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65 이부 육장 - 별과 뱀 (7)
* * *
머릿속이 징징 울렸다.
단순히 검을 맞부딪친 것일 뿐인데 전신에 그 충격이 다 울려 퍼졌다.
목리원만 그랬고, 이무기는 평온했다.
격차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극심했다.
목리원은 험악하게 구겨진 얼굴로 이무기를 바라봤다.
대관절 증명이니 뭐니, 이무기가 하는 말은 좀처럼 알아들을 수 없는 것들이지만 그 의도 하나만큼은 명확했다.
“싸우자는 거요?”
“그렇다.”
한 발 멀어지며 비늘 검을 늘어뜨린 이무기의 안색이 사뭇 고요했다.
그 어떤 거리낌도 느끼지 못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해달라면 해주어야지, 목리원은 기파를 크게 일으키며 검을 고쳐 쥐었다.
흑야가 순식간에 이무기의 목 앞에 닿았다.
쾅―!
이번 역시 열세, 전투의 와중이다.
잡생각을 지워낸 목리원은 오롯이 이무기의 전력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무공수위는 나와 동등하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정확히 목리원의 한계에 닿아 있었다.
검술 또한 그랬다.
그는 분명 더 심오한 묘리를 사용할 수 있을 것임에도 목리원의 이해를 벗어난 것들은 무엇도 사용하지 않았다.
시험이라는 말은 진심이었는지, 그는 모든 조건을 철저히 목리원에게 맞춰주고 있었다.
이리 약자의 입장이 되어본 것이 언제던가.
산속에서 스승에게 수련을 받을 때? 그때 이후론 없었다.
그나마 있던 위광천과의 생사결은 상대가 이렇듯 봐주지도 않았으니 더욱이 그랬다.
낯설고, 왜인지 자존심이 상했다.
꽝!
검을 떨쳐내며 목리원은 한 바퀴 회전했다.
이무기도 똑같은 행동을 했다.
‘따라하고 있다!’
이무기는 분명 자신의 검초를 보며 그를 베껴 쓰고 있었다.
그럼에도 소름 끼칠 정도로 정밀도가 극심하다.
이미 대성에 오른 듯 자유자재로 검초를 수발하고 있었다.
이유는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었다.
‘이것이 천살성의 살로를 이용한 검술인 까닭이겠지.’
최초의 천살성이니 만큼 그 별이 이르는 살로를 모를 리 없었다.
만련이검.
그 이치에 천살이 닿아있으니 이무기는 금방 검술과 별의 접점을 접목할 수 있는 것이다.
채재재쟁!
1식 탈혼번쾌.
초식을 더 하며 연격이 거칠어졌다.
스스로도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쾌속의 극치에 있는 쾌검이었으나, 파훼되었다.
그가 한 발 더 앞섰다.
목리원은 눈을 찢어질 듯 크게 떴다.
‘통제한다고?’
인지를 벗어난 속도가 곧 탈혼번쾌가 이르는 종점이다.
한데 그는 어찌 이 빠른 속도를 그대로 따라하며, 심지어 완벽히 통제하며 검을 휘두르는가.
촤좍!
목리원의 무복이 베였다.
열세였다.
“이 정도인가.”
나른한 물음에 목리원의 눈동자에서 불똥이 튀었다.
“아니!”
2식 지사허류.
공간의 흐름을 지배하여 상대방의 검로를 통제하는 이화접목의 끝에 달한 수법이었다.
하나, 이 또한 통하지 않았다.
“흐름은 더 큰 흐름에 집어삼켜지는 법.”
투웅!
목리원이 이끈 흐름이 이무기의 영기에 의해 흩어졌다.
빈틈이 드러나 버렸다.
목리원은 천살성의 경고에 검으로 가슴을 막았다.
쾅!
목리원의 몸이 크게 떠올랐다.
멈추지 않았다.
3식, 천리만통.
공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수법을 눈으로 훑어내는 안법의 극의였다.
목리원의 눈 위로 실핏줄이 돋아났다.
이무기가 이어갈 수를 미리 관측하려는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보이지 않는다?’
목리원의 의도대로 이어지진 않았다.
“천리안을 흉내냈구나. 하나, 결국은 흉내다.”
이무기는 분명 보법을 밟으며 검을 휘둘러오고 있었다.
한데도 그 다음 검이 다다를 곳이 보이지 않았다.
아니, 반대다.
그는 이 자세에서 모든 경로로 검을 뒤틀어 찔러올 수 있었다.
아득함.
그제야 목리원은 깨달았다.
‘이것이… 나의 검.’
자신과 맞붙었던 적들이 느낀 감정이 꼭 이랬으리라.
쾅!
목리원이 바닥에 처박혔다.
*
“겨우 이것으로 포기하겠는가?”
이무기의 말이 가슴속 깊은 곳을 후벼팠다.
목리원은 덜덜 떨리는 몸을 애써 일으켜 세웠다.
턱 끝에 걸리는 숨을 주워 삼키며 그를 바라봤다.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 평온한 꼴이었다.
“별을 스스로 이겨내겠다. 그런 마음으로 온 것이 아닌가?”
“닥치시오…!”
“일어나라.”
이무기의 검 끝이 목리원을 향했다.
목리원은 이 순간조차 그 검이 다음으로 향할 곳을 찾을 수 없었다.
경지 수위가 더 높은 것은 절대 아니다.
암만 부정하려 해봐도, 저것은 목리원 스스로도 할 수 있는 일이었고 그걸 이무기가 더 잘할 뿐이었다.
