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71 이부 육장 - 별과 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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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저찌 돌아온 당문의 본채는 소란스러웠다.
용봉단의 아이들이 만든 소란이었다.
“아니, 진짜 용이라니까? 용 봤다니까?”
언혁이 마당 한가운데서 두 눈을 번쩍 뜬 채로 발광하며 외치고 있었다.
답답해 죽겠다는 듯 가슴까지 퉁퉁 치는데, 그 순간 목리원이 한 생각은 다름이 아니었다.
‘얌전한 척하던 것 아니었나?’
목리원이 알기로 언혁은 남들 앞에 서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였다.
오죽하면 그리 부지런한 성정조차 숨기는 아이인데 오늘따라 저리 목소리가 큰 건지.
의아해하다가도 금방 그 속내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역시 교의 승천 때문일 터였다.
동굴을 나서 이곳까지 내려오며 묵색의 용이 승천하는 걸 지근거리에서 본 게 아닌가.
그 순간 당화서가 턱이 빠진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입을 떡 벌렸던 걸 생각하면 언혁도 다르지 않으리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어휴, 또 시작이네.”
강서휘가 한심하다는 듯 언혁을 바라봤다.
다른 단원들도 언혁에겐 큰 관심이 없어 보였다.
왜인지 현실로 돌아왔다는 실감이 나서 목리원이 쿡쿡 웃자 그를 발견한 언혁이 “앗!”하고 소리치며 목리원을 삿대질 했다.
“단주! 단주님은 혹시 보셨습니까?! 예? 방금 하늘로 용이….”
“글쎄, 잘 모르겠구나.”
“아악! 미치겠네!”
언혁이 머리를 쥐어 싸매며 발을 동동 굴렀다.
저런, 장난이 좀 지나쳤던 걸까.
그냥 봤다고 말을 해주면 어떨까 싶어 입을 떼는 순간 다른 단원들이 다가오는 것에 말할 순간을 놓쳐버리게 되었다.
“단주님! 일은 잘 끝내고 오셨나요?”
“영물은 보셨습니까!”
남궁소아와 모용진이 먼저 와서 반가움을 드러냈다.
강서휘는 고개만 까딱했고, 백경오는 싱긋 미소짓기만 했다.
“일은 다 끝냈다. 곧 맹으로 돌아갈 듯하구나.”
목리원은 단원들을 적당히 상대해준 후 우선적으로 연무장을 향했다.
다른 이들의 출입은 원천봉쇄한 상태였다.
그리하고서 깊게 빠져야할 명상이 있었다.
‘감각을 되새겨야 한다.’
가부좌를 튼 목리원은 교와 검을 나누던 순간의 감각을 붙잡고자 했다.
일반적인 깨달음과는 거리가 멀었다.
성련신공의 비급을 풀어헤칠 실마리.
목리원이 잡고자 하는 깨달음은 그것이었다.
‘조금은 알 것 같다.’
애초에 도교의 도문과도 닮은 점이 있어 난해하기 그지없는 게 성련의 구결이었다.
주석까지 달려있긴 했으나 완전한 체득은 요원한 면이 있어 골머리를 싸매던 차, 교와의 비무에서 그 구결의 진의를 조금이나마 깨닫게 된 것이다.
이제껏 별과 관련하여 이 구결을 사용한 것은 총 두 번.
그중 한 번이 남궁진천의 제왕성을 털어낼 때였고, 두 번째가 바로 오늘 교와의 결투였다.
‘운명을 베는 것은 물리적인 상해를 가하는 일과 근본부터 다르다.’
그 순간의 목리원이 본 검로는 천살성으로 봐왔던 살로와 아득히 거리가 먼 검로였다.
오묘하게 교의 몸 위로 걸쳐 있던 검로는 그에게 상해를 가한다기보다, 그를 옭아매고 있던 흐릿하고 단단한 사슬 같은 것의 이음매와 같았다.
‘다 수습할 수는 없다.’
애초에 수습을 말하기엔 성련의 구결이 너무 난해했다.
그저 아는 것이라도 확실히 굳히고 가야겠지.
목리원은 내공을 일주천하기 시작했다.
주요 혈도를 이르는 소주천으로 시작한 운기조식이 점점 범위를 넓혀 세맥까지 이어지는 대주천으로, 그것이 다시 이번 깨달음과 엮이며 주변 자연과 소통하는 물아일체까지.
단순한 공력의 순환을 넘어 그 속에서 소우주의 뜻을 음미한다.
그리하며 그 우주로 촘촘히 떠오른 별의 운행을 관조한다.
그속 어딘가에 성련의 깨달음이 있었다.
미약한 빛을 확실히 고정하기 위해 목리원은 전심전력을 다했다.
그것이 이어지길 한참.
어느덧 시간은 저녁이 되었다.
*
명상을 마치고 간단한 식사 후 목리원은 당화서와 단지선을 찾았다.
그둘은 궁금증이 가득한 얼굴로 목리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기야 깨달음을 얻는데 급급해 자세한 설명도 하지 않았으니 오죽 이들이 답답했겠는가.
목리원은 기다려준 이들에게 감사함을 느끼며 알아낸 사실 몇 가지와 그간의 인과를 다 설명했다.
반응은 단지선에게 나왔다.
“그러니까, 그 교라는 이무기는 애초에 천살성을 품은 일이 없었다는 말입니까?”
“그렇소.”
아마 염의 살행을 본인의 것이라 생각한 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그리 알려지도록 사실을 조작했다 보는 것이 옳을 터였다.
그 정도로 교는 깊은 실의와 후회에 빠져 있었으니.
단지선은 헛웃음을 흘렸다.
“돌아가면 백련교의 서고를 다시 한번 검수해야겠습니다. 정보가 틀렸을 줄은 몰랐군요.”
