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43 이부 삼장 - 남궁진천 (3)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남궁진천의 입장에선 그랬다.
“승! 묵룡!”
“와아아아아!!!”
연무장 위에서 목리원이 번쩍 주먹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4강 경기였다.
목리원은 이로써 남궁진천보다 한발 앞서 결승을 확정 짓게 되었다.
“원하는 대로 되셨는데 표정이 왜 그래요.”
옆자리에 앉아있던 서예가 물었다.
남궁진천은 입매를 더듬었다.
입꼬리가 내려가 있다.
그녀의 말마따나 원하는 대로 된 것인데 어째서 이럴까.
“….”
아니, 사실 스스로도 알았다.
그것은 참으로 인정하기 싫은 마음이었다.
혹시 목리원이 여기서 고꾸라지지 않을까. 목리원이 상대가 아니라면 우승자는 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비겁한 기대감이 속에 있던 것이다.
남궁진천은 스스로의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아 미간을 좁혔다.
강한 척 말을 내뱉었다.
“너무 쉽게 올라가는 꼴이 아니꼽다.”
“상대도 강했어요.”
“나만큼 강하진 않다.”
목리원의 상대는 올해로 오십이 되는 무인이었다.
초절정 중에서도 꽤 높은 수준의 경지를 자랑하는 이름있는 고수였고, 그런 만큼 비무는 기대감이 가득 차오른 상태에서 진행됐다.
결과야 뻔했지만 말이다.
“무서워요?”
“내가?”
“나한테까지 숨길 필요는 없는데.”
서예는 남궁영의 등을 토닥이고 있었다.
아이는 잠들어 있었다. 비무장에 오기 전까지 얼마나 신나게 놀았는지 이 함성소리에도 좀처럼 깨는 법이 없다.
“내가 두려워할 것이 세상에 존재하나?”
“하죠.”
“당신 말고는 없다.”
“칭찬인가?”
“칭찬이지.”
헛소리나 하며 긴장을 풀어보지만 조바심은 더해진다.
그래, 인정하자. 두려움이 있긴 했다.
한데 무엇을 향한 두려움인지는 몰랐다.
목리원이 두려운 것인지, 패배가 두려운 것인지, 그도 아니면 이 초절정의 끝자락이 스스로의 한계일까 두려운 것인지.
한때 하늘을 노리던 소년은 이리 겁많은 청년이 되었다.
남궁진천은 새삼 그 사실을 깨닫고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돌아가지.”
남궁진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 날이 비무였다.
상대는 일운이다.
*
-심마(心魔)라는 것은 거창한 전조와 함께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조부의 말이었다.
지난 7년간 조부는 가문의 비처에서 명상을 이어가며 살았다.
그것은 평생을 목표로 삼았던 호적수의 죽음 이후 찾아온 심마를 다스리는 행위였다.
검성의 죽음은 검왕에게 그런 의미였다.
검왕은 더 이상 검을 뽑지 않았다.
그저 검을 무릎 위로 올려둔 채 좌선하며, 끊임없이 기억 속 초식을 더듬었다.
왜 그리하느냐는 물음에 그는 답했다.
-심마를 베어가다 보면 언젠가는 닿겠지. 그놈이 봤던 광경에.
이해하지 못할 말이다.
이제까지는 그랬고, 지금은 아니었다.
남궁진천은 아주 조금, 티끌만큼 조부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심마는 거창한 전조와 함께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 하나를 남궁진천은 깨달았다.
엄습한 불안감은 점점 마음을 갉아먹는다.
그에 흉이 깊어지며 상처가 벌어지기 시작하니, 흘러나온 핏물이 곧 양식이 되어 불안감의 덩치를 키운다.
심마였다.
심마는 스치듯 지나가는 바람처럼 다가와 무거운 바위가 되어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다.
좌선하는 시간은 날이 갈수록 길어진다.
명상에 빠져 스스로를 다독이는 행위가 도통 끝나지 않는다.
“검룡 대협, 출전하실 시간입니다.”
그 말이 들린 후에나 겨우 남궁진천은 눈을 떴다.
하늘을 닮은 벽안은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나가지.”
남궁진천은 검을 챙겨 비무대 위로 올랐다.
함성이 귀를 따갑게 한다.
맞은편의 일운이 오늘따라 달리 느껴진다.
“여기서 만나 뵙게 되는군요.”
일운이 합장했다.
남궁진천은 말했다.
“수고했다. 여기까지.”
“더 수고해야지요.”
“이길 생각인가?”
“벽이 눈앞에 있는데 올라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생각해보면 한 번도 남궁 시주님을 이긴 적은 없었던 듯하여.”
평온한 미소 어딘가 투기가 보인다.
이젠 숨길 생각도 없는 듯하다.
“변했군.”
“세월이 그리 명한지라.”
“말재간은 좋아졌고.”
“스님이지 않습니까.”
남궁진천은 생경한 기분을 느꼈다.
7년 전, 마지막으로 만났던 때가 원명 대사의 장례를 치른 날이었다.
그날의 일운은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화산 같은 모습이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도 심마에 시달렸던 것일지도 몰랐다.
한데 지금은 참 허하다.
공허하면서 충만하다.
이치에 맞지 않는 말임을 알고 있음에도 그런 표현 외엔 떠오르지 않았다.
“슬슬 시작하지요.”
일운이 심판에게 말하자 심판이 한 발짝 물러나 손을 높이 들었다.
남궁진천은 검을 뽑았다.
일운은 주먹을 말아쥐었다.
“개!”
심판의 손이 떨어져 내렸으나 공세는 오가지 않았다.
