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272화 (272/334)

EP.273 막간 - 광마 (2)

* * *

내도록 곱씹고 곱씹어봐도 나오지 않는 답이 있었다.

-화장하라.

겨우 그런 유언으로 떠나간 사내에 관한 의문이었다.

이젠 답을 들을 수 없게 되었음에도 위광천은 연신 갈망하듯 하늘에 되물었다.

‘고작 패배로 만족하십니까?’

스스로는 어찌 생각했을지 몰라도 위광천이 보기에 그 승부는 패배였다.

그는 무승부라는 것의 존재를 믿지 않기 때문이었다.

둘 다 같이 쓰러졌다? 그렇다면 그 승부는 양측 모두가 패배한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었다.

일찍이 위광천의 목표는 이선이었다.

그는 어떤 순간에도 절대 무릎 꿇지 않는 이상적인 승리의 상징이었으며, 저 드높은 하늘조차 발아래 둔 절대적인 강자였다.

한데도 그의 최후가 그리 비루하다니.

또한 그런 비루한 패배를 못내 기꺼워하며 받아들이다니.

그것이 용서되지 않았다.

‘…아니.’

진정 그 이유뿐인가?

위광천은 눈을 지그시 감고 스스로를 돌이켰다.

인정하기 싫은 마음은 그제서야 고개를 내민다.

‘아니다.’

그런 이유가 끝이 아니었다.

위광천이 진정 이선의 최후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은, 최후의 순간 그의 안중에 자신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선을 향한 위광천의 마음은 호승심이었다. 동경이었고, 경외였으며, 또한 애증이었다.

그렇기에 그에게 어떤 가치도 얻지 못하게 된 현실이 끔찍하리만큼 괴로웠다.

살아온 인생 전체가 부정당한 기분이다.

토악질이 나올 정도로 절망적이었다.

그것이 최초 폐관 수련에 들 적의 위광천이 느낀 감정이었다.

당시를 이르러 심마.

위광천의 마기는 지극한 독을 품은 채 그를 서서히 망가뜨려 갔었다.

그것은 지난 15년 몸에 넣어온 마약과는 결이 다른 타락이었다.

마음에서부터 꺾여 들어가 몸을 잠식하는 절망감이 어찌나 지독하던가.

떨쳐낼 방법이 없어 1년.

그저 이선에 관한 것만을 생각했다.

‘여전히 당신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리하던 어느날에야 생각이 다르게 미치기 시작했다.

‘왜’라는 의문을 끊임없이 확장했다.

왜 폐관에서 나온 그가 그리도 달라졌는지 알고 싶다는 궁금증으로 화했다.

그 이유를 알면 그에게 자신이 가치가 없어졌던 이유를 알게 되지 않을까.

또한 그가 바라봤던 그 풍경을, 패배하며 미소 짓던 그 우습지도 않은 일의 의미를 알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리 생각해야만 했다.

그러지 않고선 도저히 이 심마를 털어낼 도리가 보이지 않았기에,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자기 위안이나 다름없는 상념 속에 살며 경지의 상승에 몰두했다.

목표는 초월 너머.

하나, 당연하게도 요원했다.

그 이선마저 일평생을 다 쓰고서야 다다른 경지를 고작 몇 년 만에 헤쳐 나가는 것은 상식적으로 성립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포기할 것인가?

그리 자문했으나 답은 역시 ‘아니다’였다.

위광천은 자존심을 내려놓기로 했다.

스스로가 아직 작은 존재임을, 저 하늘을 올려다봐야 하는 존재임을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 순간 자미성을 들여다봤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써주마.’

일찍이 그의 하늘은 이선이었다.

그 하늘을 무너뜨린 것은 원망스럽기 그지없는 어떤 사내와, 그 스승이었다.

목리원, 천살성을 가져간 허접스러운 도둑놈.

하늘을 올려다보려면 그부터 꺾어 발밑에 깔아뭉개야겠지.

사아아―

그리 결심하고나니 자미성이 움직인다.

그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을, 그러기 위해 지금보다 강해질 방법을 무궁무진하게 머릿속에 띄워 올렸다.

마공을 사용하고 있음은 조금도 문제되지 않았다.

자미성은 천살성의 숙적일뿐, 그 스스로가 선하려고 하는 파마성과는 결이 다른 것이다.

천살성을 짓이길 수 있다면 그 손이 마기로 물드는 게 조금도 중요치 않다는 듯 위광천을 다음 경지로 이끌었다.

하나, 위광천은 세월에 짓이겨진 투기를 일깨웠다.

둘, 위광천은 그리 일깨운 투기로 최후의 순간 이선이 내질렀던 권을 되새겼다.

그리고 셋, 위광천은 그 권을 길잡이 삼아 끊임없이 걸음을 내디뎠다.

그렇게 물아일체.

쿠구구궁―!

위광천은 그날, 폐관을 끝내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쾅!

석실을 가로막은 바위를 깨부수고 나오니 아홉의 측근들이 있었다.

개중 장로들이 특히 눈에 들어온다.

이길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것들이 이제야 밑으로 보인다.

“천마군림! 만마앙복!”

그 목소리를 뒤로한 채 천마전을 향했다.

*

위광천은 흑색 곤룡포를 입었다.

천마신교에서 이 의복을 입을 수 있는 유일한 자가 되었음을 스스로 알렸다.

대전에 들어 옥좌로 가는 긴 길을 따라 걸었다.

7년간 세를 온존해온 마인들이 양옆으로 머리를 부복하는 것에 감흥이 일 법도 하나, 위광천의 기세는 고요했다.

