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283화 (283/334)

EP.284 이부 팔장 - 감숙, 해후 (2)

* * *

출발 일자가 되었다.

그간 목리원이 신경 쓴 것은 임무 하달 이후 내도록 기색이 이상한 백경오였다.

항상 생글생글 웃는 낯에 무공 수련이나 대련 때 만큼은 열의를 보이고 생활도 꽤 규칙적이던 아이가 문득 온종일 멍하게만 보내니 걱정이 치솟는 것이었다.

‘감숙에 연이라도 있는 건가?’

서류상 백경오는 중원 동부에서 나고 자랐던 아이였다.

그 정보에 오류가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한창 치솟았다.

“단주님! 저희 준비 마쳤어요!”

“아, 그래.”

남궁소아가 정신을 일깨운다.

단원들 또한 백경오를 제외하고선 대체로 설레는 기색이었다.

특히 언혁이 그랬다. 귀찮다는 듯 나른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입꼬리가 드문드문 솟을 때가 있었다.

목리원은 그에 헛웃음을 흘렸다.

그래, 일단 가보면 알겠지.

“출발하자꾸나.”

감숙행이 시작되었다.

*

호북 무한에서 북서로 올라가 섬서를 지나야 겨우 나오는 것이 감숙이다.

이번만큼은 지난 사천행처럼 경공을 쉼 없이 발해가며 일정을 보채지 않았다.

도리어 단원들에게 무림의 경험을 쌓게 해주어야 한다는 명목으로 몇몇 지점에선 주변 관광을 시켜주기까지 했으니 여정이 한 달 남짓하게 걸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여하튼 그런 과정 끝에 겨우 감숙.

앞서 계획한 대로 목리원 일행은 공동파에 들른 차였다.

“여기가 공동산이네요…!”

언혁이 감동에 젖어 말하곤 흠칫 놀라며 안색을 바꿨다.

이미 늦은 듯하지만 뭐 어떤가, 이제 여기에 언혁의 진짜 모습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강서휘는 코웃음 치며 말했다.

“그래봐야 구파일방 말석 아닌가.”

그녀다운 오만.

하지만 목리원은 단호히 고개를 저으며 그녀의 말을 부정했다.

“산중에서 잘 나오지 않기에 그리 인식되나 사실과는 다르다.”

“네?”

“복마검법(伏魔劍法)과 칠상권(七傷拳), 그리고 혼원장(混元掌)까지 이어지는 공동의 절기는 하나같이 실전성과 파괴력을 중시하는 무공들이다. 무엇하나 얕볼 게 없어. 도리어 이런 시기라면 가르침을 청해도 모자란 무공들이지.”

물론 목리원도 진실은 몰랐다.

이 모든 것은 스승인 목선오가 산중에서 해준 이야기를 바탕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뢰성이 없다는 말은 아니었다.

목선오는 그 성품이 올곧아 함부로 남을 헐뜯지 않는 사람이긴 했으나, 무공을 평할 때만큼은 깐깐한 기준을 적용하던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칭찬한 무공이다.

목리원으로서도 이번 공동행에서 비무를 청해 배움을 얻고자 하는 마음이 조금은 있었다.

목리원이 미소 짓자 강서휘만큼이나 오만한 모용진이 말했다.

“칠상권이 쎕니까? 모용의 권법보다.”

목리원이 답하려는 순간이었다.

백경오가 한 발 앞서 말했다.

“약하진 않지.”

휙, 단원들과 목리원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백경오는 팔짱을 낀 채로 공동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할 수도 있고.”

어딘가 멍한 목소리였다.

그 기저에 깔린 감정은 뭐랄까.

‘그리움? 아니다. 그렇다 하기엔 진득해.’

성련이 눈을 밝힌다.

그제야서야 보이길, 투천성이 거칠게 투레질하고 있었다.

백경오는 그걸 억누르는 듯했다.

“뭐야, 너 공동파 잘 알아?”

“글쎄.”

“안다는 거야. 모른다는 거야.”

남궁소아가 투덜거렸으나 백경오는 눈을 감는 것으로 답할 의지가 없음을 대신 말하고 있었다.

그래도 남궁소아가 끈질기게 달라붙으니, 또한 다른 단원들의 이목까지 집중되기 시작하니 백경오는 말했다.

“단장, 슬슬 올라가지요.”

그래 놓고 익숙한 걸음으로 공동산에 오르는 백경오의 뒷모습에 목리원은 눈을 좁혔다.

‘아직은….’

다 보이진 않는다.

성련은 그의 과거까지는 미처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다.

목리원은 그것을 안타까워 하며 일단 걸음을 옮겼다.

“가자꾸나.”

“아, 넵!”

도착까지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공동파는 산을 올라 몇 봉우리를 지나면 있는 취병봉(翠屛峰)이라는 곳에 둥지를 틀고 있었다.

그곳에 도착하고 목리원은 낮게 탄성을 흘렸다.

“호오….”

도교를 본으로 하는 문파인 만큼 건축 양식은 구궁(九宮) 십대(十臺) 십이원(十二院) 사십이좌(四十二座)의 형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었는데, 실제로 이를 본 것은 처음이라 흘러나온 감탄이었다.

‘생각해보니 도가에 방문한 일은 없었지.’

그나마 청성에서 곤륜의 사람을 꽤 보긴 했지만, 기회가 닿지 않아 그들의 본단엔 향하지 못했었다.

오대세가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으나 그들과는 다른 생활상, 양식.

