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56 이부 오장 - 실종, 조사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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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라면 참 다행으로, 당화서의 기운은 넘쳐보였다.
그렇다면 이제 생각해야 할 것은 다름 아닌 앞으로의 행보.
그에 당화서는 말했다.
“일단 동굴을 끝까지 가보도록 하지요. 마침 잘 됐습니다. 목 소협까지 왔으니 동굴 탐사가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겁니다.”
“괜찮겠소?”
“배도 채웠고 공력도 충분합니다. 이대로 굶어도 일 주일은 더 버틸 수 있겠지요.”
맞는 말이긴 했다.
목리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간 이곳에 먼저 있으며 알아낸 점은?”
“크게는 없습니다. 다만 이곳 어딘가에 백련교의 인물들이 대규모로 자리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확실하지요. 그간 목을 분지른 것들만 세 자릿수는 되는데 계속해서 튀어나오는 걸 보면 알만하지 않습니까?”
쯧, 하고 혀를 차는 당화서의 기색은 사뭇 짜증스러웠다.
그럴 만도 했다.
그녀가 이곳에서 한 고생이 얼마나 극심했던가.
처음 만난 순간의 초췌했던 모습은 아직도 목리원의 뇌리에 깊이 박혀있었다.
그와 별개로 그녀의 주장을 생각해보면 그랬다.
“확실히 유독 큰 공동이 있긴 하오.”
목리원의 기감엔 이런 좁은 통로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큰 공간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 안에 사람들의 기운도 느껴지니, 저곳을 백련교의 본진이라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리라.
고개를 끄덕이며 목리원이 말했고, 그것에 당화서의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그게 느껴진단 말입니까?”
“음? 그렇소만.”
답하니 당화서의 기색이 묘하다.
무어라 해야 할까… 꼭 다른 종을 보는 듯한 눈초리라 표현하면 좋을까.
여하튼 목리원으로선 참 낯설고도 익숙한 눈빛이었다.
“그리 보지 마시오. 이정도는 남궁 형도 하오.”
“…아, 갑자기 대단치 않은 일로 느껴지는군요.”
당화서의 기색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목리원은 생각했다.
‘남궁 형은 대체 뭘까?’
사실 아주 대단한 일에 겸양을 떤 것임은 목리원도 알고 있었다.
한데, 남궁진천도 할 수 있는 일이라 스스로 입에 담는 순간부터 이것이 정말 별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목리원은 생각이 많아졌다.
물론 그런다고 답이 나올 리가 없었다.
“…일단 갑시다.”
목리원은 그리 말을 줄였다.
*
이곳이 백련교의 거점으로 확실시되는 만큼 생각해봐야 할 것은 그들이 어떤 집단인가에 관한 것이었다.
“백련교는 마교의 전신이다. 흔히들 그리 알고 있지요.”
오랜 이야기였다.
당시의 백련교는 신강 너머 서역에나 존재하는 불교 집단이었고, 중원과는 교류가 적었던 탓에 그들과 교류가 그리 많지는 않았다.
하나 있다면 그들의 지난 역사 중 중원과 척을 진 일이 몇 가지 있었다는 것 정도일까.
당대 그들의 수장이었던 자가 중원 황제의 명으로 목숨을 달리했다.
그 탓에 백련교는 중원에 앙심을 품었고, 그 과정에서 복수를 주장하는 이들이 분열되어 나온 게 천마신교다.
“…라고,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주장이 그렇습니다.”
“나도 아는 얘기요. 천마신교를 세운 초대 천마가 스님이었다지.”
“예, 그들이 변질된 것은 3대 천마 이무백 이후였으니 말입니다. 당시의 천마신교는 무림에 속했다기보단 불가에 속한 집단이라 말하는 게 더 옳았습니다.”
이무백의 이름이 나옴에 목리원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죽여주시오.
이무백의 유언이었다.
그는 어떤 살겁도 원하지 않던, 다만 운명에 휘둘릴 뿐인 양민이었던 것이다.』
성련의 초대 문주가 남긴 비망록에 적힌 글귀였다.
천살성의 살기에 무너진 어쩌면 자신의 미래가 될 수도 있었던 모습.
그의 삶에 목리원은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런 감정과 별개로, 당장 낼 수 있는 결론은 그랬다.
“그렇다면 백련교는 변질되기 전의 천마신교와 닮아있겠지. 불가 계통의 무공을 쓴다고 보면 되겠소?”
“예, 실제로 그들과 대치하며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기색이 참으로 포악하긴 하나, 그들의 무공은 일운 스님이 쓰시던 소림의 것과 비슷한 결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생각해봐야 할 건 그들이 왜 중원에 와 있는가 정도겠구려.”
“마교와 관련이 있으리라 예상하고 있지만… 역시 그렇지요. 실제로 만나 추궁하지 않는 이상 확신은 금물이겠습니다.”
“그럼 준비합시다.”
목리원은 흑야를 뽑았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공동 앞에 도착한 것이다.
눈이 다 부실 정도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물론 광량이 그만큼 많다는 게 아니라, 횃불로 공간을 밝히고 있었음에도 이때까지 온 길에 비해 너무 밝다는 뜻이었다.
“마을을 세웠구려. 동굴 안에.”
그곳은 마을이라 말해야 마땅한 형태였다.
