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98 이부 구장 - 유산, 증명 (4)
* * *
뺨의 상처가 아릿하다.
목리원은 그 통증이 선연해질 즘에야 상황을 인지했다.
간단했다.
사백운이 천살성과 관련된 일을 알아챘다.
출처는 마일석이겠지.
이미 언질해 준 만큼 인과 파악은 어렵지 않았다.
“검을 뽑아라. 천살성.”
사백운의 기세는 사나웠다.
표정은 싸늘하게 굳어있었고, 창끝에 맺힌 기파는 첨예하게 벼려져 있었다.
그것은 언젠가 목리원이 불안해했던 미래의 한 조각이었다.
천살성을 지고 있다는 걸 들키는 순간 자신에게 따스했던 이들이 어찌 돌변할까.
그들이 얼마나 아픈 말과 눈빛으로 자신을 짓누를까.
드디어 그 불안감이 현실로 드리워졌다.
그리고 목리원은 이 순간 생각했다.
‘다행이다.’
조금 더 성숙해진 지금에서야 이런 상황을 마주하게 되어서.
서투르던 시절처럼 당황하지 않을 수 있게 되어서.
각오했던 일이다.
또한 목리원은 이런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어찌 행동해야 할지 이미 생각해두었다.
“맹주님.”
“그리 부르지 마라.”
“어떤 말로도 설득할 수 없음을 압니다. 그러니 저는 무인의 방식으로 맹주님을 설득하겠습니다.”
목리원은 흑야를 뽑았다.
새까만 검신 위로 시린 묵색의 별이 떠올랐다.
그 기세는 참으로 침잠하다.
하나, 마냥 어둡기만은 않았다.
아스라이 빛나는 알갱이들은 목리원이 살아생전 얻은 깨달음의 조각이었다.
그 위를 덮는 묵색의 소우주는 목선오가 남겨준 삶의 궤적이었다.
목리원이 기수식을 취했다.
사백운은 창대를 강하게 말아쥐었다.
목리원이 입을 뗐다.
“별은 저를 규명할 수 없습니다.”
“그리 말하겠지. 살아야 하니.”
“진심입니다.”
살아갈 방식은 스스로 결정하기로 마음 먹었기에.
“가겠습니다.”
더 말은 필요없다.
무인은 무로서 자신을 드러내는 법이다.
사백운은 그런 것을 아는 사람이고.
퉁!
목리원이 순식간에 사백운의 품속까지 파고들었다.
*
목리원의 검이 아래에서 위로 솟아오르며 사백운의 턱을 노렸다.
하나 닿지 않았다.
캉!
그가 창대를 가볍게 휘젓는 것만으로 공격이 막힌 까닭이다.
예상했다.
바로 목리원은 다음 공세를 이었다.
그렇게 이어진 공방은 명백한 목리원의 열세였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 사백운은 사성육왕 중에서도 그 무력이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강자다.
일찍이 혈사에선 그 용맹함으로 혈천교를 휘저었으며, 7년 전 마교와의 결전에서도 장로 셋을 상대하며 버티는 위엄을 보여줬다.
이제 막 초월에 다다라 성장해가는 목리원이 닿기에 그는 너무 먼 곳에 있는 것이다.
포기를 말할 정도는 아니나 고됨은 어쩔 수 없었다.
목리원은 기꺼이 감내하며 또 공세를 취했다.
그것이 방어로 바뀌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이 정도더냐!”
쾅!
사백운이 기파를 터뜨리며 목리원을 떨쳐냈다.
거리가 벌어졌다.
그것은 명백한 틈이었다.
창이 검보다 길다.
달리 말해 창의 제공권 안에 드는 순간 검은 상대를 찌르지도 베지도 못하는 애물단지가 된다.
이미 공력에 물리적 실체를 덧씌우는 경지에 올라 거리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초월이라 해도 그 진리가 아주 무용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쿵!
공력은 공력으로 지워낼 수 있다.
검기는 검기로 막아내 흘려낼 수 있다.
하지만 실체가 존재하는 창은, 그렇지 못했다.
까드드득!
목리원은 검을 사선으로 빗겨들어 심장을 노리고 들어온 사백운의 창을 막았다.
하지만 온전한 것은 아니었다.
목리원의 무릎이 점점 꿇렸다. 창에 실린 힘 탓이다.
‘강하다.’
그는 살아생전 마주해본 적 중 손에 꼽힐 정도로 강했다.
범상한 방도로는 이길 수 없겠지.
기량이나 기세의 문제가 아니었다.
사백운이라는 무인이 일평생 쌓아온 공력의 문제였다.
그는 백도 무림 10대 고수였다.
이후에는 무림맹주였고, 이리 은거하고 나선 마일석과 자연을 벗 삼아 내공을 정련해온 사내였다.
그간 얼마나 많은 시간을 운기조식에 할애했을 것이며, 얼마나 많은 영약을 먹었을 것이며, 또 그 소화에 얼마나 많은 노고를 들였겠는가.
정순하고 묵직하며 방대하다.
목리원이 허겁지겁 삼켜온 공력과는 그 질부터가 달랐다.
“살로를 보느냐?”
사백운이 눈을 부릅뜨며 물었다.
목리원은 이를 빠득 갈다 답했다.
“생로만을 봅니다.”
“그 말을 어찌 믿을 수 있겠느냐.”
“다만 검으로 증명하려 합니다.”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목리원은 다시금 일어섰다.
쾅, 쾅, 쾅!
매 순간 온 힘을 다해 검을 휘둘러야 했다.
그리하며 사백운의 빈틈을 찾아내고자 했다.
쉽지는 않았다.
