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41 이부 삼장 - 남궁진천 (1)
* * *
비무장 가득 함성이 울려 퍼진다.
남궁진천은 팔짱을 낀 채로 그 광경을 바라봤다.
“묵룡 목리원! 승!”
“와아아아아아!!!”
비무대 위엔 목리원이 검을 갈무리하곤 상대에게 포권을 취하고 있었다.
상대 또한 마찬가지다.
화산의 화검, 지난 청룡비무제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는 목리원에 의해 무릎이 꿇렸다.
혹자는 좋은 승부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남궁진천이 보기에는 그랬다.
“여유롭군.”
목리원은 그 힘의 절반도 제대로 내지 않고 있었다.
그저 상대의 경지에 맞춰 적당히 검을 놀렸을 뿐, 전력을 다한 기색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걸 당사자가 가장 잘 아는지, 화검 또한 씁쓸하게 웃고 있었다.
“생각이 많은 얼굴이네요.”
서예가 물었다.
남궁진천은 무심하게 답했다.
“그다지.”
예상한 일이 아니던가, 그의 성장도, 무공도, 이리 좁혀져 역전될 격차도.
애초에 7년 전에도 공력의 차이가 아니었다면 비벼보지도 못할 것이 목리원이었다.
그럼에도 아직 승리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오기임을, 남궁진천 스스로가 가장 잘 알았다.
“그만 가지.”
“네.”
남궁진천은 서예와 함께 비무장을 떠났다.
열기가 멀어지고 있었다.
*
다음 날 아침이었다.
“무난인사!”
남궁진천은 제 배 위로 올라와 꺄르륵 웃는 아이를 바라봤다.
다시 생각하는 것은 지난 일이었다.
예상했던 혼인의 거부 따윈 없었고, 사고에 대한 질책도 없이 가문은 딸을 아주 어여삐 여겨주었다.
곧장 가주까지 장원에 머물며 남궁영을 끼고 살았고, 그 탓에 남궁영이 아주 많은 것을 배우기 시작했다.
문안 인사도 그중 하나, 가문에서 가르친 것이었다.
“문안 인사다.”
“무난?”
“문안.”
“무난!”
남궁진천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자리했다.
아이를 한차례 쓰다듬어준 그는 곧장 상체를 일으켜 아이를 안아 들었다.
그리 잠기운을 덜어내며 마당으로 나서니 숙부 청성검 남궁운이 있었다.
“진천이 일어났느냐.”
“할아방!”
“어허허, 우리 영이도 있구나.”
남궁운이 헤벌쭉한 얼굴을 만들었다.
할아방이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그저 아이가 귀엽게만 보이는 듯했다.
“이리 오거라!”
남궁운이 팔을 활짝 벌리고 자세를 낮추자, 남궁영이 엉덩이를 빵실빵실 흔들다 그대로 그에게 달려가 안겼다.
“이야아!”
“아이쿠!”
남궁운이 흙바닥을 굴렀다.
“우리 귀여운 조카손녀!”
우와아아악! 하고, 남궁운이 데굴데굴 구르며 남궁영을 간질였다.
남궁진천은 한심하다는 듯 그를 바라봤다.
“숙부, 추합니다.”
“으헤헤헤헤.”
귓등으로도 안 듣고 있었다.
남궁진천이 한숨을 푹 내쉬는 순간이었다.
“손녀야―!”
우렁찬 외침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눈이 시뻘개진 가주가 씩씩대며 남궁운을 노려보고 있었다.
또 시작이로군.
남궁진천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이리 오거라!”
“거 형님은 왜 애한테 큰 소리를 내시오? 영이는 내가 놀아주겠소!”
“어허! 너는 가주가 물로 보이느냐!”
“꺄하하!”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었다.
딸아이를 대체 얼마나 좋아해 주는 것인지, 잠시라도 없으면 저리 난리들이다.
그 순간이었다.
“아, 일어나셨나요.”
서예가 나타났다.
