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70 이부 육장 - 별과 뱀 (12)
* * *
‘하늘이 무심하여 인간을 돌보지 않으니.’
목리원은 그 구결을 읊는 순간 직전보다 많은 것들을 느낄 수 있었다.
검과 검이 맞붙는 결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조금 더 깊은 세계로 침투한다.
검로를 읽기 시작했다.
-채앵!
하고 환청이 들려왔다.
그것이 무수히 늘어났다.
가만히 서 있는 이무기, 교와 자신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무수한 결투의 양상이 영감이 되어 허공을 수놓기 시작했다.
-채앵! 채앵!
목리원은 교와 눈을 마주했다.
원망을 잃고, 그의 갈망을 읽고, 또한 그가 검을 놓을 길을 읽었다.
그리하여 목리원은 결국 깨달았다.
‘이것이 초월에서 이르는 생사결이다.’
수를 허투루 내놓지 않는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알아 그 양상을 미리 예측하고 가장 이상적인 투로를 완성하기까지 실현되지 않는 투쟁을 무한히 이어 나가는 것이 곧 이 경지에서의 비무였다.
비단 눈싸움만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화아아악―!
퍼져나간 기파가 교의 영기와 맞물리기 시작했다.
물아일체의 지경에 이르러 퍼져나간 모든 기파가 곧 목리원의 손발이 되어 내력의 순환으로 화했다.
첨예하게 버려진 공력으로 교의 영기를 베어낸다.
그가 영기를 몰아쳐 올 때면 응집하여 막아내고, 그 기세가 줄어들 때면 역으로 기를 쏘아내 공세에 도전한다.
그리 일어나지 않은 전투의 양상을 한참이나 관측하던 중,
‘지금이다.’
목리원과 교가 동시에 서로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일 검.
콰앙!
양측의 검날이 맞붙는다.
성운이 길게 울자 비늘 검이 호응하듯 검명을 흘렸다.
각자의 날을 갉아먹으며 끼기긱, 비명을 지르다 이윽고 검이 떨어진다.
그렇게 이 검.
채앵!
조금 더 맑은 음을 흘려낸다.
맞닿은 검이 서로의 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비늘 검이 증명을 말한다.
저 무심한 하늘을 대신할 자격이 과연 있는지를 물어온다.
그에 목리원은 성운으로 답했다.
쿵!
삼 검이 맞닿았다.
목리원의 눈에는 확실히 보이고 있었다.
성련신공은 별을 잇는 무공.
또한 그들의 슬픔을 대신 짊어져 주는 무공이다.
교의 가슴에는 응어리진 원망이 있었다.
그것은 아주 짙고 질척한 슬픔이 세월과 함께 굳어지며 떨어져 나가지 않게 되어버린 원망이었다.
목리원은 비늘 검을 향해 검을 휘두르면서도, 속으로는 그 원망을 베어나가는 일에 집중했다.
쾅!
또 검이 맞붙고 떨어진다.
그 모든 양상이 사전에 짜두기라도 한 듯 절묘하게 맞물려 간다.
이제 더 이상 목리원은 교의 검에 밀려나지 않았다.
점점 더 목리원의 검이 교가 지정한 한계에 다가가기 시작했고 어느덧,
채앵!
그의 검을 넘었다.
교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그는 한 번 더 경지를 높여 목리원을 밀어붙이려 했다.
하지만 목리원은 곧장 그 경지도 따라갔다.
채앵!
그의 공세에 더 이상 두려움을 품지 않게 됐다.
거칠 비늘 검의 공세를 부드럽게 막아내며 그보다 더 진중한 검로로 반격을 시작한다.
“훌륭하다.”
교는 그리 말하면서 심장의 박동이 거세짐을 느꼈다.
기준 이하였던 검이 점점 기준점을 따라오기 시작했다.
아니, 그 이상을 바라본다.
바라게 된다.
-당신들이 버린 땅을 이 내가, 여성운이 협의로 지켜냈다 이르시오.
정말 그런 말을 믿어도 되겠느냐고.
다를 수가 있겠느냐고.
협의라는 것이 하늘의 뜻보다 위대할 수 있겠느냐고.
“이번엔 조금 더.”
쿵!
교가 진각을 밟자 동공 전체가 진동했다.
목리원의 검은 그 순간 태세를 바꿨다.
“얼마나 높이 벽을 쌓든 중요치 않소.”
양손으로 성운을 쥔 목리원이 찌르기 자세를 만들었다.
교는 목리원을 검을 세심하게 살폈다.
닮았다.
저 검을 만들어 별을 넘보던 사내의 것과 똑 닮은 예비자세였다.
“유성칠검.”
그런 이름이었지.
교는 작게 웃었다.
마지막이 될 일수를 예비했다.
영기를 벼린다.
공간 전체를 진동시켰던 힘이 비늘검 위로 담긴다.
후회의 세월을 담았고, 외면의 세월을 담았고, 또한 별을 만들고 잃었던 순간의 슬픔을 담았다.
고작 2척 반의 길이에 담기에는 너무 긴 세월이었으나 다행이 온전히 완성되었다.
목리원은 굳은 얼굴로 발걸음을 떼었다.
그 또한 찰나였다.
검 끝과 검 끝이 정확히 서로를 향하는 것은.
그리고 극점에 모여든 기의 정수가 폭발하듯 터져 나온 것은.
그럼에도 폭음은 없었다.
진동도 없었고 충격도 없었다.
산들바람처럼 옷깃을 휘날리게 하는 미약한 바람이 겨우 둘을 스친다.
그리도 가벼웠으나, 결과만큼은 가볍지 않았다.
