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35 이부 이장 - 후기지수 (2)
* * *
절로 긴장을 떠오르게 하는 비유에 벌써부터 공포가 차오르지만 시간은 그런 목리원을 배려해주지 않았다.
“오늘 도착한다더군요.”
당화서의 말은 일종의 통보와도 같았다.
목리원은 거무죽죽한 얼굴로 말했다.
“자신이 없소. 검룡 형이 다섯이 아니오?”
“그 정도는 아닙니다. 제갈 놈이 겁을 준 것이겠지요. 그리고 제가 도울 텐데 뭐 그리 걱정이 많으십니까.”
어깨를 쓸어주는 손길이 사뭇 부드럽다.
믿고 맡기라는 듯 짓는 미소 또한 목리원을 위로하는 형태였다.
그랬다.
당화서는 이번 2기 용봉단의 고문 자리로 들어오게 됐다.
1기에서 살성 염소소가 맡았던 바로 그 역할 말이다.
본격적인 업무에서 한 걸음 물러나 난항을 겪을 때마다 쉬이 도움을 줄 수 있는 역할.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고문이라, 그를 떠올리던 목리원은 문득 떠오른 사람이 있어 물었다.
“그러고 보니 살성님의 소식은 아시오?”
강호에 재출두한 이후 그녀의 소식을 알 수 없었던 것에 의아해져 묻는 것이었다.
당화서는 말했다.
“살곡으로 돌아가셨다는 소식만 어렴풋이 들었습니다. 걸왕님은 전 맹주님이 떠날 때 함께 떠나셨다고 들었고.”
“그렇구려. 그분들이라도 있었다면 한결 든든했을 텐데.”
“이미 은퇴하셔도 모자라셨을 분들이 아닙니까.”
하기야 그렇긴 했다.
다들 이제 칠팔십이 우스운 나이들이 되었으니, 언제까지 그들에게 매달려 있을 수는 없는 법이었다.
목리원은 마음을 다잡았다.
그런 와중이었다.
“슬슬 나가보셔야 할 듯합니다.”
소향이 소식을 알려왔다.
2기생들이 온 듯하다.
“이제 가보십시오.”
“알겠소.”
목리원은 외투와 검을 챙겼다.
용봉단주의 집무실은 깔끔하게 정리된 채였고, 날씨 또한 맑다.
‘잘 해봐야지.’
마음을 다잡고 전각을 나섰다.
과연 어떤 친구들일까, 긴장과 눈곱만한 설렘이 함께 하는 순간이었다.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은 다행히 목리원에게 익숙한 얼굴이었다.
“묵룡 대협을 뵙습니다.”
“아! 소아야!”
“기억하고 계시네요.”
앳된 얼굴에 자그마한 몸집이 특징적인 깜찍한 인상의 소녀가 포권을 취했다.
아니, 깜찍하다는 것은 목리원이 그녀의 얼굴 위로 어릴 적의 포동포동한 얼굴을 겹쳐봐서 그런 것일 터다.
무봉(武鳳)이라는 별호를 받은 남궁소아였다.
“정말 많이 컸구나!”
어찌 그 어린아이가 이리 컸을까, 새삼스러운 마음에 허허 웃으며 말한 순간이었다.
“정말요?!”
홱! 고개를 든 남궁소아가 환하게 밝아진 얼굴로 외쳤다.
목리원은 흠칫 놀랐다.
어찌나 소리가 큰지 심장이 다 떨어질 정도였던 까닭이다.
“그, 그래. 내 마지막으로 본 게 네 어릴 적이 아니더냐. 이리 숙녀가 다 되었….”
“그쵸? 컸죠? 저 더 클 것 같죠? 하여튼 이 망할 놈들은 알지도 못하면서!”
아주 화살비처럼 쏟아내는 말에 목리원의 정신이 조금 혼미해졌다.
그제야 떠오른 말이 있었다.
-그 아이 앞에서 덩치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키가 작은 것을 상당히 신경 쓰는 아이라.
소향의 조언이었다.
‘아, 이래서….’
확실히 또래보다 왜소하긴 하지만 그게 그렇게까지 신경 쓸 일인가?
태생이 길쭉한 목리원은 모르는 고민이었다.
