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310화 (310/334)

EP.311 이부 십삼장 - 십만대산, 척후 (2)

* * *

남궁진천의 잠행복이 다시 까만 색으로 바뀌기까지의 과정을 구태여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다만 과정에서 목리원이 느낀 것이 있었다.

첫째로 염소소는 초월에 이르렀다는 것만으로 쉬이 볼 상대가 아니라는 것이고, 남궁진천은 염소소에 비해 경험이 꽤 많이 모자라다는 것이다.

남궁진천이 머리에 난 혹을 매만졌다.

염소소는 후련한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대충 정리도 된 듯하니 슬슬 출발하자꾸나.”

“옙….”

제갈산이 유독 긴장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야심한 밤, 네 명의 척후가 십만대산으로 잠입했다.

*

새삼스러운 말을 하자면 신강은 넓다.

그 신강을 이루는 모든 땅, 즉 모든 산맥이 다 십만대산이자 천마신교의 영역이다.

이제껏 마교가 중원에 그리 큰 위협으로 자리했음에도 이곳에 쳐들어오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그 아득하리만치 넓은 영토에서 천마신교의 본단을 쳐 봐야 손해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따지자면 이번이 아주 특수한 경우다.

이 넓은 땅에서 천마신교의 본단으로 향하는 길을 뚫어내고, 그곳까지 병력을 침투시켜 교를 괴멸시키겠다는 작전은 같은 하늘 아래 더 이상 서로를 두고만 볼 수 없는 원수지간이나 되어서야 마음먹을 수 있는 것이니까.

“역시 시작부터 쉽지 않구나.”

염소소가 쯧 혀를 찼다.

막 산맥의 입구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곳곳에 경계가 있다.

사람이 아니었다.

“진이다. 조금만 잘못 밟아도 곧장 발동해 주변의 암기를 쏟아내는 진.”

기계적인 방어책이었으나 무엇보다 효과적이다.

이쯤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이 있었다.

“마교는 역시 수성전을 대비하고 있었구나.”

한두 해에 걸쳐 이룩할 수 있는 방어 체계가 아니다.

적어도 마교는 이 7년간 중원이 십만대산으로 침입할 것을 고려해 움직여왔을 것이다.

놀아났다고 해야 할까?

아니, 비약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맞는 전법을 찾아갔다는 게 옳다.

이런 진을 떼어두고 보자면, 전력적으로 7년 전 더 큰 피해를 입은 것은 마교였으니.

그리고 진이 아주 발목을 붙잡는 것은 아니다.

“제갈아, 네가 풀거라.”

“예입.”

제갈산이 나섰다.

길게 숨을 내쉰 그는 곧장 공력을 발하여 진의 흐름을 흐트러뜨렸다.

그리하고선 별일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이는데, 과연 믿음직스러웠다.

“살성님, 이제 어찌합니까?”

목리원이 묻자 염소소가 답했다.

“일단 선발대의 흔적을 찾아야겠지. 살아있다면 구해 나오고, 죽어있다면 무엇에 죽었는지 정확히 조사해야 할 것이다.”

염소소의 기파가 더 은밀해졌다.

“따라오너라. 내 바로 뒤엔 제갈놈이 붙고 너희 둘은 일단 기를 온존하는 데 집중하면 된다.”

작전에 있어서는 이상적인 구도였다.

별다른 이견 없이 네 사람은 곧장 심부로 파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와중 느낀 것은 기이할 정도로 이곳에 경계가 없다는 것.

인기척은 물론이오 작은 동물의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기감을 넓혀봐도 무엇하나 잡히는 것이 없는데, 그쯤되니 목리원의 속에 작은 불안감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앞서 단지선에게 귀띔을 들은 내용이었다.

“…잠시.”

이것을 설명해두어야만 할 것 같았다.

“음?”

대열이 멈췄다.

