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282화 (282/334)

EP.283 이부 팔장 - 감숙, 해후 (1)

* * *

맹은 소란스러웠다.

7년의 공백을 깨고 드디어 마교가 다시 중원을 침략한 상황에 한창 보고가 들어오는 백련교에 관한 일, 그에 더불어 흑도들의 기승까지 겹치니 그야말로 시장통을 방불케 하는 난리가 일어난 것이었다.

그런 와중 목리원은 꽤 유유자적 용봉단의 단원들을 살피고 있었다.

대략적 보고를 마친 데다 세부적인 내용은 함께 움직였던 제갈산이 전달해주었던 까닭이다.

“그런데요 단주님.”

남궁소아가 물어왔다.

“육마 중 하나를 무찌른 거잖아요. 포상 같은 게 있진 않아요? 영약이라던가.”

누구 동생 아니랄까봐 영약부터 챙기는 게 참 웃음을 나오게 했다.

목리원은 고개를 저었다.

“급박한 상황이었지 않느냐. 게다가 내 경지가 있으니 구태여 영약이 더 필요친 않았단다. 대신 이걸 가져왔지.”

휙휙 손안에서 자기주장을 하는 것은 다름 아닌 무공 비급.

이번 성과의 보상으로 1급 무고에서 받아온 것이었다.

남궁소아가 입술을 삐죽였으나 그런다고 보상이 바뀌진 않는다.

저리 아쉬워하는 것도 혹 영약이 들어오면 콩고물이 떨어질까 아쉬워하는 것일 터.

“인석아, 영약보다 본신의 무력에 더 힘을 쓰라하지 않았더냐.”

“윽!”

콩, 남궁소아의 이마에 딱밤을 때리니 그녀의 눈이 샐쭉해졌다.

그리 한가로운 중이었다.

“단주님, 오늘도 대련을 부탁드립니다.”

백경오가 나섰다.

목리원은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궁소아가 또 투덜거렸다.

“쟤 사고 치려는 거 얼마나 열심히 막았는데.”

“그래서 무공지도를 해주지 않았더냐.”

“영약도 필요하단 말이에요.”

보상을 바라는 마음이 꼭 나쁘다고는 할 수 없었다.

게다가 백경오를 말리는 일이 그리 쉽지도 않았을 터다.

‘이제야 잘 보이는군.’

백경오의 몸 주변을 감싼 투천성의 기운이 있었다.

벌써 3개째, 성련의 공능으로 그리 별을 먹어대다 보니 눈이 뜨인 것이다.

‘저것도 어찌하긴 해야 할 텐데.’

아직 백경오와의 사이가 그리 가까워지지 않은 것도 문제였고, 그 외에도 절연성을 완전히 봉인하지 못한 게 이유였다.

성련은 별 하나를 완전히 소화해 그 기능을 멈출 때까지 시간을 필요로 했다.

“왜 그러십니까?”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 내가 휴가를 다녀온 동안 무공에 발전은 있었느냐?”

“없진 않았습니다. 자랑할 정도는 못 되지만.”

못 되기는 무슨.

백겨오의 얼굴 위로 노골적인 자신감이 보이고 있었다.

목리원은 싱긋 웃었다.

“그럼 볼까.”

그리 목검을 쥐니 백경오가 달려들었다.

결론만 말하자면, 꽤 유의미한 성과가 있었다.

*

백경오의 성장속도는 꽤 경이적인 편이었다.

사실 그가 짊어진 별을 생각해도 박수를 쳐 줄 만한 정도.

아마 백경오란 인간 자체의 노력이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을 터였다.

모든 별 중에서 전투에 관해서는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투천성.

투기를 이용해 본능적으로 투로를 찾아낸다는 점에서 천살성의 살기 감지와 비슷한 면이 있으니만큼 백경오의 수업 방향성은 꽤 명확했다.

최대한 많은 무공을 습득하라.

목리원은 백경오에게 그런 과제를 내렸었다.

자신의 만련이검과 같은 무공을 그가 만들어내길 바란 것이다.

성공적이었다.

“물이 올랐구나.”

목리원은 헉헉대며 무릎 꿇고 있는 백경오에게 말했다.

“투로가 안정적이다. 초식의 습득에 열의를 다했겠지. 또한 다채로움과 변칙적인 부분에선 가산점을 줄 만하다.”

백경오와 만난지 아직 몇 달이 채 되지 않았건만 들짐승 같던 그의 무공이 사람 흉내는 낼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만족스럽냐 하면 그것은 또 아니었다.

“한데 중심이 없어.”

즉,

“경오야, 왜 초식을 만들지 않았느냐?”

난잡하다.

백경오는 그간 습득한 권각술을 이리저리 떼어내 응용하면서도 그것을 하나의 이론으로 정립하는 과정만큼은 들어서지 않고 있었다.

무공에서 초식이란 그저 몸을 움직이는 방식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무공은 곧 공부다.

초식은 곧 무공의 본의를 규정하는 행위이며 그것이 정리되지 않은 무공은 공허한 울림이 될 뿐이었다.

“무공에 이름과 초식을 지어야 한다. 무공의 방향성을 정해야 한다. 그것이 최소한이다. 한데 어찌 하지 않았느냐.”

상식 수준에 있는 사실인 만큼 백경오가 그것을 모를 리가 없을 터였다.

