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59 이부 육장 - 별과 뱀 (1)
* * *
목리원은 두 사람 사이에 묘한 기싸움이 일어나고 있음을 뒤늦게야 알 수 있었다.
조금은 곤란한 일이었다.
이리되니 이 일을 수면 위로 올려 괜한 갈등을 조장한 게 목리원 자신이 되어버리는 것 아닌가.
벌집을 들쑤셨다는 생각에 한숨이 푹 튀어나와 버린 것이다.
“…되었으니 이 얘기는 그만하지. 내가 잘못했소. 의견차는 좁혀질 것 같지 않구려.”
그저 목적을 위한 일시적 동맹.
그리 관계를 정리한 목리원은 화제를 돌려 앞으로의 일에 관한 토론을 시작했다.
물론, 그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단지선과 당화서가 대립했다.
“저희가 당문으로 직접 가서 받는 것으로 하지요.”
“안 됩니다. 현 무림에서 백련교가 어떤 입지를 가지고 있는지를 모르십니까?”
“어떻다는 말씀이신지.”
“마교의 전신, 당신들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저희와 마교와 관련이 없음은 제가 증명합니다만.”
“세간의 인식은 그렇지 않지요.”
“이래서 중원 것들은….”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그만! 그만!!!”
대체 뭐 그리 서로를 못 물어뜯어서 안달인지.
두 사람이 사이에 불꽃이 튄다.
목리원은 뒷골이 확 당기는 기분을 느꼈다.
남들 사이를 중재하는 입장이라니, 이런 위치에 서는 것은 익숙지 않아 어찌해야 할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고, 그런 만큼 두 사람에 대한 괜한 원망이 치솟고 있었다.
목리원은 모르지만 어쩔 수 없는 구도였다.
단지선은 동생의 연인이 세간에 어떤 성격으로 평가되는지를 알고 있었다. 더불어 역성대법과 어머니의 유해를 가지고 있으면서 목리원에게 이르지 않은 사실을 기껍지 않게 보고 있었다.
당화서 또한 마찬가지, 습격당했던 일을 제쳐두고서라도 그녀는 이리 태도가 불량한 이 앞에서 참고 넘어갈 정도로 성격이 좋지 못했다.
결국 싸움이라도 일어날 분위기다.
목리원은 절충안을 냈다.
“그, 그럼 이렇게 합시다!”
두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목리원을 향했다.
“내 사실 이곳으로 들어오기 전 인근 무림맹 지부로 지원을 불렀소! 진법이 있는만큼 함부로 들어오지는 않겠지만 그것도 시간문제요. 결국 이 공간이 들키겠지.”
단지선의 미간이 확 좁아졌다.
“협박입니까?”
“그게 아니오. 그들이 들어오기 전에 나가겠다는 뜻이오. 실종된 이들 몇 명을 추려 그 틈에 당신 교주가 따라 나오시오. 우리로선 임무를 완수할 수 있고, 당신들로선 이 공간을 들키지 않으니 좋은 것 아니오?”
역시 머리라는 것이 쓰면 쓸수록 좋아지는 것인지, 근래 서류작업을 꽤 했더니 목리원 스스로도 만족스러운 결론이 나왔다.
“우리가 그걸 어떻게 믿습니까? 당신들 중원 무림의 입장에서 백련교의 교주인 내가 어찌 보일지를 나부터 잘 알고 있는데.”
“당신을 잡아갈 것으로 생각하는 게요?”
“그렇습니다.”
“안 그러겠소. 내 무명을 걸지.”
목리원은 주먹으로 제 가슴을 쳤다.
단지선의 눈이 슬쩍 커졌고, 이내 원래 크기로 돌아왔다.
“…그럼 믿겠습니다.”
“허, 목 소협 말만 참 잘 믿으시는군요.”
“소, 소저….”
단지선과 당화서의 눈빛이 다시 한번 부딪쳤다.
