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249화 (249/334)

EP.250 이부 사장 - 단주 (2)

* * *

어쩌면 애써 외면하고 있던 걸지도 모른다.

벌써 7년이나 지났음에도 다시 강호로 나오면 그 시절처럼 함께 강호를 주유할 수 있으리란 막연한 기대감을 품었다.

즐거운 일이 가득할 것이라는, 그 시절처럼 울고 웃으며 성장할 수 있으리라는 신기루 같은 믿음이 속에 있는 것이다.

그런 목리원에게 현실이 말하고 있었다.

7년은 그의 생각보다 훨씬 길었으며, 그간의 변화는 기대와는 다른 형태라고.

“이래봬도 가주가 아닌가. 슬슬 가문의 일을 돌보러 가야 하네.”

제갈산이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저도 아미파에 돌아가요. 수련 기간이 끝났거든요. 으으, 가기 싫어라.”

혜운이 투덜댔고,

“본산에 새로운 제자들이 들어왔습니다. 부끄럽게도 그들을 이끄는 입장이다 보니….”

이제 2대 제자의 우두머리가 된 일운은 겸양을 떨었다.

그렇다.

그들 모두가 제각기의 자리가 있었다.

특히 남궁진천은 그랬다.

“나는 세가의 후계자다. 이제 미뤄뒀던 교육을 받아야겠지.”

그는 가문의 소가주였으며, 한 사람의 남편이자 아버지인 가장이었으며, 강호의 기둥인 사내다.

성격은 변하지 않았다 한들 상황은 변한 것이다.

그는 이제부터 어깨에 짊어진 짐들을 위해 살아갈 것이었다.

목리원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허탈함이 속을 가득 메우고 있어 그에 헤어 나오기가 쉽지 않았다.

달싹달싹 입술을 뻐끔거리며 말을 지어내고 지워낸다.

그 끝에서 결국 억지로 미소를 그려낸다.

“그렇지, 다들 바쁘겠구려.”

변했구나.

아직 마음은 그 시절을 그리건만 1기 용봉단은 이제 서로가 다른 길을 가는구나.

문득 감상적인 기분이 떠오른다.

“목 아우, 표정이 왜 그러나.”

제갈산이 어깨동무를 해온다.

목리원은 말했다.

“그냥… 세월이 흐른 것이 실감 되어서 말이오.”

그 말에 단원들의 표정이 변한다.

남궁진천을 제외한 전원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떠오른다.

괜히 분위기를 처지게 만든 건가 싶어 수습하려 했으나, 그보다 제갈산이 빨랐다.

“뭐 그리 죽상인가.”

목리원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실실 웃는 얼굴이 7년 전과 같았다.

“다신 안 볼 사람도 아니지 않나? 게다가 소속이 있다 해도 함께 강호를 주유할 일이 또 있을지 누가 알겠나?”

미래를 기약하는 말이다.

또한, 위로하는 말이다.

혜운이 동참했다.

“목 시주님도 참 감성적이시네. 산에만 살아서 철이 덜 들었나 봐.”

“혜운 스님, 그런 말은….”

“일운 스님이나 착한 척 그만 해요.”

“….”

일운이 뒤통수를 한 대 맞은 표정이 되었다.

그에 다들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목리원도 마찬가지였다.

“맞소. 내가 아직 철이 덜 들었나 보구려.”

감정을 수습한다.

그래, 과거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는 법 아니던가.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는 법이다.

그에 관해 목선오도 말하지 않았던가.

-수많은 인연이 엮어 은원이 되는 것이 강호다. 그러니 원아, 많은 이들을 만나거라. 그리 나아가 지나온 길은 끝에서야 돌아보거라. 너의 강호가 어떠하였는지는, 그 날에야 알 수 있을 터이니.

목리원은 미소를 짙게 만들었다.

“또 볼 수 있겠지. 영 여건이 안 된다면 내가 보러가면 되는 일이고.”

“그래! 언제 한 번 제갈 가에도 들르게나. 내 성대하게 환영해주겠네.”

“아미파엔 오지마요. 아니, 오지도 못하나? 애초에 금남구역이라.”

“소림은 반기겠습니다.”

공간에 웃음기가 가득해지기 시작한다.

당화서가 나섰다.

“되었으니 식사나 하지요.”

“누님, 그렇게 식탐 부리시면 살찌… 끄헉!”

그리 많은 것이 바뀌었음에도 이런 점만큼은 여전함이라.

목리원은 이 광경을 눈에, 그리고 기억 속에 담아냈다.

*

식사 자리라 했으나 결국은 술판이다.

혜운과 제갈산이 끼어 있으니 그런 분위기가 되고 마는 것이다.

언제나처럼 두 사람이 만취해 붉은 얼굴로 소리를 지른다.

당화서는 취기를 모르는지 고요한 얼굴로 잔을 홀짝였고, 일운은 몰래 고기를 주워먹고 있었다. 남궁진천 또한 남궁영의 입에 잘게 자른 고기를 물려주기 바빴다.

그런 순간이 다 지나니 이제 정말 헤어질 시간이다.

하나둘 작별 인사를 마치고 떠나가는 와중,

“묵룡.”

남궁진천이 목리원을 불러세웠다.

목리원은 그를 바라봤다.

잠든 남궁영을 품에 안은 채로 부라리는 눈빛이 사납다.

이젠 완전히 기백을 갈무리할 수 있는 지경이 되었음에도 쏘아지는 기파가 날카롭다.

이윽고 나오는 말은 그랬다.

“다음엔 안 진다.”

각오를 전해오는 것이었다.

비무제의 패배를 두고 하는 말이겠지.

그 말이 참 반가워, 그리고 여전함이 고마워서.