한데 어째서 백경오는 초식을 만들지 않은 것인가.

그의 능력을 생각하면 불가능했던 것도 아닐 텐데.

생각하던 중 백경오가 답했다.

“…고루한 말씀을 하십니다.”

특유의 생글거리는 미소였다.

“어찌 무학을 인간의 뜻대로 정의 내려 가둘 수 있겠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스소로의 가능성을 내다 버리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게 무슨….”

“지도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만.”

백경오가 돌아서 연무장을 떠났다.

목리원은 선 자리에서 멍하니 입을 벙긋거릴 뿐이었다.

*

아랫사람을 잘 지도하는 것도 상급자의 능력이라.

목리원은 당화서에게 그런 가르침을 내려받았으나 아직 그 일을 어렵게만 느꼈다.

사람 됨됨이를 가르치는 일을 하기엔, 아직 목리원 스스로도 그리 인간 된 현인은 못 되었다는 자각이 있기 때문이었다.

‘나 참….’

목리원은 밤하늘을 바라보며 낮의 일을 되새겼다.

대충 정리해 초식이 감옥 같다는 말.

그저 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고작이라 해야 할까, 과도기의 고집만으로 스스로의 성장을 억제하기엔 백경오는 오성이 참 뛰어난 아이였다.

더욱 깊은 이유가 있겠지.

하나, 그것을 알 방법은 없었다.

‘사문은 없음, 부모도 없음, 무공은 스스로 깨우치고 별달리 인연을 맺은 무인도 없었다고 했는데….’

과연 정말 그럴까.

이 넓은 중원 땅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두가 하나하나 세세히 알 수는 없는 법이고, 그런 만큼 정보의 신뢰도도 정보마다 천차만별이라는 것을 목리원은 알았다.

그저 의문을 띄워 올린다.

백경오라는 남자가 살아온 인생을 내가 아는 것이 끝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그런 의문을.

“알아봐야지.”

비단 단원으로서만이 아니라, 별의 주인이기에.

운명에 고통받을 또 다른 인간이기에.

성련의 주인으로서.

‘단주도 참 힘들단 말이지.’

목리원은 피식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개인적인 목표점이야 어쨌든 목리원이 대외적으로 해야 할 일 또한 존재했다.

바삐 돌아가는 무림맹 내에서 단주로서 각종 회의에 참석하는 일이나 단원들의 수련을 돕는 일이나 성련에 안착한 절연성을 봉인하는 내적인 수련까지.

그리 바삐 살아가는 중이었다.

“임무가 하달 되었네.”

내각주 권표월이 직접 내린 임무였다.

당연 마교에 관련된 일.

목적지는 감숙이었다.

“이번 마인들의 침입 경로를 조사하던 중 청해 쪽엔 문제가 없음이 확실시 되었었네. 당연하지, 그쪽의 경비는 7년 내도록 어느때보다 강하게 하고 있으니.”

권표월의 표정은 사뭇 심각했다.

“그러다 발견한 것이 감숙 쪽이었네. 마찬가지로 신강과 붙어 있는 곳인 만큼 경비를 보충하긴 했으나 청해만큼 심혈을 기울이진 않았네. 그런 까닭으로 낭패가 생긴 듯해.”

“마인들이 그쪽으로 침입했으리란 말이오?”

“추측이나 무시할 수 없네. 하여 자네와 용봉단에 조사를 맡기는 것일세.”

감숙이라 하면 청해의 북동쪽에 길게 자리한 지역이었다.

구파 중 공동파가 강세를 이루는 지역으로, 근래엔 그들이 내실을 다지느라 외부 활동을 줄인 반동으로 흑도들이 들끓고 있었다.

그런 지역이라면 권표월의 말대로 마교의 침입이 쉬울 만도 했다.

“알겠소. 채비하고 떠나보지.”

“부탁하네.”

“내 역할이지 않소.”

목리원은 싱긋 웃으며 용봉단의 집무실로 돌아왔다.

단원들을 한데 모아 설명했다.

“임무다. 감숙으로 갈 것이고.”

“감숙? 공동파요?”

“들를지는 모르겠다만 지나치긴 하겠지.”

“무슨 임무길래 그래요?”

강서휘의 물음에 목리원은 임무 내용을 전달했다.

“대외적인 목적은 감숙에 들끓는 흑도들의 퇴치. 숨겨진 진짜 임무는 마인의 침입 경로를 조사하는 것이다.”

꽤 긴 여정이 되겠지. 아마 이동만 한 달은 너끈히 걸릴 것이다.

단원들도 그걸 직감한 것인지 벌써부터 피곤한 얼굴을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의욕넘쳐 하는 모습은 또 뭐라 해야 할까.

‘하긴, 제대로된 첫 임무가 이것일 테니.’

실질적 첫 임무였던 사천 땅의 조사에서 크게 한 일이 없어 시무룩해 했던 아이들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반응이다.

이번엔 유의미한 성적을 남기고 싶다는 의욕으로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그럼 그리 알고 해산! 출발을 사흘 뒤이니 다들 짐을 챙기거라!”

하고 말하니 단원들이 하나둘 방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 순간 목리원은 볼 수 있었다.

“음? 경오 너는 안 가느냐?”

“…아, 가야지요.”

백경오의 기색이 이상했다.

뭔가 골몰하는 듯, 또한 꺼리는 듯.

그답지 않은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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