목리원은 울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
이래저래 갈등이 있긴 했으나, 결국 목리원의 중재안은 받아들여졌다.
백련교의 교인들은 동굴 속에 남았고, 개중 새로 들어온 인근 마을의 주민들만이 목리원과 당화서를 따라 나왔다.
아주 돌아가는 것이 아닌 잠시간의 이주, 단지선은 교인들을 그리 타일렀고 그 스스로도 교인들 사이에 파고들어 동굴을 나섰다.
그렇게 나온 동굴의 입구.
“다, 단주님!!!”
남궁소아가 외쳤다.
목리원은 오랜만에 보는 햇빛에 눈을 찌푸리다, 이내 펼쳐진 광경에 쓴웃음을 지었다.
‘아주 다 데려오지 그랬느냐.’
동굴 입구를 둘러싼 무인의 수가 물경 일백에 달한다.
그 앞에선 진법을 해주하려 한 것인지 웬 서생 같은 자들 몇 명이 무릎을 꿇은 채로 바닥에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예상대로 조금만 어물거렸다간 내부의 공간을 다 들켰을지도 모를 일이다.
목리원은 입을 떡 벌린 이들에게 웃으며 말했다.
“주민들의 구출을 끝냈소.”
단원들이 목리원에게 달려들었다.
*
일단은 단주인지라, 탈출 이후 곧장 쉴 수 없었다.
목리원은 곧장 사천의 무림맹 지부로 향해 내부 일에 관한 보고를 작성해야 했다.
물론 조작된 보고를 작성했다.
진법은 자연히 생겨난 것에 주민들 또한 우연히 그곳으로 빨려가 돌아오지 못했다는 식이었다.
양심이 조금 찔리긴 하지만, 그들에게 악한 뜻이 없음은 여러 방면에서 확인했고 주민들 또한 끌려간 게 아니었으니 이 정도는 덮어줄 수 있는 것 아니겠나.
“보고는 곧장 본단으로 올리겠습니다.”
“고생해주시오.”
목리원은 사천 지부장과의 만남을 그리 끝내고 당문으로 돌아왔다.
“단주님, 진짜 다치신 데는 없는 거예요?”
“하루 만에 돌아오지 않았느냐. 난 괜찮다.”
“단주님, 그럼 대련은….”
“오늘은 쉬자꾸나. 경오야.”
옹기종기 모여 재잘대는 단원들을 보니 문득 목리원은 웃음이 나왔다.
이번 일에서 크게 한 역할이 없다는 것에 시무룩해 있을 줄 알았더니, 그래도 기운이 아주 없어 보이진 않았다.
“아참, 같이 온 분 중에 그 삐쩍 마른 사람이요.”
강서휘가 단지선을 언급했다.
“그 사람은 왜 여기로 함께 온 건가요?”
“맞아, 신분도 높아 보이더라. 왜, 옆에 있는 사람은 딱 봐도 호위였잖아.”
목리원의 등골에 식은땀이 흘렀다.
곧장 변명이 튀어나온 것이 그나마 다행인 일이었다.
“그, 그분은 원래 당문을 찾으러 이곳까지 왔던 다른 지역 사람이란다.”
“엥?”
“몸이 아주 안 좋아 보이시지 않더냐? 당문이 독과 암기술 외에도 의술로도 유명하니 이곳에서 몸을 고칠 방도를 찾으시려고 했다더구나. 소저가 그곳에 흘러 들어간 게 천운이었지.”
이 부분에 관해선 따로 단지선과 당화서를 불러 입을 맞춰놔야겠지.
목리원은 생각을 떠올리며 단원들을 진정시켰다.
“일단 나는 소저를 뵈러 가마. 다들 고생했으니 쉬고 있거라.”
쉬라는 말에 그새 단원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목리원은 쿡쿡 웃으며 방을 나섰다.
그리고 마주했다.
“음? 소향 소저?”
