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64 이부 육장 - 별과 뱀 (6)
* * *
전승에 따르면 이무기가 용이 되는데 걸리는 시간은 천 년이다.
사특한 마음과 번뇌를 덜어내고 수행을 쌓아 오롯이 선기를 품는데 그만큼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그것이 통상적인 승천(昇天)의 과정이었고, 동굴 속 이무기는 그랬다.
“승천을 자의로 미루고 있습니다.”
“어째서요?”
“정확한 이유는 본인 밖에 모를 터입니다. 하나, 구태여 그 이유를 추측해보자면 번뇌겠지요.”
“음?”
“그는 선업을 쌓기 이전에 그 무엇보다 지독한 악이었으니 말입니다.”
단지선은 그가 아는 사실들을 이야기했다.
“스스로 악에 속했다는 것 자체를 부정하여 참선해야만 오를 수 있는 것이 천상입니다. 한데도 악의 중추로서 살았으니 어찌 과정이 쉽겠습니까. 천살성을 이미 떼어냈다 한들 과거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겠지요. 그걸 느껴야만 승천할 수 있는 수준이 되니. 그리고 이무기는 확실히 승천에 오를 수준입니다. 번뇌가 속에 있으리란 말입니다.”
꼭 옛날 이야기 같은 말이 이어진 후였다.
“어떤 방법으로 그가 천살성을 떼어낸 것인지는 누구도 모릅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사고가 존재했음은 확실하지요. 이무백. 그 이름을 아시지 않습니까?”
목리원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무렴, 이무백에 관한 진실을 세상 누구보다 잘 아는 것이 바로 그이지 않던가.
이무백은 본디 양민이었다. 스스로 짊어지게 된 업 탓에 악으로 물들어 천마의 이름을 지게 되었다곤 하나, 그 본질은 한없이 양민에 가까운 사내였다.
성련의 개파조사가 남긴 회고록에 따르면 죽는 그 순간까지 괴로움에 비명을 질렀다던가.
죽기 위해 살아온 삶.
이무백의 일생은 그리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무기의 목적은 천살의 멸절이었습니다. 하나 그 일은 실패하고 천살성은 새로운 주인을 맞이했지요. 그 이후로도 세 번. 천살성은 거대한 환란이 되어 세상을 진동시켜왔습니다.”
대화를 나누던 중 어느덧 동굴의 지근거리까지 왔다.
“그의 번뇌가 그것과 관련되어 있지 않을까. 승천을 위해 끊어내야 할 마지막 악업이 천살과 연관되어 있지 않을까. 추측한 바가 그것입니다. 물론 지금은 관계없는 이야기지요.”
우뚝, 단지선의 걸음이 멎었다.
그는 거대한 동굴의 입구를 마주하며 눈빛을 가라앉혔다.
“저희의 목적은 하납니다. 역성대법의 저자가 그이니 대법을 되돌릴 방법도 그가 알고 있을 터. 그것을 알아내야만 하지 않겠습니까?”
바라마지 않는 일이었다.
목리원은 이 천살성을 떼어낼 방법이 드디어 도래했음에 그와 마찬가지로 동굴의 입구를 바라봤다.
기운은 이제 전신을 다 내리누를 정도로 강대해져 있다.
선기, 영기, 그리고 자연지기가 얽혀 이루는 위압감은 초월의 무인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 여길 정도의… 구태여 비유하자면 7년 전 전쟁에서 만났던 천마(天魔) 이선의 기운에 비할 바였다.
목리원의 시선이 동굴 속을 꿰뚫었다.
다만 시선을 보내는 것이 아닌 의지를 보내는 것이다.
그 순간이었다.
[둘만 오라.]
머릿속에 울리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음과는 달랐다.
그보다 한 차원 더 높은 초월적인 기예가 깃든 방편이었다.
“…목 소협.”
당화서가 긴장된 어조로 물어왔다.
목리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들려온 목소리가 일컫는 둘.
그것이 누구일지 모를 정도로 눈치가 없진 않았다.
자신과 단지선일 것이다.
“교주, 어찌하실 테요?”
“섬뢰야. 이곳에서 문주를 모시고 있거라.”
“존명.”
섬뢰가 고개를 숙였으나 당화서는 영 납득하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그녀의 입장에선 참 당황스러운 일인 까닭이다.
“수상합니다. 제가 이 금지에 몇 년이나 출입을 이어왔으나 이런 동굴은 생전 본 일이 없습니다. 아무래도….”
“이걸 볼 정도의 능력이 없었던 것뿐이지 않습니까?”
우뚝, 단지선의 말에 당화서가 굳었다.
목리원은 한숨을 내쉬었다.
“푸닥거리는 거기까지 하지.”
“소협!”
“이미 한 번 만나본 이요. 위험한 일은 그다지 없으리라 생각되오.”
비단 안심시키는 말뿐인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저 속에 있을 이무기는 목리원에게 적대적이지 않았다.
도리어 접근을 꺼려한다 보는 게 맞겠지.
전에는 거리가 좁혀지는 것이 싫다며 쫓아낸 후 문까지 굳게 닫아버렸으니 말이다.
목리원은 동굴로 한 발짝 들어섰다.
전과 같은 반발력은 느껴지지 않았다.
“다녀오지.”
목리원과 단지선의 신형이 암흑 속에 삼켜졌다.
*
동굴을 얼마나 지나야 이무기에게 도달할 수 있는지는 이미 알았다.
그리고 이 동굴의 어둠이 이무기의 도깨비불에 걷힐 것도 알았다.
