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262화 (262/334)

EP.263 이부 육장 - 별과 뱀 (5)

* * *

소란은 목리원의 갖은 노력으로 겨우 소요되었다.

대화는 앞으로 나아갈 방법에 대한 논의로 돌아왔고, 그제야 벼락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단지선의 말뜻이 밝혀졌다.

“섬뢰야.”

라고 단지선이 말했다.

목리원은 그제야 호위의 이름, 혹은 명칭이 섬뢰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무던한 기색으로 문밖을 향해 나섰다.

검은 뽑혀 나와 손에 쥐어진 채였다.

“잠시…!”

“괜찮습니다.”

단지선이 당화서를 제지했다.

목리원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야 호신강기를 몸 위로 둘러 벼락의 기운을 모두 튕겨낼 수 있다 하나 그는 초절정이다.

초절정이 낮은 경지는 아니나 자연 현상에서 자유로워질 경지냐 하면 그것은 또 아니란 말이다.

자칫 잘못하다간 목숨이 위험함은 똑같다.

인간의 지경을 넘었으나 초월에 닿진 못했기에 결국 자연 앞에서 스러질진저, 대관절 저 자신감의 근원이 무엇인지 파악하기가 영 쉽지 않은 것이다.

하나 괜한 걱정이었다.

꽈르르릉!

벼락소리와 동시에 그의 몸에서 뇌광이 일었다.

목리원의 눈이 찢어질 듯 크게 뜨였다.

‘뇌기(牢氣)!’

그의 공력에 뇌기가 섞여 있었다.

외부의 것이 아닌 내부의 것이다.

그는 무인 중에서도 극히 희박한 확률로 태어난다는 자연지기를 품은 무인이었던 것이다.

특정한 자연의 기운을 몸에 담아 그것을 내공으로 화하는 체질.

당화서도 저런 체질에 걸쳐 있다곤 하나, 섬뢰는 그녀보다 더 본질적으로 자연에 닿아있었다.

“잠시 떨어져주십시오.”

섬뢰가 하늘 위로 검을 뻗었다.

그 순간, 곳곳에 내려치던 벼락이 일제히 그를 향해 내달렸다.

꽈르르르릉!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빛줄기의 장엄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 파멸적인 힘에 경외감이 드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었다.

마치 수천 마리의 용이 그를 집어삼키는 듯한 광경이었고, 그렇기에 섬뢰의 모습이 더욱 이질적으로 다가왔다.

그는 옷자락 하나 타지 않는 꼴로 모든 뇌기를 몸에 흡수하기 시작했다.

하나 오래가지 못함은 당연하다.

자연이 품은 기운을 모두 담을 수 있는 경지라면 초월… 아니, 그 이상의 경지가 되어야만 했다.

대체 어찌 저 자연지기를 다 해소하려 게걸스레 벼락을 빨아들이는 것인지 의아함까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백련은 하늘의 뜻을 헤아리는 이들의 교입니다.”

단지선의 말과 함께 섬뢰가 진각을 밟았다.

부드럽고 거칠다. 그런 모순적인 단어가 떠오를 정도로 괴이한 발걸음과 함께 그의 검이 허공을 수놓았다.

빠지직, 꽈르릉, 뇌성이 그의 몸을 감쌌다.

아, 저것은 검무를 통해 내공을 뿜어내는 행위구나.

저리하여 몸에 차오른 뇌기를 공력의 형태로 주변에 모두 흩뿌려낼 수 있을 것이다.

간단한 사실이었으나 실현의 문제는 또 달랐다.

목리원은 그 순간, 빛줄기가 머릿속을 관통하는 감각을 느꼈다.

깨달음이었다.

‘물아일체(物我一體).’

초월지경에 오르며 이미 그 경지 또한 다다랐다는 착각을 했다.

아니었다.

목리원은 아직 물아일체를 완성하지 못했다.

자연과 개인이 하나가 되어 순환함은 즉 그 둘 사이의 구분이 흐려져 완전한 하나로서 기능함을 의미한다.

하지만 목리원의 검은 그랬다.

검과 육신의 합일은 이루었으나 검과 세상의 합일은 이뤄지지 않았다.

목리원의 신체는 그 몸뚱어리 안에서만 심기체… 즉 정기신의 합일을 이룬 소우주였다.

그 소우주의 무한한 확대를 위한 단초가 눈앞에 존재하고 있었다.

‘공간과 그것을 이루는 자연지기를 신체의 일부처럼 수발하여 공력을 움직인다.’

즉, 저 공간 자체가 내공을 일주천 하는 혈도로 작용하여야만 한다.

눈동자가 미친 듯이 돌아갔다.

목리원은 저 수법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방법이 수십 가지씩 떠오르고 지워졌다.

그리하며 핵심만이 남는다. 깨달음의 정수가 한데 얽혀 목리원의 소우주를 팽창시켰다.

“아, 알겠다.”

문득 그런 소리가 흘러나왔다.

동시에 섬뢰의 검무가 끝났다.

“그런 것이었군.”

흘리듯 중얼거리는 말과 동시에 목리원의 공력이 광범위하게 팽창하여 서있던 길목, 문 앞과 뒤 옆 진법 한가운데까지 모두 퍼졌다.

직전까지 이해할 수 없었던 영기 어린 진법의 내부가 언뜻 보이기 시작했다.

섬뢰와 당화서는 경악에 찬 눈으로 목리원을 바라봤다.

단지선은 그와 다르게 조금은 푸근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깨달음의 순간이다. 무인이고 무인이었던 셋은 목리원이 무아지경을 헤매는 시간을 기꺼이 기다려주었다.

