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00 이부 십장 - 맹주 (1)
* * *
견동은 이 상황이 꿈인지 현실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했다.
“무, 묵룡 대협이 제게 볼일이 있단 말씀이십니까?”
“그렇소! 조금 묻고 싶은 게 있어서.”
견동은 볼을 꼬집었다.
고통이 생생한데도 영 현실감이 들지 않아 염소수염을 쭉 당겼다.
“아야!”
그제야 확실히 인지된다.
‘묵룡 대협이 날 찾아오셨어!’
심장이 널뛰었다.
견동의 인생에 이리도 가슴이 뛴 것은 두 번째였다.
물론 처음은 그와 비무하고 인정받아 박수갈채를 받았던 날이었다.
“이, 일단 안으로 드시지요! 차라도 내오겠습니다.”
“호의에 감사하오.”
목리원이 싱긋 웃으며 진원단의 전각 안으로 들어왔다.
접견실로 들어서는 그의 옆태에 견동은 지극한 떨림을 느꼈다.
‘여, 여전히 엄청난 미남이시다!’
무력과 미모, 거기에 당문을 등에 업어 재력까지 얻었으니 이 강호에 목리원보다 우월한 사내는 없으리라.
본디 그런 점을 따진다면 수컷으로서의 패배감이 치솟겠지만!
‘묵룡 대협이니까!’
견동은 너무 아득한 차이에 패배감을 느끼는 일조차 포기했다!
‘한데 나를 왜 찾아오신 걸까.’
싱글벙글 미소가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곽칠과 왕삼에게 자랑할 거리가 생겼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혹 교분을 나눌 친우가 필요하신 건가? 그래! 친우분들 모두가 각자의 본적으로 돌아가셨으니 적적하실 만하다! 아니, 그것도 아니라면 무공에 대한 담론? 또 아니라면 지난 선물에 대한 답례?!’
상상이 망상의 지경에까지 끼쳤다.
견동은 가진 찻잎 중 가장 좋은 것은 내어 달인 후 목리원에게 들이밀었다.
표정은 시종일관 함박웃음이었다.
“자, 그럼 이제 오신 용건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아, 고맙소. 그게 다름이 아니라….”
“예, 말씀만 하십시오.”
목리원이 멋쩍은 듯 웃었다.
이윽고 내뱉은 말은 그랬다.
“맹주님과 독대할 일이 생겼는데 혹 그분에 대해 여쭐 수 있을까 싶어서 말이오.”
쩌적, 견동이 굳었다.
주르륵 흐르는 것은 눈물이었다.
‘내게 볼일이 있으신 건 아니구나.’
의기소침해지는 순간이었다.
“실례가 되겠소…?”
목리원이 난처한 듯 눈썹을 늘어트렸다.
그 순간 견동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휙휙 저었다.
“아, 아닙니다!”
사실 섭섭하다는 점만 빼면 말하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7년 전에야 조부의 눈에 들기 위해 아등바등하느라 스스로를 깎아 먹으며 살았지만, 이젠 딱히 그런 일을 중요하게 여겨지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견동은 조부의 인정과 맹에서 얻은 인연들을 저울질하면 후자를 꼽을 사람이었다.
지금 견동에게 하나 걱정이 있다면 목리원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조부와는 혈육이라는 점만 빼면 남처럼 내외하고 사는지라 견동도 아는 게 크게 없었다.
“음, 일단 제가 아는 부분은 극히 일부임을 인지하시고 들어주십시오.”
“알겠소.”
목리원이 눈을 반짝였다.
너무 눈부셔 견동은 잠시 시선을 피했다.
말은 그 이후에나 나왔다.
“아시다시피 조부… 맹주님의 별호 해파검은 사용하는 무공에서 비롯된 별명입니다. 파도의 출렁임을 재현한 검으로 유명합죠.”
일단은 무인으로서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맹주님께서 고작 가전무공에 불과하던 해파검을 독학으로 발전시켜 상승무공으로 완성한 이야기는 고향에서는 꽤 유명하지요. 그뿐만 아닙니다. 이제야 밝혀지긴 했지만 해파검으로 초월에 이르시지 않으셨습니까? 무학에 대한 이해도는 중원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힌다 자부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맹주님입니다.”
“허어, 그런 뒷이야기까지는 몰랐구려. 워낙 강호의 소문에 어두운 터라.”
“맹주에 취임하신 이후에나 유명해진 이야기이니 당연합니다. 묵룡 대협께선 폐관에 드셨었으니.”
견동은 한차례 입술을 핥은 후 말을 이었다.
“어쨌든, 그런 무학을 스스로 쌓으신 분답게 성정은 깐깐하십니다. 작은 일에도 철저하시며 기대에 못 미치는 성과를 내는 부하에겐….”
그 순간 견동은 입안에 씁쓸함이 감도는 것을 느꼈다.
빠르게 지워냈다.
“…가차가 없으십니다. 맹주는 그런 분이십니다.”
문득 부모에 관한 것이 떠올랐다.
조부의 인정을 받지 못한 이유가 그들인 줄 알고 부모를 원망했던 시기도 떠올랐다.
괜한 이야기를 해버린 걸까.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진원단주, 안색이 좋지 않구려. 혹 싫은 일이라도 떠올리게 한 것이오?”
목리원의 배려가 견동의 속에 꽂혔다.
찡하게 몰려오는 감동이 있었다.
견동은 금방 기색을 회복하곤 가슴을 탕탕 두드렸다.
