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44 이부 삼장 - 남궁진천 (4)
* * *
농락당했다는 생각이 남궁진천의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뭐가 됐든 승리하긴 했고, 실제로 그의 숨겨진 수가 어떤 것이든 파훼할 자신도 있었지만, 그와 별개로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는 것이다.
7년이 길긴 참 길었는지 그 얌전한 중놈조차 사람을 골려먹는 구석이 생겼다.
가슴의 답답함은 여전히 풀지 못하여 짜증이 치솟건만, 그런 분노에 장작이 들어온 기분이었다.
“좀 웃어요.”
서예가 말했다.
어느새 남궁세가의 장원이었다.
슬슬 귀가 중 잠들었던 남궁영이 눈을 뜨고 있었다.
“우웅…?”
남궁영은 세상모르고 잠들었던 것인지 변한 주변 풍경에 의아함을 드러냈다.
그러다 이곳이 집임을 확인하곤 그새 기운을 차리며 서예의 품에서 내려왔다.
“할아방!”
근래 들어 심심할 틈 없이 놀아주는 가주를 참 마음에 들어해 집에 들어오자마자 그부터 찾는다.
그리 뛰어 들어가던 남궁영의 몸이 우뚝 멎었다.
왜 저러나 싶어 고개를 든 남궁진천 또한, 딸아이와 같이 굳어버렸다.
“왔느냐.”
“조부님.”
검왕 남궁혁.
그가 나와 있었다.
이루 말할 데 없이 깊은 눈빛을 한 채.
*
7년간 집안의 행사에조차 얼굴을 내비치지 않고 좌선에 미쳐있던 남궁혁이다.
그런 그가 이 무한땅까지 찾아온 이유는 당연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 누구도 그가 갑작스레 등장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러니 함께하는 식사 자리는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침묵 속에서 식사가 이어진다.
모든 이들은 남궁혁의 눈치를 봤고, 그런 중 오로지 남궁영만이 호기심 어린 얼굴로 남궁혁을 콕콕 찔렀다.
“할아방?”
남궁혁 또한, 할아방이었다.
가주가 크게 기함하며 조심스레 말했다.
“여, 영아… 태상가주님이란다.”
“태산!”
“태, 태상.”
“태산!”
꺄르르 남궁영이 웃었다.
하나같이 어쩔 줄 모르는 얼굴이 된 가운데 남궁혁이 남궁영을 물끄럼 바라봤다.
“진천이 네놈 자식이더냐.”
“예.”
남궁진천은 그나마 남궁혁과 왕래가 있었기에 편하게 답할 수 있었다.
이따금씩 가르침을 청하기 위해 그를 찾았던 까닭이다.
“몇 살인가.”
“올해로 넷입니다.”
“지난번 찾아왔을 때도 아이가 있었다는 말이겠군.”
“….”
남궁진천이 머쓱함에 답을 미뤘다.
남궁혁은 개의치 않아 하는 얼굴로 남궁영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남궁영이 낑낑대며 남궁혁의 무릎 위로 올라갔다.
“태산 할아방 수염!”
꽉! 남궁혁의 수염을 움켜쥐었다.
“영아!”
가주의 새된 비명이 공간에 울려퍼졌다.
사시나무처럼 벌벌 떨며 일어난 가주가 곧장 남궁영을 안아들고자 했다.
그 순간 남궁혁이 손으로 그를 제지했다.
“되었다.”
근엄한 얼굴이었다.
수염이 쭉쭉 당겨져 참 아파야할 텐데도 조금의 감정도 드러나지 않는다.
과연 중원제일검!
가주는 속으로 감탄했다.
“식사예절은 다시 가르치도록.”
“수염이야!”
남궁혁의 턱이 쭉쭉 당겨졌다.
남궁혁은 그런 건 개의치않다는 듯 한손으로 남궁영의 등을 토닥이며 식사에 집중했다.
“식사부터 들라.”
말한 순간 식당의 문이 벌컥 열렸다.
“늦어서 죄송해요!”
남궁소아였다.
남궁혁이 왔다는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온 것이다.
얼굴은 꽤나 밝았다.
어릴 적부터 남궁혁에게 애교를 부려온 남궁소아가 아니던가.
오랜만에 만났다는 반가움만이 있는 것이었다.
“할아버지 오랜만이에요!”
“식사부터 들라.”
“어휴, 무뚝뚝한 건 여전하시네.”
“임마!”
“조카도 안녕, 그리고 임마가 아니고 이모야.”
“임마!”
“어휴, 됐다. 아빠 닮아서 그런가 애가 격식이 없네.”
“무엇을 암시하는 것이지?”
“오빠 대단하다고.”
“그렇군.”
남궁소아의 등장과 함께 분위기가 풀리기 시작했다.
가주와 남궁운의 얼굴이 조금 더 편안해졌고, 그제야 가주가 남궁혁에게 물었다.
“한데 아버지, 어찌 예까지 행차를….”
“외유.”
“…옙.”
가주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내리깔았다.
남궁혁의 시선은 남궁진천을 향했다.
“식사가 끝나면 따라오거라.”
남궁진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식사는 그렇게, 남궁혁의 간단한 용건을 끝으로 일상적인 대화로 넘어갔다.
*
남궁가의 장원엔 연무장이 있었다.
물론 무인이 사는 장원에는 다 연무장이 있긴 하지만, 남궁가의 것은 유독 큰 편이었다.
모양새는 안휘의 본채에 있는 것과 똑 빼닮아 있었다.
