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45 이부 삼장 - 남궁진천 (5)
* * *
남궁진천은 찾아온 목리원과 뜰로 향했다.
작은 식탁을 사이에 두고 앉아 아침 공기를 맞으니, 새삼 떠오르는 것은 어색함이었다.
이리 둘이서 마주하는 일이 드물다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무슨 일로 왔나.”
“다음 주가 결승이지 않소. 그전에 대화 한 번은 해야 하지 않나 싶어 들른 차요.”
“굳이?”
“옛날 생각나지 않소?”
목리원이 싱긋 웃었다.
주제에 찡찡대지 않고 어른스럽게 구는 모습은 어색함을 진하게 만들었다.
묘하게 짜증을 솟구치게 하는 태도라 표현해도 좋을 것이다.
“무엇이?”
그런 기색을 가득 담아 물으니, 목리원의 답이 돌아왔다.
“7년 전 용봉지회 말이오. 그때도 결승 전에 내 남궁가의 땅에 들어오지 않았소.”
남궁진천은 그제야 그날을 기억해냈다.
목리원과 처음 대화를 나눴던 날이었다.
당시의 자신은 하늘이 얼마나 높은 줄 몰랐던 우물 안의 개구리였고, 목리원은 세상물정 모르는 멍청한 촌놈이었다.
네가 맞니 내가 맞니 입씨름을 하다 검으로 결정하자 일렀고.
그 끝에서 패배했다.
새삼스러운 대비였다.
묵룡은 초월지경에 다다른 명실상부한 백도 무림의 최정상이 되었다.
그에 비하면,
‘나는….’
발전이 있긴 했다. 하지만 만족스러운 정도는 아니었다.
남궁진천의 주먹이 꽉 쥐어졌다.
목리원은 그런 남궁진천을 보며 말했다.
“준비는 잘 되어가시오?”
“걱정되나?”
“초조하신 듯해 물은 것이오.”
남궁진천은 눈을 좁혔다.
어디서 이런 말을 듣고 왔을까….
‘…소아군.’
생각해보니 남궁소아가 이놈 밑의 단원으로 들어갔다.
자존심이 상했다. 걱정해서 찾아와 준 것 같아서.
“일 없다.”
“넘을 수 있겠소?”
“내가 못 넘을 것이 있는가?”
“많지. 일단 나도 못 넘었지 않소.”
울컥, 남궁진천의 목구멍 끝까지 무언가가 차올랐다.
이리 재회한 이후로 속을 벅벅 긁는 일이 늘은 듯하다.
착각이라기엔 목리원의 표정이 너무 노골적이었다.
“도발만 늘어왔군.”
“공력도 늘어왔소.”
“글쎄, 그게 7년의 가치가 있는 성장인가?”
“내겐 그랬소. 한데 검룡 형은 그런 말을 할 처지가 아니지 않소?”
팽팽하게 말싸움이 이어졌다.
누가 보면 애들도 아니고 유치하게 무슨 짓이냐 말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나, 남궁진천은 그 속에서 확실히 느꼈다.
목리원이 자신의 긴장을 풀어주려 하고 있었다.
긁는 듯한 말투에 울컥 화를 내려하다보면 높게만 보이는 목리원이 조금 가까이서 보인다.
주먹으로 한 대 치고 싶다 떠올리면 두려움은 조금 가신다.
이 역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남궁진천은 적수의 동정을 바라지 않았다.
기세가 조금 더 험악해졌다.
“…더 대화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괜한 걱정은 집어치워라. 네놈 도움이 없어도 일어날 수 있으니.”
그리 떠나갔다.
성난 걸음이었다.
*
남궁진천이 떠난 자리.
홀로 앉아있던 목리원은 도도도 달려오는 작은 기운을 감지했다.
“이 악당!”
남궁영이었다.
팔을 풍차처럼 돌리며 달려온 남궁영이 이마를 꽁! 하고 목리원의 가슴에 박았다.
목리원은 큭큭 웃었다.
“영이구나.”
“악당 삼촌!”
남궁영이 히히 웃었다.
입으로는 악당이라 하지만 목리원을 조금도 싫어하지 않는 기색이었다.
별달리 큰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그저 목리원의 얼굴이 잘생긴 까닭이다.
아이들의 솔직함은 그의 외모에 본능적인 호감을 느끼는 면이 있었다.
목리원은 이제 그런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응? 내가 왜 악당이더냐.”
“아빠야 괴롭혔어!”
“괴롭힌 걸로 보이더냐?”
“웅!”
하고 말한 남궁영이 목리원의 무릎 위로 앉았다.
목리원은 탁 위의 다과를 집어 남궁영에게 건네줬다.
남궁영은 다과를 야금야금 깨물어 먹었다.
“흐음….”
목리원은 남궁영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괴롭힌 게 아니란다. 도와준 거지.”
“웅?”
“검룡 형은 지금 기로에 서 있거든.”
아이에게 말한다고 어찌 알까, 생각하면서도 목리원은 말했다.
“영아, 한계를 넘기 위해서 진정 깨부숴야 하는 것이 있단다. 검룡 형은 아직 그게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어.”
“항개?”
“한계, 무림에선 벽이라고 한단다.”
남궁영은 영 이해하지 못한 기색이었다.
목리원의 미소가 짙어졌다.
애초에 이해하길 바라고 한 말도 아니니 상관없었다.
“아빠야는 왜 모르는데?”
남궁영의 질문에 목리원은 쓰게 웃었다.
아이의 순수함이 본질을 바라본 것이다.
“검룡 형의 벽은 남들보다 크고 두껍기 때문이란다. 그렇기에 한 눈에 보이지않는 것이지.”
“왜 더 커?”
“그런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이지.”
남궁영은 고개를 갸웃했다.
