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241화 (241/334)

EP.242 이부 삼장 - 남궁진천 (2)

* * *

당연한 승리였다.

그렇기에 남궁진천은 불만족스러웠다.

혜운이 진건과 함께하며 강해졌다 하지만, 그녀를 상대로 일 수에 경기를 끝내지 못한 건 그가 스스로 세운 기준에 미달 되는 일인 까닭이다.

돌아온 남궁진천은 비무를 복기했다.

차라리 혜운이 처음 던진 수에 방어가 아닌 공격을 했으면 어땠을까.

그녀가 내지른 세 번의 연격을 똑같은 세 번의 연격으로 맞받아쳤으면 어땠을까.

그리고 마지막 순간, 그녀의 심상이 발현되기도 전에 끝냈으면 어땠을까.

승리는 상대가 혜운이기 때문에 손에 쥔 것이었다.

만약 목리원이 상대였다면 첫수에서부터 패색이 짙어졌을 것이다.

목리원의 검이었다면, 연격은 폭풍이 되어 전신을 난도질했을 것이다.

가정에 가정을 이어갈수록 남궁진천의 표정은 험악해져 갔다.

무엇하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동안 산에 틀어박혀 실전을 멀리한 반동이 온 것이겠지.

더 나은 수를 보일 수 있었음에도, 그럴 만한 기량이 있었음에도 모두 발휘하지 못한 것이라 더욱 불만스러웠다.

그런 상념에 빠지면, 역시 다다르는 결론은 ‘초월이 되어야 한다’였다.

딱 한 발자국이다.

남궁진천은 2년 째 그 한 발자국을 내딛지 못해 정체하고 있었다.

그것은 이제껏 그가 마주한 벽 중 가장 크고 단단한 벽이었다.

단서조차 없다.

제왕성은 이번만큼은 남궁진천의 부름에 응하지 않고 있었다.

공력이 모자란 것도 아니다.

검술의 이해가 모자란 것도 아니다.

한데도 초월은 딱 한 발자국 앞에서, 신기루처럼 일렁이기만 하고 있었다.

그에 문득 짜증이 치솟는 순간이었다.

콩!

“아기 선녀님 등장!”

남궁영이 나타났다.

알 감자만 한 주먹으로 등을 두드리는 것에 남궁진천은 명상에서 깨어났다.

눈을 뜨니 남궁영이 빵싯빵싯 웃고 있었다.

그 모습에 눈 녹듯 짜증이 사라지니, 남궁진천은 희미하게 미소를 띄워 올렸다.

“아기 선녀는 무엇이냐.”

“할아방이 말해줬는데!”

“아기 선녀라 하던가?”

“웅! 영이는 하늘에서 내려온 아기 선녀!”

직후 남궁영이 손으로 제 머리를 가리켰다.

머리칼이 두 개의 고리 형상으로 묶여 있었다.

“엄마야가 해줬어!”

남궁영의 뺨에 보조개가 깊이 파였다.

이것은 딸의 기분이 아주 좋을 때나 나오는 반응이었다.

“어여쁘다.”

“웅! 영이는 엄마 딸이니까!”

“내 딸이기도 하지.”

“영이는 아빠 안 닮았는데! 할아방이 그랬는데!”

“….”

남궁진천의 눈썹이 휘었다.

“닮았다. 골격이.”

“곤격?”

“골격.”

“곤격!”

꺄르르, 남궁영이 웃음을 터뜨렸다.

“곤격!”

공격이라는 뜻으로 알아들은 듯하다.

알 감자 주먹이 이번엔 남궁진천의 가슴을 콩콩 두드렸다.

손 가는 대로 막 갈기는 주먹질인데 어딘가 신묘한 묘리가 있는 것만 같다.

자식 앞에서 팔불출이 되는 것인지, 정말 남궁영이 재능이 있는 것인지.

남궁진천은 상념을 밀어내며 물었다.

“누가 가르쳐주더냐?”

“안 가르쳐 줘써!”

“으음?”

“꺄하!”

남궁영이 눈을 질끈 감고 연신 주먹질을 이어갔다.

즐거워 보이니 그거면 된 건가.