목리원은 단지선을 바라봤다.
성련의 구결에 대해 떠올리다 보면, 결국 단지선이 가진 파마성에도 그 생각이 닿을 수밖에 없었다.
여느 별이 그렇듯 그 소유자는 본인이 원치 않는 흐름에 휘말리게 되는 법이다.
그리고 목리원이 알기로 그중 가장 끔찍한 것이 바로 파마성이었다.
주인이 정도로서 악을 벌하게 만드는 별.
그리고 주인에게 선함을 강요하는 별.
이중적이기 그지없는 만큼 그 주인은 대대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온 것으로 알고 있었다.
단지선은 어떨까.
목리원이 멍하니 그런 생각을 떠올리던 중이었다.
당화서가 입을 열었다.
“…솔직히 믿기지 않습니다. 용이니 별이 이끄는 운명이니 하는 내용은.”
그녀는 많이 혼란스러운 얼굴이었다.
하나 그러면서도 어느 쪽으로는 납득을 끝마친 상태였다.
“하지만 그리 용이 승천하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봤을진대 부정할 수도 없겠군요. 예, 일단은 이해했습니다.”
그녀로선 엮이지 않아도 될 일에 엮인 것이니 목리원의 입장에선 미안하기만 할 따름이었다.
또한 그럼에도 개의치 않아 하는 것은 역시 감사하다.
당화서는 목리원의 눈짓을 웃어 넘기곤 단지선에게 말했다.
“그럼 당신들 목적은 어찌 되는 것입니까?”
그 순간, 목리원은 목덜미가 서늘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눈이 부릅 뜨였다.
혹시 또 투닥거린다면 곧장 말리겠다는 생각이었다.
그 의중이 전해진 것일까.
“역성대법이 옳은 방법이 아닌 걸 안 이상 이대로는 안 돌아갈 겁니다. 다른 방법을 찾을 때까진 중원에 머물겠지요.”
“마교와의 전쟁에 한 손 거들겠다는 말로 이해하면 되겠습니까?”
“중원 무림의 편에 설 것은 아닙니다. 그저 그런 일을 대비해 다른 쪽으로 힘쓰긴 할 터입니다.”
“지내실 곳은 있으신지?”
“당문보단 편한 곳이 많겠지요.”
“흐음….”
“이 이야기는 그만했으면 합니다. 애초에 더 말해줄 의무도 없고.”
단지선의 무심한 말에 당화서의 이마에 힘줄이 돋았다.
하지만 그녀도 오늘은 싸울 생각이 없는지 다행히 한발 물러서줬다.
목리원이 안도의 숨을 흘렸다.
하나 너무 이른 안도였다.
“그럼 자리를 파하도록 하지요. 목 소협은 잠시 남아줄 수 있겠습니까?”
“음? 왜 그러시오 소저?”
“긴히 나누고 싶은 말이 있어서.”
그녀가 싱긋 웃었다.
목리원으로선 모를 일이지만 당화서는 오늘 밤은 그와 조금 더 시간을 보내고 싶어 수를 쓴 것이었다.
하지만 그 의중은 목리원이 아닌 다른 쪽에 전해졌다.
“저도 묵룡 대협과 나눌 말이 있는데.”
단지선이 곧장 받아쳤다.
그는 심기 불편한 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벌레보듯 당화서를 바라봤다.
당화서의 입에서 허! 하는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급한 용건이 아니라면 미루시지요?”
“그쪽이야말로 급한 용건은 아닌 듯한데?”
“그걸 왜 그쪽이 결정하시는지?”
“암만해도 내쪽이 더 급할 듯하여.”
“웃기지도 않는군요.”
“그럼 누구 용건이 더 급한지 서로 말이나 해보실는지?”
“제가 왜 그래야 합니까?”
의도가 불순한 당화서는 곧장 회피를 선택했다.
단지선에겐 꼬투리 잡기 좋은 일이 생긴 것일 뿐이었다.
“당당한 용건은 아닌가봅니다. 그리 빼시는 걸 보면.”
빠득, 당화서의 이가 갈렸다.
부릅 뜨인 눈 위로 붉은 싯핏줄이 올라왔다.
그녀가 홱! 목리원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목 소협!”
“예, 옙!”
목리원은 절로 군기가 들어답했다.
“목 소협이 선택하십시오! 누구 용건을 들으시겠습니까!”
거절하면 죽여 버리겠다는 듯 그 기세가 사납기 그지없었다.
단지선은 낮게 혀를 차며 말했다.
“겁박까지 하는 건가. 품위 없게.”
“지금 말 다했습니까?”
목리원은 어지러웠다.
이대로 그저 쓰러지고 싶은 마음이 문득 샘솟았으나 그러기에도 힘든 상황.
아, 결국 이렇게 되었구나.
부글부글 속이 끓는 중에도 두 사람의 싸움은 지속되었다.
목리원을 탐하려는 자와 그걸 막으려는 자의 치열한 싸움이었지만, 당사자로선 그걸 알 리가 없으니 그만 홧병이 다 나버릴 지경.
참다참다 못한 목리원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며 일갈했다.
“혼자! 오늘 밤은 혼자 보낼 것이오! 그만 좀 하시오! 대체 애들도 아니고 왜 이러오?!”
울분이 섞인 말에 당화서와 단지선이 동시에 굳었다.
목리원은 그 얼굴들이 문득 밉상으로 보여 ‘흥!’ 소리를 내며 쿵쿵 자리를 떠나갔다.
떠나간 그를 보던 두 사람의 시선이 서로를 향했다.
가운데서 불똥이 튀어오르기 직전의 날 선 분위기.
사이에 끼어있던 단지선의 호위 섬뢰 만이 속앓이를 이어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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