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48 이부 삼장 - 남궁진천 (8)
* * *
별의 파편이 쏟아져 내리는 비무는 아름다움의 극치에 있었다.
그들의 검로 하나하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경이로움을 담고 있었고, 그들의 걸음걸음은 천지를 진동시킬 거력을 담고 있었다.
그것은 누군가에겐 분명한 깨달음의 장이었다.
이해를 벗어난 비무는 벽 너머에 있는 새로운 세계를 얼핏 보여주었고, 그조차 이해하지 못한 이들에겐 아득한 무의 세계가 있음을 증명해주었다.
하여 자리한 무인들은 이 비무가 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속을 간질이는 이 깨달음의 장이 한순간이라도 더 이어지길 바랐다.
그럼에도 시간은 흘렀고, 승패는 결정났다.
“무, 묵룡… 묵룡 목리원, 스으으으으응!!!”
대체 어떻게 그가 승리한 것인지 이해한 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대다수의 무인들은 일방적으로 밀리던 남궁진천이 벽을 넘은 후 목리원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는 것밖에 이해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몰아붙인 자가 패배한 양상을 이해하려면 목리원이 초월에 이르며 얻은 것들을 정확히 알 필요가 있었으나, 이들에게 그런 지식은 없었다.
아무튼, 승패가 결정 났으니 그들이 할 일은 명확했다.
“와아아아아아!!!”
강호의 정상에 선 젊은 초인들에게 찬사를.
*
졌다.
이제야 현실감이 되돌아옴에 남궁진천은 그 사실을 깨달았다.
한 발짝도 더 움직일 수 없을 만큼 혹사당한 몸이 이제 그만 쓰러지자 말했으나, 남궁진천은 그러지 못했다.
그러기엔 이제야 손에 쥔 것이 너무 소중했다.
어느 때보다 후련한 가슴이 상쾌했고, 벅차오르는 희열이 기꺼웠다.
헉헉 숨을 내쉬며 고개를 드니 만신창이가 된 목리원이 보였다.
그 또한 미소 짓고 있었다.
“거 너무한 것 아니오? 이리 몰골로 만드시고.”
졌다.
졌지만, 전처럼 무력하게 지지는 않았다.
단 한 번도 목리원에게 제대로 닿아본 적 없던 검이 드디어 그에게 닿았다.
내내 좁혀지고 추월당해 벌어졌던 격차는 다시 한번 좁혀졌다.
목리원을 이기지 못했으나, 스스로를 이겨내었다.
자기만족일지도 모르나 그 사실이 남궁진천으로 하여금 진한 감격을 떠오르게 했다.
“…닿았다.”
“음?”
“검이 닿았다.”
틀리지 않았다.
제왕성이 아닌, 남궁진천의 길이 틀리지 않았다.
기어코 그것을 증명해내고 만 것이다.
“푸흐흐….”
목리원이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래도 이긴 건 나요.”
그 말에, 남궁진천 또한 웃으며 손을 맞잡았다.
“다음엔 안 진다.”
“또 다음이구려.”
“도발인가?”
“도발이오.”
그렇다면 얼마든지.
“받아주지.”
고막이 터질듯한 함성이 공간을 휩쓸었다.
“와아아아아아아!!!”
7년의 여정은, 그렇게 초월이라는 종착점에 다다라 두 번째 여정의 출발을 앞두고 있었다.
남궁진천은 새로운 여정의 시작에 가슴이 쿵쿵 뛰는 기분을 느꼈다.
*
남궁진천은 비무대를 내려와 복도를 걸으며 초월에 이르던 순간을 되새겼다.
어떻게 그 경지에 다다랐는지, 그 순간의 희열은 무엇이었으며 기의 유동은 어떠했고 목리원에게 닿았던 검이 어찌 휘둘러졌는지까지.
모든 것을 떠올리려 했고, 무엇도 떠올리지 못했다.
무아지경에 이른 상태에서 본능에 이끌려 휘두른 검은 그다지도 의뭉스러운 구석이 있어 파악하기가 힘든 것이었다.
아마 깨달음과 닮아있을 것이다.
그때의 감각을 몸에 완전히 녹여내기 위해선 한동안 명상에 빠져 비무를 복기하는 일에 빠져 살아야 할 터였다.
그 사실이 전처럼 아프게 다가오진 않는다.
도리어 설렘을 주기까지 한다.
더 나아갈 수 있다. 성장할 수 있다.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차니 두려움이 없는 것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아빠야!”
남궁영이 복도 끝에서부터 도도도 달려온다.
그 뒤로 지그시 웃으며 서예가 걸어온다.
남궁진천은 작게 웃으며 달려오는 남궁영을 안아들었다.
“왔나.”
“아빠야 무시써!”
남궁영의 외침에 남궁진천의 미소가 진해졌다.
“나도 안다.”
“엄청 반짝거리고…! 막 쾅쾅하고…!”
아이의 언어는 그리 풍부하지 않아 남궁진천이 휘두른 수에 그럴싸한 표현을 덧붙이지 못했다.
하나 그 진심만은 온갖 미사여구를 덧붙인 말보다 더 확실히 전해져왔다.
그렇기에 기쁜 것이었다.
남궁진천은 속이 따스해지는 감각에 남궁영을 더 꼭 끌어안았다.
“아빠야.”
“그래.”
“영이도 아빠야처럼 반짝반짝할 수 이써?”
기대감에 차서 묻는 말에, 남궁진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스스로를 믿는다면 얼마든지.
그리고 미소를 잃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아, 그런 것이었나.
남궁진천은 뒤늦게 깨달았다.
“그래서 어땠어요?”