사백운은 창은 맹룡의 창이다.
웅혼함의 정도는 이루 말할 데가 없는 정도이며 그 매서움은 저 하늘을 유영하는 용을 연상케 하는 패도적인 섬뜩함이 가득했다.
별의 별호를 받은 강자.
목리원은 비로소 그 무게를 온전히 실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질 수 없었다.
무너질 수 없었고, 사백운에게 살초를 휘두를 수 없었다.
다만 생존을 위한 승리가 아닌, 그 이상을 봐야 했으므로.
“가증스럽다!”
쾅!
또다시 내려찍는 창날에 말해야 했으므로.
-원아, 협객이란 구태여 가장 어려운 길을 가는 자들을 일컫는 말이다.
자신은 살귀가 아닌 협객임을, 그것을 말해야 했으므로.
*
초월에 오른 무인은 결투를 통해 살아온 인생의 궤적을 가늠한다.
물론 그것이 상대방이 살아온 과거의 사건들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무기를 맞대는 순간 느낄 수 있는 것은 상대가 일평생 쌓아온 공력에 녹아든 신념, 감정, 그리고 성향이었다.
그런 것들을 사백운은 느꼈다.
‘닮았다.’
쾅!
목리원의 검은 목선오의 검을 닮았다.
쾅!
목리원의 신념은 목선오의 신념을 닮았다.
쾅!
목리원이 펼치는 세계는 목선오의 세계를 닮았다.
강호 무림의 가장 찬란했던 별이 기억 어딘가에서 고개를 든다.
그가 무엇을 남기려 했는지가 되새겨진다.
-좋은 승부였소.
끝끝내 비무가 마무리되면 그런 말과 함께 손을 내밀던 사내가 있었다.
그는 동경하게 되고 마는 미소를 지었으며, 뒤를 쫓고만 싶게 하는 너른 등을 가졌으며, 또 밤새 토론하고 싶게 하는 깊은 심계를 가졌었다.
그런 것들이 목리원의 검을 마주할 때면 드문드문 떠올랐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었다.
‘검성께서 직접 키우신 제자다. 마음가짐이 그럴 수 있다.’
목리원의 신념은 올곧은 게 당연하다.
검은 망설임이 없음이 당연하고, 눈빛은 맑게 빛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 것들을 확인하고 싶은 게 아니었다.
“전력을 보여라-!”
사백운이 보고 싶은 것은 전력이었다.
그가 끝끝내 넘을 수 없는 벽을 마주했을 때 최후에 기대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고 싶은 것이었다.
그것을 보기 위해 사백운은 정말 목리원의 목숨을 위협할 만한 살초들을 쓰고 있었다.
그 궤적에 흔들림은 없었다.
그것을 위해 7년이나 명상했다.
까앙!
공방이 이어졌다.
슬슬 목리원의 한계가 보이고 있었다.
애초에 질 수가 없는 승부였던 만큼 당연한 일이다.
“큭!”
마주 살초를 사용하지 않는 이상 이 구도는 절대 변하지 않을 터였다.
목리원도 슬슬 그것을 깨닫고 있었다.
하여 사백운은 더욱 격렬하게 그를 몰아붙였다.
투쾅!
쩌저적 창날 위로 강기가 맺힌다.
어쭙잖게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목리원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는 이 뜻을 이해했다.
이내 왈칵 찌푸리는 얼굴이 그것을 말했다.
“맹주님…!”
“갈!”
꽈득, 창대로 목리원의 허리를 후려치자 그의 입에서 핏물이 토해져나왔다.
“커흑!”
그 순간 눈동자가 붉게 물드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보였다.
그것은 천살성의 편린이었다.
사백운은 이를 악물었다.
거리가 벌어졌다.
“내 절기다. 막아보아라.”
살성으로서 살아남을 것인지, 백도의 무인으로서 맞부딪혀 올 것인지.
선택은 그에게 달렸다.
콰과과―!
금색의 기파가 회오리치며 사백운의 창대를 휘감았다.
그것은 창날 끝으로 몰리며 거대한 기의 집합체가 되었다.
목리원은 검을 양손으로 쥐었다.
흐트러진 모습으로도 눈은 부릅뜨며 기파를 발했다.
묵색의 밤하늘이 공간을 점했다.
눈이 마주쳤다.
정적이 잠시, 이내 두 사람이 동시에 전진하며 굉음이 일었다.
꽈아아아앙!
땅거죽이 뒤집히며 흙먼지가 비산했다.
사백운은 창을 내지른 자세 그대로 우두커니 섰다.
저항감 따위는 생각하지 않았다.
결과도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흙먼지가 걷히는 그 순간까지 하나만을 생각했다.
“무엇이냐.”
창을 세로로 갈라내고도 딱 창을 쥔 손 앞에서 멈춘 흑색의 검신이 무슨 의미인지.
이윽고 시야에 목리원이 또렷하게 들어온 순간, 사백운은 미소 짓는 그를 볼 수 있었다.
“제 답입니다.”
기시감이 들었다.
그것은 오래전 청룡비무회에서 만난 목선오의 것과 참 닮은 미소였다.
그에 비해 심각하게 잘생긴 얼굴만이 유일한 오점이었다.
팅―
창을 손에서 놓았다.
사백운은 그 순간 씁쓸하게 말했다.
“내 너를 믿어도 되겠느냐?”
이미 답은 정했음에도 굳이 물었다.
그에 목리원이 답하길,
“저를 믿지 마십시오.”
“그렇다면?”
“협의를 믿어주십시오.”
그것은 사백운을 완벽히 무릎 꿇리는 말이었다.
완패였다.
무인으로도, 인간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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