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96 이부 구장 - 유산, 증명 (2)
* * *
근 7년만의 재회에 반가움과 함께 차오른 것은 당황스러움이었다.
“어찌 이렇게 갑작스럽게 오셨습니까? 미리 연통을 주셨으면 준비라도 하고 있었을 텐데….”
“되었다. 챙겨봐야 뭐 얼마나 대단한 걸 챙기겠다고 준비까지 한다더냐. 얼굴이나 보면 된 것을.”
끌끌 웃는 염소소는 조금의 거리낌도 없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에 목리원은 머쓱함을 느꼈다.
하긴, 원체 신출귀몰한 인물이 그녀 아니던가.
염소소와의 만남은 한 번도 예상한 형태가 아니었다.
그녀답다면 그녀다운 것이겠지.
“식사는 하셨습니까?”
“직전에 먹었다. 네놈도 오늘 단원들과 식사를 하고 온다 들었는데.”
“맞습니다.”
썩 평화로운 자리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생각하며 빙긋 웃는 와중이었다.
“좋아보이는구나.”
염소소가 따스하게 웃으며 말했다.
목리원은 그에 눈을 끔뻑였다.
좋아 보인다라….
“…예,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 행복에 겨워 지내고 있습니다.”
그리 말하며 당화서를 흘긋 바라봤다.
그녀의 뺨이 슬쩍 붉어졌다.
염소소는 덜컥 헛웃음을 흘리다 이내 말했다.
“염장질도 이런 염장질이 없지. 내 그냥 산골에 계속 박혀있을 것 그랬다.”
“너무 노여워 마시지요.”
당화서가 나섰다.
이윽고 내뱉는 말은 목리원도 놀랄 만한 말이었다.
“소협이 안 계신 동안 가끔씩 들러 무공을 지도해주셨습니다. 암기술을 특히 집중해 가르쳐 주시었죠.”
“그랬었소?! 그럼 소저가 살성님의 제자….”
“제자는 무슨, 잔재주 몇 개 가르친 것 가지고.”
염소소의 반박에 당화서는 쿡쿡 웃었다.
목리원은 두 사람을 눈에 담았다.
입으로는 사제지간이 아니라고 하나, 둘 사이에 친밀감이 얼핏 보인다.
끼어드는 게 이상한 그림이 될 정도로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문득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런 일이 있었구려.”
왜 이 순간 목선오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인지.
괜히 감상적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아차, 그래. 내 볼 일이 있어 무한까지 왔는데 그걸 깜빡했구나. 늙으니 꼭 이러이.”
“반가운 마음에 그러신 게지요. 아직 정정하시지 않습니까.”
“아부는 됐다.”
답한 염소소가 서찰 하나를 목리원에게 내밀었다.
목리원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게 뭡니까?”
“거지 놈이 맡긴 것이다.”
목리원의 눈이 크게 뜨였다.
“걸왕님 말입니까? 행방을 아시는 겁니까?”
“그래, 간간이 연락을 주고 받았으니.”
“대체 어디 계시….”
“그것이나 읽어 보거라.”
목리원의 몸이 우뚝 멎었다.
시선이 또 서찰을 향했다.
잠시 긴장을 삼키고 그제야 서신을 펼치니, 안에 적인 내용은 그랬다.
『산서로 오거라. 거기서부터는 개방이 안내해줄 것이다.』
영문 모를 말이었다.
절로 섭섭함이 함께 떠오르는데, 그것은 이내 스러졌다.
“걸왕님 다운 서신이군요.”
잡설 없이 본론만 간략히.
허레허식을 싫어하는 그 다운 서신이었다.
목리원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그래도 별 탈 없이 지내는 듯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뒤늦게야 일어서였다.
“맹에는 미리 말을 해놨다. 네가 원한다면 당장이라도 시간을 뺄 수 있을 게다.”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되었다. 보상은 이놈한테 받을 것이니.”
염소소가 당화서를 지목했다.
당화서는 별 일 아니라는 듯 여상스레 말했다.
“제가 드리기로 한 영약이 있었습니다. 거기에 조금 더 얹어드리는 것이니 부담가지실 필요는 없습니다.”
목리원은 작게 감격했다.
“꼭 갚겠소. 소저, 너무 고맙소.”
“기억해두겠습니다.”
당화서의 미소가 순간 스산해졌으나 목리원은 눈치채지 못했다.
다만 그리 말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내일 당장 출발하겠습니다. 시일을 적어두지 않은 걸 보면 이미 그쪽에 가 계실 테니.”
어찌 걸왕을 기다리게 하겠나.
성질 급하기론 둘째가라면 서러운 것이 바로 그이니 여유를 부렸다간 또 호통을 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려무나. 나는 오랜만에 나왔으니 유람이라도 하다 들어가야겠다.”
염소소는 그리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룻밤 쉬고 가는 게 어떠냐는 말에도 영 구미가 안 당기는 것인지, 그녀는 손사래를 치며 떠나갔다.
*
다음 날 아침이었다.
목리원은 단원들에게 대강의 설명을 마쳤다.
봇짐을 등에 맨 채였다.
“단장님은 맨날 휴가네.”
“또 일 때문에 휴가 내신 거겠지.”
“글쎄, 싱글벙글한 얼굴 보면 그건 아닌 것 같은데.”
“거기까지 해.”
강서휘와 남궁소아가 투닥거렸다.