목리원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너무 조용합니다. 조금 짚이는 게 있어서 그러한데, 멈춰서 이야기를 들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무슨 일이기에 그러느냐?”

“…마교가 지난 7년 간 했던 일에 관한 것입니다.”

염소소의 미간이 좁아졌다.

“맹에는 보고되지 않은 정보더냐?”

“…사정이 있었던지라.”

순간 시선이 오갔다.

꽤 날이 선 분위기.

하나, 염소소는 다행히 수긍해줬다.

“네가 그렇다면 이유가 있는 것이겠지. 그래, 말해보거라.”

목리원은 짧게 목례하며 감사를 표했다.

이윽고 말을 토해내니, 그것은 배교의 대법이 마교에 탈취당한 일이었다.

“…하여 일단 들은 정보는 배교의 대법을 탈취했다 정도입니다만….”

“이 꼴을 보아하니 그곳의 진법 몇 개가 더 탈취당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말이렷다?”

“…예.”

과한 걱정이라기엔 제갈산조차 여기까지 오며 특별한 점을 찾지 못했다.

한데 주변이 너무 이상하지 않나.

정말 문제가 없다기 보단, 제갈산이 모르는 은밀한 진법이 이미 이곳에 펼쳐져있다고 보는 게 옳은 것이다.

배교의 신묘한 법에 관해서는 이미 그 소문이 자자하니까.

“흐음….”

염소소가 턱을 쓸었다.

그녀는 심각한 얼굴로 고민을 이어가다, 이내 제갈산에게 말했다.

“제갈놈아. 느껴지는 건 없느냐?”

“잠시….”

제갈산의 표정도 따라 굳어졌다.

아니, 그는 일행 중 가장 심각한 얼굴이었다.

그제야 제갈산도 눈치챈 것이다.

“…확실히 이상하네. 아니, 너무 이상해.”

그의 뺨을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이렇게 수상한데 내가 왜 모르고 있었지?”

제갈산의 눈빛이 떨렸다.

*

천마신교의 본단, 사마공은 법진 위에 앉아 눈을 감고 가부좌를 튼 채로 말했다.

“왔다.”

그의 피부 위론 힘줄이 불거져 있었다.

이 행위를 이어가는 것만으로도 크나큰 부담을 지고 있음을 드러내듯이.

“총 넷, 공력으로 보아하면 하나하나가 중원의 주요 전력들이다.”

그의 주변엔 신교의 마인들이 부복하고 있었다.

“슬슬 이변을 눈치챈 듯하군. 더 지체해선 안 된다. 채비하라.”

“존명!”

마인들이 사라졌다.

사마공은 그제야 눈을 떴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그의 안색은 아주 좋지 않았다.

‘역시 부담이 크다.’

탈취해 온 배교의 진법은 효과가 확실하다.

하지만 그 발동을 위한 여러 조건이 생략되다 보니 몸에 걸리는 부하가 너무 심했다.

진법의 조절조차 녹록지 않은 상태.

십만대산에 병력을 배치하지 못한 이유도 그것이었다.

섣불리 병력을 심었다간 도리어 이쪽 병력이 진법에 휘말리는 수가 있었으므로.

사마공은 비릿하게 웃었다.

‘하여간 세상 악하기론 배교만 한 것이 없구나.’

진법을 탈취한 이제야 사마공도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들의 진법이 발현되는 기전이 너무 끔찍하다.

그 옛날 혈천교를 세웠던 교의 배신자 단천화는 우스울 정도의 괴악함이 모든 술법의 기전에 포함되어 있었다.

‘최소 1백의 생명을 제물로 바쳐야 겨우 제 기능을 하는 진법이라니.’

이딴 걸 생각해낸 인간은 대체 누군지 원.

뭐, 신경 쓸 필요는 없나.