남궁진천은 가슴 속이 간질간질한 기분을 느끼며 남궁영을 안아들었다.

‘즐긴다라….’

왜인지 그것이 참 신경 쓰인다.

무언가 손에 잡힐 듯했다.

하나, 이번 역시 상념은 신기루가 되어 흩어졌다.

“아! 엄마야가 밥 먹으래!”

남궁영이 뒤늦게 찾아온 목적을 말했다.

남궁진천은 고개를 끄덕이곤 방을 나섰다.

“영아―!”

문 앞에서 기다리던 가주가 눈을 부릅뜬 채로 팔을 벌렸다.

“할아방!”

남궁영도 신나서 도도도 가주에게 달려갔다.

“체통을 지키십시오.”

“너부터 잘하거라.”

남궁진천의 말에 싸늘하게 대꾸한 가주는 금새 헤벌쭉한 얼굴로 남궁영의 뺨에 입을 맞췄다.

“아이구 귀여운 우리 새끼.”

“새끼!”

“아차차! 새끼는 나쁜 말이란다!”

“새끼야!”

“허허헛!”

남궁진천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찌 가문에 제대로된 사람이 없다고.

가주가 알았으면 뒷목을 붙잡을 생각이나 하는 와중이었다.

*

며칠이 더 지난 밤이었다.

청룡비무회의 열기로 떠들썩한 무한도 슬슬 조용해질 시간, 남궁진천은 침소에 들었다.

“오셨어요?”

서예가 가벼운 옷차림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침소에 앉아 서책을 읽는 채였다.

워낙에 피부가 하얗고 체구가 작다 보니 가녀리게만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물론 그녀의 성격을 알면 쏙 들어가는 생각이지만.

“무얼 보고 있나.”

“그냥 잡서죠. 시간 떼우기에 이만한 게 없어서.”

“그런가.”

남궁진천이 다가가 눕자 서예도 책을 덮었다.

어둑한 방 안은 두 개의 숨소리만이 통통 튀어올랐다.

와중 서예가 말했다.

“고민이 많으신가 봐요.”

“나는 항상 고민한다.”

“그리 생산성있는 고민은 아니죠. 대부분.”

“아니다.”

“이번엔 아니라는 말이죠?”

침묵은 곧 무언의 긍정이었다.

서예가 쿡쿡 웃음을 터뜨렸다.

“슬슬 애가 타나 봐요. 반년 전까지만 해도 곧 초월이라고 그렇게 입을 놀리시더니.”

“곧이다.”

“곧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른 법이죠.”

오늘따라 왜 이렇게 긁어댈까.

남궁진천은 눈을 좁히며 서예를 노려봤다.

서예는 빙긋 웃으며 손을 뻗어왔다.

가녀린 손이 남궁진천의 뺨을 쓸었다.

그녀의 미소는 잔잔하게 피어 편안함을 불러일으키는 형태였다.

“그거 알아요? 당신은 한 번씩 쉽게 가도 될 길을 어렵게 돌아가요. 머리도 안 좋으면서 괜히 머리를 쓰려고 한다구요.”

“….”

“쉽게 생각해요. 당신답게. 아니면 영이 좀 본받아보고.”

“아이가 나를 본받아야지.”

“당신은 본받으면 안 돼.”

서예가 단칼에 잘라냈다.

남궁진천은 반박하지 않았다.

그녀는 대체로 옳은 말만 하는 편이니 이번 역시 마찬가지이리라는 믿음이었다.

자존심은 상하지만 뭐 어쩌겠나.

이리 살다 보니 전처럼 고집 피우는 일이 귀찮게 여겨지는 것을.

쉽게 생각하라.

그를 떠올리던 남궁진천은 또 깊은 상념에 빠지게 됐다.

쉽게 생각하는 일을 생각하다 어려움에 봉착한 것이었다.

와중 서예가 말했다.

“미간 피고. 그러다 주름 생겨요.”

“그걸 걱정할 나이는 아니다. 당신부터….”

“계속 씨부려 봐요.”

“….”

남궁진천의 입이 다물렸다.

말실수였다.

올해로 서른 둘, 그녀는 전보다 나이 이야기에 조금 더 예민해졌다.

