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47 이부 삼장 - 남궁진천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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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리원의 검이 변했다.
검로도 기세도 그 변화무쌍한 모습도 그대로였으나, 남궁진천은 단번에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굳이 비유해보자면 그랬다.
이제까지의 검이 상대를 압도하는 강자의 검이었다면, 지금의 검은 온화함을 품은 스승의 검이었다.
봐주는 건가, 그도 아니면 지도 대련 따위의 양상으로 끌고 가 모욕감을 주려는 건가.
뭐가 됐든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남궁진천은 속에 들끓는 불길이 더욱 거세지는 것을 느꼈다.
채애애앵―!
청아한 검명이 마음을 흐트러뜨린다.
분노와 자괴감, 열등감 따위가 온통 속을 뒤집는 것에 자연히 검로는 흐트러지고 기파 또한 흔들린다.
꼭 물속에 빠져 허우적대는 기분이었다.
암만 발버둥 쳐봐야 나아가지도 후퇴하지도 못한 채 그저 가라앉는 기분이 든다.
왜, 무엇이 이렇게까지 속을 뒤집는 건가.
왜 초월에 다다르지 못하는 것이며 왜 이 심마는 수그러들 생각을 않는 건가.
고민이 검에 묻어난다.
그럴수록 양상은 일방적으로 불리해진다.
손에 가득 힘을 주어 검을 붙들어봐도 소용이 없다.
목리원이 또다시 검을 휘둘러온다.
탁, 발을 디디고 마주 검을 휘두른다.
목리원을 바라보며, 벽을 바라보며, 그리 검을 휘두르던 남궁진천은 어느 순간 세상 모든 것들이 회백색으로 탈색되는 기분을 느꼈다.
또한 시야가 아주 길게 늘어지고 그 속을 유영하는 것들이 한없이 정지에 가까워지는 기분을 느꼈다.
의식이 현실과 꿈의 경계에 걸치는 감각.
남궁진천은 환영을 봤다.
*
“제왕의 운을 타고 났구나.”
다섯 살에 그 말을 들었다.
그 한가운데에 온통 기뻐하는 가족들과 세가의 사람들이 있었다.
남궁혁은 없었다.
때는 혈천교의 혈사, 남궁진천이 기억하는 첫 순간은 그랬다.
“세상 누구보다 높은 자리에서 설 수 있을 것이다. 너의 검이 무림을 평정할 것이다.”
남궁진천은 그 말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실제 그의 삶은 별이 이끄는 대로 움직여 위대했고 추앙받는 삶이었다.
그는 일생에 단 한 번도 패배자였던 일이 없었다.
혹여 맞이하는 고수와의 비무에서 패한들, 그것은 그저 경험일 뿐이라 치부했다.
그리하니 마음이 평온하였으며 언제나 검엔 흔들림이 없었다.
남궁혁은 말했다.
-명문의 또래 중엔 너를 이길 자가 없을 것이다.
당연하게 받아들인 사실이었다.
어쩌면 오만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이제야 눈치채길, 그는 ‘명문의 또래 중에’라는 단서를 달았다.
남궁혁은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별이 이르는 길은 비겁한 이의 길이라는 것을.
말해주지 않은 이유는 그저 스스로 깨닫길 바라서였을 것이다.
우둔하기 그지없음이라 이제야 겨우 그걸 깨닫는다.
환영이 7년 전의 목리원을 비춘다.
그의 검을 비춘다.
‘나는….’
제왕성이 그리 침착하라 울부짖음에도 패배감에 몸을 떨었다.
무릎 꿇은 스스로를 비참하게 여겼다.
스스로 깨달은 패배는 그리도 썼다.
이후는 발악의 연속이었다.
단번에 일생을 돌아보니 패배의 이전과 이후는 그리도 극명했다.
오만을 잃고 처절함을 얻어 겨우 여기까지.
패배자의 마음으로 발악해 초절정의 끝자락.
그리하여 또 패배를 앞둔 이 순간.
제왕성이 이른다.
다음을 노려라.
성장의 발판으로 삼아라.
아직 늦지 않았다.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고 재능은 너에게만 특별한 것이니 차근차근 단계를 밟으면 이길 수 있다.
그것은 사특한 속삭임이었다.
침묵하던 별이 이르는 것은 고고한 패배였다.
이제껏 입을 꾹 다물다 이제와 그걸 말하는 저의가 무엇인가.
아니, 남궁진천은 답을 알고 있었다.
‘나를 휘두를 생각이구나.’
처음 목리원에게 패배한 날 이후 대립했다.
별이 이르는 길이 처음으로 비루하게 보였던 까닭이다.
오로지 정상에만 목매어 그 과정을 외면하는 별이 그리도 비겁하고 추악해 보이지 않던가.
어차피 최후에 이기는 것은 자신이라는 속삭임은 결국 패배를 합리화하는 패배자의 변명에 지나지 않는 것 같아, 그날 이후 남궁진천은 별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것이다.
남궁진천도 알았다.
제왕성이 길을 일러주지 않는 것은 그 나름의 반항이다.
고작 별 주제에 주인을 꼭두각시로 사용하려는 사특한 심보의 발로였다.
그런 주제에 이제와서 이런 말을 하는 이유를 남궁진천은 알 것만 같았다.
‘두렵더냐.’
아직도 꺾이지 않는 자신이 두려운 것일 테지.
영영 별로서 살아가지 못함을 두려워하는 것일 테지.
한데 어쩌겠나.
남궁진천이 바라는 것은 최후의 승자가 아니었다.
그가 목표로 잡은 것은 더 이상 하늘이 아니었다.
“한 번 더 가겠소. 버텨보시오.”
채애애앵―!
눈앞의 사내다.
목리원을 이기고 싶었다.
