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55 이부 오장 - 실종, 조사 (4)
* * *
온통 어두웠으나, 목리원에게 큰 문제는 아니었다.
무릇 기감을 퍼뜨릴 수 있는 범위나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의 세밀함은 경지에 비례해 커지는 법, 그런 관점에서 목리원은 이 공동의 정체를 단번에 파악할 능력이 있는 것이다.
‘넓구나.’
구불구불한 통로는 조금만 방심해도 길을 잃을 정도로 극악하게 뚫려 있었다.
장담컨대, 초월지경에 이르지 않은 당화서는 이곳에서 지내며 방향 감각이 많이 무뎌졌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었다.
통로를 쭉 움직이다 보면 기어서 들어가야 겨우 나갈 수 있는 출구가 몇 있는데, 이것은 전체적인 동굴의 구조를 모르는 이상 절대 찾을 수 없는 틈새였다.
목리원은 기감을 더욱 날카롭게 벼렸다.
이 어딘가에서 적어도 2주 이상은 버티고 있을 당화서를 찾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런 노력은 이윽고 결실을 맺었다.
우우웅!
‘찾았다.’
기의 충돌이다.
동굴 곳곳에 숨어있던 일류의 무인들이 한 곳으로 집결하며 유독 커다란 기와 맞붙고 있었다.
당화서였다.
그녀가 살아있다는 것에 차오른 안도는 금새 스러졌다.
전투 상황.
분명 당화서가 경지 상으로는 우위에 서 있으나 그녀의 상태가 좋지 않음은 흔들리는 기파나 좀처럼 스러지지 않는 적들의 기운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차오르는 것은 분노였다.
쿠구구구궁!
기파가 더욱 진하게 퍼져나가며 공간 전체를 점했다.
유형화된 기는 무릇 공간을 내리누르는 압력으로도 작용하는 면이 있었다.
탁―!
목리원은 발걸음을 내디뎠다.
기감이 이끄는 길을 따라 통로를 움직이는 속도는 2기 용봉단과 맞춰주던 것보다 몇 배는 빠른 속도였다.
‘제발…!’
아무 일도 없어라.
바라고 바라는 중 당화서를 습격했던 이들의 기가 모두 스러졌다.
그쯤 목리원은 당화서를 찾았다.
“소저!”
안력을 돋우니 흐릿하게 공간이 보인다.
당화서가 그곳에 있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몰골로, 벙 찐 얼굴을 한 채.
“…소협?”
목소리가 갈라져 있는 것이 속을 괜히 저미게 한다.
대체 얼마나 고생을 한 것인지 싶어져 마음이 아파옴에 목리원이 걸음을 내디뎠다.
그 순간이었다.
“잠깐!”
당화서가 외쳤다.
목리원의 몸이 흠칫 멎었다.
“…왜 그러시오?”
“잠깐,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서서히 뒷걸음질 치는 당화서의 기색이 수상했다.
혹시 독? 아니, 만독불침의 몸이니 독일 리는 없다.
그렇다면 상처? 걱정을 끼칠 정도의 상처가 있는 것인가?
목리원은 덜컥 겁이 났다.
“일단 이리 와서 몸 좀 봅시다!”
혹여 처치할 수 없는 상처라면 그 무엇보다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
그런 생각에 목리원이 황급히 다가가는 순간이었다.
“내, 냄새 때문에!!!”
쩌렁쩌렁 그런 말이 동굴 속에 울렸다.
목리원은 이제 쩌저적 굳어버리는 수준이 되었다.
안력이 돋으며 당화서의 얼굴이 더욱 선명하게 보이고 있었다.
“제, 제가 이곳에 좀 오래 있었습니다! 제대로 씻지도 못하는 환경이었던지라 지금 다가오시면 냄새가 조금 심하게 날 겁니다! 그러니 조금만 떨어져서….”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은 생기가 가득했다.
어두워 잘 구분되지 않지만, 얼굴이 조금 상기된 것 같기도 했다.
그 순간 목리원의 몸에서 힘이 ‘탁!’하고 풀렸다.
지난 시간 걱정과 불안으로 지샜던 순간들이 주르륵 스쳐 지나갔고, 그 끝에서 이리 멀쩡한 당화서를 봄으로서 차오른 안심이 절로 그런 현상을 만든 것이었다.
어찌 사람을 이다지도 걱정하게 만드는가.
그것이 참으로 밉고 또 야속해서,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소.”
목리원은 와락 당화서를 끌어안았다.
“흡!”
당화서는 숨을 꾹 참았다.
몸 또한 경직됐다.
목리원은 그런 당화서를 더욱 강하게 끌어안으며 그녀의 무사함을 확인했다.
“걱정했소. 정말, 너무 많이.”
몸이 조금 차갑다.
마른 건가? 아니, 먹지 못해서 힘이 빠진 듯하다.
얼마나 고생한 것일까.
그리 한참이나 끌어 안고 있는 중이었다.
“…소협, 이제 잠시 떨어지시지요.”
“냄새 같은 건 안 나오.”
“고개를 떨어트리고 있으니 안 나는 게 당연합니다.”
“입 냄새를 걱정한 것이오? 그것도 괜찮소!”
사실 당화서의 머리에서 꼬릿한 냄새가 나긴 했지만 괜찮았다.
이 정도 냄새라면 사랑으로 극복하는 게 가능했다.
증명을 원한다면 목리원은 그녀의 정수리에 입맞춤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아니! 머리가 아니라 입술에도!’
목리원은 그녀의 뺨을 잡아 고개를 들었다.
화들짝 놀란 당화서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입술을 오므리고 있었다.
“으읍!”
당화서가 황급히 고개를 저었지만 어림도 없지.
목리원은 눈을 질끈 감고 입술 박치기를 시도했다.
