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238화 (238/334)

EP.239 이부 이장 - 후기지수 (6)

* * *

압도적이다. 까마득하며, 절망적이다.

그것이 단원들이 떠올린 마음가짐이었다.

일평생 드높은 벽이랄 것을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어린 새싹들은 다음 대 천하제일이라는 이름의 무게를 여실히 실감하고 있었다.

그것은 ‘노력하면 넘을 수 있다’의 개념을 넘어선 불가해의 무언가였다.

마치 발버둥을 쳐도 닿을 수 없고, 어떤 수를 쓰더라도 해할 수 없는 하늘을 마주한 기분이라 해야 할까.

“오지 않는구나. 그럼 여기서 끝내겠느냐?”

분명 정면을 바라보고 있음에도 고개를 꺾어 들어 하늘을 보는 기분이었다.

그런 감각을, 광룡 백경오가 가장 극심하게 느끼고 있었다.

꾸욱―!

심장이 조여온다.

호흡은 가빠졌고 손끝은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백경오는 그 감정을 정의할 수 없었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기 때문이다.

공포였다.

그것은 상대보다 나약함을 인정하고 굴종하게 되어야만 떠오르는 감정이었다.

투천성의 주인으로서 단 한 번도 그런 감각을 느껴본 적이 없었기에, 또한 죽음을 두려워해 본 일이 없었기에.

백경오는 몸과 마음을 짓누르는 이 모든 것들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어째서.’

주먹이 쥐어지지 않는가.

어째서 검을 들 수 없고 어째서 발을 내디딜 수가 없는가.

이다지도 상대가 높게만 보여, 무심코 도주를 결심하게 되는가.

‘도망? 내가?’

다음을 노려? 지금이 아니라? 투쟁이 아닌 승리를… 아니, 생존을 도모한다고?

“핫…!”

실소가 삐져나온다.

미친 게 분명했다.

그리 판단하지 않고서야 이 상황이 설명되지 않았다.

백경오는 목리원을 꿰뚫을 듯 노려봤다.

할 수 있는 최선의 발악이었고, 또한 내내 느끼던 께름칙함에 대한 반항이었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목리원에게서 느껴지던 소름끼치는 감각이 있었다.

마치 시선이 닿는 모든 곳을 검으로 훑는듯한 감각이었다.

처음엔 그때 느낀 께름칙함이 마냥 다가올 싸움을 향한 희열인 줄로 알았건만….

‘몸이 먼저 겁을 먹은 거였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백경오는 비틀비틀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하겠습니다.”

굳어가는 입매를 억지로 끌어올려 미소를 띄워 올린다.

그것은 마치 겁먹은 초식 동물이 몸을 부풀리는 행위와 닮아있었고, 그걸 백경오만 몰랐다.

어찌 되었건, 그리 스스로를 부정하여 달려든 백경오에게 기다리는 미래는 하나였다.

“끄헉!”

이번 역시, 그의 검은 목리원의 검지를 넘어서지 못했다.

*

이후로도 단원들은 쉬이 포기하지 못하고 목리원에게 덤벼들었다.

그 기저에 깔린 것은 자존심이었다.

고작 목리원의 검지 하나를 뚫지 못하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그 얄팍한 자존심 말이다.

백경오가 느낀 감정을 그들 또한 비슷하게 느꼈다고 말하는 게 옳았다.

하나, 그리 자존심을 세운다 해서 목리원이 봐주는 일은 없었고 결국 2기 용봉단은 처참하게 패배했다.

“여기까지겠구나. 너희들의 공력이 다 했으니 말이다.”

“아직…!”

“왜, 선천진기라도 끌어 쓰려하느냐? 그리하면 내 발걸음을 한 발짝이라도 옮길 수 있을 것 같더냐?”

움찔, 백경오는 몸을 떨었다.

실제로 그런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마 실행하진 못했다.

목리원의 말대로, 달려들면 들수록 선명해지는 경지 차이가 이미 답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용과 봉, 그리 불려 어깨에 힘이 들어가있는 것은 안다. 나 또한 너희들과 비슷한 과정을 겪었으니 말이다.”

목리원이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어딘가 질책하는 형태의 말이었으나, 기색이 너무 부드러워 보듬어주는 형태로 들리기도 했다.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겠지. 누굴 만나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을 터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겸허해야만 한다.”

목리원이 뒷짐을 풀고 가장 먼저 백경오를 일으켜 세웠다.

“강호는 넓다. 수많은 기인이사가 숨죽이고 있으며, 그들의 숨이 어느 순간 폭풍이 되어 휘몰아치는 곳이다. 어떤 숨은 변덕스럽고 난폭하기 그지없어, 산들바람처럼 다가와 목을 물어뜯는 때가 있다.”

하나 둘 단원을 일으키면서도 목리원의 말은 멈추지 않았다.

“그들보다 너희가 어찌 강하다 할 수 있겠느냐. 그들조차 겸허함을 알진대 어찌 너희가 오만할 수 있겠느냐.”

직후 말이 끝맺어졌다.

“방심하지 말거라. 적을 얕잡아보지 말고, 실력을 과신하지 말거라. 오늘의 경험을 두고두고 되새기며 공부하거라.”

직후, 목리원의 기색이 사뭇 맑아졌다.

어딘가 헤프게까지 보이는 미소를 한 채 목리원이 말했다.

“자, 그럼 오늘 대련은 여기까지. 열심히 움직였으니 다들 허기가 질 것이다. 밥이라도 먹으러 가자꾸나.”

목리원이 연무장의 문을 열었다.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

그리 식당으로 향한 직후, 목리원은 일이 있다며 자리를 떠나갔다.