분명 서예는 웃고 있는데 왜 살기가 느껴질까.

남궁진천은 공포를 느꼈다.

이런 감정이 공포라는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그는 총 3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잠이나 자지.”

도피를 선택했으나 어림도 없었다.

“왜, 씨부려 보라니까.”

“미안하다.”

“뭐가 미안한데?”

“그냥 다.”

“얼버무리네?”

남궁진천의 눈이 지그시 감겼다.

속에 후회가 차올랐다.

무엇을 후회하는지는 글쎄, 더 생각해선 안 될 것이다.

*

결국 밤 늦게까지 시달렸다.

무엇을 잘못했고 왜 그런 잘못을 했으며 이게 왜 잘못이고 다시 이런 잘못을 하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까지 스스로 생각해 답을 내 그녀를 만족시켜줄 즘에야 남궁진천은 해방될 수 있었다.

물론, 잔소리에서 해방됐다는 말이지 수면을 허락받은 것은 아니었다.

부부 사이엔 갈등을 풀기 위해 거쳐야 할 일련의 과정이 있었다.

남궁진천은 새벽녘에야 잠들 수 있었다는 말이다.

여하튼, 그런 이유가 있었다.

“승! 남궁진천!”

비무날이었고, 남궁진천은 승리했다.

오늘도 만족스러운 승리는 아니었다.

아니, 어떠한 면에서는 만족스러웠다.

최선의 상태로 비무에 임하지 못했음은 실책이었고, 그럼에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상대를 꺾은 것이 흡족함이었다.

감상은 그것으로 끝, 세부적인 것은 돌아가 복기하며 따지면 될 터다.

딱히 서예가 원망스럽다거나 하진 않았다.

이 또한 가장의 무게 아니겠는가.

“오! 남궁 형!”

비무장을 내려오자 제갈산이 낄낄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왜 여기 있나.”

“맹에 업무가 있어 가는 길에 들렀소. 4강 축하하오.”

“되었다.”

“이거이거 빨리 가려는 걸 보니 어서 안사람에게 자랑하고 싶어 하는 기색이구먼.”

제갈산이 능청을 떨며 팔꿈치로 콕콕 팔을 치기 시작했다.

남궁진천의 입술이 꾹 다물렸다.

제갈산은 낄낄대며 말을 더했다.

“아이고, 이리 잘 사는 꼴 보니 나도 혼인해야지 싶어지오. 남궁 형, 주변에 참한 아가씨 없소?”

“하지 마라.”

“…응?”

“하지 말라고 했다.”

“…아, 미안하오.”

제갈산이 팔을 치던 것을 멈추곤 머쓱한 얼굴로 뒤통수를 긁었다.

하지만 남궁진천은 그걸 말하는 게 아니었다.

하지 말라고 한 것은 혼인이었다.

“쩝, 피곤하시겠구려. 어서 들어가 보시오.”

제갈산이 떠나갔다.

남궁진천은 씁쓸한 얼굴로 그 뒷모습을 바라봤다.

‘우둔한 놈.’

두 번까지 충고해줄 필요는 없겠지.

혼인을 하던 말던 제 앞가림은 알아서 할 놈이니.

불륜이나 저지르지 않으면 다행이다.

“아빠야!”

“축하해요.”

대기실로 돌아오니 남궁영과 서예가 있었다.

서예의 피부는 오늘따라 유독 빛났다.

그녀가 다가옴에 흠칫, 남궁진천의 어깨가 떨렸으나 이내 멎었다.

서예가 포옹을 해온 까닭이다.

“어제는 미안해요.”

사과 한 번에 마음이 다 녹아내린다.

남궁진천은 표정관리에 힘썼다.

그래, 지지고 볶고 사는 게 부부생활 아니겠는가.

이런 갈등도 있고 저런 갈등도 있으나 결국 함께 걸어가는 동반자란 말이다.

사소한 것은 그냥 넘어가 버리자.

“웅? 모가 미안한데?”

남궁영은 고개를 갸웃하며 남궁진천에게 물었다.

남궁진천은 단호히 답했다.

“그 말은 하지 마라.”

잊고 싶은 기억을 끄집어내다니, 딸아이에겐 도발의 재주가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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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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