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302화 (302/334)

EP.303 이부 십일장 - 전쟁, 초야 (2)

* * *

모여 이동한 곳은 당문의 장원이었다.

분위기는 시끌벅적했다.

아무렴, 그간 따로 만난 일이 몇 있었으나 이리 용봉단 전체가 모인 것은 참 오랜만의 일이 아닌가.

그런 만큼 다들 할 이야기가 많은 듯 내내 입을 열기 바빴고, 와중 단원들의 관심을 가장 많이 끈 것은 다름 아닌 남궁영이었다.

“영이는 젓가락질도 잘한다!”

남궁진천의 품에 앉은 남궁영이 꺄르륵 웃으며 허공에 챱챱 젓가락질을 했다.

자랑이라도 하는 듯한 꼴이라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아이고, 고것 참 똑부러네.”

“아이가 참 빨리 크는 것 같소.”

“그러게 말입니다. 저 인간은 닮지 말아야 할 텐데?”

“무슨 의미지?”

“모르면 됐습니다.”

남궁진천의 눈이 좁아졌으나 그의 의문을 풀어줄 정도로 배려심 있는 사람은 이곳에 없었다.

애초에 말을 흘린 당화서조차 남궁영의 재롱에 한껏 취해 있었다.

“얍!”

하고 남궁영이 고기를 집었다.

이후 크게 입을 벌리곤 고기를 입 안으로 숨겨버렸는데, 꼴깍 목 뒤로 넘기는 속도가 아주 빠른 게 아니겠나.

“얘야, 그리 빨리 먹으면 체하지 않겠니.”

당화서가 후후 웃으며 말하자 남궁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웅! 아줌마!”

쩌적, 공간이 얼어붙었다.

그 남궁진천조차 긴장했다.

“영….”

“웅? 당 아줌마다 아니야? 아빠가 말했는데!”

목리원은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움츠러든 몸은 이후 일어날 끔찍한 일을 예상하듯, 당화서에게서 조금 멀어지고 있었다.

“제갈아.”

“예입.”

“영이 좀 놀아주고 있거라.”

“옙.”

제갈산이 빠르게 남궁영의 겨드랑이에 손을 집어넣어 들어 올렸다.

남궁진천은 딸아이를 놓지 않으려는 듯 힘을 줬으나, 상황을 모르는 남궁영은 그저 목말을 태워주겠다는 제갈산의 말에 홀려 남궁진천을 밟아 떼어내기 바빴다.

“목말 탈 거야!”

툭!

남궁진천의 손이 떨어졌다.

당화서가 남궁진천의 멱살을 잡았다.

“…해명의 시간이 필요하다.”

“지옥에서 하십시오.”

이후의 일은 끔찍했다.

목리원은 그저 그 과정에서 하나의 사실을 깨달았다.

‘소저…!’

당화서의 독은 초월이라 하여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극독이라는 것.

그녀의 수련이 여간 깊은 게 아니었다.

“크윽!”

남궁진천은 엉망진창으로 지려버렸다.

*

비참한 최후를 맡은 이의 하나 남은 자존심을 지켜주어야 하는 걸까.

“다시 보지 묵룡. 그간 성취가 있었던 것 같은데, 나 역시 뒤처지지 않을 수준의 수련이 있었다. 다음 비무는 기대해도 좋다.”

옷을 갈아입은 채 새근새근 잠든 남궁영을 품에 안고 남궁진천이 말했다.

목리원은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측은하기도 하고, 꼴 좋다 싶기도 하고.

뭐가 됐든 스스로 불러온 재앙이 아니던가.

목리원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잘 들어가시오. 회의때 뵙지.”

“우웅…?”

“영이가 일어났구나. 조심히 들어가거라. 가서는 어머니 말씀 잘 듣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니 남궁영이 배시시 웃었다.

아이가 참 어여쁘다.

