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69 이부 육장 - 별과 뱀 (11)
* * *
태초 천기가 이르는 길은 단 하나의 마선을 완성하기 위한 때 묻지 않는 영물의 내단이었다.
교는 그것을 위한 제물로 태어나 염의 곁에서 눈을 뜬 것이다.
마선이 필요한 이유와 그 생성 방식에 관한 의문은 풀지 못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그것이 당사자들에게는 그리 기꺼운 방식은 아니었다.
누군가는 그리 말했던가, 하늘이 너무 무심하여 이 땅을 돌보지 않는다고.
그 날의 일이 딱 그랬다.
하늘은 교와 이무백을 돌보지 않았고, 염은 하늘을 대신하여 그들을 돌보려 했다.
천기를 뒤틀어 살성을 이룬다.
하늘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고, 그에 궁여지책으로 내린 뜻이 있었다.
자미성이 태어나 교에게 깃들었다.
아직 타락하지 않은 교가 천살의 업을 끊길 바란 것이다.
“다행이다. 생각대로 되어서.”
라고 말한 염이 살기를 담아 비늘 검을 휘둘렀다.
당시 많은 것을 알지 못했음에도 교가 확실히 느낀 게 있었다.
그녀가 자신의 손에 죽으려 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죽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본디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어찌 승천을 한 달 앞둬 용에 닿은 이무기를 100년도 채 살지 않은 이무기가 이기겠는가.
이제 첫 내단이 완성되기 직전이다.
압도적인 힘의 격차가 있어야 마땅할진대….
채애애앵!
교의 검은 염과 호각지세를 이루었다.
상서로운 자색의 기운이 부족한 영력의 차이를 메꿔줬다.
살기가 이르는 길을 미리 예측했으며, 그 업을 끝낼 활로를 망막에 새겨주었다.
본능적으로 깨닫게 된 하나의 사실은 이 자미성이 함께하는 한 계속 살아있을 수 있으리란 것.
모든 천기의 흐름이 자신을 지켜주고 있다는 것.
그러니 염을 이 손으로 베어내야만 한다는 것.
지독하리만치 끔찍한 현실이 드리워짐에 교는 발악했다.
염의 숨통을 스스로 끊는 일 따위는 바라지 않아 발악하듯 몸을 뒤틀었다.
하나 그리한다 해서 바뀌는 것은 없었다.
살고자 휘두른 검이 염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스승님! 염님! 제발 그만…!”
그 순간 이무백이 고통에 절어 외쳤다.
교는 염의 시선이 이무백을 향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짧은 시선의 교환, 이윽고 다시금 자신을 향하는 시선.
그 속에 담긴 것은,
“안녕.”
이별을 앞둔 이의 슬픔이었다.
이후의 일 중 교가 기억하는 것은 하나였다.
염이 이무백을 죽이기 위해 달려들었고, 그것을 제 손으로 막아 그녀의 심장을 꿰뚫었다는 것.
“왜…!”
“미안해.”
그녀는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숨을 잃어갔다.
교는 그녀를 끌어안은 채 울었다.
“왜…!”
연거푸 내뱉는 질문에 염은 그리 답했다.
“이무기는 간사한 영물이잖아.”
장난스러운 답이었다.
“간사한 이무기라서, 날 위해서 그랬어.”
그 말을 끝으로 염의 몸이 무너져내렸다.
품속에서 흩어지는 염을 보는 순간 교의 세상이 무너져내렸다.
“아아아!!!”
하고 울부짖기를 일주일.
그 시간 내도록 소나기가 내려 궁을 뒤덮은 핏물을 씻어냈다.
*
스스로 염의 목숨을 끊은 후 영산에 칩거를 시작하여 1년.
교의 첫 번째 내단이 완성되었다.
하나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그리 살아 있다 한들 염이 이곳에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만날 수도 없다.
최후의 순간 그녀의 천살과 함께 영육이 무너져 내렸으니 말이다.
교는 하늘을 원망했다.
이 찢어죽일 자색의 운명이 너무나도 미웠다.
차라리 자신을 죽였으면 될 것을.
그리해도 될 것을 염으로 하여금 스스로 희생하게 만든 모든 것이 너무 미웠다.
“스승님….”
이무백은 죄책감에 말라갔다.
당시의 교는 그런 것을 보지 못했다.
그저 다시 한번 염을 만나고 싶다는 마음에 백방으로 방도를 고민했으며 그리하며 원망을 키워갔다.
문제투성이였다.
결국 떠올린 것은 미치광이의 발상이었다.
“천살을 다시 부활시킨다면.”
그녀의 영육을 이루었던 원망을 다시 한번 이 땅에 재림시킨다면.
하다못해 이 몸에라도 재림시킨다면 그녀를 다시 찾아올 수 있지 않을까.
그녀의 영육이 스며들어오지 않을까.
끔찍한 발상이었으나 제동을 걸 수 있는 이가 없었다.
그날 동굴에 칩거를 시작한 교는 이무백의 출입까지 막으며 천살을 부활시킬 방도를 연구했다.
다행히 어렵지 않은 길이 있었다.
제게 들러붙어 있는 자미성을 이용하면 된다.
천살의 극점에 존재하며 그 별빛을 가리는 별이니, 이 별에 살기만 더해지면 천살성이다.
영기를 이용해 별을 뒤트는 일은 금기에 속하는 것이었으나 그에 무슨 상관이 있겠나.
“안 됩니다! 스승님!”
