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90 이부 팔장 - 감숙, 해후 (8)
* * *
마인들이 일제히 쏘아지는 와중 백경오는 망막 위로 붉은 길이 그려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투천성이 이르는 투로였다.
새겨지는 공격로 속에서 상대에게 유의미한 타격을 줄 수 있는 경로.
하지만,
“큭!”
백경오는 그 경로를 따를 수 없었다.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투천성의 경로는 자신 또한 피해를 입게 되는 경로였기에 다 대 일의 목숨이 걸린 상황에서 유의미하지 못한 까닭이다.
결국 믿을 것은 경험 속에서 깨달은 범용적인 몇몇 초식의 파훼법이다.
목리원과 수를 나누기 위해 했던 공부가 도움이 되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었다.
콰득!
사방에서 짓쳐드는 검 사이에서 빈틈을 노려 적의 명치를 꿰뚫는다.
그리하고 곧장 회피, 또 공방을 이어가길 한참.
“언제까지 버틸 수 있나 보자고!”
금선우가 가세했다.
백경오는 미간을 찌푸렸다.
‘안 좋아.’
상황이 매우 좋지 않다.
적들의 공격에 제대로 된 반격을 할 수 없는 것은 둘째치고서라도 투천성의 반발이 문제였다.
절대 다른 길은 용서치 않겠다는 듯 별이 매 순간 공력의 운용에 간섭한다.
몸을 억지로 뒤틀어 동귀어진의 수로 이끌고자 비명을 질러댄다.
그러니 잔 상처가 늘 수밖에 없다.
드러난 적보다 까다로운 내면의 적이 따로 있었으니.
“여기냐!”
금선우의 권이 섬전처럼 짓쳐 들었다.
백경오는 팔을 들어 그를 막아냈으나, 충격을 다 흘리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찌릿!
공동의 칠상권은 내가중수법이다.
타격이 아닌, 타격을 통한 공력의 손상을 목적으로 하는 무공이다.
팔을 타고 들어온 포악한 내공, 거기에 마기까지 덧씌워지니 내상은 피할 수 없음이었다.
“크학!”
핏물이 토해진다.
붕 떠오른 몸이 그대로 뒤로 날아가 나무에 부딪힌다.
주르륵 미끄러져내리는 중에도 백경오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애써 몸을 일으켜보려 하지만 정신이 깜빡깜빡 점멸하고 있었다.
공력의 손상이 육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 것이다.
이대로 끝인가.
생각하는 순간 빠득 이가 갈렸다.
눈앞에 저리 마인들이 있는데 져야 한다니.
우존자의 무공을 악을 위해 사용하는 자가 있는 데 가만 당해주고 있어야 한다니.
억울하고 또 억울한 일이다.
그보다 스스로에 대한 경멸이 미친 듯이 차오르는 일이다.
절로 우존자의 웃는 얼굴을 떠올리게 된다.
자박자박, 마인들이 마무리를 위해 다가오는 순간엔 죄스러운 마음마저 차오른다.
-경오야, 의롭고자 하는 마음이 곧 칠상권이다. 마를 멸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곧 복마검법이다. 공동은 악을 절멸하고 바른 뜻을 세우는 자들의 문파다.
‘죄송합니다. 스승님.’
힘이 모자라여 그리할 수 없겠습니다.
몸이 말을 듣질 않습니다.
결국 저놈 말대로 저는 반푼이가 맞았는지, 마기로 사용하는 칠상권보다 나은 수를 사용하지 못하겠습니다.
눈이 스르르 감겼다.
숨이 가쁘게 차올랐다.
와중에도 투천성은 난리다.
하다 못해 싸우라 죽으라 타박한다.
주먹을 꽉 쥐어본다.
“결국 이것밖에 안 되는 놈이었군. 하긴, 그 병신 같은 영감의 제자니 어울리는 결말이지.”
이죽이는 금선우의 목소리에 속에선 천불이 치솟는데도 몸이 이리도 말을 안 들으니 그 사실만이 원망스럽다.