쩌저적―
비늘 검의 끝에서부터 실금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절대 부러질 것 같지 않던 단단함이 이윽고 쪼개져 균열의 크기를 키운다.
끝끝내 파앙! 하고 조각이 되어 비산했다.
“닿았는가.”
교는 손잡이만 겨우 남은 검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목리원은 말했다.
“닿지 못했소. 여전히.”
교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목리원은 작게 웃으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겨우 하나를 담았을 뿐이오.”
그리도 긴 세월에서 겨우 그의 슬픔 하나를 대신 짊어진 것뿐이다.
잃었던 것들을 되찾아 올 수는 없는 법이다.
목리원은 그런 사실을 말했으나, 교는 개의치 않아 했다.
“그것이면 족하다.”
교는 그제야 비늘 검을 손에서 놓았다.
“역린이 부러졌구나.”
“역린이었소?”
“끝끝내 내 흉을 덮고 있던 검이었으니 이것이 역린인 것이겠지.”
역린이라 함은 곧 용의 약점이 되는 한 겹의 비늘을 뜻한다.
어쩌면 교의 말이 비유일 수도 있었고, 또한 있는 그대로의 뜻일 수도 있었다.
무엇이되었든 결과적으로 뜻하는 바는 하나였다.
“이제 이 땅에 당신이 남아있을 이유는 없겠구려.”
신비로운 경험이었다.
심상의 교류를 넘어서 상대의 기억과 과거까지 모두 전해져오는 감각은.
아마 목리원은 다시는 이런 경험을 하지 못할 것이란 생각을 떠올렸다.
“기억이 흘러들어왔소.”
“영기에 의한 것이다. 자연지기와는 성질이 달라 묘한 일이 일어남직하다.”
라고 말한 교의 미간이 조금 좁아졌다.
“이런 작용일 줄은 몰랐지만.”
본인의 기억이 전해졌다는 것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찌푸린 얼굴이었다.
그라다 교가 작게 미소지었다.
“…끝이군.”
후련함이 얼핏 보였다.
교가 손을 휘젓자 단지선을 가둔 공간이 스러졌다.
그는 조금 놀란 얼굴이었다.
“역성대법에 대해 물으러 왔다 했나.”
그제야 교가 입을 열었다.
“구태여 그에 목매지 않아도 될 일이다. 역성대법은 실패한 대법이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애초에 이무백에게로 흘러 들어간 천살성을 다시 내 몸에 가두기 위해 만든 술법이다. 한데 그때의 내겐 자미성이 남아있지 않아 실제 효용을 눈으로 확인치 못한 대법이고.”
단지선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얼굴을 만들었다.
하기야, 천살성이 염에게서 비롯되고 그걸 이무백이 이어받았음은, 그리고 교가 최초의 천살이 아닌 자미 임을 아는 것은 그 본인과 기억을 이어받은 목리원밖에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교는 목리원에게 말했다.
“별은 고정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자신이 있을 곳을 스스로 찾아가는 법이다.”
그는 조금은 허무한 말을 보태었다.
“천기를 말하는 것이 의미가 없겠지.”
“그게 무슨….”
“스스로 하늘이 정한 길을 벗어나겠다 이르지 않았나.”
목리원의 눈이 큼직하게 뜨였다.
이윽고 그의 입에서 작게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랬구려.”
이제야 확실히 알겠다.
애초에 하늘이 정한 운명은 조금도 중요치 않은 것이었다.
아니, 그 길을 벗어나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한 성련이었으니.”
역성대법이 무에 중요하겠나.
목리원은 성운을 납도했다.
“가거라.”
교는 손을 휘휘 저었다.
목리원은 아직 어안이 벙벙해져 있는 단지선에게 말했다.
“갑시다. 내 자세한 이야기는 나가서 해드리겠소.”
단지선은 그제까지도 답답함을 드러내었다.
하나 더 들을 것 없다는 판단은 있었는지 목리원을 따라 나섰다.
그렇게 교는 동굴에 홀로 남았다.
*
교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참선을 시작했다.
‘염아, 너는 보았느냐.’
영육이 스러져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이름일진대 절로 그녀에게 말하게 된다.
‘네가 읽은 천기엔 이런 장면이 있더냐.’
그녀의 생명을 대가로 이어온 삶이었다.
그리 쌓아온 천년이 이제 끝을 보려하고 있었다.
‘나는 결국 승천하게 되었다.’
그리고 너를 죽인 하늘의 뜻이 뒤틀렸다.
온전히 그들만의 몫으로 세상이 움직이려 한다.
연신 되뇌며 교는 육신을 벗었다.
정수리를 통해 쏟아져 내려오는 영기를 그대로 흘리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꽈르르릉!
천둥이 쳤다.
교는 해방감을 느꼈다.
너무나도 죄 많은 삶, 너무 많은 이들의 생명을 스러트린 삶을 살아놓고도 하늘을 노니는 용이 된다 하니 그 간극이 왜인지 우스웠다.
그리하며 동굴 천장을 넘어 하늘을 바라보는 순간,
[…!]
교는 크게 웃었다.
그의 눈에 보이고 있었다.
[그래, 그런 것이었구나.]
천기가 완전히 읽힌다.
또한 그들의 경악이 보인다.
[이제 이 땅에 당신들의 자리는 없어지는 게로군.]
전령으로 오를 필요도 없었던 것인가.
꽈르르릉!
천둥소리를 뒤로한채 교는 승천했다.
그 어느 때보다 진한 웃음을 터뜨리며.
그날 사천 땅에는 소나기가 내렸다.
그 와중에도 천둥 치는 하늘을 바라봤던 이들이 하나같이 말했다.
묵색의 용이 하늘을 향해 승천했노라고.
믿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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