서예의 물음이 마침 그 답과 이어져 있었다.
남궁진천은 지그시 웃는 아내를 마주하며, 비무대 위에서 보였던 환한 미소를 띄워 올렸다.
“즐거웠다. 살아온 어느 때보다.”
다만 즐길 줄 아는 마음으로 미쳐 휘두르는 검이야말로, 극의로 이르는 길임을 깨닫는다.
“나랑 있을 때보다 즐거웠다고?”
오싹, 남궁진천이 몸을 부르르 떨자 남궁영이 꺄르륵 웃었다.
서예 또한 쿡쿡 웃으며 다가와 남궁진천을 끌어안았다.
“고생했어요.”
장난이었구나.
장난이 맞나? 맞겠지. 맞아야 할 터다.
남궁진천은 괜히 천장을 바라보며 답했다.
“…사랑한다.”
“저두요.”
“영이도!”
부디 오늘 밤이 무사히 지나가길.
남궁진천은 그리 빌었고, 현실은 바람처럼 되지 않았다.
“나는 부상자….”
“가만히 있어요. 알아서 할 테니까.”
즐기는 마음. 즐기는 마음.
남궁진천은 그 깨달음에 밤새 매달려야만 했다.
*
정확히 이주가 지난 시상식 날이었다.
“둘째 생겼어요.”
올 것이 왔구나.
남궁진천은 눈을 지그시 감았고 가주는 입을 떡 벌렸으며 남궁영은 고개를 갸웃했다.
“두째?”
“영이 동생이 생겼단다.”
“도, 동생…!”
당황은 잠시, 이윽고 남궁가의 장원은 축제 분위기가 되었다.
가주와 남궁운은 서로를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다.
“운아, 됐다! 진천이가 해냈다! 저놈이…!”
“형님! 아들이겠죠? 우리 세가 이어지는 거죠? 예?!”
“아들이면 어떻고 딸이면 어떠냐! 응?”
청룡 비무회의 준우승 시상이 다 뭔 말인가.
이들에겐 그딴 상품보다 남궁진천의 둘째가 더 큰 선물이었다.
감히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그 꼬장꼬장하던 남궁진천이 아이를 둘이나 낳을 줄은.
사실상 남궁영을 끝으로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을 줄 알고 가문의 데릴사위를 찾아봐야 하나 고민하던 가주는 이제야 한시름 놓고 있었다.
“우리 영이! 이 할애비랑 평생 살자!”
“할아방 좋아!”
“아이고!!!”
가주는 남궁영을 안고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암, 어느 놈팽이 같은 놈에게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손녀를 넘겨준단 말인가.
절대 그런 일은 있어선 안 된다. 만약 사후에 그런 일이 생겼다간 강시가 되어 일어나서라도 찢어 죽이리라.
‘사내! 사내아이여야 한다!’
말로는 상관없다 해도 호오 정도는 있었다.
아니, 둘째가 손녀라도 상관없나?
놈팽이 놈들을 다 찢어죽이면 그만인 일이다.
그럼! 그렇고 말고! 어차피 소아가 남편을 데려올 것 아닌가.
데릴사위로 들여 소아에게 후계를 낳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잠깐.’
그럼 소아를 놈팽이 놈에게 줘야 하나?
가주는 혼란에 휩싸였다.
움직임이 우뚝 멎었고 얼굴에선 영혼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웅? 할아방?”
어딜 가도 죽음뿐인 미래라니.
가주는 뒷골이 확 당겨오는 기분을 느꼈다.
“억, 어어억…!”
“가주님?”
“냅둬라. 늘 있는 발작이다.”
남궁진천은 서예와 남궁영을 데리고 자리를 나섰다.
시상식 참여를 위해 슬슬 준비해야 했다.
둘째 아이라니, 아직 잘 실감이 나진 않지만 설렘은 있었다.
“영이 동생 언제 와? 어디써?”
“엄마 뱃속에 있지. 아직 많이 기다려야 한단다.”
“빨리 오라고 하면 안대?”
“빨리 오면 동생이 아야 한단다?”
“우움…!”
남궁진천은 작게 웃었다.
충만함이 속에 들어찬다.
근래 들어 이리 웃음이 많아지니, 그 헤픈 목리원이 된 것 같아 참 오묘한 기분이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잘살아 봐야겠다는 생각.”
“그럼 그놈의 수련은 좀 줄이고.”
“그건 불가하다. 아직 이기지 못했으니.”
서예는 못 말리겠다는 듯 피식피식 숨을 흘렸다.
눈빛엔 따스한 애정이 가득 담겨있었다.
“이길 때까지 그러시겠다?”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될 때까지.”
“혀 놀리는 거 봐? 안 어울리게.”
남궁진천은 속으로 감사함을 전했다.
남편되어 가정보다 승부에 목숨거는 이런 사내를 사랑해주는 일이 쉽지 않음을 이제는 알기에.
“…준우승 상품이 영약이더군.”
“먹게요?”
“영이를 먹이려고 한다.”
이제 남궁진천은 양보를 알았다.
누군가에게 나눔으로서 더 충만해질 수 있음을 알았다.
그런 마음을 담아 말하자, 서예가 답했다.
“자랑스러운 아버지 맞네.”
“영약모야? 마시써?”
“쓰다.”
“그럼 안 먹을래!”
꺄르륵 웃음소리가 남궁가의 장원에 가득 울려 퍼진다.
따스한 햇살 아래 남궁진천은 시상식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둘째?”
“습, 내가 아직 꿈을 꾸고 있나보군. 누님, 거 배 한 대만 쎄게 때려주시… 억!”
동료들의 축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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