그렇게 옥좌 앞으로 다다른 순간이었다.

위광천은 순간 이 옥좌에 누군가가 앉아있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착각임은 본인도 알았다.

하지만 아직 그에 벗어나지 못함에, 그리고 이 옥좌에 더 잘 어울리는 사내가 있음을 알고 있기에.

“보고하라.”

그저 물끄럼 태사의를 바라보며, 등을 보인 채로 말했다.

“중원 무림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천살성 또한! 다시금 무림맹에 입단했다 하옵니다!”

그것을 시작으로 위광천은 지난 7년 간의 일들을 주르륵 보고받았다.

와중 거슬리는 것 하나.

“백련교라….”

“예! 그들이 중원에서 목격되고 있다 하옵니다!”

천마신교의 전신이라던가, 위광천으로서는 우스운 일이었다.

천마신교는 천마신교였다.

애초에 하나였고, 그 무엇도 천마신교의 이전과 이후에 있을 수 없었다.

그것은 하늘 위로 하나의 태양만이 떠올라 있는 것과 같은 당연한 진리였다.

위광천은 그들에 대한 생각을 접었다.

신경써야할 것은 오로지 하나였음에.

“꽤 긴 7년이었다.”

중얼거리는 듯한 목소리였으나 그것이 대전 전체에 울려 퍼졌다.

“자리를 비우니 천것들이 날뛰는군.”

그가 돌아섰다.

교인들이 외쳤다.

“천마군림! 만마앙복!”

그에 위광천은 말했다.

“아니.”

단호한 부정이었다.

“아직은 아니다.”

그렇게 그는 누구도 상상지 못한 일을 해냈다.

옥좌 앞, 맨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은 것이다.

“…!”

대전이 경악으로 물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위광천은 말했다.

“스스로 하늘을 칭할 자격이 아직은 없다.”

아직 옥좌에서 이선의 그림자가 보였다.

그가 연신 물음을 토해냈다.

네놈이 이곳에 앉을 자리가 있느냐고.

위광천은 차마 그러하다 답할 수 없었다.

스스로에게 자격을 묻는다면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았기 때문에.

“나를 천마라 칭하지 말라.”

하늘을 좌시하는 마의 옥좌에 오르지 못했으니 천마라 칭할 수 없다.

다만 그 옥좌를 바라보며 언젠가는 오를 것을 기약하니, 그에 걸맞는 다른 칭호를 쓰는 것이 옳은 일임에.

“광마(狂魔).”

주제에 하늘을 넘보는 미치광이 마인.

위광천은 스스로를 그리 평했다.

아직은, 그정도로 족했다.

“나를 광마라 이르라. 내가 저 옥좌에 앉는 그 순간까지만.”

그의 눈이 좁아졌다.

자색으로 빛나는 눈동자가 오연하게 대전을 내려다봤다.

그에 공간이 진동하는 마기가 들끓었다.

대전에 고개를 조아린 마인들은 그 지독한 마기에 경외하며 외쳤다.

“존명!!!”

더없이 흡족해하며 위광천은 일렀다.

“준비하라.”

그의 시선이 대전 너머, 중원을 향했다.

“다시 한 번 전쟁을 할 것이다.”

언젠가 하늘을 넘보던 살귀는, 그리 광인이 되어 돌아왔다.

*

호북 용중의 제갈가 본채.

그곳의 중심에는 신기제갈(神機諸葛)의 역사를 고스란히 새겨담은 가주전이 있었다.

지금은 제갈산이 기거하는 곳이었다.

진왕 제갈벽은 7년 전 전쟁 이후 반신불수가 되어 태상가주로서 유유자적한 삶을 살아가는 한창.

제갈산은 가주전을 나와 마루에서 술을 홀짝이다 문득 느꼈다.

‘너무 보채지 말아라.’

하늘을 보며 싱긋 웃는 꼴로 말했다.

절연성이 이르고 있었던 까닭이다.

‘내가 언제 천년만년 이곳에서 죽치고 앉아 있겠다더냐.’

참으로 가증스럽기 그지없는 별자리이리라.

고작 몇 년이다.

평생 살아온 곳에서 몇 년을, 그저 미련을 정리하기 위해 잠시만 머물다 갈 뿐일진대 그것조차 마음에 들지 않는다 찡찡 울어대는 게 얼마나 혐오스러운지.

그럼에도 마땅히 발악하지 못하는 처지만이 슬플 뿐이다.

결국 언제나 그랬듯 떠날 것이다.

시기는 절연성이 일러주고 있으니 할 수 있는 까지만 버티다 가면 되리라.

‘옛날 생각 나는구먼.’

7년 전, 용봉단이라는 이름으로 친우들과 함께하던 시기가 떠오른다.

그때도 그랬다.

어찌 마음을 붙이기 시작하니 절연성이 계속 날뛰어 불안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결국 그들에게 해가 가진 않았지만 더 있었다면 정말 어찌 되었을지도 몰랐다.

제갈산은 고작 별자리 하나 탓에 더 누군가를 잃고 싶지 않았다.

‘가야지.’

먹다 남은 술을 바닥에 주르륵 흘려보낸다.

그리하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끄윽….”

트름까지 하니 이제야 후련하다.

떠돌이 삶을 청산하고 돌아와 기뻐하던 이들의 얼굴이 주르륵 스쳐지나가지만.

‘그래도 사는 게 먼저 아니겠소들?’

무엇도 결국은 자신을 붙잡을 수 없으리라.

제갈산은 술병을 바닥에 툭 던지고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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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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