그런 생각을 자신만 한 것이 아닌지, 당화서가 특히 남궁영을 이뻐했다.

“잘 들어가거라. 언제든 찾아오면 맛있는 식사를 대접해 줄 테니.”

“우웅, 이모님…!”

남궁영의 호칭이 교정되어 있었다.

그에 대해선 더 파고들 이유가 없으리라.

“가보지.”

여하튼 남궁진천이 떠났다.

제갈산을 비롯한 다른 단원들도 일찍이 떠난 만큼 이제 남은 것은 당화서와 목리원 뿐이었다.

목리원은 남궁영이 떠난 자리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당화서를 보며 씁쓸함을 느꼈다.

어린 아이를 보는 대부분의 시간이 그랬다.

“소저.”

“예.”

“우리끼리 한 잔 더 하는 것이 어떻소?”

당화서의 시선이 목리원을 향했다.

위로의 뜻으로 말이오.

그런 뒷말을 삼키며, 목리원은 말했다.

“시간이 조금 이르지 않소.”

당화서는 작게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지요. 마침 아껴둔 술이 있으니 꺼내 보겠습니다.”

목리원은 아직, 당화서가 취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몰랐다.

*

장소는 당화서의 방이었다.

술은 달았고, 대화 내용은 평소와 같았다.

그저 그런 주변 이야기.

소소한 일상에서의 일들.

그리고 다가올 전쟁.

“분위기가 참 살벌하지 않습니까.”

“전쟁이니 그렇겠지.”

답하며 목리원은 술잔을 비웠다.

당화서는 아직 조금 멍해 있었다.

“그러는 소저는 어떻소. 이번에도 물자를 많이 쓰지 않소?”

사천당문은 7년 전의 사건으로 인한 여파를 아직 다 회복하지 못했다.

물론 독라나찰이라는 별호로 불리며 활약한 당화서 덕에 오대세가의 말석에 이름 올릴 정도로 세가 강해지긴 했으나, 전쟁에 줄 수 있는 도움은 물질적으로 한정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날을 대비해 빼둔 물자들이 꽤 많습니다. 세가에 타격이 올 정도는 아니지요.”

“그렇다면 다행이오.”

“그러는 목 소협은 준비를 잘 하고 계십니까?”

넌지시 물어오는 말에 목리원은 곰곰이 생각했다.

전쟁 준비라, 사실 외적인 것을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다.

당화서도 그걸 안다.

마음의 준비를 말하는 것이겠지.

“잘 모르겠소.”

위광천을 떠올렸다.

그와의 원한 관계가 이리 깊어지기까지 있었던 일들, 그 뒤에 있었던 혈천교의 비사, 목선오와 천마의 죽음.

무엇도 그냥 넘길 수 없는 것들이었다.

애초에 이 세상이 자신과 위광천을 원수로 만들기 위해 판을 깔아두었다 말하는 게 더 신빙성 있을 정도다.

‘…아니.’

실제로 판을 깔긴 했지.

천살성과 자미성이라는 이름으로.

“그를 만나면 우리는 둘 중 하나가 죽을 때까지 싸울 것이오.”

예견된 미래였다.

“그리고 그는 강하오. 내가 상대해본 어떤 적보다.”

그렇기에 결말만큼은 장담할 수 없었다.

목리원은 당화서와 눈을 맞췄다.

그녀는 생각에 빠진 얼굴로 고요하게 술잔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넌지시 물었다.

“죽을 수도 있다.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현실을 말하면….”

“틀렸군요.”

“음?”

“목 소협은 져선 안 됩니다. 협의 실존을 증명하기 위해서. 정의가 이긴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당화서가 빙긋 웃었다.

“소협이 대외적으로 패배할 수 없는 이유이고, 그에 하나 더. 저를 위해서도 패배하시면 안 됩니다.”

그 순간이었다.

목리원은 묘하게 웃음이 터져나와 곤욕을 치렀다.