수십 채의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고, 안력을 돋우니 그 어딘가에 보이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무공을 모르는 양민이었다.
무인들은 모두 숨어있다.
한참 전부터 그랬다.
저들이 알진 모르겠지만, 그들의 위치는 이미 앞선 시간부터 목리원의 기감에 잡혀 있었다.
왜 달려들지 않는 걸까.
그런 의문을 참아왔으나 이젠 해결할 때가 되었다.
“나오시오.”
동굴에 목리원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 순간이었다.
타다다닥!
여기저기서 흑의인들이 튀어나와 목리원과 당화서를 빙 두르기 시작했다.
그 수가 물경 일백이 넘었다.
복면 사이로 드러난 눈들이 발광하는 점처럼 옹기종기 모여 일제히 목리원을 향해 쏘아졌다.
그들 뿐만이 아니었다.
마을 주민들조차 목리원과 당화서를 응시하고 있었다.
“…소협.”
당화서가 속삭였다.
“실종 당했던 이들이 저 양민들 사이에 섞여 있습니다. 이상합니다.”
목리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질적인 이들 사이에 익숙한 기운을 품은 이들이 존재했다.
한데 그들의 모습은 잡혀 있는 것이라기보단 저들 사이에 섞여 어우러진 꼴이었다.
마치 자발적으로 이곳에 들어온 것처럼 말이다.
“확인해보면 될 일이오.”
목리원은 그리 속삭인 후, 크게 외쳤다.
“나는 중원 무림맹 산하 용봉단의 단주 목리원이오! 당신들을 이끄는 자가 누구요!”
경계의 기색은 품음에도 절대 먼저 달려들지는 않는다.
목리원은 그 속에서 한 가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나를 경계하는 것이다.’
당화서가 홀로 있을 때는 그리도 달려들었음에도 이제와 달려들지 않는 이유를 떠올려보자면 그것 하나 뿐이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강호에서 강자와 약자의 취급이 다름은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니 말이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저들이 자신을 경계하는 이유였다.
청룡 비무제의 소식으로 초월에 이른 것을 알게 된 걸까, 그도 아니면 천살성으로서의 자신을 아는 걸까.
굳이 이렇게 선택지를 띄우는 이유는 그들이 바로 마교와 연관된 백련교이기 때문이었다.
생각이 많아지는 순간이었다.
“길을 트거라.”
들려온 것은 꽤 젊은 목소리였다.
빈틈없이 전방을 막고 있던 무인들이 좌우로 갈라지며 길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 끝에서 서 있는 사내가 있었다.
“내 직접 나서마.”
흑색의 장발, 병든 자처럼 비쩍 마른 몸과 그 몸을 지탱하기 위해 짚은 지팡이.
병색의 완연한 얼굴 위로 드러난 눈은 피폐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하나, 그 눈동자 속의 안광만은 세상 누구보다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저런 자가 이 무인들을 이끄는 수장인가, 약관 정도로 보이는 사내가 백련교의 요직에 있단 말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으나, 이내 스러졌다.
목리원만이 아는, 목리원의 성련신공이 반응했기 때문이었다.
쿠웅―
심장이 크게 널뛴다.
절로 성련의 구결의 풀어헤쳐지며 몸을 감싼다.
눈빛은 떨렸고, 주먹엔 힘이 들어갔다.
‘별이다.’
이 무슨 공교로운 일인지 그 또한 별이었다.
순백색의 휘광이 그를 두르고 있다.
그것은 절대 오염을 허용치 않는 고집스러운 백색이었으며, 동시에 세상 모든 마(魔)를 근본부터 증오하는 집요한 백이었다.
마주하는 순간부터 천살성이 반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성련이 기뻐하기 시작했다.
“따라오시지요.”
그리 몸을 돌리는 사내의 별을 이르니,
‘파마성(破魔星).’
세상 모든 마의 천적이 그곳에 있었다.
“…소협.”
“…따라가지.”
목리원은 표정을 굳혔다.
무언가 생각과는 다른 양상으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확신이 그의 속에 차오르고 있었다.
걸음을 옮기니 당화서가 뒤따른다.
양옆으로 갈라진 무인들을 지나 그를 따라 움직이니 마을 한가운데의 유독 큰 집에 도달했다.
사내가 당화서를 흘긋 보곤 말했다.
“당문의 주인께선 자리를 비켜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게 무슨….”
“소저, 다녀오겠소.”
“목 소협!”
“걱정마시오.”
술수를 꾸민다 한들, 이 거리라면 그의 모든 수가 통하지 않을 테니.
목리원은 눈짓으로 당화서를 안심시켰다.
당화서는 분노한 듯 입술을 짓씹다, 이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떨궜다.
“…기다리겠습니다.”
“금방 돌아오지.”
말하고 난 직후 목리원은 집 안으로 들어갔다.
생활에 필요한 몇몇 기구를 제외하면 그 무엇도 보이지 않는 황량한 내부가 드리워졌다.
사내는 그 가운데에 앉으며 말했다.
“천살성의 주인을 뵙습니다.”
움찔 몸을 떠는 순간, 그의 입에서 기이한 말이 흘러나왔다.
“…아니, 자미성의 주인이라 해야 할까요.”
목리원의 눈이 부릅 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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