패배를 배운 그날 이후 내도록, 미칠 듯이 모든 걸 걸어 이기고 싶은 상대는 목리원뿐이었다.
그러니,
‘닥쳐라.’
비겁한 패배자에게 투자해줄 시간은 없었다.
콰아앙!
기파와 기파가 얽히며 폭발이 인다.
흐름은 거대한 기류가 되어 공간을 뒤튼다.
남궁진천은 더욱 발악하듯 검을 휘둘렀다.
그럴수록 별의 속삭임이 멀어져간다.
남궁진천은 발을 내디뎠다.
‘묵룡을 이긴다.’
그리하기 위해서 더 높은 경지가 필요하다.
‘벽을 넘는다.’
그리하기 위해서 힘이 필요했다.
다시 세상이 속도를 되찾는다.
짓쳐들어오는 검을 노려보며 전신에 힘을 더한다.
점점 멀어지는 별이 비명을 내지른다.
귀를 닫고 정면의 목리원을 응시한다.
비교적 최근의 과거가 되새겨진다.
일운은 말했다.
-받아들이면 그만인 일입니다.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남궁혁은 말했다.
-미쳐야만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초월이다.
그러니 심마를 내려놓는다.
괴로워하지 않고 수용한다.
미쳐야 도달할 수 있는 경지니, 미치도록 갈망한다.
다시 목리원을 검을 바라본다.
그 경로를 읽고, 검을 뻗어 막고, 반격을 시도한다.
꽈아아아앙!
오로지 하나를 떠올린다.
저 검을 이기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벽이 된 사내를 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미쳐야지.’
그저 미쳐서 발광해야지.
헛된 고민에 투자할 시간조차 아까워해야지.
하면 무엇에 그리 미쳐야 하는가?
사실, 처음부터 그 답은 정해져 있었다.
남궁진천이 승패에 눈멀어 바라보지 않았을 뿐이었다.
‘검.’
검에 미쳐야 했다.
미치도록 갈망할 것은, 그것 외에 존재하지 않았다.
“아빠야!”
깨달음의 순간 파고들어 온 딸아이의 목소리가 또 하나의 기억을 끄집어낸다.
-즐겁게!
‘그래.’
내 이 검을 휘둘러주마.
세상 무엇보다 즐겁게.
결심하고 검을 내리찍는 순간이었다.
쩌저적―!
이변이 일었다.
남궁진천의 검 위로 덧씌워진 기파가 불안정하게 얼어붙었다.
유리조각처럼 깨지고 다시 재생하며 푸르게 공간 위로 비산했다.
남궁진천은 그 모든 것을 잊고 목리원을 바라봤다.
목리원과 목리원의 검을 향해 짓쳐 들었다.
목리원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개의치 않고 파고들어 오로지 검초에 집중했다.
엉망진창이다.
몸은 서서히 기파에 침식당해 만신창이가 된다.
남궁진천의 뺨 위로 핏물이 튄다. 영웅건이 잘려 나가고 옷은 걸레짝이 되고 한쪽 팔은 이미 사용이 불가한 지경이 되었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았다.
변화가 일었다.
방어와 공격을 잊고 휘두름에 형(形)이 벗겨진다.
그저 순간순간의 검을 대하기에 식(式)이 벗겨진다.
무아지경(無我之境)에 들어 오로지 하나의 감정에 몸을 맡기니,
“핫…!”
남궁진천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의 일생에 단 한 번도 지어본 일 없는 환한 미소가.
쩌저적!
결정화된 기파가 검 위로 들러붙는다.
푸르고 또 푸르게 빛나며 소름 끼치는 예기를 발했다.
그리고 굳어졌다.
검기성강(劍氣成罡).
검에 별을 담아내는 경지라, 초월의 증명이라 이르는 기공의 극의라.
그럼에도 별을 거부하기에 다다를 수 없던 경지라.
타협할 수 없다면 이겨낼 따름이니, 남궁진천은 스스로 별을 베어냄으로써 그 빛을 검에 담았다.
“크핫!”
멈추지 않았다.
남궁진천은 검강을 목리원에게 휘둘렀다.
그 순간, 목리원 또한 검 위로 칠흑색의 검강을 발했다.
째애애애앵―!
검강의 파편이 휘날렸다.
자리에서 밀려난 것은.
“크흐!”
목리원이었다.
남궁진천은 전류가 등골을 타고 흐르는 감각에 몸을 떨었다.
즐거워 미쳐버릴 것 같아 이가 다 드러날 정도로 환히 웃었다.
그리하며 떠올리는 것은 딸아이의 말이었다.
-아기 선녀님 등장!
못내 즐거워 흉내니.
“검룡, 등장.”
하늘 높은 줄 모르던 이무기는 이제야 진정 용(龍)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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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영의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별님이야!”
아빠와 삼촌의 검 위로 별이 빛났다.
아직 대낮인데도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별이었다.
검색
그것이 너무 신기해 남궁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폴짝폴짝 뛰었고, 그리하며 꺄르륵 웃었다.
“아빠야가 웃어!”
남궁영은 생애 처음으로 아버지의 환한 미소를 봤다.
서예는 그런 남궁영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래, 이제야 웃는구나.”
서예는 미소를 짙게 만들었다.
‘하여튼 애 같다니까.’
어찌 저리 검을 휘두를 때만 생동감이 넘치는지, 못 말리는 인간이구나 싶다.
와중 비무장은 침묵에 휩싸이고 있었다.
눈으로도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음에 경악이었고, 그 광경이 너무나도 아름다움에 경외였다.
누군가는 탄식했고, 누군가는 눈물을 흘렸다.
반박할 도리가 없었다.
비어버린 10대 고수의 자리를 차지할 새로운 이들이 나타났다.
예견된 수순으로, 조금 이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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