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68 이부 육장 - 별과 뱀 (10)
* * *
교는 곧장 염에게 다가가 물었다.
“무슨 일이냐.”
대관절 승천을 앞둔 이무기를 울게 할 만큼 큰일이 무에 있기에 그녀가 이리 울고 있는지 교는 깜짝 놀란 상태였다.
혹여 이무백과의 이별이 그리도 슬픈 것인지 의아해 물었다.
“그 아이가 떠나는 것이 섭섭하던가? 그래도 승천 전에 한 번은 더 볼 수 있지 않나. 그때까지 돌아오지 않는다면 내가 멱살을 쥐고서라도….”
“그런 거 아냐.”
염은 큭큭 웃으며 눈물을 닦았다.
“슬퍼서 운 게 아냐. 그냥….”
“그냥?”
“그냥 울었어.”
말도 안 되는 변명이었다.
교는 그녀의 말을 조금도 믿지 않았음에도 더 추궁을 이어 나가진 않았다.
그리해선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가 이 이상 캐묻는 일을 원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온 전신을 지배하는 것이다.
그것은 염의 술법이었다.
감정을 강제하여 사고의 흐름을 뒤트는 일.
교는 이 순간의 진의가 그러했음을 700년을 산 뒤에나 알았다.
여하튼, 그런 이유로 교는 염의 곁에 앉아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그놈은 잠들었다. 내일 일찍 나가겠다며 짐도 다 싸둔 상태다.”
“응, 봤어.”
“멍청한 놈이다. 바깥이 얼마나 위험할 줄도 모르고.”
“이제 어른이잖아.”
“20년밖에 살지 않은 것이 뭐가 어른인가.”
“인간은 어른이야. 그만큼 빨리 자라잖아.”
염은 그리 중얼거리곤 흐리게 웃으며 말했다.
“참 빨리 자라는 것 같아. 빨리 죽는 것도 같고.”
“고작 1갑자를 겨우 사는 단명종 아닌가.”
“토납법을 잘 배워봐야 100년이지. 아니다. 무백이는 더 살려나?”
교는 그녀의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럴지도 모른다. 재능이 있으니.”
비단 등선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이무백은 그 인간으로서 갖춘 육신조차 범상한 정도를 아득히 벗어나 있었다.
가르친 토납법을 꾸준히 하고 검을 손에 놓지 않는다면 3갑자는 족히 살지도 몰랐다.
그리 다 살고 나서 신선이 되는 방도도 있을 터.
교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보다 너희 둘이 먼저 만날 수도 있겠군.”
염이 승천하고 이무백이 등선하면 둘은 다시 만나게 된다.
교가 그들과 재회하는 것은 적어도 800년은 더 후의 일일 터였다.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아 교가 인상을 찌푸렸다.
염은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럴 수도 있지. 아니, 그랬으면 좋겠다.”
“너는 알지 않나. 그 미래가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
“천기누설이야.”
“웃기는군.”
교는 코웃음쳤다.
그리하며 대화 중 기색이 안정된 그녀를 훔쳐봤다.
씁쓸한 미소만큼은 여전했으나 전보단 나아졌으니 다행이라고, 당시엔 그리 생각했었다.
교가 염의 마음을, 그리고 그녀가 이무백을 찾은 뒤로 내내 슬퍼했던 이유를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29년 뒤, 염의 승천이 단 한 달이 남은 날이었다.
모든 뒤틀림이 애초에 예견되어 있음을, 교는 너무 늦게 깨달은 것이다.
*
이무백이 떠난지 29년, 방정맞던 인간 하나가 사라진 영산은 너무나도 조용해졌다.
다르게 말하면 심심해졌고, 또한 평화로워졌다.
교는 첫 번째 내단을 완성하느라 하루를 다 보내고 있었다.
1000년 중 천 번째 100년을 끝내는 시기니 그 마무리를 잘해야만 했음에도 그리하지 못해 매일매일 고역에 시달리는 나날이었다.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염과의 이별이 코앞까지 다가왔기 때문이다.
사실 이무백이 떠난 이후론 왜인지 그녀와 말을 나눌 일이 없어 아쉬움만 짙어져 가던 차다.
그런 마음 탓에 그날의 교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천리안으로 영산을 둘러봤다.
그러다 염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가 입술을 달싹였다.
‘이, 리, 올, 래?’
싱긋 웃으며 물어옴에 교는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녀를 만나러 갔다.
냇가였다.
“훔쳐보지 말고 오지 왜.”
“그런 적 없다.”
“어찌 손으로 하늘을 가릴까?”
염이 으스대듯 손을 펼쳐 교의 눈을 가렸다.
교는 새하얀 손가락이 시야를 막는 것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가 손가락을 펼치자 그 틈새로 미소가 보였다.
“…치워라.”
“그랭.”
해맑은 답이었다.
하나, 그녀의 표정까지 해맑지 않음은 이윽고 알 수 있었다.
손이 사라지자 미소의 빈 조각이 채워졌다.
그녀의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표정이 왜 그렇지?”
“뭐가?”
“그건….”
꼭 우는 사람의 얼굴이지 않나.
교가 머뭇거리며 말을 삼키자 염이 입을 열었다.
“교야.”
“왜 그러나.”
“미안해.”
“무엇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아서.”
진심이 느껴지는 사과였다.
말해주지 않았다는 게 대관절 무슨 말인지.
“천기누설을 말하는 건가?”
그런 거라면 사과할 필요가 없을 텐데.
라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화악!
하고 영기가 영산 전체로 퍼져나갔다.