“남궁 형은 맨날 다음이라고만 하는구려.”

목리원은 장난스레 그리 말했다.

“썩을 놈.”

남궁진천은 흥 코웃음을 치며 돌아섰다.

이젠 도발도 잘 안 먹히는 걸까… 아니, 괜히 돌부리를 걷어차는 걸 보니 그건 아닌 듯하다.

떠나는 동료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당화서가 말했다.

“저희도 슬슬 가지요.”

“그럽시다.”

돌아간다고 해봐야 결국 당문의 장원 내였으나 그 길은 짧지 않았다.

장원이 오래 걸어야 할 크기라기보단, 가는 길을 빙빙 두르기 때문이었다.

산보하듯 걸음을 옮겨 정원으로, 그곳에 앉아 바람을 쐬며 연못을 바라본다.

듣기론 당화서가 용봉단의 전각을 추억하며 만든 못이었다.

확실히 그곳에 있는 연못과 비슷했다.

“취기는 좀 어떠십니까?”

당화서가 물어왔다.

“목 소협은 술을 잘 못 드시지 않습니까.”

“적당히 마셨소.”

“취기라도 흩어내면서 마시시지 그러셨습니까.”

“어지 그러겠소. 이별하는 자린데 취해야지.”

안 그러면 또 울상이나 지을 것 아니오?

목리원이 장난스레 말하자 당화서가 웃었다.

그녀의 손이 뻗어 나와 목리원의 뺨에 닿았다.

“뜨겁습니다.”

“취기가 올라 그런 듯하오.”

“정말 그뿐입니까?”

스윽, 당화서의 엄지가 뺨을 타고 광대를 쓸었다.

예의 찌릿한 감각이 또 치솟는다.

동시에 인지하기 시작한 취기가 확 돋는 듯한 감각이 일었다.

‘으음… 너무 마셨나?’

그렇다해서 갑작스레 취기가 솟을 이유는 없을 텐데.

연유를 생각해보려 해도 길게 사고가 이어지진 않았다.

취기가 꽤 극심했다.

와중에도 당화서는 여유로운 얼굴이었다.

목리원은 혼자만 취하지 않는 당화서에 괜한 심술이 차올라 그녀를 노려봤다.

어찌 골려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 고개를 들이밀었다.

쪽―

하고 짧게 입을 맞췄다.

당화서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떠올랐다.

목리원은 헤실헤실 웃었다.

“복수요.”

당화서의 입술이 뻐끔거렸고 이내 그녀에게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취한 상태라 깊이 생각할 수 없었으나, 목리원이 보기엔 ‘네가 감히?’라는 표정인 듯했다.

아니, 흡족함일까.

“그리하시면 못씁니다.”

당화서가 부드럽게 목리원을 이끌었다.

목리원은 그녀의 의도대로 끌려갔다.

이후의 일은 기억에 없었다.

목리원은 아직 모르는 것이다.

지난 7년간, 그녀가 몸에 들어온 술을 분해하지 않고 그 주정을 한데 모아 독으로 쓸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목리원은 오늘도 서서히 조교 되고 있었다.

*

잠에서 깨니 입술이 따가웠다.

동경을 보니 왜인지 입술에 이빨 자국이 나 있었다.

꽤 깊이 파여있는 것이 쉬이 지워지지 않을 흔적 같았다.

목리원의 눈이 좁아졌다.

“소저.”

“예.”

“소저가 한 짓이오?”

전날의 기억은 불안정하나, 어렴풋이 그녀와 입을 맞췄다는 것은 기억나고 있었다.

범인을 찾으려면 분명 그녀이리라.

취조하는 듯 질문을 건넸고, 그녀가 답했다.

“예, 맞습니다.”

“허어…!”

목리원은 크게 탄식했다.

크게 한마디 하려는 순간이었다.

“안 됩니까?”

“그… 음?”

“안 되냐고 물었습니다.”

탁, 당화서가 젓가락을 상에 놓았다.

시선이 똑바로 목리원을 향햐고 있었다.

목리원은 움츠러들었다.

“다, 당연히….”

“연인 사이인데 입맞춤이 안 된단 말입니까?”

그건 아니긴 하다.

하지만 어찌 이리 자국이 남을 정도로 강하게 입을 맞춘단 말인가.

오늘 일이 없는 것도 아니고 곧장 단주로서 일을 하러 가야 하지 않나.

그런 일들을 말하려는 순간이었다.

“먼저 입을 맞춰온 것은 소협이지 않습니까? 저는 거기에 응했을 뿐이고요. 목 소협, 진지하게 묻겠습니다. 먼저 일을 행해놓고 상대방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진정 협객의 자세입니까?”

“아, 아니긴 한데….”

“그럼 소협은 스스로 협객다운 일이 아님을 알고서도 제게 책임을 물으시려는 것이군요?”

그 말을 들으니 일리가 있었다.

일견 뻔뻔해 보이는 태도이긴 하나 논리만큼은 확실히 이해가 되는 선이었다.

목리원은 뻐끔뻐끔 입술을 달싹이다, 결국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미안하오.”

당화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다가와 목리원을 품에 안았다.

“목 소협, 이번 한 번만 봐드리겠습니다. 다음부턴 같은 일로 탓을 해선 안 됩니다?”

“유념하겠소.”

“옳지.”

당화서는 싱긋 웃곤 쪽 소리가 나게 입을 맞췄다.

말캉한 감각에 목리원의 뺨이 붉어졌다.

당화서는 말했다.

“흉을 남긴 건 미안합니다.”

이렇게 사과까지 해오다니, 목리원은 그만 아주 나쁜 사람이 된 기분에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다.

당화서는 그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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