드리워질 광경을 예상하여 목리원은 긴장을 더했다.
하나, 그조차도 모자랐다.
거대한 공동에 들어서는 순간 목리원은 숨을 삼켰다.
“왔는가.”
화르륵!
음성으로 전해지는 목소리, 푸른 도깨비불 아래 드러난 것은 인간의 형상.
그는 세로로 찢어진 동공이 특징적인 미남자였다.
흑색의 곤룡포, 발에 닿는 긴 흑색의 장발, 햇볕을 보지 못해 창백한 피부와 꼭 뱀의 것을 연상케 하는 쭉 찢어진 눈.
사람의 형상이다.
그가 누구인지를 이미 아는 목리원으로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대협, 진정하십시오.”
단지선은 말했다.
“아직 땅에 머물러 이무기라 불리고 있으나 그럼에도 그 힘은 이미 용에 달했습니다. 저 정도 변용술은 아무것도 아니지요.”
그의 말에도 목리원은 좀처럼 진정할 수 없었다.
호흡이 그만큼 가빴다. 이무기와 눈을 마주한 순간 모든 감각이 첨예하게 일깨워진 까닭이다.
“이곳에 온 목적을 안다.”
이무기가 말했다.
“하나 무엇도 말해줄 수 없다. 천기누설은 금기에 닿아 있으므로.”
무심한 말에 단지선이 반박했다.
“하나, 그 천기를 읽는 저에겐 금기가 아닐진저.”
“그렇다면 천살을 떼어두고 오라.”
“그를 둘러싼 천기일 텐데 어찌 떼어내겠습니까?”
“한들 하늘의 뜻을 누설할 순 없다.”
“그렇다면….”
“단.”
이무기가 단지선의 말을 끊었다.
그의 눈빛이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증명한다면, 스스로 깨우칠 터.”
영문 모를 말이었다.
목리원으로선 더욱이 그랬다.
숨이 꽉 막혀오는 거력의 진동에 이가 악 물릴 수준이다.
그의 말은 답답한 거절만이 가득하니 속에 천불이 난다.
“무엇을 증명하란 말이오?”
목소리는 절로 사나워진다.
애초에 그가 원인이 된 환란이다.
그렇다면 스스로 책임을 지는 것이 마땅할 터인데, 어찌 모르쇠로 일관하기만 한다는 것인가.
사납게 목리원의 검이 뽑혀 나왔다.
이무기는 표표하게 가라앉은 기세로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츠즈즈즈―
그의 손바닥부터 흑색의 비늘이 뻗어 나와 검의 형상을 취한다.
이어지는 것은 어깨를 늘어트린 편안한 자세였다.
이무기의 시선이 정확히 목리원을 향했다.
목리원은 깨달았다.
무엇도 하지 않은 그저 우뚝 선 자세.
하나 저것은 검의의 극을 쫓은 신검합일의 자세다.
아니, 그것을 넘었다.
목리원만이 알았다.
‘천살성.’
천살성이 이끄는 살로의 끝을 본다면 꼭 저것과 같은 자세를 취할 수 있을 것이다.
저런 자세에서부터 천변만화의 검을 펼칠 수 있을 것이며, 모든 급소를 찢어발기는 살검을 펼쳐낼 수 있을 것이다.
그제야 깨달았다.
천살성이 내내 일러주는 검로는 애초에 그의 검이었다는 것을.
“역성의 법도, 별이 이르는 천기, 그 외의 모든 운명에 관한 하늘의 뜻.”
이무기가 한 발을 내디뎠다.
그 순간 이미 이무기는 목리원의 코앞에 있었다.
“증명하라. 스스로 그것을 감당할 자격이 되는 자임을.”
쿵―!
목리원의 몸이 빠르게 튕겨져 나갔다.
단지선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이무기는 단지선에게 말했다.
“파마여, 방해치 말라.”
이무기의 손이 단지선의 머리 위에 닿았다.
단지선은 숨을 흡 들이켰다.
‘진법…?’
아니, 공간의 분절이다.
진법보다 아득히 상위에 있는 술수.
도술? 환술? 아마 그 영역에 걸쳐있을 것이다.
확실한 것은 자연의 공력이 아닌 영물로서의 영기가 이 분절의 근간이 된다는 것.
단지선은 이무기가 풀 때까지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몸이 되었다.
“…무엇을 노리는 겁니까.”
“무엇도 노리고 있지 않다.”
“그런 것치곤 손속이 과한지라.”
“과하지 않다. 모자람 또한 없음으로 적절하니 그저 이 두 눈으로 확인할 뿐.”
이무기의 시선이 목리원을 향했다.
그는 꺽꺽대며 숨을 내쉬고 있었다.
눈빛은 형형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이무기는 하나를 채점했다.
‘성장했군.’
전처럼 감정에 휩쓸려 분노를 토해내지 않은 것으로 점수를 줄 만하다.
하나 그정도로는 안 된다.
“오라.”
비늘검을 치켜들자 그 위로 흑색의 기파가 맺혔다.
이무기는 인간의 무공을 흉내냈다.
정확히 목리원이 다다를 수 있는 한계치에 맞춰 검술이라는 틀 안에 스스로의 경력을 가뒀다.
그리해야만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있었으므로.
“증명하라. 스스로 운명을 넘을 자격이 있음을.”
그리하여 별을 거스르니.
“오롯하게 역성에 이를 수 있음을, 내게 보여라.”
이무기의 신형이 흐려졌다.
이번 역시 도착지는 목리원의 코앞이었다.
쾅!
검이 동시에 서로의 급소를 노렸다.
다음화 보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