단순한 기운이 아니었다.
그것은.
“…!”
“이때까지 가리고 있었어. 네 눈.”
암막을 거두는 영기였다.
교는 그제야 이 영산 전체를 이루던 거대한 신비가 그녀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깨달았다.
이상한 일이긴 했다.
본디 첫 내단을 이루며 생기는 천리안은 단어 그대로 천 리 밖도 내다볼 수 있는 영험한 권능일진대 자신의 천리안은 이 영산 안쪽만을 겨우 바라볼 수준이지 않던가.
교는 그것이 염에 대한 감정 탓에 제대로 천리안이 완성되지 않았던 까닭이라 생각했으나, 이리 확인키로 염이 교의 천리안을 방해한 것이었다.
“왜?”
왜 눈을 가렸느냐고. 그것을 이제야 밝히는 것이냐고.
묻자, 염은 슬피 답했다.
“무백이.”
쩌저적, 교의 몸이 굳었다.
“그 아이가 위험해.”
교는 그녀의 말을 의심했다.
곧장 천리안이 트였다.
그런 교의 눈꺼풀 위로 보이는 광경이 있었다.
-이무기의 위치를 말하라.
-할 수… 없소.
-그럼 다시 고문을 이어가 보지.
-끄아아아악!!!
아주 작고 어두운 뇌옥.
그곳에 이무백이 구속되어 꼬챙이에 꿰뚫리고 있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염이 천리안을 끊어버렸다.
교는 혼란스러웠다.
분명 잘 살것이라고 생각했던 이무백이 저리 추레한 뇌옥에 갇혀 고통받고 있는데 어찌 평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
심상이 흔들리는 와중에도 되새겨지는 말이 있었다.
-이무기의 위치를 말하라.
저 의문의 인간이 원하는 것이 자신들이 있는 위치라는 것 정도는 금방 유추가 가능한 것이다.
하나,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어째서냐.”
교는 원망이 덕지덕지 묻어난 얼굴로 염을 바라봤다.
이무백은 교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인간이었다.
직접 아이때부터 키운 아이였고, 그렇기에 자식으로도 볼 수 있는 아이였다.
염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아무렴, 이무백을 데려와 이름을 지은 것이 바로 염이 아니던가.
그녀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천기를 읽는 능력이 있으니 이미 이 사실을 알고 대비할 수 있었겠지.
아니, 그런 능력이 없었다 한들 천리안으로 미리 일을 막을 수 있었을 테다.
그것조차 스스로 할 수 없다면 자신의 천리안을 이용해도 됐을 것이다.
한데 어째서….
“…천기.”
“뭣이?”
“누설해버렸네.”
덜컥, 교의 몸이 멎었다.
염은 그런 그를 살포시 끌어안았다.
“미안해.”
그 말의 뜻을 알게 된 것은 또 훗날이었다.
교는 당시 염의 무엇도 이해하지 못했다.
*
그녀에게 어떤 답도 들을 수 없었으나, 훗날 천기를 읽으며 교가 이해하게 된 것이 있었다.
처음 교가 태어나던 날부터 모든 것은 정해져 있었다.
이무백이란 인간은 본디 선계에 오르기 위해 예비된 마선(魔仙)이었으며, 교는 그를 마로 이끌기 위해 죽어야만 하는 영물이었다.
염은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 교가 태어난 날 영산을 세상에서 가렸다.
이무백이 이 산에 찾아오지 못하도록 결계를 펼쳤으며, 교가 그 위화감을 못 느끼게 만들고자 결계로 막는 것을 인간으로 한정했다.
그럼에도 이무백이 찾아왔다.
그녀의 말처럼, 하늘을 손으로 가릴 수는 없다는 듯 운명은 예비된 대로 흘러 교와 이무백을 마주하게 했다.
염은 그리하여 슬퍼했다.
그 일을 막고자,
“괜찮아. 아무 일도 없을 거야.”
끝끝내 스스로의 승천을 포기했다.
“내가, 그렇게 만들어 줄게.”
그날의 교는 염의 영기에 속박되어 한 발 짝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로 쓰러졌다.
정신을 차렸을 땐 염이 이미 사라진 뒤였다.
염은 천리안을 이용했다.
그제야 제대로 트인 천리안으로 본 광경은 끔찍했다.
이무백이 갇혀 있던 곳은 거대한 황궁이었다.
염은 그곳으로 유유히 들어가 인간들을 참살했다.
그것은 금기였다.
승천에 오르며 살생을 하는 것은 금기였고, 그로 하여금 원망을 수집하는 것은 용으로선 절대 해선 안 될 금기였다.
당시의 교는 그녀의 의중을 모두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미쳐 발광하여 염의 술법을 풀었다.
곧장 그녀와 이무백이 있는 곳을 향했다.
그 끝에 마주한 광경이 있었다.
“자, 교야.”
그녀는 그제야 처음 만난 날처럼 활짝 웃고 있었다.
발밑에 수많은 이들의 피로 강을 이룬 채였다.
“금기를 어긴 미물을 벌해야 해. 그게 이무기의 업이니까.”
그녀의 새하얀 비늘 검이 교를 가리켰다.
와중 눈만큼은 붉었다.
“상서러운 영물이잖아. 너는.”
천살성(天殺星)은 그날, 그런 식으로 이 땅에 태어났었다.
승천을 한 달 앞둔 이무기의 영기가 수많은 살기와 원한을 수집함으로써.
그저 단 하나의 뱀과,
“…스승님?”
인간을 살리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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