무한에 있어야 할 소향이 왜인지 이곳 사천에서, 그것도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눈 밑에 거뭇한 그늘이 가득한 채였다.
“뭘 그렇게 보십니까. 대협께서 떠나신 뒤로 곧장 저도 이곳까지 왔습니다. 본가의 정리가 필요하니까요.”
아, 하긴 가주가 그리 오랜 시간 자리를 비웠으니 당문도 내외적으로 문제가 있었을 법하다.
목리원은 금방 납득을 끝내곤 고개를 끄덕였다.
“한데 왜 여기로….”
“가주께서 찾으십니다.”
“그렇소? 안내해주시구려.”
“이쪽으로.”
비틀비틀 소향이 걷는 꼴이 꼭 곧 죽을 사람 같았다.
당화서의 일을 대신 처리하느라 고생이 아주 많았겠지.
그게 한눈에 보여 목리원은 멋쩍게 웃었다.
그러다 우뚝 걸음을 멈췄다.
도착한 장소 탓이었다.
“이곳은… 소저의 안채가 아니지 않소?”
조금 외진 건물 앞이었다.
분명 전대 당문주의 전각을 허문 자리에 당화서의 전각을 지은 것으로 아는데 그녀에게로 향하는 것치곤 장소가 너무 의외였다.
의문은 곧장 풀렸다.
“오셨습니까.”
당화서가 건물 안에서 나왔다.
멀끔하게 씻고 옷도 갈아입은 것이 꽤 개운해보이는 모양새.
하나, 그 어딘가에 침잠한 기색이 있었다.
“향아, 수고했다. 가보거라.”
“예.”
소향이 비틀비틀 떠나갔다.
목리원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일인데 이곳에서 보자 하신 거요?”
그 말에 당화서가 쓰게 웃으며 답했다.
“말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사과해야 할 일이 있다고.”
“아….”
목리원은 맹의 일을 처리하느라 잊고 있었던 사실을 되새겼다.
분명 그녀가 서책과 유골을 숨긴 일을 사과해야 한다는 말을 했었다.
대관절 그게 뭐길래 이렇게까지 나오는 건지.
하여간 호들갑을 부리는 게 아닌가.
생각하며 목리원은 물었다.
“한데 교… 단지선은?”
“잠시 물렸습니다. 대화는 일단 저희 둘만 하는 것이 좋을 듯하여.”
“음, 알겠소. 그럼 안으로 들어가면 되겠소?”
“예.”
당화서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단칸짜리의 창고 형식의 건물.
하나, 그 관리는 꾸준히 잘 해왔던 것인지 먼지 한 톨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깔끔했다.
서책과 유해는 그 방 한가운데 놓여 있었다.
작은 단상을 만들어 그 위로 고이 모셔둔 것이 허투루 관리한 것은 아니라는 게 확실히 느껴졌다.
“일단 서책을 읽어보시겠습니까? 번역은 이미 끝나있습니다.”
목리원은 떨떠름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서책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역성대법.
그런 표지를 넘겨 서문으로, 그리고 본문으로.
서책을 넘기는 목리원의 표정은 시시각각 심각해져갔다.
그렇게 한참이나 책을 넘기다보니 어느새 다 읽었다.
한데도 제대로 내용을 확인한 게 맞나 싶어 목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서책을 읽었다.
그 끝에서야 목리원의 시선이 두개골로 향했다.
“…소저.”
목리원의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떠올리는 것은 이 두개골이 발견된 장소, 그리고 서책에 적힌 내용.
“이 유해가, 내가 생각하는 사람의 것이 맞소?”
자신이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는지를 알면서도 물었고, 돌아온 답은 명확했다.
“제 의견을 묻는 것이라면 예, 맞습니다.”
목리원은 당화서를 바라봤다.
그녀는 깊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숨겨서 죄송합니다.”
머리칼 사이로 슬쩍 보이는 그녀의 얼굴은 참으로 괴로워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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