“하여튼 빌어먹을 놈들이죠! 아, 그 다른 용봉들이요. 땅꼬마가 까불지 말라니! 너는 여기서 더 안 커서 평생 숙녀는 글렀다니!”
친우끼리 장난이 아닌가.
무심코 그런 생각을 떠올렸으나 이내 스러졌다.
생각해보면 남궁소아는 남궁진천의 누이다.
도발에 약한 것은 당연했다.
“그, 그렇구나… 검룡 형은 만나뵈고 왔느냐?”
“네? 아, 조카도 보고 왔죠. 놀랍긴 하더라구요. 그 인간이 애가 생길 줄은 몰랐는데. 사실 저는 이번 대에 남궁세가 대가 끊길 걸 각오했었거든요.”
어쩌다 남궁진천의 취급이 이렇게 된 걸까.
또한 남궁소아는 이리 톡톡 튀는 성격이 되었을까.
목리원이 기억하는 남궁소아는 꺄르르 웃음을 터뜨리는 게 참 보기 좋은 어여쁜 아이였는데 참 불같아졌다.
어릴 적의 얼굴이 묻어나는 이목구비만 아니었다면 다른 사람이라 생각해도 될 정도다.
“음, 많이 변했구나.”
분위기라도 풀어보고자 목리원은 말을 흘렸다.
“기억나느냐? 어릴 적엔 서방님~ 하면서 나에게 들러붙지 않았니.”
“그, 그거언…!”
남궁소아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부들부들 몸을 떨던 남궁소아는 이내 흠칫 놀라며 말했다.
“대, 대협.”
“음?”
“그 얘기는 비밀이에요? 절대 다른 단원들한테 말하면 안 돼요! 아셨죠? 저 진짜 들키기라도 하는 날엔 또 놀림감이…!”
그게 신경쓰였나보군.
목리원은 끅끅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이었다.
“…아, 오네요.”
남궁소아가 찌릿 눈을 부라리며 맹의 입구쪽을 바라봤다.
그곳에서 걸어오는 남루한 옷차림의 청년이 있었다.
“쟤가 잠룡이에요. 게으름뱅이 놈.”
한눈에 봐도 보이는 게 있었다.
‘무골이다.’
무공 수위는 절정 중반, 나이가 스물인 것을 생각하면 대단한 재능이다.
나른한 인상에 햇볕을 받으며 꾸벅꾸벅 조는 모습이 더해지니 참 한량같다.
그럼에도 길가의 거지로 보이지 않는 이유는 딱 봐도 비싸 보이는 옷차림 때문이다.
‘진주언가.’
오대세가에는 들지 못했지만 그에 준하는 하북의 거대 세가다.
저 무골도, 그리고 경지와 옷차림도 대충 설명이 된다.
“어휴, 저런 것도 용이라고.”
남궁소아가 못마땅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목리원은 허허 웃었다.
“글쎄….”
대충 이야기는 들었다. 비무대에 올라서도 열정적으로 싸우지 않을 만큼 매사에 열정이 없다던가.
하지만 역시 실제로 보니 달랐다.
‘수련은 꽤 열심히 한 것 같구나.’
잠룡 언혁.
절대 공으로 용의 별호를 딴 풋내기가 아니다.
걸음걸이에서 느껴지는 기도가 있다.
그 보폭과 깊이에서 근육의 정밀도가 여실히 느껴진다.
물론 보통사람은 보지 못할 정도로 교묘하지만, 이미 초월에 오른 목리원이 보기엔 빤히 보이는 수였다.
강호에선 힘의 삼 할을 숨겨라.
어쩌면, 잠룡은 그 격언을 아주 잘 따르는 사내일지도 몰랐다.
“묵룡 대협을 뵙습니다. 언혁입니다아….”
나른한 얼굴로 대충 포권을 취한다.
목리원은 마주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나도 잘 부탁한다.”
“이제 들어가죠.”
“응?”
“들어가요. 남은 애들은 느지막하게나 올 테니까.”
남궁소아가 말했다.
“콧대 높은 것들이라 절대 제 시간에 맞춰오는 법이 없거든요.”
요약하자면 그런 말이다.