“증명하라.”
거슬리는 말을 뒤로한 채 목리원은 또 달려들었다.
쩌저적! 검 위로 기파가 굳어져 간다.
이번엔 검강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검강이 아니었다.
물아일체, 금지에 들어서며 깨달은 이치를 몸에 받아들여 자연과 교감하여 쌓아 올린 정순하고 첨예한 공력이었다.
그에 맞대응하겠다는 듯 이무기도 검강을 뽑아냈다.
서로가 닮은 묵색이다.
꽈드드득!
검강이 맞물리며 파열음이 일었다.
“대체 무엇을 증명하란 말이오!”
목리원은 부르짖었다.
“당신이 내게 무슨 자격으로 시험을 건네시오!”
역으로 질문을 건넸다.
세상 다른 누구도 아닌 천살을 피워낸 자에게 그저 당연한 질문을 한 것이었다.
힘겨루기를 넘어 기의 흐름을 드잡이질한다.
주도권을 가져오기 위한 지난한 힘싸움을 시작했다.
그 끝에서 목리원은 이무기의 눈을 바로 응시하며 폭발적으로 기파를 뿜어냈다.
“시험은…!”
꽈드득!
“당신이 받아야지!”
쾅!
이무기를 떨쳐냈다.
피해를 준 것은 아니었다.
이무기는 여전한 여유로움을 두르고 있었다.
하나 그 표정은 어딘가 불편함을 품고 있었다.
목리원은 그에 눈살을 찌푸렸다.
뭔가 기색이 이상했다.
“자격을 말할 수 없음은 안다. 나의 과오이니.”
이무기는 말 한마디에 감정을 털어내곤 그 고요한 기색을 다시금 되찾았다.
“그럼에도 현세의 일에 관여할 수 없음이니, 그저 하나 미련을 지우고 싶어 이 자리에 선 것일 뿐이다.”
목리원은 여전히 그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나, 그의 뜻이 꺾이지 않았음은 깨달을 수 있었다.
시험이라, 원한다면 해줄 수밖에.
목리원은 흑야에 채워 넣은 공력을 더욱 첨예하게 가다듬었다.
‘한계다.’
저것은 목리원 스스로의 한계다.
달리 말해 벽이다.
언제나 그랬듯,
‘벽이라면 넘으면 그만.’
목리원은 벽 앞에서 무릎 꿇지 않았다.
쿵!
검이 충돌한다.
그렇게 기파가, 공력이, 검초가 어지러이 얽히기 시작했다.
비무가 격해진다.
그 순간이었다.
‘심상.’
그것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목리원은 작게 당황을 토해냈다.
본디 검초를 이해함으로써 더 깊은 세계 속으로 서로를 끌어당기는 것은 당연하다.
상승의 무공이라는 것은 달리 말해 검의 형상을 한 교감이니까.
하나 그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전할 것이 있을 때만 작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청룡비무회에서 당화서의 심상을 엿보던 때가 그랬고, 남궁진천의 벽을 함께 뛰어넘을 때가 그랬다.
한데도 이무기의 심상이 속에 파고든다.
그가 이런 것을 알리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
아니다.
이것은 넘쳐흐른 것이다.
채 속에 갈무리하지 못한 감정이 그릇을 넘어 넘쳐흘러, 전해져오는 것이다.
목리원은 그의 심상에서 후회, 그리움, 그리고 분노와 증오, 끝에서 허탈함을 느꼈다.
이질적인 감각이 전신을 휘감는 순간,
-교야.
목리원은 어렴풋이 여인의 목소리를 들었다.
우우웅―
등에 메여 있던 성운이 울었다.
*
아주 작은 뱀이 있었다.
“교야.”
기껏해야 여인의 팔뚝 크기인 갓 태어난 뱀이었다.
“네 이름은 교(交)란다. 사귈 교 자를 써서 교. 많은 이들을 만나고, 사랑하고, 살아가라고 그리 지었어.”
여인은 순백색의 머리칼과 관자놀이의 상아색 뿔이 특징적이었다.
어린 뱀, 교는 그녀를 올려다봤다.
풍경은 고즈넉하다.
냇물 옆에 반듯하게 자리한 바위, 근처의 초목은 듬성듬성 너무 번잡하지 않게 자리해 있었고, 소나무는 하나하나가 자기주장이 강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교, 나의 이름을 알았다.]
교는 영기를 타고난 영물이었다.
난 세상과 자신을 구분할 줄 알았으며, 스스로가 용이 될 운명임을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었다.
또한 눈앞의 여인이 누구인지도 알았다.
[이무기야.]
“너도 이무기인데 그렇게 부르면 구분이 안 되잖아. 나는 염(染)이야. 세상을 물들이는 빛이라고 해서 염.”
[염.]
“맞아.”
[영기가 모자라구나.]
“네가 제대로 흡수하지 못한 거야. 자, 천천히 심호흡하듯 흡수해봐. 너는 할 수 있어. 언젠가 용이 될 존재니까.”
[…이해했다.]
알에서 태어난 교의 세상엔 영기가 가득한 고즈넉한 냇가, 그리고 900년을 산 이무기 염이 있었다.
그곳에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행복도, 불행도, 절망도, 타락도.
이무기 교와 염, 그것이 천살성을 탄생시킨 신령들의 이름이었다.
“앞으로 잘 부탁해?”
교는 그녀의 미소를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마치 희끄무레한 세상을 총천연색으로 물들이는 듯했던, 그런 미소를.
다음화 보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