어쩐지 보이지 않더니, 먼저 일어나 다른 곳을 다녀온 듯했다.
“어딜 다녀왔나.”
“어디긴요. 가주님께 문 안 드리고 왔죠. 영이가 이쪽에 있다고 하니까 바로 달려가시길래 따라온 거예요.”
과연 올 때부터 씩씩대는 표정이더니, 영이가 문안인사를 오지 않은 것에 심통이 나 있었던 것일 터다.
남궁진천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연무장을 향했다.
운기조식으로 마음을 다스리고, 몸을 일깨우기 위해 초식을 간단히 시연해본다.
그리하고서 식사를 마친 후 옷을 갈아입었다.
“오늘 잘해요. 영이랑 응원하고 있을 테니까.”
서예가 웃으며 옷 매무새를 가다듬어주는 것에, 남궁진천은 말했다.
“응원할 필요 없다. 어차피 이길 것이니.”
“말 좀 예쁘게 하지.”
톡, 서예가 남궁진천의 콧잔등을 두드렸다.
오늘은 남궁진천의 16강 비무 날이었고, 상대는 혜운이었다.
*
비무대에 오르는 남궁진천의 기색은 고요했다.
대기실에 정좌하여 되새기는 상념이 있었다.
‘어떻게 이길 것인가.’
오늘의 상대인 혜운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멀리, 남궁진천이 넘어서고 싶은 적수는 결승선 앞에 있었다.
목리원이었다.
남궁진천은 끊임없이 목리원의 수를 되새겼다.
그가 보여준 검술을 하나하나 분해하고, 다시 조립하고, 그렇게 그가 발할 수 있는 모든 검의 경로 앞에 자신을 둔다.
그리하여 쉴새 없이 무너지는 스스로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검룡 대협, 이제 나오셔야 합니다.”
맹의 무인이 일렀다.
남궁진천은 그제야 스르르 눈을 뜨곤 검을 챙겨 일어났다.
“알겠다.”
대기실을 나서 긴 복도를 지나친다.
그리하여 빛이 쏟아져 내려오는 출구를 나선다.
“와아아아아아!!!”
함성이 고막을 울린다.
비무대 위엔 혜운이 삐딱한 자세로 서서 미소짓고 있었다.
“벌써 만났네요?”
“그래.”
“와, 표정 좀 봐. 나는 상대도 아니라는 얼굴이네.”
“실제로 그렇지 않나.”
혜운의 이마에 힘줄이 섰다.
“얼씨구?”
“틀렸나?”
혜운의 입가에 위험한 미소가 걸렸다.
“그렇게 방심하면 큰코 다칠텐데.”
혜운이 검을 늘어뜨렸다.
남궁진천 또한, 검을 뽑아들었다.
심판이 한 발 뒤로 물러나 손을 하늘 높이 들었다.
이윽고,
“개(開)!”
비무가 시작된다.
*
혜운의 검이 빠르게 짓쳐들었다.
회백색 검기가 그 위를 덮고 있었다.
빠르고, 치명적이었다.
채애애앵―!
남궁진천은 선 자리에서 그 검을 맞받아쳤다.
전해지는 힘에선 확실히 자신감의 이유가 드러나고 있었다.
7년 간 놀지 않았다는 말일 터다.
“초절정에 올랐군.”
“뭘 새삼스럽게 물어요?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가르쳐줬잖아.”
까드득, 검로가 뒤틀린다.
직후 혜운의 신형이 흐릿해졌다.
목덜미가 서늘해진다.
‘위험.’
곧장 검을 들어 측면을,
채앵!
다시 허리를,
채앵!
그리고 가슴을,
채앵!
모두 막아내고 기파를 터뜨렸다.
콰아앙―!
진동이 전신을 울린다.
남궁진천의 눈이 좁아졌다.
혜운은 즐겁다는 듯 웃고 있었다.
이 신묘한 검술, 낯설지 않았다.
“도왕께 배운 건가.”
