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257화 (257/334)

EP.258 이부 오장 - 실종, 조사 (7)

* * *

당화서로선 참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이 무리를 이끄는 수장을 만나러 들어간 목리원이 심각한 표정으로 나와선 대뜸 눈물을 쏟아내는 것이 아닌가.

인과 관계를 알 수 없는 상태에선 그 비쩍 마른 사내가 목리원에게 무언가 수를 썼다고밖에 판단할 수 없었다.

하여 당화서는 분노에 휩싸였고, 곧장 그를 만나려 했으나 그 순간 목리원이 나섰다.

“아니, 아니오. 그런 게 아니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답답함이 차올라 따지듯 물었고, 그에 머뭇거리며 목리원이 하나씩 설명을 더했다.

돌아온 답에 당화서는 바짝 굳을 수밖에 없었다.

“…예?”

무어라 해야 할까.

심장이 쿵 떨어지는 기분이라 하면 될까.

사내의 정체가 백련교의 교주라는 것과 저들의 목적이 자신이 가진 서책과 유골에 있다는 것에 당화서는 그 어느 때보다 짙은 당혹감을 느꼈다.

단순한 당혹감은 아니었다.

그것들은 당화서가 용기를 내지 못해 목리원에게 건네지 못한 것들이었다.

사실 이미 주인의 손에 돌아갔어야 하는 게 고작 용기의 문제로 어영부영 숨겨져 있었으니, 당사자인 당화서로선 당혹스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감정은 그날 밤이 깊어지도록 더욱 덩치를 불렸다.

당화서는 잠든 목리원을 바라봤다.

미뤄뒀던 일이 이렇게 드리워지다니, 생각이 연신 이어진 끝에 도달한 결론은 그랬다.

‘더 피할 수는 없겠구나.’

이젠 진정 사실을 알려야겠지.

어찌 사죄하면 좋을까, 그런 생각이 연신 이어졌고 나온 결론은 그랬다.

‘이곳에서 나가면 직접 보여주며 사죄하자.’

당장은 사실만을 밝히자.

드리워진 일을 해결하려면 그것이 선결되어야 할 테니.

당화서는 목리원의 뺨을 쓸었다.

*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눈을 뜬 목리원은 새벽 수련을 끝내곤 처소로 돌아왔다.

잠들어있던 당화서가 어느새 일어나 자리에 앉아있었다.

“오셨습니까.”

“언제 일어나셨소.”

목리원은 싱긋 웃으며 그녀의 곁으로 가 앉았다.

그제야 무언가 이상한 게 보였다.

그녀의 표정이 조금 많이 심각했다.

그 짧은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건가 싶어 목리원의 표정이 덩달아 심각해졌다.

“얼굴이 왜 그러시오? 악몽이라도 꾸었소?”

“잠시 여기 앉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목리원은 고개를 갸웃하다 이내 그녀의 곁에 가 앉았다.

“무슨 일인데 그러시오?”

이리 장난기가 빠져 있으니 함께 마음이 가라앉는다.

그런 와중 당화서가 말했다.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무릎을 꿇은 채로 다소곳이 무릎에 손을 모은 자세다.

허리와 목은 곧게 펴졌으며 날카로운 눈매는 오늘따라 유독 정적인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어젯밤 말씀해주셨던 서책과 유해 말입니다.”

“…그것이 어쨌다고 그러시오?”

“제게 있습니다.”

흠칫―

목리원의 어깨가 떨렸다.

눈은 큼지막하게 뜨여 그녀를 향하고 있었다.

들은 말을 이해하기까지 짧은 간극이 있었다.

그날 얻은 서책과 유해는 분명 마일석이 회수해 가져갔고, 그게 목리원이 아는 사건의 전말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백련교의 교주인 단지선에게도 그리 일렀다.

한데 이제와서 그것들을 당화서가 가지고 있다니.

의구심이 차오르는 순간 당화서가 말을 이었다.

“걸왕께서 제게 맡기셨습니다. 7년 전의 일이었지요.”

“…어째서?”

“그것이 목 소협에게 돌아갔어야할 물건인 까닭입니다.”

목리원은 미간을 좁혔다.

확실히 단지선의 말에 의하면 그 서책에 적힌 대법은 자신과 관련있는 게 맞았다.

하나, 그럼에도 풀리지 않는 의문은 있었다.

그걸 당화서가 왜 이제까지 숨겨왔는가.

또한 마일석은 왜 사실을 알면서 자신에게 바로 말해주지 않았나.

그런 의문을 토해내려는 중이었다.

“이곳을 나가서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그 서책에 관한 내용과 유해에 관한 내용은 섣불리 말해선 안 될 종류라 판단됩니다.”

목리원은 주먹을 꽉 쥐었다.

하나, 분노를 느끼진 않았다.

그것이 신뢰였다.

사랑해마지않는 당화서와 마일석의 향한 신뢰.

그들이 아무 이유 없이 사실을 숨기진 않았으리란 확신.

“…알겠소. 나는 믿소. 그런 일을 한 이유가 나를 위함이라는 것을.”

“분명 저와 걸왕님의 입장에선 목 소협을 걱정해 숨긴 일이 맞습니다. 물론 목소협이 사실을 들은 후 납득하리란 보장은 하지 못합니다. 그때가 되면 얼마든지 저를 질책하셔도 좋습니다.”

꼭 각오를 한 사람의 눈빛이었다.

분명 원망을 받으리라 확신하는 듯한, 그런 눈빛.