그것이 신선하게 다가오는 곤륜의 대문 앞에서 목리원은 미리 나온 안내인을 만날 수 있었다.

“맹의 대협분들이 맞으십니까.”

그는 하얀 도복을 입은 노인이었다.

느껴지는 기세가 범상치 않았다.

최소 초절정.

그것도 중입에는 든 실력이었다.

목리원은 포권을 취했다.

“예, 용봉단의 목리원이라 합니다. 도장의 성함을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우선자라 합니다.”

하고 대답한 노인은 허허롭게 웃으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본문의 장문인이지요.”

시작부터 높이신 분이 마중을 나오셨다.

단원들이 쩌적 얼어붙었다.

*

스스로를 우선자라 지칭한 장문인은 보이는 그대로의 노인이었다.

달리 말해, 성격이 지긋했고 말소리가 높지 않아 천상 도인으로 분류되는 사람이었다.

그것이 단원들로 하여금 놀라움을 일게 했다.

“우선자라면 그 사람이잖아. 전대 고수 중에 그….”

“…멸제검(滅悌劍).”

“손속이 그렇게 자비가 없는 사람이라던데.”

이젠 25년도 더 지난 이야기였다.

혈천교의 혈사 때 들고 일어난 정파의 고수 중엔 사성 육왕을 제외하고서라도 놀라운 경지를 이룩한 사람이 아주 많았다.

그중 하나가 눈앞의 멸제검 우선자.

멸망을 공경하는 검, 도인에겐 어울리지 않는 괴악한 별호만큼이나 강호에 떠도는 그에 관한 소문은 흉흉했다.

그런 이야기를 속닥댄 것이 우선자의 귀에도 들어갔다.

“젊을 적의 치기지요.”

하며 그가 허허롭게 웃자 단원들이 또 얼어붙었다.

백경오는 아니었다.

그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있을 뿐.

“그보다 대협.”

“아, 예.”

공동파를 둘러보던 목리원은 그 말에 정신을 일깨웠다.

우선자가 물었다.

“이번 마교의 침입 때 크게 힘써주셨다 들었습니다. 감숙 쪽의 방비가 모자랐다지요. 크게 책임을 통감….”

“아니, 그럴 필요 없소. 어찌 감숙 전체를 문파 하나에만 맡긴단 말이오. 맹에도 책임이 있소.”

“그리 말해주니 감사합니다.”

목리원은 그의 겸손에 작게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그보다 수련하는 제자들이 참 열심이구려.”

쭉 길을 걷는 중 보이는 이들이 있었다.

아직 어린 삼대 제자들과 그들을 가르치는 사범들.

하나같이 기세가 벼려져 공동파의 악명(?)에 걸맞는 걸출한 기재들이었다.

“내 스승께 도문 중에서도 특히 실전성을 중시하는 것이 공동이라 들을 일이 있소. 과연이라 할 만하오.”

“칭찬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걸왕님이 저희를 그리 평해주시다니요.”

움찔, 목리원의 손끝이 떨렸다.

대외적으로는 그가 스승의 위치에 있음을 되새긴 까닭이었다.

“하하….”

“하지만 전성기엔 모자랍니다.”

우선자의 얼굴 위로 그리움이 스쳤다.

목리원은 물끄럼 그를 바라봤다.

“전성기라 함은…?”

“13년, 그 정도가 지난 듯합니다. 공동의 제일이었던 제 사형이 숨을 거두신지가.”

목리원은 눈을 크게 떴다.

“그런 고수분이….”

“요즘 어린 세대는 모를 수도 있겠습니다. 실제로 대외 활동이 잦지 않으셨던 분이니 충분히 그럴 만도 하지요.”

우선자가 산맥 너머를 가리켰다.

“저곳으로 가면 작은 암자가 있습니다. 사형이었던 우존자께서 머무셨던 암자.”

“아!”

남궁소아가 눈을 크게 떴다.

“절악권!”

“오, 아십니까?”

“그럼요! 할아버님께 한 번씩 들은 일이 있어요!”

“검왕께서… 그도 기쁜 일입니다.”

우선자는 껄껄 웃었다.

그 순간 목리원의 예민해진 감각에 걸려든 게 있었다.

시선이 또르르 굴러간다.

‘음…?’

백경오가 입술을 짓씹고 있었다.

눈이 좁아지는 와중이었다.

“자, 일단 이곳에 짐을 푸시겠습니까? 남은 이야기는 그 후에 하도록 하지요.”

우선자는 암자 한 곳으로 단원들을 안내하고선 고개를 숙이고 자리에서 떠나갔다.

단원들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초절정의 무인에게서 흘러나오는 기도, 그에 관한 소문이 아이들을 긴장시킨 게 분명했다.

목리원은 작게 웃으며 말했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다. 남은 이야기는 내 홀로 다녀올 테니 너희들은 좀 쉬고 있거라.”

“아! 공동파 분들이랑 비무 좀….”

“그것도 주선해보마.”

“으쌰!”

남궁소아가 열의에 차 외쳤다.

모용진도 흥미가 동했는지 몸을 들썩이고 있었다.

목리원의 시선은 또 백경오를 향했다.

백경오는 가라앉은 낯으로 직전 우선자가 가리켰던 절악권의 암자 방향을 응시하고 있었다.

‘대련 얘기에도 가만히 있는다라….’

목리원의 입이 다물렸다.

이젠 확실해졌다.

백경오와 공동파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존재함을.

‘알아봐야겠지.’

그리고 마침 알 만한 사람이 있지 않나.

목리원은 장문인에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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