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245화 (245/334)

EP.246 이부 삼장 - 남궁진천 (6)

* * *

속절없이 일주일이 흘러 비무회날이 밝았다.

“오늘이구나.”

남궁가의 식탁은 모든 인원이 남궁진천의 기색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의 행동이 평소와 다름은 하루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일진대, 그런 모습을 주 단위로 봤으니 오죽하겠는가.

그래도 가족이다.

자랑스러운 아들이며 조카이자 오빠였던 사람이다.

언제나 자신만만했던 그가 불안을 드러낼 정도가 되었으니 함께 애가 타는 것이다.

남궁진천은 그런 가족들의 기색을 읽었다.

배려받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응원받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표정 푸십시오.”

그리 말했다.

남궁진천은 꼿꼿이 고개를 들고 한명 한명 눈을 맞췄다.

“지지 않습니다.”

입으로 그리 말한다. 무엇도 확실히 할 수 없는 상황임은 중요치 않았다.

아직 초월에 달하지 못했음도 중요치 않았다.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이긴다.’

그것 하나만을 바라보며 나아가자.

남궁진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

7년만에 재개된 현 강호에서 가장 강한 무인을 뽑는 장이다.

그리고 그 주인공이 한때 강호를 떠들썩하게 했던 젊은 무인들이다.

무림의 역사를 뒤져봐도, 이렇게 젊은 이들이 결승에서 맞붙는 그림은 잘 나오지 않았다.

하물며 그들이 서로를 호적수로 용봉지회때부터 아웅다웅해온 사이이니 구도가 꽤 그럴싸한 것이다.

작금의 무림 전체가 주목하는 가장 큰 축제.

그런 만큼 비무장도 여타 경기와는 달랐다.

“크다아…!”

남궁영이 서예의 품에 안겨 입을 헤 벌렸다.

비무대는 컸다. 그냥 크다 정도가 아니라, 범상한 비무대 열 개를 붙인 크기는 너끈히 넘을 정도였다.

관객석 또한 그런 크기에 맞게 평소의 다섯배나 되는 인원을 수용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채 비무장에 들어오지 못해 밖에서 안타까움을 토해내는 사람이 이곳에 들어온 사람보다 몇 배나 많았다.

“영아, 아빠한테 인사해야지.”

서예의 말에 남궁영의 시선이 남궁진천을 향했다.

“아빠야 힘내!”

남궁진천은 그 말에 잠시 멈칫했다.

순간적으로 깎이려는 자신감이 있었다.

하나, 그것을 꾹 눌러냈다.

“…이기고 오마.”

“재밌게!”

꺄르르 남궁영이 웃었다.

남궁진천의 입매가 작게 호선을 그렸다.

“…그래.”

재밌게라….

“다녀와요. 우리는 관객석에서 보고 있을 테니까.”

서예가 웃으며 말했다.

남궁진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비무장 위로 향했다.

걸음걸이마다 짙푸른 색의 무복이 휘날린다. 허리에 찬 검은 오늘따라 무겁게 느껴졌고 머리에 두른 영웅건은 답답하다.

“와아아아아아!!!”

함성이 인다.

그것이 어깨를 내리누른다.

그렇게 올라간 비무대 한가운데에 서있는 사내가 있었다.

‘잘생겼다’보다는 ‘아름답다’라는 감상이 어울린다고, 세간에선 그리 말하고 남궁진천이 보기엔 기생오래비 같은 사내였다.

흑색의 무복과 허리와 등에 찬 두 자루의 검이 특징적인 일평생 처음 만난 벽이었다.

“묵룡 목리원! 자네한테 다 걸었네!!!”

“와아아아아아!!!”

목리원이다.

이리 가슴이 꽉 막힐 정도로 간절하게 넘고 싶은 사내의 이름이 그랬다.

“잘 부탁하오.”

싱긋 웃으며 말함에 남궁진천은 답했다.

“검은 뭐하러 두 자루씩이나 들고 왔나.”

“수련을 그리했소.”

“이도류는 병신이나 쓰는 검이다.”

“혁이가 들으면 많이 화낼 말이구려.”

“그게 누군가.”

“내 단원이오.”

일상적인 대화가 오간다.

그런 중에도 긴장감은 좀 더 진해져만 간다.

주먹을 꽉 쥔다. 긴장하는 스스로의 나약함을 질책한다.

그리하여 고개를 든다.

검 위로 손을 얹는다.

‘이긴다.’

이겨야 했다.

그러기 위한 7년이었다. 경지? 넘으면 그만이다. 아직까지 못 넘었다 해서 지금도 못 넘으리란 보장은 없지 않나.

본디 성장이란 위기에서 오는 법이다.

많은 선대의 무인들이 그렇듯 자신 또한 그럴 것이다.

애초에 두려울 이유가 없었다.

검룡 남궁진천은 차기 천하제일로 불리던 이름이다.

당연히 거머쥐어야할 그 이름을 되찾는 과정일 뿐이다.

그러니,

“준비하시오!”

반드시 이겨야 했다.

심판이 손을 든다.

“개!”

더 이상의 잡담은 필요치 않음을 알기에, 그 목소리에 동시에 검이 뽑혀 나온다.

쿵!

시작과 동시에 발을 내디뎌, 단전 속의 공력을 모두 풀어헤쳐, 그 기운을 검에 담아.

“봐주진 않겠다.”

남궁진천은 절초를 선보였다.

제왕검형이 목리원을 향해 내리찍혔다.

*

쿠우우우웅―!

굉음과 함께 푸른색의 기파가 폭발하듯 공간을 휩쓸었다.