어린 시절 조부 남궁혁과 대련하던 진건의 수가 꼭 이런 식으로 변칙적이고 사나웠다.
그와 7년을 붙어 다녔다더니 이런 수를 배워온 듯하다.
“어때요?”
“잡스럽다.”
쿠웅!
푸른 기파가 공간을 점한다.
압도적인 내공의 양으로 움직임을 제한하고 기류를 뒤튼다.
그리하여 상대에게 패배를 강제하니.
“무게감이 없군.”
“도왕 아저씨가 들으면 화내겠네.”
쩌어어어억!
제왕검형이 발현됐다.
하나, 그리 유효한 타격은 아니었다.
유연하게 몸을 회전시킨 혜운이 검로를 빠져나갔다.
서걱 잘리는 것은 옷자락이다.
“어머, 아끼는 옷인데.”
“그럼 입고 나오질 말았어야지.”
“말 한 번 심하게 하시네. 그러니 인기가 없지.”
“혼인은 했다. 너랑 다르게.”
울컥, 혜운의 이마에 핏대가 굵어졌다.
“이야, 도발이 많이 느셨네?”
“부럽나?”
“아뇨? 안 부러운데? 난 비구니라서 혼인 생각 없는데?”
“부러우면 부럽다고 말해라. 추하다.”
“죽었어 진짜.”
키이이잉―!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진 혜운의 얼굴이 꽤나 사납다.
그녀를 두른 기파는 그것보다 더 사납다.
심상의 발현, 즉 기공이었다.
비구니라더니 무공이 참으로 난폭했다.
“역시 검룡은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할 수 있으면 해보라.”
검색
남궁진천 또한 심상을 발했다.
공간이 청색으로 물들었다.
승부처였다.
몇 수 나누지 않았지만, 함께 단원으로 지내며 서로에 대해 아는 게 있었던 만큼 두 사람은 동시에 그것을 느꼈다.
회백색으로 몸을 감싸는 기파와, 공간 전체를 물들이는 푸른 기파가 한데 얽히며 장관을 이뤘다.
심상과 심상의 충돌이란 것은 이렇듯 보는 사람에겐 탄성이 나오는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다.
“와아아아아아!!!”
함성 소리가 커진다.
남궁진천과 혜운의 시선이 마주했다.
달려드는 것은 혜운이었다.
절제되지 않은 야성, 그리고 날카로움을 전신에 휘감으며 달려드는 꼴은 꼭 한 마리의 맹수와도 같았다.
그녀답다면 그녀다운 심상이다.
물론, 감상은 그게 끝이었다.
“갈 길이 멀다.”
남궁진천은 검을 하늘 위로 뻗었다.
혜운이 강해졌다고 하나 결국 혜운이다.
날카롭고 포악하다 하나, 결국 땅 위의 것이다.
남궁진천의 시선을 돌릴 수는 없었다.
그는 더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스으으윽―
검이 부드럽게 떨어져 내렸다.
그러자 승패가 결정 났다.
툭.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듯, 비무대 위에 존재하는 모든 요소가 남궁진천의 검을 혜운의 목덜미로 이끌었다.
동작을 멈춘 혜운은 헛웃음을 흘렸다.
“아, 진짜 이건 반칙이지.”
“주제에 볼 만했다.”
직후, 혜운은 투덜대며 항복을 선언했다.
“승! 검룡!”
남궁진천은 돌아섰다.
그의 시선이 관객석을 향했다.
가족들이 가장 먼저, 아내와 딸이 손인사를 하는 것이 보였으나, 시선은 이윽고 다른 곳을 훑는다.
그 끝에서 목리원을 발견하고서야 멈췄다.
목리원은 웃고 있었다.
남궁진천은 주먹을 꽉 쥐었다.
‘지워주지.’
그 웃음기가 더 이어지지 않게 해주겠다.
그에게 도달하기까지 두 경기만 겨우 남아있었다.
다음화 보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