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62 이부 육장 - 별과 뱀 (4)
* * *
암만 생각해도 목리원이 보기엔 그랬다.
두 사람은 전생에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는 원수지간이 아니었을까.
그렇지 않나, 생전 만나본 일 없던 둘이 첫 만남부터 지독한 악연으로 부딪쳐 매 순간을 투닥거리니 그 외의 마땅한 인과를 떠올릴 수가 없는 것이다.
“보자 하니 말본새가 참 아니꼽군요. 제게 불만이라도 있으십니까?”
“예, 있습니다.”
“허! 그 불만 좀 말해보시지요.”
“싫습니다.”
“죽여달라는 소리로 들리는데.”
“죽일 수는 있으신지.”
서로를 향한 말에 잔뜩 날이 서 있었다.
눈짓에는 살기가 어려있었고, 몸에선 내공이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었다.
가만뒀다간 정말 누구 하나 죽을 때까지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만 좀 하시오! 그만 좀!”
목리원은 기어이 소리를 내질렀다.
그에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쏘아졌으나, 부글거리는 목리원의 속을 더 끓게 만들 뿐이었다.
“거 어린아이도 안 할 수준 낮은 싸움이구려! 대체 왜 그렇게 서로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오?!”
“하지만 목 소협! 저 작자가….”
“당문주가….”
“그마아아아안!”
당문 금지의 입구, 목리원의 성난 외침에 단지선과 당화서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기묘한 권력 구도였다.
사실상 백련교의 교주와 오대세가의 가주인 두 사람이 몸뚱어리 하나뿐인 목리원에게 쩔쩔매고 있으니 제 3자 입장에서 그 광경이 얼마나 우습겠는가.
목리원이 단지선의 친동생이고, 당화서가 죽고 못 사는 연인이긴 하지만 그 모든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이미 제 3자가 아닐 것이다.
당화서의 수행을 맡은 소향과 단지선의 호위는 신기한 눈으로 목리원을 바라봤다.
목리원은 그 눈짓을 눈치채지 못하고 성난 목소리를 이었다.
“우리가 지금 놀러 왔소? 저 금지 안의 이무기를 만나러 온 것 아니오! 전설에나 나오는 생물인데다가, 내 직접 마주하기론 초월지경에 오른 나라도 그 뱀이 콧방귀 한 번 뀌면 그대로 날아갈 것이 뻔한 수준의 격차가 있었소. 이런 상황에 뭐? 저 작자가 어떻고 당문주가 어째? 당신들이 그러고도 한 집단의 수장이요?!”
목리원의 입에서 드물게 논리정연한 말이 튀어나왔다.
다그치는 말이었고, 훈계하는 말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두 사람은 목리원을 보며 반성보단 뿌듯함을 느꼈다.
‘목 소협… 언제 이렇게 커서….’
‘…잘 자라주었구나. 그리 아픈 운명을 짊어지고도.’
그들의 속마음까지 목리원이 알 길은 없겠지만, 겉으로 드러난 기색에 반성이 없음은 바로 알 수 있었다.
목리원은 뒷골이 확 당기는 기분이 들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단원들도 데려올 걸 그랬구나!’
영물이 넘치는 당문의 금지에 간다는 말에 단원들이 얼마나 같이 가자고 조르던가.
내부의 환경이 지독할지도 모른다는 말에 겨우 아이들을 다 떼어놓고 온 참이다.
한데 그 결정이 새삼 후회되었다.
적어도 단원들이라도 있었다면 두 사람이 이리 아이처럼 투닥거리진 않았을 테니까!
“큼, 목 소협 말은 알겠습니다.”
당화서가 진정하고 금지의 입구에 섰다.
진법에 당하지 않고 내부로 향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열기 위함이었다.
목리원은 끝까지 말을 들을 생각이 없는 당화서의 행태에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한숨을 내뱉었다.
‘…아니, 더 안 싸우니 이걸로 된 걸까.’
왜인지, 오늘 하루가 참 고될 것 같았다.
*
진법의 유일한 생로는 양옆으로 돌담이 낮에 쌓여 있는 소담한 길이었다.
돌담 바깥 쪽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안개로 둘러싸여 있었고, 그 길은 초월지경에 이른 몸으로도 다 파악할 수 없는 수준의 격렬한 기의 유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목리원은 새삼 깨달았다.
‘저번 잠입은 정말 천운이 닿아 성공했던 것이구나.’
마른침이 목뒤로 꼴깍 넘어간다.
만약 지금 상태에서 맨몸으로 저곳에 들어간다면 제대로 빠져나올 수 있을까?
백련교의 동굴에 쳐진 진법이야 금방 빠져나왔다지만, 이곳은 장담할 수 없었다.
‘영기(靈氣)다.’
영물의 땅으로 적어도 수백 년간 그 기운을 받은 진법이다.
그저 진법이라기엔, 그 속의 신묘함이 세월과 자연에 의해서 더욱 극단으로 치닫아버린 것이다.
비약일지 모르겠으나, 목리원이 보기에 이곳은 이미 작은 선계라고 봐도 좋을 지경이었다.
그저 무인으로서 초월에 달했다고 저 신비한 영령의 기운을 모두 정면으로 헤쳐나갈 수는 없으리란 확신이 가득 차오른다.
‘제갈 형은 어떻게 이걸 뚫었는지 원.’
