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91 이부 팔장 - 감숙, 해후 (9)
* * *
두 번째로 백경오를 찾는 일은 이전보다 쉬웠다.
무엇보다 기파의 충돌이 느껴졌던 까닭이다.
공기를 타고 퍼져나가는 이질적인 흐름, 그에 집중하면 느껴지는 마기와 진기의 충돌이 저곳에서 전투가 일어나고 있음을 깨닫게 한 것이다.
하나 의문점이라면 분명 대기 명령을 내린 다른 단원들의 기파가 느껴진다는 것이었고, 그에 자리해 도착해보니 과연.
“단주님!”
상처 입은 백경오가 가부좌를 틀고 있다.
그를 사방에서 막아선 단원들이 환한 얼굴을 만들고 있다.
명령불복종.
그리 혼을 낼 수도 있으나 그것은 나중으로 미뤄도 될 일이다.
무엇보다 단원들이 나서지 않았다면 분명 백경오에게 큰 일이 닥쳤을 것임은 분명했으니,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목리원은 고개를 들어 마인들을 바라봤다.
모두가 쩌적쩌적 굳어있었다.
이미 도망친 마기 하나가 있으나, 기감에서 아주 멀어지진 않고 있으니 일단 이곳부터 정리하는 게 맞겠지.
“수고했다.”
말하며 목리원이 흑야를 뽑았다.
거창한 과정은 없었다.
서걱―!
하는 절삭음과 함께, 열댓 명의 마인은 모두 목이 베여 죽었다.
털썩털썩 쓰러지는 시체들 사이로 단원들의 얼굴에 경악이 피어올랐다.
이윽고 함께 떠오르는 것은 안도와 기쁨이었다.
“단주님! 먼저 가놓고 저희보다 늦게 도착하면 어떡해요?!”
남궁소아가 웃으며 앓는 소리를 냈다.
목리원은 싱긋 웃으며 남궁소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하며 백경오를 살폈다.
그는 서서히 호흡을 가다듬으며 눈을 뜨고 있었다.
무언가 기질이 변했다.
다른 무엇도 아닌 무인으로서의 본능이 그리 말하고 있었다.
안광이 일순 점멸한 후, 백경오는 그제야 목리원을 발견하고 눈을 크게 떴다.
그의 시선이 주변을 훑었다.
“…단주님이 이리 하신 겁니까.”
“늦어서 미안하구나.”
“….”
백경오의 시선이 마인들의 시체를 한참이나 훑었다.
이윽고 그의 눈이 좁아졌다.
목리원은 말했다.
“하나를 놓쳤다.”
“예, 비겁한 놈이니 도망갔겠지요.”
“아는 자더냐?”
“악연입니다.”
그 순간 목리원의 눈이 슬쩍 뜨였다.
‘별이….’
움직이고 있다.
저항과 일체 사이의 어딘가에서 이제까지 보았던 것과 다른 형상을 취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목리원으로서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백경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쫓겠습니다.”
“내가 같이….”
“아닙니다.”
덜컥, 목리원의 몸이 멎었다.
백경오는 어딘가 후련한 얼굴을 만들었다.
이윽고 미소를 지어내며 말하니.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목리원은 차마 그를 붙잡을 수 없었다.
더듬더듬 입술을 열다 이내 목리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백경오는 그렇게 멀어졌다.
*
기이한 경험이었다.
그저 내상을 정양하기 위한 운기조식을 취했을 뿐이건만 작은 깨달음 같은 것이 함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아니, 그것을 깨달음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 것보다는 좀 더 원초적인, 또한 감정적인 감상이었다.
백경오는 시야가 넓어졌음을 깨달았다.
정확히는 자신이 옆을 볼 수 있는 사람임을 깨달았다.
홀로 걸어왔다 생각한 길에는 꽤 많은 사람이 함께 걷고 있었다.
죄스러움에 파묻혀 살았던 생이라 생각했건만, 그 곁에는 죄악감을 함께 밀어내주는 동료가 있었다.
낯간지러운 감상이었으나, 그것이 몸을 가볍게 만들었다.
영감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내내 달려 금선우를 찾아냈다.
그는 어딘가로 향하는 통로 앞에 멈춰 있었다.
“추적도 대비하지 않나. 멍청하게.”
백경오가 이죽이자 금선우가 황망한 얼굴로 주변을 살폈다.
이윽고 비열한 미소가 그의 입가에 떠올랐다.
“혼자 왔다고? 진짜? 너 병신이냐?”
저열한 환희에 젖어있는 얼굴이었다.
언제 겁을 먹었냐는 듯 기세가 등등해졌다.
그 태세의 전환에 백경오는 헛웃음을 흘렸다.
“찌질해도 이리 찌질할 수가.”
“웃기지도 않네. 쓰레기 같은 놈이.”
금선우가 마기를 발했다.
이전처럼 포악하고 강대하다.
하나, 질 것 같지는 않았다.
“놀아줄 시간은 없으니 빨리 끝내주마!”
쾅!
금선우가 달려들었다.
그는 분명 칠상권의 기수식을 취하고 있었다.
백경오는 그가 다가오는 장면이 아주 느릿하게 보였다.
지금은, 우존자의 말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중요한 건 마음이다! 몸은 결국 마음을 따라 움직일 뿐이지!
호방한 웃음과 함께 이르던 말이었다.