“안 오십니까?”
“내가 왜 가야 하나.”
검을 들고 권수에게 달려들어야 할 이유가 없다.
그저 그가 공격을 위해 달려들 때 선수를 치면 될 일이다.
권은 검보다 확연히 짧으니.
“그럼 제가 가야지요.”
라고 말한 일운의 몸 주위로 청아한 금색의 기파가 원형으로 피어올랐다.
남궁진천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는 달려오는 자세가 아니었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것은 직후였다.
대애애앵―!
종소리가 울렸다.
피슛―!
뺨에 핏물이 튀었다.
남궁진천의 눈이 크게 뜨였다.
일운은 제자리다. 제자리에서 주먹을 뻗고 있었다.
“백보신권. 완성했나.”
백보의 거리를 격하여 상대를 무릎 꿇리는 소림의 성명절기다.
분명 기억 속 그는 고작 십보 정도의 거리를 겨우 쏘아내는 정도였건만….
“7년이지 않습니까.”
일운의 미소에 남궁진천은 검을 꽉 쥐었다.
성장했다.
저들 모두가 성장했다.
혜운도, 일운도, 당화서와 제갈산도, 목리원도.
모두 성장했음에도 아직 남궁진천만 그대로였다.
아직도 초절정이었다.
속에 불길이 치솟는 듯하다.
남궁진천은 이를 악 물었다.
“재주가 늘었구나.”
검을 하늘 위로 들어 올리자 검명이 울렸다.
공간이 푸르게 물들어간다.
“봐줄 필요는 없겠군.”
쩌어어어억―!
제왕검형이 발현됐다.
쿵! 쿵! 쿵! 남궁진천은 기공을 발해 일운을 찍어눌렀다.
일운은 자리에 발을 단단히 디디고 그 공세들을 막았다.
양 주먹을 번갈아 사용하며 권풍을 쏘아내는데, 그저 바람이라기엔 그 속에 신묘함이 언뜻 보인다.
그다지 힘겨워하지도 않는 기색이었다.
이윽고 일운이 다가온다.
쿵!
걸음을 한 번 내디딜 때마다 주먹을 내뻗는다.
남궁진천은 막아섰다.
그런 양상이 이어지고 거리는 점점 더 가까워진다.
끝내야 했다.
아니, 진즉에 끝내야 했다.
한데 그럴 수 없었다.
심마는 답을 갈구하고 있다.
이리 성장한 일운과 정체한 자신의 차이를 엿보고자 하고 있었다.
남궁진천은 일운을 관찰하는 일에 심력을 쏟고 있었다.
“번뇌입니까.”
어느새 권과 주먹이 맞닿을 거리.
콰아아아앙―!
금색과 청색의 기파가 충돌했다.
남궁진천은 일운을 바라봤다.
그의 안광이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남궁진천은 중얼거렸다.
“번뇌라.”
“그리 보이십니다.”
“그럴지도 모르지.”
심마와 번뇌의 뜻이 그리 크게 다르지 않으니, 어쩌면 일운의 답도 옳을지도 몰랐다.
“해소하는 법을 아나?”
일운은 싱긋 웃었다.
“모릅니다. 여전히 통제할 수는 없더군요.”
“여전히?”
“하지만, 번뇌를 바라보는 법은 알게 되었지요.”
우우우웅―!
일운의 기파가 강렬하게 진동했다.
남궁진천은 그에 맞춰 공력을 터뜨리며 되물었다.
“무엇이지?”
“받아들이면 그만인 일입니다.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대화는 그것이 끝이었다.
콰과과광!
기파의 충돌을 이겨내지 못한 비무장 바닥이 죄다 뜯겨나가기 시작했다.
시야가 번쩍번쩍 울려 상대를 바로 바라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큰 장애는 되지 않았다.
애초에, 기공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무인은 세상을 눈이 아닌 오감 전체로 인식하게 되는 까닭이다.
두 사람이 쉼 없이 공세를 주고받자 폭발을 일어났다.
그리하며 전개된 심상을 부딪쳤다.
남궁진천은 일운의 공세에서 투기를 느꼈다.
진득한 투기에는 즐거움이 얼핏 배어있다.
승부욕인가? 아니, 승리를 향한 갈망이다.
부동심은 개나 준 듯하다.
콰광!
그에 흘려보내는 남궁진천의 심상은 광대했다.
하나 스스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흐트러져 있었다.
이 경기를 이기면 다음은?
목리원을 만나는데 승부의 향방은?
아직도 초월이 아닐진대 이대로 답을 얻지 못하게 되면?
패배다.
남궁진천은 치명적인 초식을 사용하지 않았다.
연신 답을 갈구했다.
그 순간이었다.
일운의 주먹이 펴졌다.
남궁진천은 그것을 느끼고 흠칫 놀랐다.
느껴지는 기운이 범상찮다.
위험하다.
‘반격을!’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항복하겠습니다.”
우뚝, 남궁진천의 몸이 멎었다.
항복을 위해 손바닥을 핀 건가?
아니다. 그는 손바닥을 펼친 후 무언가 공세를 더하려다 포기했다.
남겨둔 수가 있었다.
“왜냐.”
남궁진천은 험악하게 물었다.
펴진 손바닥이 혹여 놓친 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하나,
“쓰고싶은 곳이 따로 있는 수입니다. 게다가, 전력을 다하지 않은 것은 남궁 시주님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일운은 그리 말하며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 미련 없이 떠나갔다.
“검룡! 승!”
“와아아아아아!!!”
남궁진천은 일운이 떠나간 비무대 위에, 홀로 멍하니 선 채로 허공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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