 더욱 포악해졌다.

“이 미친 인간아!!!”

절망하며 외치는 순간이었다.

쩌저적―

하늘에 금이 갔다.

“…아?”

콰아아아앙!

쩌저저저적!

실금이 번져 균열이 된다.

콰아아아앙!

째애애애앵!

…그렇게 깨졌다.

직전까지 구름에 가려져 어둡던 하늘 위로 촘촘히 별이 떠오른 게 보였다.

제갈산을 포함, 목리원과 염소소의 얼굴 위로 황망한 기색이 자리했다.

남궁진천은 말했다.

“머리는 힘이 없는 것들이나 쓰는 법이지.”

그리고 그가 몸을 돌리니, 그곳에 있었다.

스릉―

저 멀리 직전까진 없던 제단.

그곳을 지키는 마인들이 검을 뽑아드는 광경이.

코를 찌르는 짙은 혈향이.

제갈산은 염소소와 목리원을 바라봤다.

두 사람도 제갈산을 바라봤다.

이 순간, 세 사람은 동시에 하나의 생각을 떠올렸다.

‘아.’

무식하면 몸이 고생한다는 말은 개소리구나.

머리를 굴리니까 몸이 고생하는 거구나.

깨달아선 안 될, 그런 종류의 깨달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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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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