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248화 (248/334)

EP.249 이부 사장 - 단주 (1)

* * *

솔직한 말로, 더 이상 청룡 비무회의 시상식 따위는 중요치 않게 여겨질 대사건이었다.

목리원은 멍한 얼굴로 시상대에 올라 옆에 선 남궁진천을 흘금흘금 바라봤다.

‘할 거 다 하고 사는구나.’

혼인도 영이를 낳은 것도 정말 놀랄 일이었지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무렴, 7년이나 지났는데 그 정도 변화는 있을 법하지 않던가.

하지만 이번 둘째는 정말 의외였다.

대충 들은 시기대로라면 비무에서 진 그날 바로 아이를 가졌다는 것이니 말이다.

“음….”

“왜 그렇게 보지?”

“아무것도 아니오.”

목리원은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왜인지 남궁진천보다 못한 사람이 된 것 같다는 오묘한 감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다음으로 시상이 있겠소!!!”

그런 생각이나 떠올리는 중에도 시상식은 이어진다.

여러 공연이나 연설 따위의 행사가 다 지나고 이제야 본 시상.

3위는 일운이었다.

3등 상은 백 년 하수오 한 뿌리.

썩 만족스러운 것인지 일운의 얼굴 위론 미소가 가득했다.

직후 그가 돌아오자 다음 순서가 이어졌다.

남궁진천이었다. 준우수상도 마찬가지로 영약이었고, 공력의 상승을 꾀하기에 퍽이나 효율이 좋은 물품이라는 말이 있었다.

일반적이라면 그 영약의 내용물이 무엇인지 궁금해했겠지만, 오늘 그에 관해 궁금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사람들의 관심은 이미 다른데 다 빼앗겨 있었다.

이번 청룡 비무회에서 초월지경에 이른 남궁진천에게 새로운 별호가 붙은 까닭이다.

목리원은 피식 웃었다.

‘참 어울리는 별호란 말이지.’

관객석에서 환호성이 튀어나왔다.

“검치!!!”

검치(劒痴), 검에 미친 바보. 그것이 남궁진천의 새로운 별호였다.

초월치곤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는 별호였으나, 어찌하겠는가.

별호란 결국 강호동도들이 무인의 특성을 보며 짓는 것이다.

그날 남궁진천이 검강을 발하며 외친 ‘검룡, 등장’이라는 말이 온 비무장에 다 퍼져나간 탓에 저런 별호가 붙은 게 아니겠나.

업보라 할 수 있었다.

남궁진천의 표정이 왈칵 구겨졌다.

목리원은 낄낄 웃었다.

그가 자리로 돌아온 순간 목리원은 물었다.

“이제 검치 형이라 불러야 하오?”

“죽고 싶나?”

“그럼 남궁 형이라 불러야겠구려.”

언젠가 그 호칭이 소름 끼친다며 절대 불가를 외치던 남궁진천은 차마 거절하지 못하는 것인지 이를 빠득빠득 갈았다.

셈을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윽고 그가 말했다.

“기어오르지 마라.”

목리원의 속에 즐거움이 자리했다.

그런 순간이 이어지던 중이었다.

“다음으로 우승자의 시상이 있겠소!”

목리원의 차례가 왔다.

우승 상품은 7년 전 청룡 비무회에 걸려있었던 공청석유 1병.

1방울이 아닌 1병.

과분한 보상이었다.

*

시상식이 다 마무리되며 청룡 비무회도 끝을 맺었다.

이제 한동안 어딜 가도 난리였던 무한이 조금 조용해질 터였다.

목리원의 생활도 그랬다.

그간 신경을 많이 써왔던 큰일 하나가 끝난 참이니 오늘은 여유로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물론 당화서와 함께 말이다.

당가의 장원으로 돌아오니 당화서가 다가와 목리원을 포옹했다.

“우승 축하드립니다.”

“흐읏…!”

“왜 그러십니까?”

“아, 아무것도….”

몸이 닿을 때마다 왜인지 등골이 저릿하다는 말을 내뱉을 수는 없었다.

그렇지 않나, “소저가 내 몸에 손을 댈 때마다 기분이 이상해지오”라고 말은 음적이나 할 법한 종류가 아닌가.

분명 그녀를 다시 만난 이후 뭔가 조금씩 이상해지고 있는데 연유를 확실히 알 턱이 없으니 목리원의 속은 나날이 갑갑해지고 있었다.

그런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당화서는 싱긋 웃으며 목리원의 등을 쓸었다.

그리한 후에야 거리를 벌렸는데, 마지막 순간 등골을 훑던 손의 감각이 아직 목리원에게 남아 몸을 저릿하게 하고 있었다.

“한데 영약은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당화서가 말을 돌렸다.

목리원은 그에 별달리 깊은 생각을 더하지 못하고 답했다.

“일단은 놔둘 생각이오.”

“바로 드시지 않구요?”

“그렇소. 무공 특성이 있는지라.”

성련신공은 심기체의 합일과 균형을 극도로 중시하는 무공이었다.

그중 하나의 요소가 다른 요소보다 돌출되면 불균형 탓에 몸이 무너질 위험도 있을 정도였다.

멀리 갈 것도 없이 7년 전 억지로 초월의 문을 연 후로 뒤틀린 균형을 다시 잡는 데만 이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나.

공청석유는 한 방울만 해도 공력을 크게 증폭시키는 영약 중의 영약이다.