여하튼, 하는 짓이 별나서 그렇지 능력 하나는 혀가 내둘러질 정도라고.
다음에 제갈가에 갈 일이 있다면 꼭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봐야 할 것 같다.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다 왔습니다.”
당화서가 길의 끝에 섰다.
그곳엔 사람 하나가 겨우 들어갈 크기의 좁은 문이 굳게 닫힌 채로 자리하고 있었다.
“이 문 너머가 금지입니다. 준비하시지요. 안 쪽의 환경이 어떨지는 저도 장담할 수 없으니.”
그 말에 목리원은 흑야 위로 손을 얹었다.
단지선은 한발 물러났고, 호위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소향은 입구를 지키기 위해 두고 온 상태.
당화서는 작게 숨을 내쉬곤 문을 열었다.
끼익―
그러자,
쿠과과과광!!!
곧장 벼락이 그들을 반겼다.
당화서가 헛웃음을 흘렸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
금지 내부는 쨍하게 맑은 하늘 아래, 곳곳에서 내려치는 벼락으로 땅이 다 헤집어지고 있었다.
*
단지선은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눈이 좁아졌다.
‘버티고 있군.’
이 모든 것은 이무기가 승천하지 않고 이 땅에 버티고 있음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미 그가 여의주를 물고 승천할 시기는 6년이 더 지난 상태.
당화서는 이 금지 내의 환경이 해마다 변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상태인 줄로 알고 있겠지만, 백련교의 교주로서 살아온 단지선 만큼은 이 변화의 원인을 단번에 깨달을 수 있던 것이었다.
‘예상보다 심하구나. 하긴, 선계에 속해야 할 것이 현세에 남아있으니 그 영향이 적을 수는 없겠지.’
이대로 한 두 해만 더 지났다간 이 재앙이 금지를 넘어 중원땅 전체를 범할 수준이 될 것이다.
사실 이때까지 버틴 것도 기적이었다.
아마 이 진법에 서린 영기가 든든한 보호막이 되어준 것일 터.
조급함이 단지선의 속에 차올랐다.
“출발하지요.”
“이 상황을 보고도 그 말이 나오십니까?”
당화서의 이죽거림에 단지선의 눈이 좁아졌다.
“그럼 여기 남아 있을 작정이신지?”
“방도를 생각하고 가야지요.”
“필요 없습니다.”
“그쪽만 필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까. 목 소협?”
“으, 응?”
“여기서 대협의 답을 원하시는 저의가 뭔지?”
하여튼 마음에 안 드는 여인이다.
아우가 스스로 택한 반려이니 좋게 봐주려 했지만 암만 해도 그리되지 않았다.
다른 걸 다 떠나서, 저 높은 콧대가 그랬다.
꼭 남들 위에 서 있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행태도, 뻔뻔하기 그지없는 낯짝도, 목리원을 제 입맛대로 굴리려는 듯 살살 주무르는 언변도.
그 모든 게 단지선이 정말 싫어하는 한 사내를 닮아 있었다.
-부인, 그리 어여쁘니 내가 참질 못하겠잖소.
-아이, 당신도 참.
-흐흐, 이리 와보시오.
-그럼 잠깐만이에요? 으음… 응? 지, 지선아?!
-오! 아들아!
아버지였다.
단지선은 뺀질거리기론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부친의 모습이 그녀의 얼굴 위로 겹치는 기분을 느꼈다.
실제로 닮은 점이 꽤 많았다.
능력이 있고, 그 능력에 어울리는 책임감도 있다.
대외적으로는 타인들의 칭송을 받는 훌륭한 사람이었고, 그런 주제에 속은 음흉하기 그지없으니 괜히 짜증을 치솟게 한다.
그런 면모가 똑 닮아 있는데, 거기다가 하필 아우가 어머니를 너무 닮아 있으니 어릴 적 그리도 보기 싫었던 장면이 재현되는 기분이 드는 게 아닌가.
-여, 여보! 지선이도 보는데 이제 그만….
-왜 그러시오? 부모가 사이좋은 모습을 보여야 아이도 행복한 법 아니겠소?
-그, 그런가?
-아니니까 떨어지십시오. 보기 싫습니다.
-에잉, 재미없는 놈.
끔찍하다.
끔찍하고 또 끔찍하여 단지선은 목리원의 미래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장담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저대로 가다간 아우가 당화서에게 상식을 개조당할 것이다.
순진하긴 또 말도 안 되게 순진해서 당화서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홀라당 넘어가 바보처럼 헤실대겠지.
그게 문제가 되느냐 하면… 사실 본인들만 행복하다면 큰 문제가 없긴 하지만 단지선의 기분이 문제였다.
평생 챙겨주지 못했지만 하나 있는 아우다.
단지선이 생각하기에, 두 사람의 미래가 꼭 부모님의 미래와 같다면 속이 다 썩어 문드러질 것만 같았다.
쏘아지는 단지선의 시선에 당화서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뭘 그렇게 보십니까?”
“성질이 참 더러운 분이시구나 싶어서.”
“싸우자는 말은 아주 돌려서 하십니다?”
“싸울 생각은 없는데.”
“그럼 입이라도 닥치시는 것이 어떠신지?”
“말을 곱게 하는 것이 어떠신지?”
“그마아아아아안!!!”
꽈르르릉!
목리원의 노호성이 벼락과 함께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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