딱!
인중과 인중이 부딪쳤다.
당화서는 완고했고, 목리원은 고집스러웠다.
입매를 맞춰 입술을 억지로 벌린 순간,
“흣!”
당화서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녀의 얼굴이 사뭇 뜨거워졌다.
목리원은 그녀와 눈을 마주하며 싱긋 눈웃음을 지었다.
냄새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당화서의 눈망울이 일렁이는 형태는 분명 감동의 기색을 담고 있었다.
이윽고 당화서가 목리원의 허리를 팔로 감았고, 혀를 섞어왔다.
목리원은 기꺼이 몸을 맡겼다.
‘음!’
그녀의 말대로 냄새가 나긴 했다.
아주 조금.
*
재회의 기쁨도 잠시였다.
뭐가 됐든 당화서의 몸이 쇠약해진 상태인 것은 확실한 만큼, 그녀의 회복을 위해 잠시 쉬는 시간을 가져야 했다.
수통과 벽곡단 몇 알을 가져온 것이 참 다행스러운 일.
목리원은 자리에 앉아 그녀를 품에 기대어두고 먼저 벽곡단과 물을 먹였다.
곧 죽어도 초절정의 무인인 게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당화서는 금방 식사를 끝내고 편히 잠들어 체력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동굴 벽에 기대 그녀의 몸을 받쳐주며 목리원은 기감을 넓게 펼쳤다.
‘경계하고 있구나.’
목리원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내내 느껴지던 습격자들… 예상컨대 백련교의 인물들이 온통 경계의 기색으로 이쪽을 주시하는 게 느껴지고 있었다.
누구든 다가오면 제압하여 심문할 수 있겠으나, 좀처럼 다가오지 않으니 당화서를 여기 홀로 두고 움직이기가 곤란했다.
아마 힘을 빼려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노골적인 경계를 품어 정신력을 깎아 먹고, 그렇게 약해진 틈을 찌르는 것이다.
당장 당화서만 해도 초절정의 고수임에도 그들에게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던 걸 생각하면 아주 틀린 추측도 아니었다.
뭐가 됐든 그녀가 깨어나면 일을 물어보는 게 맞겠지만 말이다.
“으음….”
당화서가 몸을 뒤척였다.
목리원은 그녀를 내려다 봤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가만 생각해보면 이리 그녀가 잠든 꼴을 보는 일은 참 드물지 않던가.
깨어 있을 땐 세상 누구보다 든든하고 똑부러진 사람도 이리 웅크린 채 잠들어 있으니 괜히 귀엽게만 보였다.
콩깍지가 씌인 걸까.
생각하며 그녀의 머리칼을 쓸었다.
기름기가 조금 묻어났지만 뭐 어떤가, 여기까지 와서 목리원도 꽤 더러워져 있는 상태였다.
그저 그녀를 되찾았다는 사실이 안도되어, 목리원은 그리 한참이나 당화서를 쓰다듬으며 시간을 보냈다.
질리지도 않는 감촉이었다.
*
당화서는 근 몇 주 만에 깊은 잠에 빠졌다.
어찌나 세상모르고 잠들었는지 눈을 떴을 땐 입가에 침까지 흐르고 있었다.
그에 손으로 뺨을 비비다, 몽롱한 정신을 일깨울 쯤 당화서는 자신이 베고 있는 것이 목리원의 무릎임을 깨달았다.
“일어났소?”
그 목소리에 흠칫 놀라 몸을 일으켰다.
머릿속에 경종이 울렸다.
침까지 흘려가며 자는 모습을 하필 연인한테 보인 것이니 좀 부끄러운 게 아닌가.
얼굴에 열이 확확 오르는 느낌이었다.
목리원은 그 와중에도 실실 웃고 있었는데, 그게 참 얄미워보여 당화서는 괜히 심통난 얼굴로 그의 허리를 꼬집었다.
“악! 왜, 왜 그러시오…?”
“아무것도 아닙니다.”
목리원의 얼굴 위로 억울함이 물씬 돋아났으나 당화서는 외면했다.
“운기조식을 좀 해야겠습니다. 호법 좀 서주시지요.”
“끄응… 알겠소.”
목리원의 입술이 댓발 튀어나왔으나 당화서는 할 말이 없었다.
그냥 얄미워서 허리를 꼬집었단 말을 하기엔 본인이 너무 좀스럽게 느껴진 까닭이다.
여하튼, 그런 작은 소란을 끝으로 당화서는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충분한 식사와 수면이 큰 도움이 되었는지 몸 상태가 한결 나아져 있었다.
이 정도면 당장의 습격 몇 차례는 홀로 코웃음 치며 막을 수 있는 수준.
물론 목리원과 함께인 만큼 그럴 일은 없을 테지만 말이다.
“후우….”
당화서는 숨을 내뱉으며 눈을 떴다.
공력이 회복되니 이제야 안력에 배분할 수 있는 내공의 양이 늘어났다.
당화서는 또렷하게 보이는 목리원의 얼굴을 잠시 바라봤다.
“아, 끝났소?”
“예.”
홀로 죽어가기 직전의 순간이 떠오른다.
그 순간 떠올렸던 생각들이 다시금 스쳐 지나간다.
“소협, 잠시 이리로 와보시지요.”
“응? 왜 그러시오?”
목리원이 순진한 얼굴로 거리를 좁혀오는 순간,
확!
당화서가 그를 낚아챘다.
“웁! 우웁!”
거칠게 입을 맞췄다.
딱 거기까지만 했다.
더 하기엔 역시 몸에서 나는 냄새가 조금 신경 쓰였던 까닭이다.
‘나가기만 해봐라.’
절대 가만두지 않으리라고.
당화서의 속에 결의가 자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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