‘…그래.’
여기서 죽는다면 이리 고꾸라져 있을 수는 없지.
하다못해 저 면상에 주먹이라도 한 대 더 갈기고 가는 게 이치에 맞는 행동이다.
설령 선천진기를 다 쓰더라도.
‘주제에 꽤 즐겁게 살았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최후를 직감하는 순간 여러 얼굴이 떠올랐다.
우존자의 죽어가는 얼굴이 생애 끝까지 자신의 발목을 잡을 줄 알았건만,
-야! 헛짓거리 하지 말고 연무장에나 처박혀 있어!
-광룡! 나와 비무를 해다오!
-에휴, 쟤는 어쩌려고 저렇게 막 살까?
-귀찮은 일은 사절… 아니, 야. 그렇게 가면 내가 뭐가 되는데?!
주제에 부대끼고 살았다고 그 모지리 같은 단원들 목소리가 스쳐 지나간다.
거기에 하나가 더해진다.
-훌륭하다. 또 발전했구나.
그 인간을 이기지 못하고 가는 건 조금 아쉬울 따름.
백경오는 아랫배에 손을 얹었다.
단전을 폭주시키기 위함이었다.
그에 금선우의 표정이 묘해졌다.
이윽고 백경오가 무슨 일을 하려는 것인지 직감한 듯, 금선우는 표정을 왈칵 찌푸리며 외쳤다.
“마, 막아!!!”
늦었다. 병신 같은 놈아.
속으로 읊조리며 백경오가 씨익 웃는 순간이었다.
“찾았다! 조져―!”
앙칼진 목소리가 공간에 가득 울려 퍼졌다.
자리해있던 모든 이들의 몸이 일순 굳었다.
가장 먼저 백경오의 고개가 들렸다.
그곳에는,
쾅!!!
이곳에 있어선 안 될 얼굴 넷이 마인들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으아아아아!!!”
언혁이 두자루의 소태도를 휘두르며 마인 하나를 베어낸다.
그러자 뒤이어 달려든 모용진이 주먹을 내지른다.
강서휘가 빈틈을 노려 모용진을 해하려는 마인을 막아선다.
그리고 남궁소아가 무기를 냅다 던져버렸다.
“어딜 비겁하게 다굴질이야!”
쾅!
내력을 한껏 쑤셔박은 검이 그대로 폭발하며 파편을 튀겨댄다.
금속조각이 적아를 가리지 않고 공간 전체를 휩쓸었다.
“야, 야이 미친년아!”
강서휘가 기겁하며 소리 질렀으나 남궁소아는 ‘흥!’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그리하고선 또 다른 검을 뽑아 들며 백경오의 앞을 막아섰다.
대치 구도가 형성된다.
백경오는 멍하니 그녀를 올려다봤다.
절로 나오는 의문이 있었다.
“어떻게…?”
어떻게 알고 여기까지 온 건가.
아니, 그보다 무슨 생각으로 이 십수 명이 넘는 마인들을 두고 생각도 없이 넷이서만 온 건가.
기감에 잡히는 다른 기척이 없으니 뒤가 없는 것 또한 확실했다.
허탈함과 위기감, 그리고 경악이 함께 떠오르는 와중 남궁소아가 답했다.
“내가 헛짓거리하지 말라고 했지! 네가 우리 오라버니야?!”
눈을 부릅뜬 채 외치는 남궁소아는 화가 난 것도 같고 안도한 것도 같았다.
그에 백경오가 입술을 뻐끔대자 그녀는 잔뜩 열이 뻗친 얼굴로 무어라 푸념같은 소리를 지껄여 댔다.
“세상에 우리 오라버니는 세기라도 하니까 그렇다 치자! 너는 경지도 겨우 절정 끝인 주제에 뭐 잘났다고 여기 혼자 들어와?! 보고의무 몰라? 사고를 칠 거면 수습할 틈은 주던가! 우리 오라버니도 사고치기 전에는 새언니한테 통보해! 너 진짜 병신 취급당해야 정신 차릴래?!”
