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256화 (256/334)

EP.257 이부 오장 - 실종, 조사 (6)

* * *

천살성을 들킨 일은 나름 각오한 일이었다.

아무렴, 백련교는 마교의 전신이 아니던가.

그들이 알고 있는 사실을 백련교가 모른다고 말하기엔 어폐가 있는 것이다.

어쩌면 내통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지.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저 사내가 내뱉는 말이 뭔가 이상했다.

“…자미라니?”

자미성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목리원도 알고 있었다.

7년 전 청해에서 발발한 전쟁 때 위광천이 둘렀던 것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천살성에 먹혀 흐릿하게로만 존재하는 기억이긴 하나, 몸에 잔류한 기운이나 그 자줏빛 형상을 떠올리면 분명 자미성이었다.

한데 그가 가진 별이 자신의 것이라니, 목리원의 의문은 더할 데 없이 짙어지고 있었다.

“음, 모르시는 눈치군요. 분명 혈마전을 조사한 흔적이 있었는데.”

“…내 질문은 왜 나를 자미성의 주인이라 이르는지인 것으로 기억하오.”

“그 답이 혈마전에 있었기 때문, 그리 말하면 아시겠습니까?”

목리원은 더욱 인상을 찌푸렸다.

“…그곳에서 지하의 공간을 발견하긴 했소만.”

“무얼 찾았습니까?”

“백골, 그리고 서책이오.”

“서책의 내용은 아십니까?”

“서역의 언어로 쓰여있어서….”

흠칫―

그제야 목리원의 눈이 찢어질 듯 크게 뜨였다.

서역의 백련교의 땅이다.

그리고 그 서책의 언어가 서역의 언어라는 것은….

“당신들이오? 그 서책의 원주인이?”

사내는 깊게 패인 눈두덩이 아래 음울한 눈을 빛내며 말했다.

“예, 정확히는 그랬었지요.”

“그랬었다?”

“도둑맞았습니다. 서책을. 단천화에게.”

목리원의 입이 벌어졌다.

사내는 일어나 어색한 자세로 포권하며 말했다.

“인사드립니다. 백련교의 교주, 단지선이라 합니다.”

목리원은 혼란스러워졌다.

정보량이 너무 많았다.

*

스스로를 단지선이라 소개한 백련교의 교주는 지금 중원에 들어온 이유와, 자신들의 목적에 대해 조곤조곤한 어조로 설명했다.

“백련교는 오래전부터 별을 감시하는 일을 해왔습니다. 하늘의 뜻이 향하는 길을 헤아리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신이 얻은 서책은 그 일에 포함되는 서책이었고. 엄밀히 말하면 금서입니다. 저희가 얻은 지식이나 그 악랄함이 도를 넘어 영원히 봉인해야만 했던 금서.”

“…그게 왜 혈마의 손에 있었던 것이오.”

“말했잖습니까. 도둑맞았다고. 제 성씨로 눈치채셨을는지 모르겠지만, 단천화는 저희 백련의 직계 중 하나입니다. 도둑질한 서책을 들고 마교에 투신한 것이지요.”

목리원은 눈을 좁혔다.

혈마 단천화에 관한 이야기가 이곳에서 나올 줄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까닭이다.

진위 여부를 따지는 일은 우습다.

그의 말이 진실됨을 증명할 무엇보다 확실한 증거가 별이라는 형태로 존재하고 있는 까닭이다.

“파마성이 어떤 별인 줄은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사특함을 멸하는 별.”

그 별의 주인 된 이에게 끊임없는 악의 징벌을 강요하는 별이자 스스로 사특한 생각에 사로잡힐 땐 그 몸뚱어리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주는 별이다.

단지선의 저 삐쩍 마른 몸을 보면 알 수 있으리라.

그는 이미 파마성이 내린 대가를 치르고 있다.

지금 또 거짓말을 한 것이라면 그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울어야 했다.

별이 주는 벌이 그랬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목리원조차도 아직 천살성의 살기를 완전히 발아래 두지 못하고 별과 타협하고 있지 않나.

“백련교는 중원에 해를 입힐 생각이 없습니다. 저희 목적은 서책의 회수와 그 서책으로 말미암은 사고의 수습입니다.”

단지선은 그리 말하며 목리원을 가리켰다.

“왜 당신을 자미성의 주인이라 부르는지를 물으셨습니다. 대답해드리지요.”

혼란이 가중되어 생각이 뚝뚝 끊기는 와중, 지금 목리원이 가장 궁금해하는 일의 답을 단지선이 내뱉었다.

“역성대법, 서책의 이름입니다. 그 공능은….”

믿을 수 없는, 그럼에도 믿고만 싶은 말을 내뱉었다.

“…별을 뒤집는 것입니다.”

목리원의 숨이 멎었다.

*

목리원은 단지선의 집에서 나왔다.

“소협!”

당화서가 곧장 달려와 목리원의 상태를 살폈다.

“안색이 왜 그러십니까? 혹 무슨 일이라도….”

“…아니, 아니오.”

목리원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당화서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아직까지도 단지선의 말이 머릿속에 맴돌고 있었다.

-단천화의 목적은 하나였습니다. 그 스스로가 이 땅의 주인이 되는 것. 그것을 위해서 천살성이 필요했지요. 세상을 무릎 꿇릴 힘에 목줄을 채워 이용하려고 햇던 겁니다.

정리하자면 본디 자미성의 주인은 자신이었다.

그리고 갓난아기였던 자신은 그의 목적에 이용되어 자미성이 아닌 천살성을 몸에 담아야 했다.

