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293화 (293/334)

EP.294 막간 - 끝 없는 싸움 (2)

* * *

목리원은 근래 들어서 정신이 맑은 상태였다.

다름 아닌 환약의 효능이었다.

몸의 독소를 배출해내고 기운을 보충해주는 효과가 있다더니 과연, 평소의 차분한 기색을 되찾음은 물론이오, 근래 당화서만 보면 느꼈던 찌릿한 감각까지 옅어진 게 아닌가.

짙은 만족감이 차오르는 것이다.

하여 오늘의 목리원은 유독 말을 많이 했다.

매 순간 해맑음을 잃지 않았으며 내뱉는 말은 논리정연하게 머릿속에 있는 것이 정리되어 나왔다.

아, 정상적인 대화가 이리도 즐거운 것이었구나!

그녀와 정상적인 상태로 대화할 수 있음은 참 축복받은 일이구나!

그런 새삼스러운 기쁨에 빠져있는 목리원과 다르게 현 상황이 못마땅한 사람이 있었다.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랬군요.”

당화서였다.

그녀는 지난 노력의 산물들이 모두 물거품이 된 듯한 모습에 짙은 허탈함과 조바심, 그리고 약간의 답답함을 느꼈다.

“그렇소! 아, 그리고 말이오. 그저께 회의에선 진원단주가 글쎄….”

어디서부터 문제였던 걸까.

하독하는 과정에서 용량의 실수가 있었나? 배합의 실수가 있었나?

그럴 리가 없음에도 계속 그쪽으로만 생각이 끼친다.

어쩔 수 없었다.

‘해독이 너무 빠른데.’

그가 초월의 육신을 지니고 있다 한들 이 해독 속도는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뭔가 외부적인 요건이 더 있지 않고서야….

‘…외부?’

그 순간 당화서는 뒤늦게 하나의 사실을 깨달았다.

뇌리에 천둥이 치는 감각이었다.

‘…그래.’

독이라는 것은 결국 해독이 가능하며, 특히 지금 하독 해둔 독은 일반적인 약초로도 해독이 가능한 무해한 약초였다.

목리원이 주기적으로 해독제를 먹는다면 그것만으로 독기를 빼내는 게 가능하단 말이다.

자연히 이어지는 생각은 그랬다.

‘눈치챘다?’

그간 있었던 사고가 모두 약에 의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그가 눈치챈 것인가?

그리하여 몰래 해독제를 먹고 있었던 것인가?

아니, 그럴 가능성은 낮았다.

당화서는 목리원을 알았다.

그는 스스로 생각해 도의적으로 옳지 않은 일이라면 홀로 끙끙대기보단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걸 선택하는 사람이다.

하독 당했다는 걸 알고도 모른 척할 인물이 아니란 말이다.

그렇다면 답은 뻔하다.

‘해독제가 해독제인 줄 모르고 먹고 있다!’

당화서의 눈이 부릅 뜨였다.

전자보다 더 말이 안 되는 소리지만, 목리원에 한해서는 충분히 실현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푼수니까!

어디 가서 사기당하기 딱 좋을 정도로 순수한 사람이니까!

이에 관해 더 알아낼 필요가 있었다.

당화서는 목리원의 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적절한 순간마다 맞장구를 치고, 그가 웃을 땐 함께 웃으며 기회를 노리길 한참,

“한데 말입니다. 소협.”

“응?”

드디어 기회가 왔다.

당화서는 속내를 가면 뒤로 감춘 채 말했다.

“근래 들어 안색이 참 좋아지신 듯합니다. 특별히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습니까?”

절대 해독약과 관련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저 해독이 진행되며 그가 느꼈을 시원스러움을 넌지시 짚는 형태의 질문이었다.

그것은 정답이었다.

목리원은 눈을 크게 뜨며 놀라 했다.

“그렇게 티가 나오?”

“예, 안색이 무척 밝아지셨는 걸요.”

“이거 소저는 못 속이겠구려.”

목리원이 뒤통수를 긁으며 하하 웃었다.

“근래 먹고 있는 환약이 있소!”

당화서의 눈이 빛났다.

떡밥을 물었다.

“호오? 환약이라 하면?”

“선물 받은 약이오. 하루에 한 알씩 먹으면 기력이 회복되고 몸의 독소가 빠져나간다지 않소? 아! 물론 영약 같은 것은 아니오. 여하튼 근래 상태가 좀 좋지 않아 먹어봤는데 바로 효과가 오더군! 눈에 보일 정도라니 참 흡족하오.”

당화서는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는 기분을 느꼈다.

‘누구냐.’

다 된 밥에 재를 뿌린 앙큼한 인간이 대체 누구일까.

이글이글 가슴을 불태우는 것은 분노였다.

“좋은 물건을 받으셨군요. 한데 그 출처가…?”

“백련교주요!”

뚜둑―

당화서는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끊어지는 기분을 느꼈다.

함께 떠오르는 것은 산 송장 같은 말라깽이 사내.

눈이 마주칠 때마다 쯧 혀를 차기나 하는 예의범절이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주제에 목리원에겐 묘하게 다정했던 사내.

‘이 빌어 처먹을 잡것이!’

기어이 손을 뻗쳐 오는구나!

당화서는 장담했다.

‘남색가가 분명하다! 소협을 노리는 게야!’

그러지 않고서야 목리원의 연인인 자신에게만 깐깐할 이유가 없다.

몰래 목리원을 챙겨줄 리가 없었고, 또 하필 챙겨주는 방식이 해독일 리도 없었다.

그는 속에 음흉한 마음을 품은 채로 목리원을 빼앗아 가려는 남색가일 수밖에 없지 않겠나!

하지만 어림도 없지.