다른 단원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손을 흔들며 목리원을 배웅했다.
“잘 다녀오세요.”
“사고 치지 말고 있거라. 오래 걸리진 않을 테니.”
“단장님두요.”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얼굴에 잠시 어이가 없어진다.
목리원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 이내 뒤돌아 걸음을 옮겼다.
마차나 말을 이용할까 했지만, 역시 여정은 도보가 최고인 법 아니겠나.
섬서는 7년 전 임무로 갔던 일 이후 처음이다.
이왕 휴가까지 받았으니 길은 경공으로, 마을은 걸으며 통과할 생각이었다.
퉁!
그렇게 몸이 떠올랐다.
*
섬서까진 딱 닷새가 걸렸다.
무한에서 북쪽으로 가는 내내 목리원은 꽤 설레는 마음이었다.
과연 7년 간 마일석은 어떻게 지냈을까.
재회의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아참, 사백운과 함께 떠났다는 말이 있는데 그렇다면 이번에 그도 만나볼 수 있는 건가?
갖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흐르듯 떠오르고 사라진다.
그럴수록 기대감은 더욱 차오른다.
비단 그를 만나고 싶다는 마음 뿐만은 아니다.
아버지 같은 사람이었다.
지난 7년 이만큼 성장했고, 이젠 천살성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됐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당연 존재하는 것이다.
여하튼 그런 감정에 빠져 섬서.
구파 중엔 화산과 종남이 있는 곳이었고, 그들의 영향력이 도시에 물씬 풍겨 도교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곳이었다.
도시에 들어서니 활기가 가득했다.
지난 7년간 구파의 몇 문파가 봉문하는 중에도 피해가 그리 크지 않아 계속 치안에 힘써온 것이 섬서의 두 문파다.
당연스레 평화로운 분위기가 감도는 것이었고, 그런 활기가 목리원을 흐뭇하게 만들고 있었다.
여기서 유람을 즐겨도 되겠지만 그것은 뒷일.
‘개방을 찾으라 했지.’
일단 마일석과 만나는 게 우선이다.
거지 패들에게 물어보면 알까.
개방의 거지들을 구분하는 법이 있다곤 하나 하나하나 거지들을 찾아다니며 확인하는 것은 시간 낭비임을 알았다.
그리하여 수소문을 시작하려는 순간이었다.
“아이고 대협~ 한 푼만 줍쇼!”
마침 거지가 나타났다.
꼬질꼬질한 행색에 바닥에 엎드려 바가지를 머리 위로 드는 모습이 참 그림으로 그린 듯한 거지였다.
잘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그에게 동정심을 품을 수밖에 없는 행색.
하지만 목리원은 그를 보며 동정심이 아닌 다른 감정을 품었다.
“이리 곧장 와주시는구려.”
내력이 느껴졌다.
마일석의 것과 결이 같은 내력이다.
말해 무엇하겠는가, 개방의 인물인 것이다.
“아이쿠, 이거 안 속으시는구먼.”
거지가 씨익 웃으며 뒤통수를 긁었다.
“섬서로 넘어오실 때부터 준비 중이었습죠. 걸왕님이 얼마나 닦달하시던지.”
“그랬소? 이거 늦어서 미안하오.”
“아휴, 되었습니다. 일단 가십시다.”
거지가 툭툭 옷을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목리원에게 상당히 호의적이었다.
사실 입지나 무공 수위를 생각하면 호의적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으나, 그럼에도 과하다 싶을 정도로 눈빛이 빛나 목리원의 속에 의문이 차오를 정도였다.
그에 목리원이 가만 그를 보고 있으니 곧장 이유가 밝혀졌다.
“그래, 우리 걸왕님 직계 제자시면 개방의 형제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거지의 미소가 참으로 쾌활했다.
목리원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랬었지 참.’
대외적으로 자신은 목선오가 아닌 마일석의 제자였다.
천살성을 숨기기 위해 그런 선택을 했던 것이다.
사실 이제와서는 그 사실을 아는 자가 반 이하로 줄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지지만 그래도 새삼 말을 바꾸는 것은 좋지 않을 터.
목리원은 답했다.
“개방엔 언제나 감사함을 느끼오. 맹에서도 들어오는 정보를 잘 쓰고 있으니.”
“에이, 형제끼리 당연한 것입죠.”
“한데 이제 어디로 가오?”
“나흘은 족히 움직여야 합니다. 걸왕께서 산골짜기에 터를 잡으셨거든.”
“음? 도시가 아니었소?”
“내 말이 그 말이우.”
거지가 한숨을 내쉬었다.
“거지는 빌어먹어야 한다고 그리 강경하게 말하던 분이 나이가 드시니 자연이 좋은 가보오. 이젠 구걸도 안 하고 산나물을 캐 먹는 것 아니겠소?”
그야 목선오와 살며 그 생활이 몸에 배어버렸을 테니까.
“게다가 토끼 고기는 또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르겠소. 뭐라더라, 다리가 참 별미라던가.”
문득 목리원은 속이 뜨끔거리는 것을 느꼈다.
어릴 적 마일석이 꽁쳐둔 다릿살을 몰래 빼먹은 일이 참 많았어서.
그런 감정을 제쳐두고 생각하면 역시 그리움이 짙어진다.
함께한 세월을 기억하는 것이 자신뿐만 아니라는 것에.
“자, 이쪽으로 가십시다.”
“알겠소.”
목리원은 산맥을 향해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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