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253화 (253/334)

EP.254 이부 오장 - 실종, 조사 (3)

* * *

범상한 진법이 아님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목리원은 강호초출의 대부분을 제갈산과 함께 했다.

남들은 평생도 경험하지 못할 진법에 들어가는 일이 잦았으며, 그런 만큼 진법에 대한 경험과 지식은 일반적인 무인보다 높을 수밖에 없었다.

“환술이겠구나.”

떠올리는 것은 과거 제갈산이 했던 말이었다.

-진법의 일렁임을 잘 보면 말일세, 파문처럼 퍼져나가는 것이 있고 안개처럼 희뿌옇게 그 너머가 가려지는 것도 있고 그 외에 기상천외한 것들이 많다네. 그중 파문의 일렁임은 환술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주로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불안감이나 공포를 자극하는 형태의 진법이라던가.

실제로 겪은 일도 있었다.

다름 아닌 이 사천 땅 당문의 금지, 그곳을 두른 진법이 이와 같았다.

“단주님, 어떡해요?”

남궁소아가 물었다.

목리원은 고민했다.

‘다 데리고 들어가는 것은 위험하다.’

당문의 금지와 비슷한 진법이라면 파훼법을 모르고 들어갔다간 다 같이 길을 잃을 게 뻔했다.

애초에 그 진법조차 제갈산이 없었다면 뚫지 못했을 진법이 아니던가.

제갈산 만큼의 지혜와 눈이 없는 목리원으로선 할 수 있는 선택이 정해져 있는 것이다.

“소아야, 진아.”

“네?”

“인근 무림맹 지부로 가서 상황을 알리거라. 그리고 서휘, 혁이, 경오는 이곳에 남아 입구 쪽을 지키거라.”

“그럼 단주님은….”

“홀로 들어가겠다.”

단원들의 표정이 굳었다.

목리원은 그 이유를 쉬이 알 수 있었다.

하여 곧장 말을 덧붙였다.

“너희를 믿지 못하는 게 아니다. 이 진법이 어떤 진법인지를 알기에, 도리어 너희를 믿기에 이런 명령을 내리는 것이다.”

중요한 순간에 도움이 되지 못함이 이 아이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일인 것은 알았다.

그렇기에 달래는 말은 길었다.

목리원은 이 진법을 이미 겪어봤다는 사실과 다 함께 들어가는 일이 얼마나 우둔한지와 상황을 알리는 일의 중요성까지 모든 것을 다 설명했다.

그리하고 나서야 단원들의 기색이 조금 진정되었다.

목리원은 작게 웃으며 두 개의 검 중 등에 찬 검, 성운을 뽑아 들었다.

“다녀오마. 혹시 침입하려는 이가 있거든 어떻게든 막아다오.”

말한 후, 목리원은 진법 안으로 들어갔다.

*

환각을 일으키는 종류의 진법이 가지는 특징이 있었다.

바로 들어선 자의 삶에 따라 그 진법의 악독함이 갈린다는 것이다.

그 삶에 얼마나 두려운 일이 많았는가, 혹은 얼마나 불안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가에 따라 그려지는 환각의 수위가 달라진다.

그런 면에서 목리원에게 이런 진법은 극독과도 같았다.

천살성을 타고난 탓에 평생 그 사실을 숨기고 살아야 한다.

그런 이유로 이별을 맞이했으며, 또 다른 이별을 언제나 각오하고 있어야 한다.

발 한번 삐끗하면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삶이다.

환각은 그런 점을 지독하게 파고들었다.

-가증스러운 것, 네놈이 감히 백도의 이름을 짊어지려 했구나.

-죽이시오! 저자를 죽여야 하오!

아우성처럼 귓가에 맴도는 소리가 있다.

-원아, 너를 거두지 말았어야 했다.

작위적인 회한의 말이 있다.

-소협을 만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 무엇보다 끔찍한 원망을 담은 목소리가 있다.

그것에,

“전과 같이 당하지는 않는다.”

목리원은 굳은 목소리로 답했다.

화아아아악―!

묵색의 기파가 목리원을 감쌌다.

그 어딘가에 촘촘히 박힌 백색의 점들은 일정한 간격과 모양새를 유지하며 별자리의 형상을 띄워 올리고 있었다.

별을 이고 있는 자만이 사용할 수 있는 성련신공의 숨은 공능이었다.

운명에 저항하며 매 순간 스스로를 넘어야 하는 이에게 정신적인 패배는 안 될 말이리라.

그 무엇보다 마음의 수양을 중시해야 함에, 성련의 개파조사는 신공에 부동심의 구결을 숨겨두었고, 그것이 지금 목리원에게 톡톡히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었다.

이제 목리원은 환각의 목소리에 흔들리지 않았다.

흔들릴 시간에 한 발짝이라도 더 내디뎌야 함을 이제 알기에, 그리하여 마침내 손에 쥐어야 할 것이 이제는 있기에 그저 발걸음을 보챌 뿐이다.

성운 위로 검기가 덧씌워진다.

목리원은 흐린 인간의 형상을 그리기 시작하는 환각을 눈에 담고, 그것을 베어냈다.

서걱―

신기루가 되어 환영이 흩어졌다.

그렇게 환영이 스러지며 드러난 것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깊고 어두운 동굴이었다.

*

똑― 똑―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울림에 당화서는 눈을 떴다.

시야는 어두워 앞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기감을 퍼뜨려 공간을 인지할 뿐이다.

인상이 찌푸려진다.

벌써 2주… 아니, 3주가 되었을까.

