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72 막간 - 광마 (1)
* * *
일이 모두 끝맺어졌으니 사천에서 더 죽치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목리원과 용봉단은 무한의 맹으로 돌아가기 위해 채비를 마친 차였고, 당화서는 사천에 온 김에 일을 조금 더 하다 돌아가기로 결정한 상태.
그 와중 단지선이 떠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제 어디로 가는 것이오?”
“일단은 중원 각지를 돌아다니며 따로 정보를 수집하려 합니다. 마교의 흔적이 어디서 발견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
병약해 보이는 몸으로 중원을 일주할 것이라니 괜한 걱정이 떠올랐다.
목리원은 그런 스스로의 감정에 작은 놀라움을 느꼈다.
사실 그리 친분을 깊게 쌓은 사이는 아니었는데, 왜인지 그가 눈에 밟히는 기분이었다.
어딘가 낯설지 않다. 조금 더 깊이 파고들면 익숙한 편안함이 느껴지는 사람이다.
목리원은 그런 감상을 애써 털어냈다.
‘어머니께서 백련교의 교인이셨다고 하니 그 영향이겠지.’
아직 얼떨떨한 사실이나 구태여 그걸 부정할 이유는 없었다.
더군다나 모친의 일이야 모든 일이 끝나고 백련교의 교단으로 향해 다시 생각하면 될 일이 아니던가.
목리원은 포권을 취했다.
“후일 다시 뵙겠소.”
그에 단지선은 물끄럼 목리원을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까지 평안하시길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
진실이었다.
파마성의 주인이라는 것이 이런 식으로 작용하는 게 우스워 목리원은 피식 웃었다.
그 순간이었다.
“…아.”
단지선이 잊은 것을 떠올렸다는 듯 속삭이듯 목리원에게 말을 전했다.
“당문주는 조심하십시오. 사특한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한 여인이니.”
또 시작이구나.
앞에서뿐만 아니라 뒤에서도 이렇게 적대감을 드러내다니, 대체 두 사람이 생전에 무슨 원수라도 진 건 아닌가 의심스러워질 지경이었다.
목리원은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내 알아서 하겠소.”
“흘려 들으셔서는 안….”
“가보시오.”
단지선을 섬뢰에게 떠밀자 섬뢰가 곤란한 듯 그를 부축했다.
목리원은 더 얘기를 듣지 않겠다는 뜻으로 단원들에게로 돌아갔다.
그 뒤로도 꽤 오래, 목리원은 등 뒤에서 단지선의 시선을 느꼈다.
*
신강 십만대산의 천마신교.
그 중심에 자리하는 옥좌는 주인을 잃고 텅 비어 있었다.
아니, 그 옥좌뿐만 아니라 천마전 전체가 개미 한 마리조차 제대로 들어설 수 없을 정도로 엄중한 경계 속에서 사람의 온기를 잊어가고 있었다.
7년 전 그날 이후 내도록 이 상태.
마교의 마인들은 긴장을 품은 채로 오늘도 일과를 해냈고, 그런 천마신교 어딘가의 연무장에선 굉음이 울리고 있었다.
쩌어어엉―!
마치 공기를 통째로 터뜨려 갈라내는 듯한 소음이었다.
단발적인 것이 아니었다.
폭음은 갈수록 그 기세를 더해가며 조금 더 빠르게, 또한 거칠게 정적을 일깨우고 있었다.
그 폭음의 중심지로 향한 사내가 있었다.
“…거기까지 하도록 해라.”
나른한 목소리, 멍한 눈동자와 구부정한 자세.
치렁치렁한 머리칼이 얼굴의 반 이상을 가린 사내의 이름은 연리건.
마도육문의 검마였다.
“패웅추.”
우뚝, 그 목소리에 폭음을 일으키던 거구의 사내가 몸을 멈췄다.
사내의 시선이 데구르르 굴러 연리건을 향했다.
이윽고 그의 표정이 불량해졌다.
“어엉? 뭐냐, 네놈이 왜 여기 와 있어.”
줄줄 흘려대던 마기를 수습한 패웅추가 건들건들한 자세로 그를 바라봤다.
그의 손엔 거대한 환도가 들려 있었다.
연리건의 시선이 환도를 향했다.
‘결국 다시 검을 들었나.’
그가 검을 손에서 놓던 날이 기억난다.
이런 무기가 없어도 강할 것이라 자신하던 모습, 광인이나 다름없던 꼬라지.
하나 이제 그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패웅추는 그가 속한 가문의 화려한 무복을 입은 채였다. 수염과 머리는 깔끔하게 정리해둔 채였고, 몸에서는 날카롭게 벼려진 기도가 공간을 다 울릴 정도로 퍼져 나오고 있었다.
‘강해졌다.’
어쩌면 이제 자신은 상대조차 되지 않을지도 몰랐다.
장난질을 그만둔 패웅추는 그만큼이나 소름끼치는 마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초월에 올랐나? 아니, 그 길목.’
판단하길 잠시, 연리건은 생각을 털어냈다.
그런 탐색이나 하러 찾아온 것은 아니니.
“때가 되었다.”
“때라면?”
“묵룡이 다시 나타났다.”
멈칫, 패웅추의 모든 움직임이 멎었다.
이윽고 그의 입매에 찢어질 듯 긴 웃음이 걸리기 시작했다.
“그렇단 말이지?”
오소소, 연리건의 등에 소름이 돋았다.
