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60 이부 육장 - 별과 뱀 (2)
* * *
친부모에 관해 생각해보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터였다.
제아무리 다정한 스승인 목선오의 그늘 아래서 자랐다곤 하나, 어찌 생명 본연의 본능에서 자유로울 수가 있겠나.
아이가 생모를 찾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던가.
목리원이라 한들 예외일 수는 없었다.
아주 어릴 적엔 언제나 생모에 대해서 궁금해했고, 또한 그녀를 만나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나 그런 의문을 내뱉은 일은 단언컨대 없었다.
어릴 적엔 키워준 목선오가 슬퍼하지 않기를 바라서, 머리가 조금 더 굵어진 후엔 천살성을 낳은 생모가 어찌 되었을지 생각하는 게 힘에 부쳐서.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어머니.’
반질반질한 백색의 두개골이 목리원의 시야에 가득 들어찼다.
얼굴을 알기도 전에 뼈의 형상을 먼저 알게 된 현실이 새삼 야속했다.
그리고 아팠다.
생모의 원한을 매개로 하는 이 추악한 대법을 완성하기 위해, 혈마가 자신을 천살로 떨어트리기 위해 그녀의 원한을 뽑아냈다는 사실이 끔찍하게도 아팠다.
배 아파 낳은 아이의 일생을 피로 물들이기 위해 울부짖는 어미의 마음을 목리원은 모른다.
그저, 아주 단순하게.
목리원은 그녀의 죽음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랬구려.”
이상한 일이었다.
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속이 진탕되는데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머리가 더없이 뜨거워지는데도 인상은 잔잔하게만 펴져 있었다.
아, 너무 슬프니 감정조차 제 일을 잊게 되는 것이구나.
깨달은 사실에 목리원의 입에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랬던 것이었소. 많은 것이 이해되고 있소.”
위광천이 그리도 천살성을 가지려 했던 이유를 알겠다.
마교가 그렇게까지 오랜 기간을 음지에서 버텨왔던 이유를 알겠다.
그리고 마일석이 이 사실을 숨긴 이유를,
“소저.”
당화서가 이렇게까지 미안해하는 이유를 알겠다.
어찌도 이리 자신을 생각해주는 것인지, 그 마음의 어여쁨을 먼저 떠올리는 것은 너무 이기적인가?
이토록 부모의 정체를 숨겨온 것을 지탄해야 마땅한가?
‘아니.’
그게 아니었다.
“울지 마시오. 소저.”
그리 말하며 목리원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화서에게 다가가 그녀를 끌어안았다.
“왜 사과하시오. 왜 당신이 울고 있소.”
“저는….”
“고맙소.”
흠칫, 당화서의 몸이 떨렸다.
목리원은 당화서의 등을 쓸어내렸다.
“아오. 아는 다 아오. 소저와 걸왕께서 그리 행한 이유를 알 수 있소. 멀리 갈 것도 없지.”
목리원은 당화서의 뺨에 흐른 눈물을 훔쳤다.
“소저의 표정이 다 말해주지 않소.”
그저 나쁜 사람이 되기 싫은 이유였다면 끝까지 숨겼을 터였다.
아니, 들켰다 한들 이렇게까지 마음 아파하진 않았을 터였다.
그저 뻔뻔하거나, 그도 아니면 작위적인 슬픔을 연기했을 터였다.
당화서는 그렇지 않았다.
그날의 마일석도 그렇지 않았다.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오. 나는 믿소. 이런 일이 있지 않았더라도 소저가 언젠가 모든 사실을 내게 말해주리라는 것을.”
당화서는 입술을 꾹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목리원은 애써 미소를 띄워냈다.
“그러니 울지 마시오. 나는….”
괜찮…지는 않았다.
충격적인 사실임은 변함이 없으니 어찌 괜찮다 말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당화서가 원망스럽지도 않았다.
그녀의 잘못이 아니기 떄문이다.
역시, 그녀가 호들갑을 떤 것이다.
“…나는 소저에게 감사하기만 하오. 그러니 말이오.”
목리원은 당화서를 품에 묻었다.
“그냥 안아주시오.”
믿음직스레 보이고 싶었으나 여의지 않았다.
대단한 말을 할 재주가 목리원에겐 없었다.
“그거면 됐소.”
당화서는 작게 흐느끼며 목리원의 허리에 팔을 감았다.
그리고 꼭, 껴안았다.
꽤 오랫동안 그리했다.
*
마냥 감정에 취해 시간을 보내기엔 앞둔 일이 있었다.
더 깊은 이야기를 위해서 선결되어야 할 가장 큰 과제는 다름 아닌 단지선이었다.
애초에 이 서책은 백련교의 것이다.
그리고 그가 이르길, 유해는 백련교 내부의 사람이었다.
목리원에겐 그에 따르는 궁금증이 있었다.
“묻고 싶은 게 있소.”
“예, 고인분과 관련된 이야기겠지요.”
단지선은 무슨 말을 할지 다 알고 있다는 듯 그리 말을 가로챘다.
목리원은 떨떠름해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백련교의 교주인 그가 대법에 대해 모를 리도 없을 테니, 뒷이야기는 더 하지 않아도 될 터.
목리원의 입술이 달싹였다.
“혹, 이분에 대해 아는 것이 있소?”
정황상 생모의 유골임이 확실시되는 만큼 목리원으로선 그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정도는 알고 싶었다.
