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31 이부 일장 - 출두, 만남 (11)
* * *
“왜 그러십니까?”
미소 지으며 물어옴에 목리원은 답했다.
“변하셨구려.”
“7년이니까요. 그래서 싫으십니까?”
“조금도 그렇지 않소.”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했다.
목리원은 당화서의 눈동자에 깃든 미약한 녹색 빛깔을 볼 수 있었다.
그녀가 수련한 무공의 영향일 터다.
그래서 그 변화가 싫으냐 한다면 목리원은 고개를 저을 것이었다.
아름다웠다.
특별했고, 고혹적이었다.
옥구슬을 박아넣은 듯한 오묘한 빛깔이라 바라보고 있으면 빨려들 것만 같았다.
그것은 조금, 많이. 목을 바싹 마르게 하는 빛깔이었다.
“저는 기다리고 있습니다.”
무엇을.
질문하지 않았다.
저것은 보채는 말이었다.
7년이나 전해지지 않은 어떤 말을, 그리고 감정을.
목리원의 손은 그도 모르는 순간 당화서의 손 위로 겹쳤다.
시선은 여전히 그녀의 녹안을 향해 있었고, 그 모든 행동을 하는 그의 몸 위 피부는 붉게 달아있었다.
당화서는 반대로 여유로운 낯짝에 여유로운 미소였다.
어디 한 번 해보라는 듯한 태도였다.
물론 속내까지 그런 것은 아니다.
기분 좋은 긴장감과 떨림이 멎질 않는다.
애타게 기다려온 일을 결말이 드리워졌다. 그것을 결정지을 이의 태도가 저리도 풋풋하다.
기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소저.”
“말하십시오.”
“참 짓궂으시오.”
“못된 목 소협보단 낫다고 봅니다.”
당화서가 싱긋 웃자 목리원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리하곤 길게 숨을 내쉬었다.
“말하기가 쉽지 않구려. 부끄러워서.”
목리원은 머릿속으로 말을 정리했다.
예까지 오며 이미 대본과 비슷한 것을 만들었으나, 다시 생각해보니 조금 무미건조했다.
감정에 맡겨보면 괜찮지 않을까.
마음을 전하는 것은 마음의 언어로 해야 하는 게 옳지 않을까.
“소저는 말이오.”
결심한 목리원은 입술을 뗐다.
“돌이켜보면, 소저를 만난 게 내 가장 큰 행운이었던 것 같소.”
목리원의 시선이 맞잡은 손을 향했다.
다르게 말해 눈이 내리깔렸다.
“어찌 그리 생각하십니까?”
“소저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 강호에서 단 하루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 아니오.”
전하는 것은 진심이었다.
목리원은 진실로 그리 생각했다.
만약 이 강호를 나와 처음 만났던 것이 당화서가 아니었다면 세상 물정 모르고 뒤통수를 맞아 어딘가의 노역꾼으로 끌려갔을 것이다.
18세의 목리원은 그리도 순진하고, 멍청했다.
“그런 확신이 처음부터 있었소. 함께하며 더욱 진해졌소.”
부하들을 위해 기꺼이 몸을 내던지는 모습도, 잔혈곡에서 자신의 고집을 들어준 것도, 그 뒤로 참 많은 일을 함께 해줬던 것도, 그리하며 단 한 번도 품은 협이 잘못되었다 일러주지 않은 것도.
당화서는 언제나 목리원의 편이었다.
그녀의 마음은 참으로 너그럽고 선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소저를 눈으로 쫓게 되었소. 이런 말이 어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내겐 소저가 어머니 같기도 했소. 누이 같기도 했고….”
목리원은 입술을 우물거리며 뒷말을 삼켰다.
새하얀 피부가 더없이 붉어져 이 이상 붉어질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늦었던 것 같소. 다른 시선으로 소저를 보게 된 시기가.”
당화서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당화서는 저 말의 뜻을 확실히 알았다.
어머니도 누이도 동료도 아닌, 그런 개념을 알았다.
“저를 어찌 보셨습니까?”
결국 보채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음이라.
묻자, 목리원은 말했다.
조심스레, 작게, 금방이라도 흩어질 숨이 가득 섞인 음성으로.
“…여인으로 보이오.”
목구멍이 꽉 죄는 느낌, 그럼에도 속에 숨이 가득 들어차 가슴이 터질 것만 같은 느낌이 일었다.
손끝에 괜히 힘이 들어간다.
목리원이 고개를 들었다.
“돌이켜 보면, 처음부터. 아마도. 아니, 확실히.”
물기가 일렁이는 눈으로 헤프게 웃는다.
“강서성에서 처음 만난 그때부터, 속에선 소저는 언제나 여인이었소. 첫눈에 반했던 것일지도 모르오.”
그 말에 떠오르는 첫 만남이 있었다.