“괜찮습니다. 대협의 부탁이라면 뭐든 들어드릴 준비가 되어있는 게 저 견동 아닙니까?!”
씨익 웃으니 그제야 목리원의 안색도 좋아진다.
웃음이 오가는 와중 견동은 한 마디를 덧붙였다.
“여하튼, 반대로 말하면 유능한 사람을 아끼는 분이십니다. 묵룡 대협이라면 분명 맹주님과도 좋은 관계를 쌓으실 수 있으시겠지요.”
“그리 말해주어 고맙소.”
“별말씀을요. 바로 가시렵니까?”
“일단 오늘은 쉬려하오. 음, 마침 이렇게 만났으니 함께 술이라도 하시겠소?”
견동의 눈이 부릅 뜨였다.
“무무무무슨…!”
“아, 바쁘신….”
“아니오! 반드시! 무조건 해야지! 기다려주시오! 금방 채비하고 나오겠소!”
콰당탕!
견동이 부산스레 외출을 준비했다.
꿈에나 그리던 목리원과의 술자리.
그 자리엔 당화서가 함께였으며, 그날 흥에 취한 견동은 과음하여 목리원의 바짓가랑이에 매달렸다.
“대혀어어업!!! 한 잔만 더해주고 가시오!!!”
“어허, 진원단주. 밤이 너무 늦었소.”
“싫소! 대협과 오늘 밤을 지새워야….”
“목 소협, 여긴 제게 맡기시지요.”
당화서의 목소리와 함께 견동의 기억이 끊어졌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견동은 기억하지 못했다.
그저 하나, 분명한 사실은 다음 날의 견동이 종일 설사에 시달렸다는 것이다.
*
그리 견동과의 술자리를 끝낸 다음 날.
목리원은 이른 아침 일어나 새벽 수련을 마치고 맹으로 나섰다.
‘사람의 능력을 보시는 분이라.’
마일석에게 들었던 것과 그 외 여러 방편에서 수집한 정보를 취합하면 결국 그런 답으로 귀결된다.
목리원은 조금 불안했다.
사실 용봉단이라는 것 자체가 임무에서 크게 터뜨리는 것을 제외하면 항상 사고나 치는 집단이었기 때문이다.
1기 때도 그렇고 2기도 다를 바 없었다.
혹여 맹주가 용봉단을 고깝지 않게 보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 슬금슬금 샘솟았다.
‘…아니, 벌써부터 나쁜 생각은 말자.’
어찌 되었건 만나보면 알 일.
목리원은 숨을 길게 내뱉곤 내각으로 들어섰다.
“음? 묵룡?”
만난 것은 내각주 권표월이었다.
그는 품에 서류를 한가득 안고 있는 채였는데, 그에 의아함이 찬 목리원은 물었다.
“그리 직접 서류를 들고 어딜 가시는 것이오?”
“아, 맹주님께 드릴 서류네. 그러는 자네는?”
“저도 맹주님을 만나러 왔소만….”
말하면서도 목리원은 질린 기분이 되었다.
저리 많은 서류를 다 처리한단 말인가?
맹주직이 바쁨은 알았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던 터라 경악이 치밀었다.
와중 권표월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이번 맹주님이 특히 유별나신 게라네. 모든 일을 스스로 확인하지 않으면 마음을 놓지 못하시는 터라.”
“아….”
“여하튼 잘 되었군. 목적지가 같다니 안내해주지. 한데 무슨 용건인가?”
“전대 맹주님께서 서신을 전달해달라 부탁하셨소.”
권표월의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저, 전대 맹주님을 만났단 말인가?!”
“아, 말하지 않았구려.”
그러고 보니 대외적으로는 은거였지.
괜한 말실수를 한 걸까.
목리원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일단은 비밀로 해주시오.”
“…알겠네. 전대 맹주님도 사정이 있으시겠지.”
그렇게 목리원은 권표월을 따라 맹주전으로 향했다.
이번이 두 번째 방문.
첫 번째는 사백운이 맹주일 적이었던 7년 전이었다.
입구를 지키는 호법을 지나쳐 안으로 든 목리원은 주변을 둘러봤다.
“크게 바뀐 것은 없구려. 여전히 참 고즈넉한 곳이오.”
“맹주께서 꾸미는 일에 관심이 잘 없으시네. 게다가 원체 잘 꾸며져 있던 곳이지 않나? 기도 풍부하고.”
“그도 그렇긴 하오.”
맹주전은 공간에 설치된 진법과 그 속의 여러 식물 탓에 공간 자체가 품은 공력이 웅혼한 곳이었다.
청량함과 묵직함이 함께 느껴짐에 목리원의 감각은 한껏 상쾌함을 느꼈다.
그런 중이었다.
“이리로 오시게.”
대뜸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든 순간, 목리원은 저 멀리 문을 열고 나타난 노인을 보곤 바로 포권을 취했다.
“매, 맹주님을 뵙습니다!”
무림맹주 해파검 견궐, 그가 눈앞에 있었다.
단단한 골격과 기다란 수염이 도드라진다.
차분하다 못해 차갑게까지 가라앉은 눈빛이 목리원을 향해 쏘아졌다.
주변에 정신이 팔려 바로 눈치채지 못한 것이 왜인지 실책으로 느껴지는 순간, 견궐이 말했다.
“내각주, 자네는 서류를 두고 가보시게. 손님이 온 듯하니.”
“옙.”
목리원은 떠나는 권표월을 흘긋 바라봤다.
그는 입모양으로 ‘힘내시게’라는 말만 남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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