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61 이부 육장 - 별과 뱀 (3)
* * *
상황은 그렇게 정리됐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이걸로 백련교의 모든 용건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단지선이 말한 두 가지 목표 중 아직 하나, 사고의 수습이 남았으니 말이다.
“수습이라는 것은 별을 원래대로 되돌림을 말하는 것이 맞소?”
목리원은 그 질문을 하면서도 기대감을 품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무렴, 이 끈질긴 별을 털어낼 기회가 아니던가.
천살성이기에 슬펐던 일이 참 많았다.
그리고 슬프게 될지도 모를 일이 아직도 많았다.
그 별을 털어낼 기회라고 하니 모처럼 신경이 잔뜩 쏠리는 것이다.
단지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는 마교의 봉문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봉문이라니…!”
생각보다 큰 목표였다.
“그, 그런 게 가능하기나 하오?”
마교가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적이긴 하나, 그것이 그들의 세력이 미약함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마교는 신강의 십만대산을 지배하는 명백한 지역의 패자다.
중원처럼 그 지역을 쪼개 가진 것이 아니라, 지역 전체를 온전히 저들 손에 거머쥐고 있는 이들이니 그들을 산속에 가두는 일이 좀 쉽겠는가.
문파나 세력을 봉문으로 이끄는 수준의 사건이라 함은 곧 문파가 기능을 상실할 정도의 타격이란 뜻이다.
즉, 이제는 교주가 되었을 위광천과 그를 뒤따르는 측근들 대부분의 사망 정도는 되어야 마교의 봉문을 말할 수 있단 말이다.
‘아니, 후계조차 다 없애야 한다.’
그래야 백 년 단위의 봉문을 겨우 말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런 일을 해내겠다 말하고 있음에도 단지선의 기색은 고요했다.
정말 그 일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한 자신감으로까지 느껴졌다.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마교에 입히는 타격이 정도 이상이 되면 저희 백련교가 나설 것입니다. 애초에 저희 교에서 파생된 분파인 만큼 흡수하는 일이 그리 어렵진 않지요. 천마신공만 없다면 말입니다.”
“천마신공….”
목리원은 7년 전 위광천의 무공을 되새겼다.
극한으로 정련된 패도.
그리고 그 정수를 온전히 모아 쏘아내는 기공.
하물며 상성에 있는 자미성을 운용한 천마신공이다.
극마지체가 마기를 어느 정도 털어내 주지 않았다면 분명 온전한 패배에 짓눌렸을 것이다.
목리원은 인상을 구겼다.
“…그 역할은 내가 하겠소.”
그것은 스스로에게 하는 맹세였다.
뭐가 되었든 그와는 절대 같은 하늘 아래서 살 수 없는 원수가 된 셈이니.
서로가 서로의 스승을 빼앗긴 관계.
그리고 서로의 별을 빼앗긴 관계.
목리원으로선 단 하나, 살인을 해야한다면 그를 죽일 정도의 원망을 품고 있었다.
목리원은 감정을 다잡고 숨을 내뱉었다.
고개를 들어 단지선을 향하며 물었다.
“그럼 당장의 행보는 어찌 되는 것이오?”
“일단 중원에 남아 동태를 살피고자 합니다. 큰 소란은 피우지 않을 생각이니 그 점은 염려 마시지요. 그리고….”
“…그리고?”
“제가 사천 땅에 온 이유가 있습니다. 용건을 해결해야겠죠.”
단지선의 시선이 당화서를 향했다.
당화서는 흠칫 놀랐고, 목리원은 경계했다.
“당신네들 당문의 금지로 향해야 합니다.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두 사람의 고개가 동시에 갸웃했다.
*
금지에 관한 것은 목리원조차 잊고 있던 것이었다.
하나 다시 생각해보면 어찌 잊었나 싶은 곳이 바로 금지였다.
그렇지 않나, 당문의 금지는 이 땅에서 가장 많은 영물이 부대끼며 사는 신역 중의 신역이었다.
그곳에 실제로 들어가 영물의 내단을 취한 일까지 있었으니 그걸 잊는다는 게 참 말도 안 되는 일인 것이다.
그뿐만 아니었다.
목리원은 단지선의 목적을 곧장 이해할 수 있었다.
“…이무기.”
그곳에 이무기가 있다.
그냥 이무기도 아니었다. 금지를 홀로 걷던 중 우연한 이끌림에 찾아갔던 동굴.
그 속에 있던 새까만 이무기는 다름 아닌 최초의 천살성이었다.
“알고 계시는군요.”
“…잠깐, 두 분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 겁니까?”
당화서가 당혹을 표했다.
금지의 주인도 모르는 이야기를 외지인 둘이서 해대니 당연한 일이었다.
궁금증이 그녀의 속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으나, 두 사람은 그들만의 대화에 빠진 이후였다.
“먼저 묻겠소. 이무기에 관해 어찌 아시오?”
“백련교는 모든 별의 지식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각 별이 태어난 근간을, 그것도 대표로 칭해지는 천살의 근원을 파악하지 못하는 건 우스운 일이지요.”
“이해했소. 하면 이무기를 찾아가는 용건이 뭐요?”