이무백이 끝까지 외쳤으나 교의 귀는 닫혀있었다.
그리하여 완성된 것은 역성대법의 본이 되었던 하나의 술, 살천대법(殺天大法)이었다.
수많은 이들의 원한과 살의로 자미성을 타락시켜 천살성을 불러오는 대법.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 영산을 내려가려던 날이었다.
“제가, 제가 하겠습니다.”
이무백은 기어코 그런 말을 했다.
“제가 영산을 내려갔기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제가 염님을 죽인 것입니다. 그러니 그 책임을 지게 해주십시오.”
그날의 이무백이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가 기억나지 않았다.
교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째 실수였다.
“천마군림 만마앙복!!!”
이무백은 스스로 마가 되어 이 땅 모든 살기와 원한을 집어삼킨 괴물이 되었다.
일은 그 순간 틀어졌다.
애초에 살기의 방향이 뒤틀린 것이다.
자미성에 담아야 할 살기를 이무백이 모두 가져가 버린 것이다.
하나 무슨 운명의 장난일까.
“제게 천살성이 깃들었습니다.”
이무백은 피로 점칠된 얼굴로 환히 웃으며 그리 말했다.
“한데 스승님, 염님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제야 교는 미쳐있던 것을 깨달았다.
이무백이 고작 그런 일을 깨우쳐주고자 스스로를 희생했음을 알았다.
“그러니 스승님.”
“왜….”
“그리 죄책감에 살 필요가 없으십니다.”
“왜….”
“염님이 구해준 목숨이 아닙니까. 소중히 하여 승천하여 주십시오.”
떠나는 이무백을 막고자 했다.
하나, 이미 한번 하늘을 저버린 교에게 자미성은 더 허락되지 않았다.
뿐만 아니었다.
그의 모든 영력이 빼앗겼다.
그릇된 형식으로 쌓아 올린 영기는 자미성과 함께 스러져버린 것이다.
이후 들은 소식은 자미성의 새로운 주인이 나타나 이무백의 목을 베었다는 것이었다.
성련문(星聯門)의 문주라는 이름으로 강호에 나타난 그가, 교의 죄업을 끝낸 것이다.
“완전한 끝은 아니오.”
백 년이나 더 흐른 뒤, 그제까지도 살아있던 성련의 창시자는 교를 찾아와 말했다.
“언젠가 천살이 돌아올 것이오. 그뿐만 아니겠지. 이 무심한 하늘이 사람을 돌보지 않으니 어찌 환란이 끊길 수가 있겠소.”
죄책감에 휩싸여 새로운 내단을 만들 생각도 못 했던 시기였다.
그는 그런 교에게 말했었다.
“그러니 내가 돌보려 하오.”
“뭐…?”
“하늘 대신 사람이 사람을 돌보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오. 그런 문파를 만들고자 하오.”
그가 이무백과 무슨 대화를 나누었기에 저런 자신감을 내비치는지 교는 몰랐다.
다만, 그가 하는 말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는 알았다.
“헛소리!”
승천을 앞둔 용조차 거스를 수 없어 영육을 다해 겨우 뒤튼 것이 하늘의 뜻이다.
그것을 어찌 필멸에 불과한 한낱 인간이 바꾸겠다는 것인가.
교는 비명지르듯 따져들었다.
탈력감에 휩싸여 절대 그 일이 불가함을 일렀다.
그에 사내는 웃으며 말했다.
“생명은 다하여도 의지는 이어지는 법이오.”
“의지?”
“선하고자 하는 의지, 대가 없이 남을 구하고자 하는 의지. 세대와 세대를 거듭해 그런 의지를 남겨, 하늘 대신 영원불멸 이 땅을 수호할 것이오. 그러니 지켜보시오. 언젠가 승천할 자로서 관조하여 나의 뜻이 고고했음을 저 하늘에 알리시오.”
그가 하늘을 가리키며 이르니.
“당신들이 버린 땅을 이 내가, 여성운이 협의로 지켜냈다 이르시오.”
의심할 줄 모르는 단호함과 자신감이었다.
그것이 무너져내린 교를 다시 한번 일으켜준 말이었다.
“기억하시오. 나는 성련(星聯)의 문주 무검자(武劒子) 여성운이오.”
그의 기약이 그러하여 교는 다시금 승천을 준비했다.
그의 전령되어 천상에 말을 준비하겠다는 그런 일념으로 천 년을 지새웠다.
그렇게 오늘이 왔다.
“증명해 보거라.”
교는 확인해야만 했다.
그의 말대로, 성련의 의지가 하늘이 버린 땅을 대신 보살필 수 있을 것인지를.
그들의 의지가 천상에 닿을 가치가 있는지를.
“보여다오. 네가 스스로 운명을 깨부술 자격이 있는 자임을.”
흑색의 비늘검이 강기를 둘렀다.
*
성운이 울부짖었다.
목리원은 흑야를 납도했다.
‘그래.’
이제야 보이는구나.
우우웅―
성운의 서릿발 같은 기운이 목리원의 전신을 일깨웠다.
붉은 세상 위로 자색의 길을 띄워 올렸다.
성운을 뽑았다.
쾅!
비늘검을 막았다.
흘러넘친 슬픔이 전해져 오는 것에 목리원은 강기를 성운에 덧씌워졌다.
목리원은 자색의 길이 이르는 목적지를 바라보며 되새겼다.
‘저것을.’
저 원망을 베어내야하는 것이리라.
목리원은 성련의 구결을 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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