목리원은 대관절 무슨 비밀이기에 당화서가 저리까지 반응하는지 그것이 참 궁금했으나 더 추궁하진 않았다.

그녀의 말대로 나중이 되면 다 알게 될 일 아닌가.

벌써부터 선을 긋는 것은 인간으로서도 연인으로서도 목리원이 생각하는 도리에 맞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은,

“말해주어서 고맙소.”

당화서를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당화서의 고개가 목리원의 품에 박혔다.

목리원은 그녀의 등을 두드렸다.

죄스러운 기색을 보이는 것이 못내 안타깝다.

“그리하지 않으셔도 되오. 나는 소저를 원망하지 않을 테니.”

“…예.”

목소리가 조금 잠겨있다.

목리원은 작게 웃었다.

“일단 교주에게 다시 말해야겠구려. 이번엔 함께 갑시다.”

당화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

단지선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은 오후의 일이었다.

동굴 속이라 시간을 파악하긴 어려웠으나 대충 생체의 시간상, 또한 사람들의 행색을 보며 목리원은 그를 판단했다.

“생각은 정리되셨습니까.”

그는 어제와 같이 비쩍 말라 목내이나 다름없는 꼴이었다.

아니, 어제보다 더 심한가?

솔직히 아군이라 보기 힘든 사내임에도 그의 몰골을 보니 측은함이 자연히 차올랐다.

목리원은 그 감정을 애써 눌러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드릴 말씀이 있소. 서책에 관한 것은 곧장 드릴 수 있을 것 같구려.”

“은거한 걸왕이 가져갔다고 들었습니다만.”

“걸왕님이 은거하시기 전 서책을 여기 소저에게 맞겼다 하오.”

단지선의 시선이 느릿하게 당화서를 향했다.

관찰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당문주에게 말입니까?”

“그렇소.”

“그걸 이제야 말해주시는 걸 보면….”

단지선은 눈빛이 가라앉았다.

“저쪽에서 숨겼다는 것으로 밖에 이해되지 않습니다만.”

“이쪽의 사정이 있음을 이해해주시구려.”

목리원은 당화서가 입을 열기 전 먼저 그리 말했다.

단지선의 기색이 조금 불편해 보였다.

아군이 아니라곤 하나 완전한 적도 아니었기에 그 나름의 예의를 다한 것이다.

하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분명 있었다.

“일단 사과를 받고 싶소. 소저를 2주간 그리 습격한 것에 대한 사죄 말이오.”

웃고 넘어가기엔 심각한 사안이었다.

목리원이 하루만 더 늦게 이곳에 당도했다면 당화서는 명을 달리했을지도 몰랐다.

목리원은 그런 일을 되새기는 것만으로도 등골에 소름이 끼치는 기분을 느꼈다.

분노에 가까운 감정이 단지선을 향했다.

하나, 돌아온 답은 그랬다.

“제 별에 대해서 알고 계니 부담없이 사실을 말하겠습니다. 사과할 필요성을 못 느낍니다.”

“…뭣이?”

“습격은 저쪽에서 해온 일이 아닙니까?”

단지선은 당화서를 응시하며 말했다.

“저희는 진법 속에 숨어서 은거하고 있었습니다. 찾아와 횡포를 부린 것은 저쪽이지요. 그에 책임을 묻지는 않겠습니다. 남의 땅에 자리를 튼 것은 사실이니 주인된 도리를 한 것이겠지요. 그러니 마찬가지로 사과도 하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서로가 잃었으니 그것이면 된 것 아닙니까?”

라고 말한 단지선이 잠시 침음을 흘리더니 한 마디를 더했다.

“아니, 잃은 것은 우리 뿐이지. 당가주는 아직 멀쩡히 살아있으니 말이오.”

“이 작자가!”

목리원이 벌떡 일어났다.

제아무리 거짓을 말할 수 없는 몸이라곤 하나 너무 뻔뻔한 처사지 않나.

목리원은 곧장 반박에 나섰다.

“그것은 이쪽에서 먼저 마을 사람들을 납치한 까닭이 아니오! 소저는 실종자의 조사로 이곳에 온 것일 뿐이오!”

사건의 선후 관계를 따져보자면 그게 맞았다.

목리원이 생각기로 원인은 이들에게 있던 것이다.

하지만 돌아온 반박은 그런 생각을 단번에 지우는 형태였다.

“묻겠습니다.”

단지선이 평이한 어조로 말했다.

“이곳에 끌려온 안색의 사람이 있었습니까?”

목리원의 몸이 덜컥 멎었다.

없었다.

처음 이 공간에 들어선 후 느낀 것이지만, 분명 마을에서 흘러들어온 것이 분명한 사람 중 구원을 바라는 기색은 없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더욱 이상한 일.

목리원의 표정이 당황으로 물들자 단지선은 말했다.

“그들은 화전민이나 다름없는 이들입니다. 관아에 낼 세가 없어서 도망친 이들이지요. 그저 보이기에 거두어준 것뿐입니다. 예, 솔직히 말하면 교의 확장을 위해서도 나쁘지 않은 일이라 받아줬지요.”

목리원의 입이 뻐끔거렸다.

단지선은 당화서를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다짜고짜 쳐들어온 것은 저쪽입니다.”

목리원은 당화서를 바라봤다.

당화서는 단지선과 눈씨름을 했다.

착각일까, 당화서가 보기엔 단지선의 기색이 왜인지 그랬다.

‘뭔가….’

정확히는 말할 수 없지만 못마땅해하는 기색이 얼핏 보였다.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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