갑자기 남궁진천을 끌고 와 욕을 해대는데 솔직히 잘 공감되진 않았다.
아니, 그런 것보다 그냥 왜인지.
“허….”
헛웃음이 나왔다.
기묘한 일이었다.
딱 죽음을 각오한 순간에 짜둔 것처럼 등장해 상황을 뒤집어버리는 것은.
또한 그 결심을 흔들리게 만드는 것은.
“꼬리를 달고 왔나…!”
금선우가 이를 짓씹었다.
마인들의 기세 또한 포악했다.
시간을 벌었으나 여전히 상황은 열세다.
한데 이상하게도 백경오는 더 이상 전처럼 위기감이 들지 않았다.
“몸 회복하려면 얼마나 걸려?”
남궁소아의 물음에 답했다.
“…잠시면 된다. 운기조식할 시간 정도만.”
“그게 뭐가 잠시야? 하여튼 귀찮게 구네.”
쯧 혀를 차며 한 손에는 검, 다른 손에는 도를 뽑아 든 남궁소아가 단원들에게 외쳤다.
“들었지? 호법 서.”
단원들이 태세를 정비한다.
하나 같이 패배는 떠올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넌 진짜 나중에 두고 봐.”
나중, 다음을 이르는 말이 왜인지 낯설고 간지럽게 느껴진다.
백경오는 스스로의 손을 바라봤다.
아직 덜덜 떨린다.
울분 따위가 맺혀 있었고, 동시에 안도에 힘이 풀려 있었다.
뭐가 됐든 좋다.
“…그래, 나중에.”
백경오는 그대로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았다.
그리해도 될 것만 같았다.
이 자존심 강한 모지리들이라면 스스로한 말을 어떻게든 지켜내리란 믿음이 있었기에.
화아악!
기파가 백경오의 몸을 감쌌다.
내상을 치료하는 것은 얼마 걸리지 않을진저, 그때까지 단원들을 믿고 좌선에 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쳐라! 다 죽여버리라고!!!”
금선우가 발악하듯 외쳤다.
*
자신만만하게 말했으나 남궁소아로서도 꽤 위험한 상황이었다.
‘어디서 이렇게 튀어 나온 거야?!’
수가 너무 많다.
게다가 하나하나가 절정에 달하는 마인들이다.
용봉이라 불리며 강호의 미래라 칭송받지만 남궁소아도 이제 본인들이 강호 전체에선 그리 대단치 않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바로 옆에 차기 천하제일이 단주로서 거닐고 있으니 역체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런 만큼 방심은 없었다.
채앵!
남궁소아가 전면적으로 백경오와 마인 사이를 틀어막았다.
굳이 공세를 더하지 않은 것은 완벽을 위함.
단원들 또한 곳곳에서 합격진을 펼치며 달려드는 마인들을 막기 시작했다.
잔 상처가 늘어가지만 치명적인 것만큼은 어떻게든 피하는 형태였다.
“버텨! 버티면 온다!”
남궁소아는 외쳤다.
애초에 이기기 위해 달려든 것이 아니었다.
이 순간만 버티면 어리버리한 단주가 곧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올 것이니, 그때까지 버티기만 하면 된다.
그리 격해지는 공격을 막고, 또 막았다.
마인들의 합격을 버티는 일은 점점 한계로 치닫고 있었다.
실전에서의 첫 생사결.
아직 미숙한 단원들의 경험이 밑천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백경오를 향해 짓쳐드는 금선우의 기파를 몸으로 틀어막을 지경이 되어 핏물이 울컥 차오르는 순간이었다.
영원과도 같은 찰나의 끝은, 예견된 대로 끝을 맺었다.
쿠구구궁!
땅이 울릴 정도의 강한 압박이 공간을 내리눌렀다.
남궁소아는 환히 웃었다.
“니들 다 좆됐어.”
승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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