당화서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흠, 제가 그 약을 봐도 되겠습니까?”

“음? 왜 그러시오?”

여기서는 조심스러워야 한다.

애초에 목리원은 단지선과 호의적인 쪽이고, 타인의 선물을 함부로 깎아내리는 것은 인격적으로 좋지 않게 비칠 것이 분명하니까.

당화서는 망설이는 듯 잠시 말을 삼키다, 이내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런 말씀이 어찌 들릴지 모르겠습니다만… 백련교이지 않습니까. 저는 도저히 그들을 좋게 볼 수가 없겠더군요.”

“음, 그 마음은 이해하오.”

“혹여 그들이 약에 수를 썼을까 두려운 마음에.”

목리원은 눈을 깜빡였다.

그러다 ‘빵!’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에이, 소저도 아시잖소? 교주는 파마성의 주인이오. 보편적으로 삿되다 평해지는 기준에서 행동할 수가 없음인데 그것보다 확실한 증명이 어디겠소?”

과연 쉽게 주지는 않겠다는 말이지.

하지만 물러설 당화서가 아니었다.

“그렇다 해도 문제가 없으리란 보장은 없습니다. 제가 누굽니까? 독과 약으로 정평 난 사천당문의 문주입니다. 그런 만큼 약에 관해서는 남들보다 잘 안다 자부하고 있지요. 약이란 본디 어찌 쓰느냐에 따라 독이 될 수도 있을진저, 그들의 의도가 선했다 한들 소협의 체질에 약이 맞지 않을 수도 있는 법 아닙니까?”

“어, 어어…. 하지만 효능이 확실….”

“독 중엔 최초의 복용 땐 약처럼 둔갑하는 게 있습니다.”

목리원이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그의 얼굴 위로 작게 수심이 스쳐 지나갔다.

“그럴 수도 있겠구려…. 그렇다면 확인을 한 번 부탁해도 되겠소?”

당화서는 속으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저만 믿으시지요.”

성공이었다.

*

이윽고 약이 담긴 상자를 받은 당화서는 그것을 한 알 먹어보고 헛웃음을 흘렸다.

‘영약이 아니긴 개뿔이?’

영약이었다.

그것도 범상한 영약이 아니라, 속에 독에 대한 내성을 키우는 특수한 목적의 영약.

과거 당화서가 만독불침의 실험체로 쓰이던 시기, 독을 몸에 주입하기 전 최초로 몸에 쌓은 것이 이 약의 약기운이었다.

정확한 명칭은 절독환(絶毒環).

약 하나하나의 가격부터가 끔찍하여 이만한 양을 모으려면 무한의 장원 하나를 통으로 살 정도의 돈이 필요하다.

그뿐만 아니었다.

시중에 매물 자체가 그리 많지 않은 영약이라 구하는 것부터가 문제였을진대 어찌 이만큼이나 약을 구해왔단 말인가.

단지선이 남색가이리라는 추측이 신빙성을 더해가고 있었다.

이건 암만 생각해도 보통 노력 수준이 아니었다.

그런 점을 떼어놓고 생각해도 그랬다.

‘이렇게까지 나를 견제하겠다?’

적어도 목리원을 백독불침 정도까지는 만들겠다는 단호한 의지가 느껴졌다.

실제로 이것을 다 먹을 즘엔 그 정도 경지에는 오를 수 있을 것이다.

당화서는 잠시 고민했다.

‘…몸에 좋은 약인 것은 맞다.’

암만 개인적인 욕심이 있다지만 목리원에게 좋은 일을 구태여 가로막아 가면서까지 그 욕심을 채우고 싶진 않다.

하나, 그렇다고 이걸 그대로 다 먹이는 것은 또 문제였다.

골몰이 이어진다.

그런 시간이 다 끝나고나서야 당화서는 한숨을 내쉬며 결론을 내렸다.

‘어쩔 수 없지.’

약의 배합을 바꾸는 수밖에.

자극은 모자라겠지만, 이 약에 특수처리를 해 미혼 효과를 슬쩍 불어넣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야지.

…당화서는 집요한 여인이었다.

*

“다 됐습니다. 약 자체는 상당히 좋은 물건이긴 하나 미심쩍은 부분이 있어 처리를 했습니다. 드셔보십시오.”

“그렇소? 고맙소 소저!”

“별말씀을.”

목리원은 지그시 웃는 당화서의 모습에 헤실헤실 웃으며 약을 한 알 씹어삼켰다.

“맛이 좀 변했구려?”

“독소를 살짝 씻어냈습니다. 해독 효능을 내는 약초가 자칫 독으로 작용할 만한 것이라.”

“그렇소? 뭐, 큰 문제는 없겠지.”

하고 답한 순간이었다.

목리원은 묘하게 뱃속이 따스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약효과 더 확실히 도는 건가?’

분명 그렇겠지.

당화서가 장담했으니까.

괜히 배를 쓰다듬은 목리원이 고개를 든 순간이었다.

“한데 소협, 그렇게 입으로만 고맙다고 하실 작정입니까?”

당화서가 슬쩍 다가왔다.

목리원의 몸이 굳자, 그녀가 사뭇 요사스럽게 웃으며 목리원의 뺨을 붙잡았다.

“입맞춤이라도 해주셔야지요.”

“소, 소저! 잠… 읍!”

쪽! 부딪친 입술이 이내 억지로 벌어졌다.

혀가 얽히는 순간 목리원은 찌르르 등골이 울리는 기분을 느껴야 했다.

“흐븝!”

소리를 낸 목리원은 그 후로 꽤 오랜 시간, 그녀에게 붙잡혀 움찔움찔 몸을 떨어야만 했다.

그럴수록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것은 덤이었다.

오늘의 승자는 당화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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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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