그 말마따나, 추악한 마음을 가진 금선우의 칠상권은 그 초식의 정밀함이 떨어졌으며 기세 또한 우존자의 패도를 조금도 담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칠상권은 마를 깨부수는 일곱 번의 권식이다.
그 기수식을 취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물러남을 모르는 용기이며, 또한 굴복하지 않는 신념이었다.
금선우는 둘 다 없었다.
용기가 없어 약자 앞에서만 으스댈 줄 아는 권이었고, 스스로 정도에서 돌아서 신념이 꺾인 권이었다.
그런 권에, 백경오는 질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척―!
주먹을 말아쥐고 진각을 밟았다.
‘마음을 따라.’
그것이 초식을 발하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면.
‘초식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내 마음의 문제다.’
스스로 포기해버린 마음이 곧 초식과 무공의 실패로 이어진 것일 터다.
그러니 마음을 붙잡는다.
불가능을 머릿속에서 지운다.
단 하나,
-칠상권은 악독한 이들을 벌하기 위해 만들어진 권이다! 그러니 경오야! 그 마음만 기억해라! 초식은 어설퍼도 된다! 아니! 몰라도 된다! 그저 악인 앞에서 당당하게 주먹을 내지른다면 그것이 바로 칠상권이다!
악을 벌하는 마음으로.
주먹을 내질렀다.
투웅―!
두 주먹이 교차했다.
금선우의 권은 허공을 빗겨 맞았으며, 백경오의 권은 정확히 금선우의 명치에 틀어박혔다.
어색하기 그지없는 초식이었다.
진각은 정위치에 있지 않았으며 권은 백경오가 기억하는 궤도에서 한참이나 벗어난 형태로 박혔다.
하지만 그럼에도 공력은 움직였다.
주먹 끝에 담은 내공이 일순 금선우의 명치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옮겨갔다.
그리고 결과는 폭발적이었다.
“크헉…!”
금선우가 핏물을 토해냈다.
찢어질 듯 크게 눈을 뜨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백경오를 바라봤다.
그에 백경오는 웃으며 말했다.
“넌 무공에 마음이 없다. 하찮은 놈아.”
찌릿하게 전신을 울리는 쾌감이 있었다.
어설프게나마 초식을 발했다는, 그리하며 별의 방해를 받지 않았다는.
복잡한 이유는 모른다.
그저 마음을 바로 세우는 일이 투천성의 입맛에 맞았다는 것 정도만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털썩.
금선우가 쓰러졌다.
백경오는 숨을 가다듬었다.
“누워있어라. 심문은 천천히 해줄 테니.”
잔류한 손의 감각이 다시금 유쾌함을 자아낸다.
*
목리원은 뒤늦게야 따라붙었다.
단원들과 함께 도착한 곳은 웬 굴이 파여있는 언덕 앞이었고, 그곳엔 기절한 금선우와 가부좌를 튼 채 앉아있는 백경오가 있었다.
백경오는 어느덧 평소의 생글생글 웃는 낯으로 돌아왔다.
“오셨습니까?”
그 여상스러운 모습에 남궁소아가 벌컥 화를 냈다.
“야! 그렇게 멋대로 또 움직이면 어떡해? 혹시 잘못 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이겼으니 된 거 아닌가?”
“…아오!!!”
분통을 터뜨리는 남궁소아 곁엔 진이 다 빠진 얼굴의 다른 단원들이 있었다.
목리원은 그 만담에 함께 웃다 백경오의 기파를 살폈다.
‘역시….’
별이 안정화되어 있었다.
표현할 방법이 그것밖에 없었다.
이곳으로 오기 전까지, 그리고 오는 내도록 어딘가 삐걱이던 조화가 완전히 일치되었는데, 그것이 마냥 부정적인가 하면 그것은 또 아니라 당황이 차올랐다.
내면적으로 성숙한 것이 별의 억제력을 더한 것인가?
그도 아니면 별에 완전히 집어삼켜진 것인가?
‘…아니, 후자는 확실히 아니겠지.’
후자라 하기엔 백경오가 너무 평온했다.
투천성에 집어삼켜졌다면 이지를 잃은 채로 미쳐 날뛰어야 했으니.
앞서 투천성에 대한 처리를 생각했으나, 그 일은 조금 미뤄도 될 듯하다.
별의 작용은 아직 밝혀진 것보다 밝혀지지 않은 게 훨씬 많았다.
또한 이런 현상은 자신보다 백련의 주인인 단지선이 더 잘 알 테고.
문득 차오르는 별에 관한 의문이 있었으나, 목리원이 할 수 있는 일은 당장에 없었다.
그러니 잠시 의문은 접어두고,
“수고가 많았다.”
스스로를 이겨낸 백경오에게 칭찬을 건네자.
목리원이 말하자 백경오가 답했다.
“단주.”
“음?”
“돌아가면 대련을 부탁드립니다.”
목리원은 눈을 끔뻑였다.
그러다 이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진전이 있었느냐?”
“초식에 감을 잡은 듯하여.”
“그렇다면 단주로서 얼마든지.”
목리원은 그리 백경오의 어깨를 두드리곤 구덩이를 향했다.
“여기서부턴 내가 맡으마. 너희들은 저자를 포박해 공동으로 가거라. 우연히 마인들을 찾았으니 이제 배후를 캐야겠지.”
“거기로 들어가시려구요?”
남궁소아가 걱정스레 물어왔다.
참 고맙긴 하나, 의미없는 걱정이었다.
“저자들이 내게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위광천이 직접 나서지 않는 이상, 목리원은 누구에게도 질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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