초월이 되며 그릇이 넓어졌다 하나, 그런 영약을 단번에 들이켰다간 균형이 어그러질 것은 뻔한 일.

나눠 마시거나, 혹여 깨달음이 있는 순간에 몰아 마시거나 훗날을 도모하는 방식으로 쓰는 게 옳았다.

목리원은 순간 당화서를 바라봤다.

이런 질문을 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어 질문을 건넸다.

“혹 필요하오? 몇 방울 정도라면….”

“괜찮습니다. 제가 그런 걸로 눈치 줄 사람으로 보였습니까?”

“그, 그건 아니오.”

“애초에 공청석유가 제게 큰 의미가 있진 않습니다. 저는 공청석유보다 독단에서 더 큰 공력을 얻으니까요.”

괜히 쪼잔한 사람으로 만든 건가.

목리원은 머쓱함에 뺨을 긁적였다.

당화서는 그런 목리원을 흘긋 보며 중얼거렸다.

“…게다가 건강해지셔야지요.”

“음?”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보다 이제 가셔야지요. 단원들을 교육할 시간입니다.”

“아, 시간이 벌써 그리되었구려. 그만 다녀오겠소.”

축객령이었다.

목리원은 싱긋 웃는 얼굴로 당화서에게 인사를 전한 뒤 문을 닫고 그녀의 집무실을 나섰다.

달칵.

방에 홀로 남은 당화서는 그가 사라진 자리를 빤히 보며 직전의 순간을 되새겼다.

손이 닿는 순간부터 뻣뻣해지던 몸, 파르르 떨리던 속눈썹, 그리고 안절부절못하는 태도.

계획대로였다.

“슬슬 반응이 오는구나.”

삐뚜름한 미소가 그녀의 입가에 걸렸다.

남궁진천의 둘째 소식은 엉뚱한 곳에서 그 효용을 발휘하고 있었다.

*

본격적인 용봉단의 활동이 코앞으로 다가온 시기였다.

비무회가 끝났으니 목리원도 단주로서의 업무에 집중해야만 했고, 대략적인 인수인계도 마쳤으니 지금 집중해야 할 것은 단원의 관리.

목리원은 용봉단의 전각에 도착해 집무실로 단원들을 불러 모았다.

“우승 축하드려요!”

남궁소아가 환히 웃으며 서두를 열었다.

그 뒤로 강서휘와 언혁이 박수를 쳤고, 모용진은 고개를 끄덕였으며 백경오는 생글생글 웃었다.

부하에게 축하받는 일은 목리원에겐 낯선 종류였다.

“고맙구나. 내 부끄럽지 않은 단주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마.”

돌이켜보면 초출 당시는 어딜 가나 막내 취급이었다.

가진바 무력이 있어 존중은 받았다곤 하나, 그것이 실질적인 상급자로 자리하는 것과는 괴리가 있지 않던가.

이 아이들과 강호의 일을 헤쳐 나갈 것이라 생각하니 걱정이 조금씩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잘 준비시켜야겠지.’

생각한 목리원은 말했다.

“자, 비무회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앞으로 우리가 할 임무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꾸나.”

“음? 그냥 임무 아니에요?”

“용봉단의 임무는 다른 단이 하는 것과는 조금 궤를 달리한다. 소수정예, 그것이 우리 단의 특징이지.”

목리원은 곧장 잠입이나 위험 지역의 조사, 그리고 침투 및 기습과 선발대로서의 역할을 단원들에게 설명했다.

실제로 다 해본 적이 있던 일인 만큼 경험을 곁들이니 설명이 그리 어렵진 않았다.

“…해서, 본격적인 임무가 떨어질 때까지는 교육 위주로 단의 활동을 진행할 것이란다. 그것 외에 다른 단과의 비무 정도가 있겠구나.”

“친선 비무를 말하는 거 맞습니까?”

역시 눈을 빛내는 것은 투천성의 주인인 백경오였다.

오늘 중 처음으로 생기가 돌기 시작하는 얼굴에 목리원은 헛웃음을 흘렸다.

“그래, 친선 비무. 내 다른 단과 할 일이 생긴다면 말해주마.”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좋다. 그럼 다음 얘기로 넘어가서….”

지루하다면 지루한 설명이 쭉 이어졌고, 용봉단 활동의 첫 날은 그렇게 저물어갔다.

목리원은 단원들을 해산시키고 돌아갈 준비를 했다.

본래라면 이곳에서 함께 생활하는 것이 맞긴 하나, 당화서의 주장이 그런 일을 가로막았다.

-단주와 단원 사이의 경지 간극이 너무 크면 단원들이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조금은 거리를 두고 생활하는 편이 좋을 겁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확실히 지금 저 단원들 사이에 파고들었다간 저들이 자신을 모시려들 것이 아닌가.

온종일 상급자가 함께 있는 경험은 그리 유쾌하지 않을 것임을 목리원도 알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목리원의 잠자리는 여전히 당가의 장원.

짐을 정리한 목리원은 당문의 장원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곳에 와있던 동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음? 다들 어쩐 일이오?”

그 말에 답한 것은 제갈산이었다.

“비무회도 끝났으니 우리 모두 떠나야 할 것 아닌가. 작별인사를 하러 왔네.”

그에 목리원은 탄식을 흘렸다.

‘아….’

이들도 이제 각자의 자리가 있는 것이구나.

그 사실이 새삼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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