“…그렇지. 소저를 위해서도 패배해선 안 되지.”

끅끅 웃으니 당화서가 말했다.

“전쟁은 분명 이길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 다음을 생각하지요.”

유쾌한 기분이 들어 목리원은 물었다.

“무얼 하고 싶소? 소저는.”

“글쎄요. 일단 소협과 혼인해야지요.”

“음, 혼인이라. 좋구려.”

“사람들을 아주 많이 부를 것입니다. 소협은 정마전쟁을 끝낸 대협객이 되실 테니 만인의 환호를 받으며 혼인하겠지요.”

“썩 부끄럽구려. 하지만 생각만 해도 행복한 일이오.”

“이후엔 저와 함께 사천으로 가시지요. 맹의 단주직은 내려놓고 제 일이나 도와주시는 겝니다.”

“그리고?”

“같이 늙어가는 것이지요.”

그 순간 당화서의 입술이 달싹, 움직인 후 다물렸다.

더 말을 잇지 못하고 망설이던 그녀는 이내 허탈한 숨을 흘리며 말했다.

“당문의 방계에 속하는 아이들을 모을 겁니다. 그 아이들의 옥석을 가려 가장 뛰어나고 바른 아이에게 당문을 물려주는 겁니다. 그때는 말입니다.”

목리원은 그녀의 말에 집중했다.

“강서로 가는 건 어떻습니까? 목 소협이 나고 자란 산골 근처, 우리가 처음 만났던 수양현에 무관을 차리도록 하지요. 언젠가 목 소협이 말한 것처럼 말입니다. 아, 정체는 숨겨야지요. 마을의 아이들을 가르치는 조용한 무관이어야 할 테니.”

긴긴 세월을 그려봤다.

목리원은 그 세월간 당화서와 함께, 지금 말한 것처럼 살아갈 것이었다.

아이를 좋아하지만 품지 못하니, 그저 바라만 보는 그녀를 보는 게 조금은 슬플 듯해.

어느 순간 목리원은 말했다.

“무관을 차리기 전에 말이오. 전쟁을 끝내고 사천으로 가기 전에.”

“음?”

“서역으로 한번 떠나보는 것은 어떻소?”

당화서의 얼굴 위로 의아함이 피어났다.

이윽고, 목리원의 말에 그 얼굴 위로 경악이 떠올랐다.

“아이를 가질 방법을 하나는 찾아보고 싶소. 서역엔 신기한 의술이 많다지 않소?”

허튼 기대라 해도 좋았다.

인간은 본디 그런 것에 기대 사는 생물이었으니.

그저, 그 기대감이 당화서가 내일을 기대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길 바랄 뿐이다.

당화서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입술을 달싹였다.

이윽고 그녀의 눈망울에 울음기가 맺혔다.

머쓱함이 한껏 차올랐다.

괜한 말을 한 걸까.

싶은 순간이었다.

“안 되겠습니다.”

탁!

당화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목리원의 멱살을 잡았다.

그리고 입을 맞춰왔다.

“소, 소저… 으븝?!”

“푸하!”

입술을 한 차례 탐한 당화서가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울먹임으로 화한 감동을 그대로 터뜨리며 말했다.

“왜 그러십니까. 정말. 왜.”

당화서가 목리원을 침대로 끌었다.

“그런 말을 하면 제가 참을 수 없잖습니까.”

털썩!

침대에 쓰러진 목리원은 무언가의 위협을 느꼈다.

당화서의 눈이 번들거렸다.

“소협의 잘못입니다.”

“그게 무슨….”

“그리 음탕하게 유혹한 소협의 잘못입니다!”

쫘악!

목리원의 의복이 그녀의 손짓에 갈기갈기 찢어졌다.

“꺄악!”

계집아이 같은 비명이 저도 모르게 나온 순간.

“가만 있으십시오!”

당화서가 다시 한번 입을 맞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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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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