목리원은 흑야를 뽑아 그것을 막았다.

과연 남궁진천 다운 일수다.

하늘 아래 가장 오만하고 드높은 사내의 검은 그 무게조차 남달랐다.

그러나,

“이게 끝은 아닐 거라고 믿소.”

이 정도로는 모자랐다.

목리원은 곧장 내공으로 몸을 가속시켰다.

그의 신형은 묵색의 운무로 화해 남궁진천을 향해 쏘아졌다.

남궁진천이 검을 양손으로 쥐었다.

정면을 막으려는 듯 검을 치켜올림에, 목리원은 순간 경로를 뒤틀어 하단을 노렸다.

남궁진천이 뒤따라왔다.

채애애앵―!

검명이 청아하게 일었고, 그게 시작이었다.

만련이검의 첫 번째 초식은 이 세상에서 가장 빠른 검이다.

끊임없는 연격으로 흐름을 가져오는 검이다.

채재재재쟁!

목리원이 공격했고 남궁진천이 막았다.

때로는 기파로 튕겨내고, 때로는 검으로 막고, 또 때로는 몸을 뒤틀어 피하며 목리원의 모든 공세를 흘려낸 남궁진천은 목리원이 보인 일말의 틈에 검을 찔러넣었다.

의도하고 만든 빈틈이기에 목리원은 개의치 않았다.

만련이검의 천리만통이 그 길을 눈앞에 제시한다.

‘검풍!’

그것은 검풍을 그리는 검이었다.

남궁진천은 아는 것이다.

검을 뻗어봐야 닿지 못할 자리니 차라리 검풍으로 휩쓰는 것이 옳은 판단임을.

목리원은 공중에서 회전해 검풍을 피했다.

그러면서도 검은 확실히 남궁진천을 노리고 들어갔다.

카앙!

이 또한 막혔다.

남궁진천의 얼굴 위로 힘줄이 솟았다.

“어림도 없다!”

쾅!

휘두르는 검엔 강한 힘이 담겨 있다.

그가 평생을 모아온 공력이 매초를 절초로 만든다.

포악했다.

그리고,

‘이게 아니다.’

맹렬함보단 발악에 가까웠다.

상처 입은 짐승이 스스로의 상처를 숨기기 위해 으르렁대는 꼴이었다.

그의 검초엔 당연히 묻어있어야 할 검로에 대한 확신과 굳건함이 없다.

평소의 남궁진천이라면 이런 식의 끌려오는 상황을 개의치 않고 덤벼들었을 것이다.

흐름을 뒤트는 법으로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방식을 사용했을 것이다.

그게 어울리는 사내였고, 특징인 사내였다.

심마다.

그의 망설임이 이런 흔들림을 자아내고 있었다.

남궁진천의 검은 그가 이제껏 맞이한 적 없는 벽 앞에 길을 잃고 있었다.

목리원이 더 대단하기에 그런 사실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목리원이 더 뛰어난 무인이기에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성련이 보여주는 진의였다.

남궁진천을 이루는 검이 그리도 미혹에 빠져있음을 알려주는 것은 오로지, 그의 별이 목리원의 눈에 보이기 때문이었다.

제왕성(帝王星).

그것은 군림하는 별로, 태생부터 죽음까지 그 주인을 위대하게 만들어주는 별이다.

별이 이르는 길은 한순간도 무릎 꿇지 않는 찬란한 길이다.

그렇기에 남궁진천은 별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

그가 스스로 선택한 길은 삐뚤삐뚤하고 험난한 길인 까닭이다.

남궁진천이 원한 것은 패배 속에서 다시 일어나 마침내 승리를 거머쥐는 길이었다.

별은 옹졸하고 악독하여 스스로 정한 기준을 벗어난 주인에게 살갑지 않았다.

주인이 제가 정한 운명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끝끝내 제게 굴복하도록 드높은 벽이 되려 하는 성질이 있었다.

옭아매고 마는 것이다.

운명 앞에서 노예가 되길 바라는 것이다.

그런 별의 노예가 된 이가, 그럼에도 별이 정한 운명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이가 목리원의 눈앞에 있었다.

남궁진천은 목리원의 호적수였다. 친우였고, 낯부끄럽게 말해 함께 검의 길을 걸어가는 동행인이었다.

그를 위해 성련의 주인으로서 목리원이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연자여, 헤어 나올 수 없는 운명에서 허우적대는 이여. 또한 성련의 후인이여.

목리원은 한 발 물러섰다.

흑야를 납검하고, 성운을 뽑아 들었다.

-부디 잔혹한 운명에서 그들을 건져다오. 내 못 이룬 업을 이어, 외로운 별자리들을 한데 엮어 그들을 해방해다오.

그러자, 묵색의 별이 성운의 검신을 덮었다.

“낡은 검이군.”

“낡았으되 부러지지 않을 검이오.”

목리원은 훅, 숨을 내쉬었다.

성련의 구절을 떠올렸다.

스으으―

목리원의 기파가 이제껏 떠올린 적 없던 형상을 취하기 시작했다.

남궁진천의 이가 꽉 물렸다.

심마로 괴로워하고 있으나, 그의 눈빛 속에 깃든 투지는 죽지 않았다.

목리원은 그 사실에 못내 기꺼워하며, 다시금 남궁진천에게 달려들었다.

‘자, 보여주시오.’

제왕성의 주인 남궁진천도 아닌, 남궁가의 적자 남궁진천도 아닌.

‘그저….’

검수 남궁진천을.

이 땅에서 가장 드높은 하늘이 될 검을.

채애애앵―!

검과 검이 맞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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