안에 비치된 기구들 또한 그곳과 똑같았고, 흐르는 기류까지도 고집적으로 그곳을 흉내 낸 형태였다.
많은 이들이 모르지만, 이것은 남궁혁이 청룡 비무제에 목선오를 만나러 나올 때마다 편안한 수련 환경을 위해 죄다 증설해둔 것이었다.
그 연무장 한가운데.
남궁혁은 뒷짐을 진 채로 남궁진천을 바라봤다.
“아직도 초월에 이르지 못했구나.”
남궁진천은 고개를 숙였다.
“예.”
“심마더냐?”
“예.”
“그럴 줄 알았다.”
남궁진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고개를 들어 바라본 남궁혁은 심드렁한 얼굴이었다.
“…이르지 못할 것을 아셨다는 말입니까.”
울컥하는 말이다.
왜인지 저 말이 자신의 한계를 규정하는 말인 것 같아서, 그게 남궁진천의 속을 답답하게 했다.
남궁혁은 코웃음쳤다.
“검이나 보자꾸나.”
그의 허리에서 검이 빠져나왔다.
어린 시절부터 남궁혁과의 대화는 이러했다.
남궁진천은 두말하지 않았다.
마침 전력을 다해 날뛰고 싶은 기분이었으니.
“이번 역시 살초를 쓰겠습니다.”
“죽이지 못하면 살초가 아니다.”
남궁혁의 몸 위로, 흐릿하게 번지는 기류가 퍼져나왔다.
“말부터 앞서는 버릇은 고치도록.”
도발이 여간 감탄스러운 게 아니었다.
남궁진천은 곧장 절초를 발했다.
콰아아아아앙―!
연무장에 폭발이 일었다.
*
승패가 갈렸다.
당연히 남궁혁의 승리였다.
남궁혁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로 헉헉대는 남궁진천을 내려다봤다.
표정이 좋지 않았다.
본디 감정을 표정으로 드러내지 않는 놈이 그 분기를 다 드러낼 정도니 대충 알게되는 것이 있었다.
“심마로군. 역시.”
“…알고 계셨습니까.”
“모를 수가 없지.”
그것 때문에 찾아온 것이니 말이다.
아니, 그것 외에도 이유가 있긴 했다.
목선오가 남긴 유산은 어찌하고 있는지, 그의 의지는 어찌 이어지고 있는지를 눈으로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물론 남궁진천이 아니었다면 굳이 그런 마음까진 먹진 않았을 테지만.
“일어나라.”
남궁진천이 이를 악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궁혁은 입을 다문 채로 그 모습을 눈에 새겼다.
닮아도 이렇게 닮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청년 시절의 자신과 닮은 손자였다. 고뇌하는 모습조차도 과거를 떠오르게 만드는 손자였다.
그렇기에 아는 것이다.
저 심마의 원인이 무엇이고, 그것이 얼마나 지독하게 속을 좀먹는지를.
“조급한 듯하구나.”
“잘못되었습니까?”
“잘못되지 않았다. 하나 옳지도 않다. 헛된 감정이다.”
남궁혁은 긴말을 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런 재주도 없었고, 감동을 주는 말로 위로해줄 생각도 없었다.
그는 그저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는 위로의 말을 혐오했다.
발전은 위안이 아닌 투지에서 오는 것임을 믿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말한다.
“정진하라.”
“…가르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무엇을 가르쳐야 하나?”
“어찌하면 이 벽을 넘을 수 있습니까.”
남궁혁은 지난 시간을 돌이켰다.
초월에 다다를 적 무엇을 했더라.
대체 무슨 감정이 그리도 높디높았던 벽을 뚫게 해주었더라.
고민은 꽤 길게 이어졌다.
그리한 끝에 겨우 나오는 말이 있었다.
“미쳐라.”
남궁혁은 몸을 돌려 연무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미쳐야만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초월이다.”
그 정도의 답밖에 줄 수 없었다.
아니, 더 좋은 답이 있어도 말해주지 않을 것이었다.
스스로 손에 쥐지 못한 깨달음은 공허할 뿐이니.
*
새로운 화두가 떠올랐다.
남궁진천은 명상에 빠진 채로 조부의 말을 되새겼다.
미쳐라, 미쳐야만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초월이다.
그러니 자문한다.
무엇에 미쳐야 하고, 어떻게 미쳐야 하는가.
남궁진천은 정말 미치광이처럼 굴라는 말은 아님을 모를 정도로 우둔하지 않았다.
미친 사람처럼 무언가에 열중하라는 말이겠지.
하면 무엇에? 승부에? 승리에? 성취에?
답을 내보지만 그 무엇도 만족스럽지 않다.
고민은 깊어지기만 한다.
심마가 속을 좀먹는다.
제왕성은 고요하고, 검로는 의심스러워지고, 굳게 믿었던 승리에는 금이 간다.
오늘 역시 의미 없는 가정만을 끊임없이 이어갔고, 무엇도 해결되지 않았다.
검색
남궁진천은 눈을 떴다.
오전의 명상은 실패였다.
잘게 이를 갈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무장을 나온 순간이었다.
“소가주님.”
가문의 무인이 다가왔다.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이리도 이른 시간에 웬 손님이란 말인가.
남궁진천은 눈을 좁히다 그를 지나쳐갔다.
대충 응접실로 가면 만날 수 있을 터.
그리 생각하며 움직였고, 도착한 응접실에서 손님의 정체를 마주했다.
“검룡 형, 좋은 아침이오.”
목리원이었다.
이 심마의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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