이 동굴에 갇힌 지 얼마나 되었는지를 판단하는 일이 슬슬 힘들어지고 있었다.

문득 돌이키는 것은 지난 일이다.

실종사건을 보고받고 백련교와의 연관성을 고려해 직접 조사에 나섰고, 그러던 중 덜미를 잡아 움직였다.

그렇게 막 진법의 위치를 파악한 순간, 아이 하나가 진법에 빨려 들어가는 꼴을 보고 무심코 달려든 것이 결국 진법에 갇히는 결과로 이어져 버린 것이다.

명백한 실수였다.

아이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절로 움직인 것이었으나, 다시 생각해보면 이런 산골짜기에 아이가 홀로 있는 것이 이상하지 않던가.

미끼일 것을 고려해야 했건만 그리하지 못한 것이다.

당화서는 쓰게 웃었다.

‘물들었구나.’

목리원에게 물들어버린 걸지도 몰랐다.

일단 눈앞에 위험해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검부터 뽑고 보는 그 성향이 옮았다고 보는 게 좋겠지.

목리원이 그럴 때마다 제지해주는 역할이었건만 언제부터 이리 되었을까.

당화서는 후욱 숨을 내쉬며 생각을 털어냈다.

푸념이나 할 때가 아니었다.

‘식사를 못 한지 너무 오래됐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이나 비상시를 대비해 챙겨다니던 벽곡단으로 끼니를 해결했으나 그것도 다 떨어졌다.

초절정에 이른 몸이니 금방 죽어 나자빠지진 않겠지만, 이제 슬슬 출구를 못 찾으면 위험한 수준이 되었다.

‘한데….’

출구를 찾을 방도가 있어야지 원.

진법에 갇히고 빠져나오는 데만 사흘이었다.

온갖 잡스러운 환각이 다 나오는데 그걸 버티고 걸음을 옮기려니 길을 인지할 새가 있었겠는가.

진법을 빠져나올 때쯤엔 앞뒤 구분도 흐려져 빠져나갈 수 없는 상태였다.

그 후로도 그랬다.

‘이놈의 동굴은 뭐 이리도 긴 건지.’

기감을 넓혀 공간을 파악한 뒤로 내내 걸음을 옮겨 봤으나 좀처럼 동굴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같은 곳을 몇 번 맴돌긴 했으나, 그럼에도 이해가 안 되는 크기의 동굴이었다.

무엇보다 그런 상황에서 당화서를 더욱 힘겹게 하는 것이 있었다.

자박, 자박.

발소리와 동시에 인간의 기척이 잡혔다.

당화서는 독무를 발했다.

“썩을 놈들.”

안력을 돋우니 흐릿하게 인영들이 보였다.

무기를 들고 있는 괴한들.

습격자였다.

“쳐라―!”

동굴 속이 울리는 외침과 함께 그들이 달려들었다.

당화서의 독기가 공간 전체를 메웠다.

“꺼어억…!”

“끄아아악!!!”

상황은 재빨리 정리됐다.

습격자라곤 하나 무공 수위는 일류에서 절정 사이.

주기적으로 달려들어 정신력을 갉아먹는다는 점을 빼면 처리가 그리 힘들진 않았다.

하지만 역시 체력이 문제다.

“쿨럭!”

당화서는 기침을 흘렸다.

입안이 비릿했다.

피인가, 피로가 극심히 쌓이니 이런 꼴을 다 당해보는 듯하다.

‘마음에 안 드는 놈들이구나.’

아이를 미끼로 쓰는 것부터 이리 갉아먹듯 사냥하는 방식도 뭣하나 마음에 드는 게 없다.

동굴만 아니었다면 죄다 부숴버리고 싶은 심경이었다.

당화서는 눈을 질끈 감아 속을 진정시키고 다시 일어섰다.

걸음을 옮기며 떠올리는 것은 역시 목리원이었다.

갑자기 실종되어 걱정이 많을 텐데, 혹 자신의 실종 소식에 단주로서의 직위도 내팽개치고 오는 것은 아닐까.

아직은 감정적인 면이 보이는 목리원이라 그런 걱정이 잦아들질 않았다.

외에도 그랬다.

혹여 맹의 임무로 이곳을 조사하기 위해 오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인다.

두 가지 마음이 충돌한다.

목리원이 제발 이곳에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그리고 그를 한 번이라도 더 봤으면 하는 마음.

이대로 가다간 정말 죽음이 코앞에 다가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감상적이라도 되는 건지, 당화서는 어둠 위로 목리원의 얼굴을 그리기 시작했다.

어여쁜 얼굴로 미소 짓던 것도, 잔뜩 움츠러들어 떨던 것도 떠올리니 모두 지극한 만족감을 준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덮쳐버리기라도 할 걸.

그랬다면 죽는 게 이만큼 억울하지도 않았을 텐데.

생의 끝이 다가오는 순간에 한다는 생각이 겨우 이런 것이라, 당화서는 작은 부끄러움을 느꼈다.

하나 어쩌겠는가, 그런 사람인 것을.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쿠르르르―

땅이 진동했다.

당화서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이제껏 걸어온 길쪽이었다.

‘무슨….’

당화서의 눈이 찢어질 듯 크게 뜨였다.

그냥 진동이 아니다.

이것은 충격에 의한 진동이었고, 그 충격은 인위적인 힘에 의한 충격이었다.

그걸 모를 수가 없었다.

아주 익숙한 기가 퍼져 나오고 있었기에.

“허…!”

당화서는 헛웃음을 흘렸다.

이건 설마 꿈일까.

“목 소협….”

피부 위로 닿는 기파는, 목리원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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