아이처럼 기뻐하는 꼴에서 살기와 투기가 줄줄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럼 우리 소천마께서도 슬슬 나오신단 말일 텐데.”
그가 환도를 어깨에 걸쳤다.
연리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7년 전 전쟁 이후 폐관에 들어갔던 소천마 위광천은 말했다.
천살성이 다시 나타나는 날 자신의 폐관을 깨우라고.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다.
“그래, 가보자고.”
패웅추가 건들건들 폐관동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와중 색마 양고혜를 만났다.
“또 정기나 빨아 재꼈나 보구먼. 피부가 더 하얘졌어.”
“이게 수련이란다. 미련한 빡통아.”
“껄껄, 어련하실까.”
투닥거림이 이어지는 중 빙마 태을벽이 말없이 다가와 고개를 까딱였다.
그와 동행하며 또 폐관동 앞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마침 다들 모이셨군요.”
가느다랗게 눈웃음을 짓는 허허로운 인상의 사내가 그들을 맞이했다.
“어이쿠, 통수공자.”
패웅추가 씨익 웃자 통수공자라 불린 사내, 마룡 사마공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주둥어리를 참 자유분방하게 놀리십니다.”
“응? 통수 공자가 맞지 않나?”
“입조심 하십시오.”
사아아―
사마공의 몸에서 마기가 피어올랐다.
여타 마공들과는 다른 이질적인 마기였다.
본디 마기라 함은 스스로를 절제하지 않는 포악함을 기본으로 할진대, 그의 마기에는 숨길 수 없는 절제의 미덕이 그 공력의 끄트머리까지 다 퍼져있었다.
“이게 그 기생마공이구먼.”
패웅추는 끅끅 웃으며 투기를 드러냈다.
연리건은 미간을 좁혔다.
저렴하게 기생마공이라 말하지만 쉬이 볼 마공이 아니었다.
사마공의 마공은 다른 무공을 위에 덧씌워 그것을 마기로 개조하는 기전의 변화무쌍한 마공이기 때문이었다.
‘태극혜검을 녹여낸 건가.’
무당의 무학을 마공으로 변질시키다니, 제 입으로는 책사라 하는 주제에 그 무공적 재능이 만만치 않았다.
“저놈들은 또 지랄이네. 안 그러니 벽아?”
양고혜가 끈적한 눈으로 태을벽을 바라봤다.
그에 태을벽은 눈을 감아 무시의 의사를 드러냈는데, 양고혜는 그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그에게 말을 걸었다.
“어떠니, 내 침실로 들어오라니까? 너라면 특별히 마공을 사용하지 않고 상대를 해주마. 응?”
“….”
“재미없긴.”
양고혜가 태을벽의 단전에 쌓인 음기를 탐하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여기서도 난리, 저기서도 난리.
연리건은 곤란함을 느꼈다.
‘소교주께 보일 모습이 아니군.’
본디 생각이란 걸 길게 하지 않는 연리건에, 그나마 하는 생각이 검에 관한 것과 소교주에 대한 충성이 끝.
지금 상황은 연리건이 중시하는 두 가지 것이 모두 자극당하는 상황이었다.
연리건은 지독한 피로를 느꼈다.
“…소교주께서 폐관을 끝맺으시는 날이다.”
나지막이 그리 말하자 그제야 육마가 진정했다.
물론 위광천을 맞이해야한다는 이유로 한발 물러난 것이지 이들끼리의 감정이 사그라든 것은 아니었다.
와중 사마공은 길게 숨을 내쉬며 진정하다 말했다.
“따라오시지요. 장로들이 이미 와있습니다.”
라고 말하며 안내하는 길을 따르니 과연, 이젠 얼마 남지 않은 마교의 장로들이 폐관동 앞에서 호법을 서고 있었다.
육마와 그들 사이에 대화는 오가지 않았다.
7년 전 그날 이후 바뀐 관계였다.
육마의 입장에선 그들이 전쟁의 주역으로 날뛰고 패배하여 돌아온 뒷방 늙은이로 보였고, 그들의 입장에선 육마가 피도 안 마른 버러지들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강자존.
천마신교의 유일한 원칙이었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강자로 인정하지 않아 이제껏 교류하지 않았으나 오늘만큼은 어쩔 수 없이 한자리에 모인 상태였다.
장로들은 코웃음을 치며 폐관동 앞으로 섰다.
육마는 그들의 뒤를 따라 폐관동 앞, 위광천이 들어서 있을 동굴에 선 채로 그들의 주인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직후였다.
장로 중 하나가 입을 열려는 순간이었다.
쿵―
진동이 일었다.
자리한 모두가 소름 끼치는 기분을 느끼게 할 정도의 패도적인 기운이었다.
직후 한 번 더 진동이 일었다.
쿵―
그게 이변이 일어나기 전까지, 이들이 인식할 수 있었던 유일한 전조였다.
육마는 이후 일어난 일을 눈으로도, 감각으로도 쫓지 못했다.
6장로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1장로 무검과 3장로 악려후가 감각으로나마 흐릿하게 그의 마기를 쫓을 수 있었다.
꽈아앙!
폐관동을 가로막던 거대한 바위가 전조없이 폭발해 스러졌다.
그 안 시꺼멓게 입을 벌린 동굴을 유유히 걸어나오는 사내가 있었다.
털썩!
8인의 마인이 동시에 무릎을 꿇었다.
“천마군림! 만마앙복!”
외침에, 자색으로 명멸하는 눈동자는 고요하게 그들을 내려다볼 뿐이었다.
다음화 보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