남은 단원들은 한 데 둘러앉아 젓가락을 깨작거리고 있었다.

흡사 초상집 분위기였다.

“…초월이지. 분명.”

운을 띄운 것은 남궁소아였다.

강서휘가 말을 받았다.

“그렇지. 그게 아니고선 설명이 안 되니까.”

목리원의 경지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들 모두 목리원이 초월지경에 닿았음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절망적인 차이가 나는 것이 설명이 안 되기 때문이다.

초절정은 이런 무위를 발휘하는 게 불가능하다.

그것은 이미 초절정의 무인들과도 지도 대련을 해본 용봉들이기에 아는 사실이었다.

검지 하나로 절정의 무인 다섯을 상대하는 것을 확인한 순간부터, 답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던 것이다.

“김빠지네.”

남궁소아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실컷 쎈 척은 다해놓고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한 채로 끝나버리니 뒤늦은 수치심이 차올랐다.

비단 남궁소아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와중, 특히 극명한 반응을 띄워 올리는 것은 백경오였다.

그는 바닥을 멍하니 응시하며 생각에 빠져 있었다.

비무의 복기였다.

‘초월이 아니었다 한들 이길 수 있었을까?’

처음 강호로 나왔던 18세의 목리원을 만났다면, 그렇다면 이길 수 있었을까?

백경오는 그와의 비무를 머릿속에 그렸다.

목리원이 보여준 수법이나 시선처리, 호흡의 간격과 특유의 습관 따위의 것들을 모두 고려해 절정 무인 목리원을 빗어내는 것이다.

‘그래도 진다.’

스스로도 놀랄 정도의 확신이었다.

물론 목리원도 만전의 상태로 보법과 검법을 극성으로 발해야 하겠지만, 승패는 명확했다.

그놈의 반격기술이 문제다.

백경오는 태생적으로 전투에 돌입하는 순간 상대의 모든 행동을 명민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렇기에 목리원이 모든 수를 눈으로 똑똑히 쫓은 것을 확인했다.

어떤 공격을 하건 그 모든 것이 막혔으리란 말이다.

그뿐만 아니다.

분명 목리원의 검지가 향하는 궤적을 확인하고 공격에 들어갔건만, 검이 뻗어나오는 순간 그 궤적이 반대방향으로 부드럽게 뒤틀려 검을 막아냈다.

공수의 전환이 비현실적이란 말이다.

압도적 열세.

그저 끈덕지게 물어뜯는 것으로는 이길 수 없는 격의 차이.

어깨가 무겁게 짓눌린다.

그리고,

“크핫….”

새로운 감정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우호적이었지.’

목리원의 모든 행동은 단원들에게 우호적이었다.

가르침을 내려주려는 듯 대련에 있어 한없이 친절한 수법만을 썼다.

그러니까, 그와의 대련은 모든 공세가 깨달음과 연관되어 있었단 말이다.

‘대련 신청을 또 하면 받아줄까?’

분명 받아주겠지.

그럼 또 하나를 배우겠지.

야금야금 먹어 치울 것이 늘어나겠지.

그렇게 끊임없이 먹어 치우다 보면, 언젠가는 그럴싸한 싸움을 할 수 있을 경지에 도달하지 않을까.

백경오는 그의 수에 하나하나 반격하고 파고드는 순간을 상상했다.

몸이 달아오르는 기분이었다.

승패보다 앞서 싸움 자체의 질을 따지는 것은 그의 어쩔 수 없는 천성이었다.

본능은 말하고 있었다.

분명 목리원과의 대등한 비무는 이제껏 맛본 적 없는 미식일 것이라고.

백경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간다.”

“뭐야, 쟤 왜 저래?”

“놔둬라. 언제는 이해되는 행동을 한 적이 있었나.”

단원들을 뒤로한 채 그대로 전각을 빠져나갔다.

오늘 대련을 복기해 수정할 점을 찾고, 다시 한번 대련을 신청할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거리에 나선 순간이었다.

“음? 으음… 어? 이보게!”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백경오가 아는 얼굴이 그곳에 있었다.

‘제갈 가주.’

곧장 포권을 취했다.

“가주를 뵙습니다.”

예까지 무슨 일인가. 아, 목리원과 막역한 사이라고 했으니 그를 만나러 오는 길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오오, 마침 잘 만났네. 나 좀 도와주시게.”

제갈산이 다짜고짜 백경오를 끌고 무림맹의 입구로 향했다.

그리고 입구의 포목점을 가리켰다.

“저기 부부가 보이는가?”

“…예?”

“저기 말일세.”

백경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제갈산이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저기 점주가 듬직하게 생기신 사내분이라네. 저분 시선 좀 끌어주게나. 명목은… 그래, 옷 한 벌 지으러 왔으니 치수 좀 재 달라 말해보시게.”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백경오는 물었다.

“제가 왜 그래야 합니까?”

“응?”

돌아온 반응은 의문이었다.

제갈산은 당연한 걸 왜 묻느냐는 듯 말했다.

“그래야 내가 저 부인에게 말을 걸 틈이 생기지 않나.”

우뚝, 백경오의 몸이 멎었다.

귀를 의심하게 되는 말에 백경오는 제갈산을 바라봤다.

그는 무엇이 잘못되었냐는 듯 여상스러운 태도였다.

“뭐하나, 안 가고.”

“….”

“거 도와주시게. 내가 저 부인께 용건이 있어서 그런다니까?”

‘그 용건이 건전한 용건이 맞습니까?’

차마 내뱉지 못하는 의문이었다.

광룡.

세간에 그리 불리던 백경오는 진짜 광기가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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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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