그것을 말한 이가 파마성의 주인이었기에 의심할 도리는 없다.

그러니,

“하….”

목리원은 몸을 내리누르는 감정에 긴 숨을 토해냈다.

목리원의 무릎이 꿇렸다.

“소협!”

당화서의 목소리가 멀어졌다.

심장이 너무 빠르게, 그리고 무겁게 뛰었다.

언제나 원망했던 일이 사실은 자신의 탓이 아니었음을 깨닫는 순간 차오르는 것은 눈물이었다.

너무나도 뜨거워진 눈시울이 진물을 토해냈다.

허탈함, 안도감, 그리고 원망 따위의 감정이 온통 속을 헤집었다.

하지만 역시 가장 큰 것은, 감사함이었다.

‘스승님….’

자연히 떠오르는 것은 목선오였다.

그의 삶이었다.

목리원은 울면서 웃었다.

‘스승님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목선오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그가 바랐던 일은 조금도 그른 일이 아니었다.

세상을 혼란케 할 살귀라 일컬어진 갓난아이는 살귀가 아니었다.

충분히 협객이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아이였다.

죄스러움이 멀어진다.

감사함은 그만큼 더해진다.

그의 죽음이 마냥 천살성 때문만은 아닌 듯하여, 그는 진정 죽음의 순간까지 협객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게 되었다는 생각이 치밀어.

“끄흐으….”

부끄러움도 모르고 당화서가 보는 앞에서 아이처럼 또 눈물을 흘렸다.

영문도 모르고 안절부절못하던 당화서는 이윽고 목리원의 몸을 감싸 안아 등을 토닥였다.

목리원은 그녀의 품을 적셨다.

*

단지선은 문밖에서 들려오던 울음소리가 멈추기까지 자리에 앉아 명상했다.

그것은 마음을 비워 공으로 돌리고자 그가 오랫동안 수련해온 명상법 중 하나였다.

자그마한 욕구에도 체벌을 내리는 파마성 탓에 단지선은 감정적으로 움직일 수 없었다.

오로지 선의와 진실만을 추구해야 하기에 사적인 마음을 품는 것은 그에게 금기와 가까웠다.

그렇기에 단지선은 이 순간이 꽤 고역스러웠다.

찌릿, 심장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에 인상을 구겼다.

그런 것들이 멈춘 것은 두 사람의 기척이 멀어진 후였다.

달칵―

문이 열렸다.

“교주님.”

“두 분은 어디로 모셨느냐.”

“일단 안가로 안내해드렸습니다.”

“상태는 어떻더냐.”

“당장은 더 대화하기 어려우실 듯합니다.”

호위무사가 고개를 숙였다.

단지선은 스르르 눈을 떠 그를 바라봤다.

“그것이 끝이더냐?”

단지선의 물음에 호위무사가 망설였다.

스스로의 이름조차 버린 채 단지선의 그림자로 살아온 그는 교주의 호위라는 명목 외에도 하나의 역할을 더 부여받고 있었다.

“…닮았습니다. 마님과.”

단지선의 감정을 대신 표해주는 것이다.

감정에 휩쓸려선 안 되는 그를 대신하여 그의 감정을 입에 담고, 그의 감정을 표해주어야 했다.

“사내임에도 어여쁘심이 특히나 그렇습니다. 마님의 이목구비를 똑 빼어 닮으셔서 처음 본 순간엔 흠칫하게 되더군요.”

“그랬더냐.”

“무공 또한 고강하십니다. 이 역시 마님을 닮으셨습니다.”

“그랬더냐.”

“교주님.”

“되었다.”

단지선은 더 말을 잇지 않았다.

말을 듣는 순간 움직이는 감정 탓에 심장이 온통 죄여왔으므로.

다만 지팡이를 들어 몸을 일으키곤 비틀비틀 방 한구석으로 향했다.

이런 상황엔 차라리 잠에 빠지는 것이 좋은 선택임을 그는 오랜 경험을 통해 깨닫고 있었다.

단지선은 침상에 몸을 뉘었다.

삐쩍 말라 구실도 못하게 된 몸은 그가 치러야 할 대가였다.

금기를 깨고 파마성의 뜻을 거슬러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집단을 움직인 이기적인 선택의 벌이었으니.

더 이상 하늘에 닿았던 공력도, 누구든 무릎 꿇릴 수 있는 무공도 되찾을 수 없게 되었으나, 그에게 후회는 없었다.

“교주님, 취침하시겠습니까.”

“그래, 그래야 할 듯하구나.”

“…존명.”

단지선은 눈을 감았다.

목리원에겐 중원으로 온 목적이 두 가지임을 일렀으나, 사실 그는 하나의 목적을 더 숨겼었다.

거짓을 말하지는 않았다.

그저 숨긴 것이다.

‘죄송합니다. 어머님.’

아무래도 남은 하나의 진실은 말할 수가 없었다.

어찌 말할 수 있겠는가.

자신의 세 번째 목적이 단천화에게 납치되어 명을 달리한 모친의 유해를 수습하는 일과, 자신의 아우가 무사함을 확인하는 일이었다는 것을.

‘그래도 다행입니다. 아우는 잘 사는 듯합니다.’

충분히 행복해 보였다.

좋은 인연을 만났고, 무명을 얻어 만인의 우러름을 받았고, 또한 의로움을 품고 있었다.

-남아라면 단우선, 여아라면 단예선. 동생 이름으로 어떠하니?

비록 그의 이름은 전해줄 수 없으나 이것이면 되었다.

단지선에겐 아우가 저처럼 살지 않는 것만이 유일한 안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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