“일부러 늦을걸요? 굳이 여기서 기다려줄 필요 없어요.”
벌써부터 난항이 예상된다.
*
전각 안으로 드니 아직 떠나지 않은 당화서가 반겼다.
“이 둘이 끝입니까? 아, 하긴….”
당화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눈치였다.
남궁소아와 언혁이 포권을 취하자 대충 응대한 당화서가 말했다.
“일단 여유 시간이 있으니 면담이라도 하고 계시지요. 저는 서류를 좀 정리해두겠습니다.”
“고맙소.”
“별말씀을.”
당화서가 자리를 떠나갔다.
목리원은 두 단원을 바라봤다.
면담이라, 확실히 첫 만남인 만큼 서로를 알 시간이 필요하긴 했다.
“누가 먼저 하겠느냐?”
“얘 먼저 시켜요.”
남궁소아가 언혁을 턱짓했다.
언혁은 하품을 쩌억 하다가, 집무실의 빈 의자에 앉았다.
남궁소아는 문을 나서며 말했다.
“끝나면 불러주세요. 저는 전각 구경이나 좀 하고 있게.”
“그러마.”
드디어 언혁과 단둘이 남은 직후, 목리원은 큼큼 헛기침을 했다.
단주로서 누군가를 이끈다니, 아직은 어색함이 가득하다.
“그래, 서로 이름이나 별호는 알 테니 넘어가자꾸나.”
“예에….”
“앞으로 함께 하게 될 텐데, 혹 나에게 원하는 것이 있느냐? 무공적 가르침이나 생활 중 신경써줬으면 하는 점 같은 걸 말해보거라!”
면담 대본은 제갈산이 짜줬다.
언혁은 끔뻑끔뻑 눈을 느리게 뜨다, 이내 말했다.
“수련을 안 한다고 다그치지만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응?”
“제가 남들만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걔들이랑은 근본이 다르니까.”
자신감이라고 해야 할까, 귀찮음이라고 해야 할까.
나른한 낯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내뱉는 말은 분명 호기롭긴 했으나, 이상한 점은 있었다.
“내가 왜 그리하겠느냐? 너는 이미 수련을 아주 열심히 하는 걸로 보이는데?”
목리원은 기본적으로 근육의 정밀도나, 손의 굳은살, 그리고 기도의 날카로움 따위로 상대가 수련을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언혁은 수련만큼은 목리원이 보아온 사람 중에도 손에 꼽을 정도로 열심히 하는 편이었다.
그런 점이 의아해 묻는 순간이었다.
움찔―
언혁의 어깨가 들썩였다.
눈이 슬금슬금 목리원을 피했다.
“무슨 말씀이신지이….”
“응? 아니더냐? 한눈에 봐도 시간을 들여 노력하지 않으면 만들 수 없는 육신을 하고 있는데.”
뜨끔, 이번엔 좀 더 노골적인 반응이었다.
언혁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목리원의 고개가 갸웃했다.
*
언혁의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 어떻게 안 거지?’
수련을 게을리한다는 인상.
그것은 언혁이 일부로 만든 대외적인 모습인 까닭이다.
언혁은 사실 수련에 그 누구보다 목매는 사람이었다.
눈뜨면 수련, 밥 먹으면서 명상, 낮잠을 자는 척하면서 운기행공을 하고 일과를 농땡이 치는 척하며 머릿속으로 투로를 그린다.
그리하다 자기 전엔 오늘 수련을 되짚는다.
그런 성향을 남에게 보이지 않는 이유는 하나였다.
그게 멋있으니까.
“음? 괜찮으냐? 안색이 좋지 않은데.”
잠룡 언혁.
그는 게으른 천재라는 평가를 받고 싶어서 태만함을 연기를 하는, 이른바 사춘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애어른이었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만….”
언혁은 생애 처음, 가족 외의 사람에게 연기를 들킬 위기에 처해 있었다.
검색
고문이라, 그를 떠올리던 목리원은 문득 떠오른 사람이 있어 물었다.
본격적인 업무에서 한 걸음 물러나 난항을 겪을 때마다 쉬이 도움을 줄 수 있는 역할.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러고 보니 살성님의 소식은 아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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