와중 단지선은 더욱 기꺼움을 토해냈다.

‘훌륭하구나.’

그가 깨달음과 함께 퍼뜨린 기파가 이무기의 영기와 맞부딪쳤다.

동시에 금지 전체를 진동시키던 불완전한 기파가 차츰 안정되기 시작했다.

단지선은 추억을 그렸다.

-응? 무공 말이니?

-예, 어떻게 해야 어머니처럼 무공에 능해질 수 있습니까?

-그냥 하니까 되던데?

-…어머니?

-하면 된다니까? 후후, 걱정 마렴. 우리 지선이는 이 어미의 아들이 아니니? 다 할 수 있게 될 거란다.

‘어머니, 아무래도 어머니의 무재는 아우에게 간 듯합니다.’

피폐하게 말라붙은 얼굴 위로 한 방울 미소가 번졌다.

그리운 모습이 조금은 더 선명하게 보였으므로.

*

깨달음을 모두 수습하는데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애초에 검결 따위와 달리 실전적인 검증이 필요하지 않은 내면적인 깨달음이었다.

그리고 그런 종류의 깨달음은 목리원에게 검결의 깨달음보다 훨씬 쉬운 면이 있었다.

오성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목리원의 무재는 타고난 오성, 그리고 천살성과 극마지체로 인해 얻은 신체적인 재능까지 총 두 가지였다.

개중 오성은 감각의 영역에 걸친 재능인 만큼 한번 감을 잡으면 그 이후로는 뜻을 완성하기까지 더욱 손쉬운 면이 있었다.

“기다려주셔서 감사하오.”

“축하드립니다.”

“당신의 덕이오.”

목리원과 섬뢰 사이에 기이한 감정의 교류가 오갔다.

본디 자신의 것으로 타인이 깨달음을 얻는다 하면 배가 아플 것이 무림인의 본성이겠으나, 섬뢰로선 아니었다.

목리원 또한 그가 모시는 교주의 핏줄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기꺼운 마음만이 그의 속에 가득했다.

“그럼 벼락은 처리되었으니 슬슬 출발하심이 어떻습니까.”

섬뢰가 빠르게 분위기를 수습했다.

단지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출발하지요. 목 대협, 동굴의 위치는 알고 계신지요?”

그의 말에 목리원은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지형이 바뀌긴 했으나 느껴지는 것은 있소. 직전의 깨달음이 도움이 된 듯하오.”

일종의 교감이라고 해야 할까.

물아일체를 완성하는 순간 직전까지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선연하게 피부 위로 와닿고 있었다.

개중 이무기의 기운도 있었다.

정확히는 그 기운이 가장 강렬했다.

7년 전 찾아왔을 때 느꼈던 그리움, 애절함, 그리고 포근함 따위가 속을 저민다.

그 위로 찌릿한 소름이 덧씌워지며 속에 위기감을 자아낸다.

목리원은 이무기의 상태가 전과 같지 않음을 곧장 깨달을 수 있었다.

그가 가진 아득한 힘이 불완전하게 뒤틀리고 있는 것이다.

시선은 단지선을 향했다.

이무기를 찾아온 그다.

즉, 이무기가 이런 상태임을 알고 있을 수도, 그 이유까지 알고 있을 수도 있다.

“내가 뭘 물을지 알 것으로 생각하오.”

“예, 예상하고 있습니다.”

“들을 수 있겠소?”

“걸으면서 하지요.”

단지선이 느릿하게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목리원은 그를 바라보다 당화서에게 다가갔다.

“우리도 갑시다. 아니, 내가 안내해야 하는데 뒤에 서 있었구려.”

“소협, 괜찮으신 것이 맞습니까?”

“나는 괜찮소.”

당화서의 기색이 사뭇 염려스러웠다.

목리원은 감사함을 느꼈다.

그녀로선 아무런 것도 알지 못한 채 자신만을 믿고 이 모든 일을 행해준 것이 아닌가.

그것이 쉽지 않은 일임을 모를 정도로 목리원은 염치 없지 않았다.

“갑시다. 이제부터 교주가 다 설명해줄 참이니.”

“예.”

당화서는 목리원의 손을 꼭 잡았다.

목리원 또한 그녀의 손을 마주 잡았다.

단지선을 지나쳐 그의 앞으로, 그렇게 안내하는 입장이 되어 걷기 시작하니 뒤에서 쯧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당화서의 눈에 불꽃이 일었다.

또 푸닥거리를 하려는 낌새가 보임에 목리원은 곧장 입을 열었다.

“설명이나 해주시오.”

잠시도 방심할 틈이 없지.

여간 뒷골이 당기는 게 아니었다.

*

금지의 깊은 동굴.

최초의 살성은 똬리를 튼 몸속에 박아뒀던 고개를 들었다.

거대한 몸집 위로 흑색의 비늘이 서늘하게 빛났다.

세로로 찢어진 동공은 날카로움보단 흐릿함을 품고 있었다.

[…오는가.]

꿈결 속을 헤매이던 6년이었다.

이미 승천을 끝냈어야 할 몸뚱어리를 애써 붙잡아둔 것이 오늘까지 와버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몸으로, 겨우내 한계에 다다르기 전에.

[이것으로 매듭일지다.]

스스로 뿌린 업이 이리도 극악하여 지상을 어지럽히니.

이제와 거둘 순 없겠지마는 하다못해 두 눈으로 그 끝을 확인하기라도 해야 할 듯하여.

[승천의 때가 왔노라.]

언젠가 악으로 군림했던 괴이는 흐릿한 눈 위로 현기를 띄워 올렸다.

다음화 보기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