“그 이무기가 역성대법을 지은 저자이기 때문입니다.”
목리원의 눈이 찢어질 듯 크게 뜨였다.
단지선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답했다.
“역성은 이무기가 스스로의 별을 털어내기 위해 고안한 여러 방도 중 하나입니다. 물론 그 스스로는 이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더 자세한 이야기가 필요하오! 내가 만났을 때 그는 분명….”
“말하지 않았다면 그 또한 이유가 되겠지요.”
단지선이 검지를 들어 입 앞에 댔다.
“천륜(天倫).”
그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하늘의 뜻입니다. 천기누설은 있어서는 안 되는 법일진저, 선계에 속하려 하는 행자는 함부로 앞날을 재단하여 언어로 엮을 수 없지요.”
목리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 말대로라면 당신이 그곳을 찾는다 한들 답을 얻을 수는 없는 줄로 아오만.”
“해보지 않고선 모르는 법입니다. 천기누설의 금기는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에게나 적용되는 것이니.”
“당신은 하늘의 뜻을 아오?”
“대협보다는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단지선의 표표하게 가라앉은 눈동자엔 목리원이 정의할 수 없는 현기가 깃들어 있었다.
그것은 곧 그의 말에 기이한 신뢰감을 더하고 있었다.
거짓은 아닐 것이었다.
이제까지 그가 해온 수많은 말과 같이, 파마성의 뜻이 진실을 보증해주고 있었으니.
“하여, 저는 당문의 금지로 갈 필요성이 있습니다.”
단지선은 재차 당화서를 바라봤다.
목리원도 마찬가지였다.
당화서는 흐름을 쫓아갈 수 없는 대화에 혼란을 느꼈으나,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소협, 후일 이 얘기를 더 자세히 듣겠습니다.”
보아하니 금지에 들어가야만 하는 이유가 단지선이 아닌 목리원에게도 있었다.
백련교의 일 탓에 온 것이라면 거절했겠으나, 목리원도 원하는 일이라면 구태여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무엇보다 이무기다.
금지에 이무기가 있다는 것은 당화서조차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지배하는 땅에 수상한 것이 있다면 곧장 포착하는 것이 집주인으로써의 의무인 만큼 당화서는 수락의 뜻을 표했다.
그렇게 금지행이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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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 2일의 일정을 잡고 들어가는 금지행이다.
일단은 금지 자체가 워낙 넓은 것도 있었고, 그곳 환경이 꽤나 기이한 면이 많은 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마지막으로 금지에 들어간 것이 2년 전입니다. 금지의 환경은 해마다 천차만별로 바뀌니 조심스레 들어가는 것이 좋지요.”
“으음? 전에 들어갔을 때는 진법만 뚫으면 그리 위험한 것은 없지 않았소?”
“운이 좋았던 겁니다. 사실 저도 그때는 금지가 이리 극악한 줄은 몰랐었구요.”
당화서가 금지의 진짜 위험성을 알게된 것은 6년 전, 무력의 상승을 위해 독단을 얻으러 들어오면서였다.
고즈넉하고 신비로운 분위기의 적막한 풍경을 기억하던 그녀는 천둥번개가 내리쬐는 금지의 내부에 경악을 토해냈었다.
비단 번개뿐만이 아니었다.
땅 어딘가에선 사특한 기운이 치솟아 발목을 옭아맸고 들이쉬는 숨에는 독기가 온통 가득했다.
만독불침이 아니었다면 들어서는 순간 명을 달리했으리라.
그 해가 이상한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힘들었다.
다음 해엔 금지가 늪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 다음 해엔 거대한 호수로 바뀌어 있었다.
지형은 달라지지 않았으나, 환경만큼은 매 해마다 서로 다른 극단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그제야 깨달았다.
금지에 대해 잘 모르던 어린 시절, 그리고 단원과 함께 왔을 때는 천운이 닿아 고즈넉한 환경을 맞이했다는 것을.
이런 사실을 목리원에게 말하자 목리원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 그럼 올해는 어떻소?”
“들어가기 전엔 모릅니다. 분명 전대 가주를 생각하면 환경이 돌아가는 주기가 있을 텐데, 적어도 제가 들른 동안은 그 주기가 한바퀴를 돌아온 일이 없었습니다.”
“아는 것이 없군요.”
단지선이 툭 던지듯 말했다.
당화서는 이마에 핏대가 솟는 기분을 느꼈다.
“…예?”
“가주가 가문의 땅을 잘 알지 못한다라….”
중얼거리는 말이 꼭 시비를 거는 것 같다면 착각일까.
한 대 치면 반으로 접혀 죽어버릴 허약한 몸으로 저러니 더욱 얄밉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 두 사람 다….”
“후우….”
쯧, 하고 단지선이 혀를 찼다.
당화서의 손등 위로 힘줄이 뿌득뿌득 돋았다.
‘시비를 거는 게 확실한데.’
대체 무슨 억하심정이 있다고 마주하는 내도록 이렇게 속을 긁는 걸까.
당화서는 단지선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한데도 단지선은 굴하지 않고 그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못마땅한 기색은 덤이었다.
“좀, 제발….”
목리원은 머리가 아파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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