무얼 하던 사람인지를, 성격은 어땠고 인간관계는 어땠는지를, 그게 안 된다면 하다못해 이름이라도.
단지선의 곧장 답했다.
“예, 알고 있습니다. 교인이니.”
목리원이 벌떡 일어났다.
“아, 알려줄 수 있겠소? 이리 부탁하오!”
“저희 교의 사람이었습니다.”
우뚝, 목리원의 몸이 멎었다.
인상이 찌푸려지기 시작했다.
“…그런 걸 묻는 게 아니잖소.”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나선 것은 단지선의 호위였다.
초절정의 고수. 그럼에도 그 기도를 좀처럼 드러내지 않고 그림자처럼 단지선을 뒤쫓던 사내.
목리원은 그가 입을 연 것을 처음 봤다.
“교인의 정보에 대해선 제가 더 빠삭합니다. 교주께선 직위가 직위시다 보니 보통 교인들과는 깊은 교류를 나누지 못하셨습니다.”
“들으신 대로.”
목리원은 의구심이 들었으나 그보단 무어라도 단서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에 더 조급해했다.
보채는 듯한 눈빛에 곧장 호위가 말했다.
“서여령, 교단의 평신도 중 하나였으며 천애고아였습니다. 남편은 혼인한 지 한 달 만에 명을 달리했으며, 저희가 그녀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마침 그녀의 뱃속에 들어있던 대협께서 자미성을 타고났음을 별이 점지해준 이후였습니다.”
서여령.
목리원은 그 이름을 깊게 새겼다.
“성격은 온화했습니다. 외모는 그 이목구비가 대협과 닮았습니다. 아니, 대협이 그분을 닮았다 말하는 게 옳겠군요.”
저릿한 감상이 속에 일었다.
적어도 상상으로나마 그릴 수 있는 생모의 얼굴이 생겼다는 것이니.
“단천화의 침입 전까지 그녀는 몇 개월가량을 저희의 보호 아래서 지냈습니다. …예, 단천화가 그녀를 납치해간 날 그를 막지 못한 일을 사죄드려야겠지요.”
슬픔은 그제야 또 짙어져 목리원을 괴롭혔다.
사실, 이들을 향해 분노를 쏟아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 저들이 일부로 생모를 방치한 것도 아닐 터이기 때문이다.
단지선은 그런 일을 행할 수 없는 사람이니.
“죄송합니다. 그리고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은 이것으로 끝입니다.”
목리원의 입에서 짙은 숨이 삐져나왔다.
단지선은 그런 그를 잠시 바라보다, 단 위에 고이 모셔진 유골로 시선을 옮겼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목리원이 알 도리는 없었다.
그만큼이나 그의 행색은 초췌했으며, 눈두덩이는 깊이 파여 표정을 짓기 힘든 상태였다.
침묵하던 단지선은 이윽고 단에 다가가 서책을 품에 넣었다.
그리고 두개골을 조심스레 품에 안았다.
“교인은 본디 본단의 묘소에 모시도록되어 있습니다.”
생모의 유해다.
이대로 어디 있는지도 모를 교단으로 데려간다니 거부감이 없을 수는 없었다.
하나, 그 이전에 백련교의 일원으로서 그녀가 맞이할 처우를 존중해주어야 했다.
목리원은 섣불리 말을 내뱉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단지선은 그런 그를 보며 말했다.
“원하신다면 언제든 묘소를 확인하는 것은 허락해드릴 수 있습니다. 백련교가 모자간의 일을 방해할 정도로 매몰찬 곳은 아니니.”
“…중원에 모실 수는 없는 것이오?”
“없습니다.”
그가 단호하게 말했다.
거짓을 말할 수 없는 자가 이리 확언하는 일이라면 다른 도리가 없단 뜻일 터였다.
목리원의 입가에 씁쓸함이 맺혔다.
“하면 장례는 어찌되는 것이오?”
“저희 교의 교리를 따를 것입니다. 원하신다면 참관하셔도 좋습니다.”
“그 일은 서방의 교단에서 하는 것이오?”
“그렇습니다.”
“장례를 치르기 위해선 그곳까지 가야하는 것이구려.”
“그렇습니다.”
쉬울 리가 없었다.
중원에 이리 혼란스러운 일이 산재해 있는데 개인적인 용무로 자리를 비우다니, 이전이면 몰라도 무림맹 산하 조직의 단주로 있는 지금은 그런 일이 불가능했다.
아니, 아주 불가능하진 않지만 목리원이 자리를 비우는 만큼 중원은 더 큰 불꽃에 휩싸이게 될지도 몰랐다.
초월의 무인이 자리를 비운다는 것은, 무림에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못난 아들이 되었구나.’
생모의 장례도 제대로 치르지 못하는 아들이라니.
그녀의 존재조차 잊고 살았던 주제에 겨우 그런 일도 못하는 아들이라니.
씁쓸함이 진해졌다.
그런 중에도 막상 포기를 말하는 일은 참 힘들었다.
눈빛에 미련이 묻어남은 어쩔 수 없음이리라.
하여 가만히 유해를 바라보고 있던 중이었다.
“…당장이 곤란하시다면 저희 측에서 장례 일정을 조율해보겠습니다.”
단지선의 말에 목리원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목리원은 그의 퀭한 눈을 마주했다.
그 속에 있는 빛의 형상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까.
‘…슬픔?’
왜인지, 그리 느껴지는 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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