‘…하급 마인들의 수는 다행히 여유롭다. 그놈들을 바쳐서 진을 발동시키기만 하면 된다. 잘하면 목숨을 끊는다. 못해도 전력을 상하게 할 수는 있을 테고, 중원 측에 위기감을 심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일이 잘 풀리고 있다.

사마공은 구태여 모험은 하지 않기로 했다.

‘자, 어찌 나올 테냐.’

적어도 초월급이 끼어 있다.

무력으로 우뚝 서서 세상을 발아래 둔 초인은 과연,

‘괴이를 어찌 마주할 테냐.’

이 세상에 속해선 안 될 것들을 어떤 식으로 헤쳐 나갈 것인지.

상상하니 조금 즐거운 기분이 되었다.

*

제갈산은 소름이 끼치는 기분을 느꼈다.

‘내가 진법을 알아채지 못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스스로의 실력에 대한 과신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저 상식 선에서 있어선 안 되는 일이었다.

‘나는 이미 진을 치고 있는데 이걸 파고들었다는 말이다. 한데도 내가 그 변화를 눈치채짐 못한 것이고.’

제갈산은 십만대산에 들어올 적부터 몸에 약식 진법을 둘러두었다.

진법이란 것의 본래 성질이 그랬다.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진 진법이 충돌한다면 그 둘 중 하나가 반응하거나, 짓눌리는 등의 상호작용이 있어야 한단 말이다.

한데 제갈산은 이곳까지 오며 조금도 그런 것을 느끼지 못했다.

심지어 지금 이 순간까지도 약식 진법에 느껴지는 반응이 없었다.

그 말이 무엇이겠는가.

‘진법이 아니다.’

지금 이곳의 이상을 진법의 영역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이것은 진법보다 이질적인, 그리고 다른 기전을 가진 위협이었다.

“…후퇴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게 네 판단이냐?”

“밝혀지지 않은 위협이라면 더욱 철저한 준비를 끝마친 후에 다시 오는 게 옳은 것으로 압니다. 이 상황은 명백한 위기입니다.”

염소소는 미간을 좁혔다.

고민하는 듯한 태도.

제갈산은 와중에도 주변을 둘러봤다.

‘이상하다. 생명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아. 암만 해도 느껴지지 않아. 심지어….’

눈앞의 염소소, 목리원, 남궁진천의 것조차 인지에 흐릿하게만 걸린다.

제갈산의 속에 불안감이 치솟았다.

나가야 한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해지는 중이다.

“…네 판단이 그렇다면 따르마.”

라고, 염소소가 답한 순간이었다.

화아아아악!!!

“크윽!”

무언가가 공력을 옭아맸다.

마치 누군가의 손아귀에 목이 틀어쥐어진 듯한 감각.

제갈산 뿐만 아니었다.

염소소와 목리원도 그랬다.

하나, 멀쩡한 사람이 있었다.

“뭐냐, 갑자기 웬 광대놀음들이지?”

남궁진천이었다.

그는 고개를 갸웃하며 심드렁한 얼굴을 했다.

“이게 무슨 놀이인가.”

그 알 수 없는 차이.

제갈산은 이유를 알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어째서 남궁진천만 괜찮은 것이지?

그리고 이 압박감은 대체 무엇이지?

머리가 한참이나 굴러가던 중이었다.

“웬놈이 오는군.”

남궁진천은 그리 말하며 검을 뽑아 기파를 쏘아냈다.

꽈아아아앙!

“끼이이익!!!”

소름끼치는, 인간의 것이 아닌 것으로만 들리는 비명.

아직 적의 정체는 드러나지 않았다.

한데도 제갈산의 몸은 본능적으로 위기를 감지했다.

그 순간 압박감이 더욱 심해진다.

동시에,

‘…설마?’

답을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비명소리 한번 병신같은 놈이군.”

이곳에서 제갈산을 포함한 셋과 남궁진천의 차이는 하나였다.

‘…남궁형, 아무 생각이 없구려?’

오직 그만이 이 이질적인 광경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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