미간을 좁히며 낑낑대다, 이내 생각을 포기한 듯 다과를 먹는 데 집중해 버렸다.
그에 목리원은 더 말하길 그만두고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다.
‘왜….’
그 질문을 속에 새겼다.
떠올리는 것은 별에 관한 것이었다.
만약 남궁영이 왜 남궁진천이 그런 운명을 타고났느냐 물으면 목리원은 답할 수 없었다.
운명을 점지하는 별이 왜 존재하고, 그것이 왜 삶을 지배하는지는 목리원도 모르는 영역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그저 발악할 뿐인 것이다.
운명을 넘고 벽을 넘기 위하여, 그리고 마땅히 스스로의 손으로 그것을 개척하기 위하여.
또한,
‘곧이겠구려.’
성련의 문주로서, 스스로 운명을 벗겨내지 못하는 이들에게 등불이 되어줄 수 있도록.
“묵룡 대협.”
와중 남궁 가의 무인이 찾아왔다.
목리원이 고개를 돌리니, 그가 고개 숙이며 말했다.
“태상가주께서 부르십니다.”
목리원은 웃으며 답했다.
“알겠소.”
두 번째 용건을 처리할 때였다.
*
장원의 안채로 들어가면 주변 모든 인파가 사라진다.
분명 이 장원의 심장일 텐데도 관리인이나 경계병 하나 없는 것이 참 의아하게 느껴질 법도 하나, 그는 이 안채에 앉아있을 사람을 보면 금방 스러질 생각이었다.
검왕 남궁혁.
현 무림의 절대자.
감히 누가 그를 해할 마음을 먹고 이곳에 들어오겠는가.
목리원은 안채의 문앞에 섰다.
그러자 안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들라.
왜인지 기시감이 느껴지는 상황에 목리원은 작게 웃곤 문을 열었다.
그곳엔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는 남궁혁이 있었다.
“성련의 11대 문주가 검왕을 뵙습니다.”
포권을 취하며 그리 말한 목리원은 작게 탄성을 흘렸다.
‘역시….’
그는 이길 수 없는 상대다.
한때, 그를 보고도 그의 경지가 얼마나 드높은지를 제대로 알지 못하던 시기가 있었다. 어렴풋이 생존본능의 날뜀을 느끼던 시기가 있었고, 그때의 목리원은 초월에만 이르면 그를 이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념에 빠졌었다.
그것이 착각임을 깨달은 것은 7년의 수행 중이었다.
그리고 확신이 된 것은 오늘이었다.
남궁혁은 초월임에도 초월이 아니었다.
다음 경지를 이르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보단 조금 더 근본적인 차이다.
이르길, 불가에서 이르는 열반과 가까웠다.
그는 어떤 깨달음 속을 유영하고 있는 것이다.
저 과정이 끝나면 진정 초월 너머로 향하지 않을까.
목리원이 생각하던 순간이었다.
“앉으라.”
남궁혁이 말했다.
목리원이 무릎을 꿇자, 그는 곧장 질문했다.
시원시원한 성격만큼은 그대로였다.
“그놈은 보내주었나.”
누구를 말하는지 모를 수가 있겠나.
“예, 스승님께선 성련의 비동에 몸을 뉘셨습니다.”
“썩을 놈이군. 찾아가지도 못하겠어.”
“성련의 전통인지라.”
“알려 달라는 말은 아니었다.”
남궁혁은 킁! 하고 코웃음쳤다.
목리원은 그 모습에 작게 웃다, 말을 흘렸다.
“사실, 더 일찍 찾아뵈었어야 했는데 늦었습니다.”
“나를 왜 찾나.”
“스승님의 유언이 있었습니다.”
덜컥, 남궁혁의 몸이 멎었다.
그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놈이?”
“예.”
생각이 많은 얼굴이었다.
이해했다. 그에게 목선오가 어떤 의미였는지는 목리원도 잘 알지 않던가.
떠올리는 것은 결별의 날 목선오와 나눴던 어떤 대화 중 하나였다.
스승의 유언 중엔 그를 위한 말이 존재했다.
“내가 이겼소. 라고 하셨습니다.”
그게 끝이었다. 전해달라고 한 말은.
-그리 말하면 검왕께서도 알아들으실 게다.
그리고 목선오의 말은 옳았다.
“…썩을 놈.”
남궁혁이 삐죽 웃었다.
전처럼 퉁명스러운 기색은 아니었다.
과거를 되짚는 이들의 얼굴이 으레 그렇듯, 정면을 바라보고 있음에도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눈빛이 되어 침묵을 자아낸다.
그러다 감정을 수습하며 긴 숨을 내뱉는다.
“스승이나 제자나 똑같군.”
“예?”
“도발이나 즐기지 않나.”
목리원은 그제야 깨달았다.
남궁혁이 남궁진천과의 대화를 듣고 있던 듯했다.
확실히 그의 경지라면 불가능한 기예는 아니었다.
목리원은 머쓱함에 웃었다.
“조금은 돕고 싶었습니다.”
“내게 변명하지 말라.”
검색
말한 남궁혁이 손을 휘저었다.
“가라, 얼굴은 봤으니.”
축객령이었다.
목리원은 일어나 포권을 취하고 돌아서려다, 문득 떠오른 의문에 물었다.
“걱정하지 않으십니까? 검룡 형에 관한 것.”
그에 남궁혁은 답했다.
“내 손자다. 겨우 거기서 무너질 리가 없잖은가.”
조금의 의심도 없는 확신의 말이 그다웠다.
목리원은 삐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하기야 그렇긴 합니다.”
남궁진천이 무너지는 꼴은 상상되지 않았다.
흔들릴지라도 다시 일어서겠지.
그런 사내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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