-색공으로 나를 홀린 게로구나! 하지만 이 목리원은 그 정도로 무너지지 않는다! 사악한 요녀야! 이제 본성을 드러내거라앗-!
푸흡, 웃음이 삐져나왔다.
손가락이 얽혔다.
그랬구나. 홀로 품은 마음이 아니었구나.
“그리하여서 말하고 싶소.”
얽힌 목리원의 손마디가 경직되는 것이 느껴졌다.
당화서는 목리원의 입술이 말을 지어내며 이는 움직임을 망막에 새겼다.
“소저가… 좋소.”
마침내 단어가 귀에 때려 박힌 순간,
“흡!”
고개를 내밀어 입을 맞췄다.
목리원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입술에도 힘이 들어갔고, 눈을 질끈 감겼다.
꽤 철이 든 줄 알았더니 이쪽으로는 여전히 어린아이라, 당화서는 묘한 배덕감을 느끼며 목리원의 입술을 밀어냈다, 치아를 벌려 혀를 섞었다.
“흐읏…!”
아참, 생각해보니 독을 미처 다 거두어가지 않았구나.
미안해라.
깨어있는 목리원과의 첫 입맞춤은 아주 우스꽝스러운 형태였다.
*
시간이 지났다.
일각이 훌쩍 넘는 시간을 그리 입만 맞추고 있었고, 목리원은 당화서가 이끄는 대로 정신없이 끌려가기만 했다.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짜릿한 감각이라 무섭기까지 했다.
왜인지 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어떤 부분에서 되돌아갈 수 없을지는 목리원도 몰랐다.
마침내 입술이 떨어질 즘 바라본 당화서의 얼굴은 붉었고 무엇인지 모를 열망이 가득한 형태였다.
숨이 너무 뜨거워 데일 것만 같았다.
입술이 얼얼했고, 혀 속엔 침 냄새가 감돌았다.
끔뻑끔뻑 멍하니 당화서를 바라보던 목리원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허리를 곧추세웠다.
“그, 그으….”
검을 휘두르는 일이라면 세상 누구보다 잘할 자신이 있는데, 이런 쪽으로는 영 머리가 안 돌아간다.
눈은 괜히 먼 곳을 향했다, 천장을 향했다 바닥을 향했다 바빴고 그런 중에도 마음 한 켠엔 ‘조금만 더’라는 생각이 지워지질 않았다.
차마 입밖으로 내긴 부끄러웠다.
이 어색한 분위기를 어찌해야 할까, 결국 목리원이 떠올린 방도는 도주였다.
“다, 다른 단원들도 모여있다고 들었소! 제갈 형이 세가의 장원으로 불렀다고 하더구려!”
당화서는 답하지 않았다.
시선이 따가웠다.
흘긋 바라보니 눈을 바로 마주하고 있었다.
강렬했고, 끈적했다.
“소, 소저…?”
목리원의 몸이 움츠러들었다.
왜인지 무서운 눈빛이었다.
당화서는 그제야 스으으, 하고 길게 숨을 흘려냈다.
기색이 조금 누그러졌다.
“아….”
여느 때와 같은 미소가 다시 당화서의 얼굴 위로 걸렸다.
“그러고 보니 그 인간들도 왔었지요.”
어느새 손깍지가 되어 얽혀있던 손이 풀렸다.
묘하게 아쉬운 기분이 차오른다.
목리원은 그것을 꾹 눌러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인사라도 하러 가지요. 슬슬 저녁이니 오랜만에 다 같이 만나도 좋을 듯합니다.”
“그, 그렇지! 밥! 갑시다! 비무도 했으니 밥을 먹어야지!”
목리원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화서는 느지막하게 따라 일어나 목리원의 손을 다시 잡았다.
목리원의 몸이 흠칫 떨렸다.
그에 당화서는 말했다.
“이젠 이래도 되지 않습니까?”
이래도 되나? 사람들이 다 볼 텐데?
순간 고민이 일었다.
“그, 그렇… 소?”
“연인끼리 이러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어조에 확신이 아주 짙어 목리원은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당화서는 그제야 만족스레 웃었다.
“이런 쪽으로는 목 소협보다 제가 잘 알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내보단 여인이 연애에 해박한 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듣고보니 아주 맞는 말이었다.
“그렇구려…!”
“저만 믿으시지요.”
말을 내뱉는 당화서는 아주 듬직했다.
목리원은 콩닥콩닥 심장이 뛰는 기분을 느끼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당화서는 식사도 하지 않았는데 배가 부른 기분이었다.
드디어 손에 쥐었으니, 머릿속에선 어떻게 이걸 입맛대로 굴려볼까 하는 고민이 지워지질 않고 있었다.
걱정은 없었다.
‘천천히.’
기다림만 7년.
즉, 고민할 시간도 7년.
당화서에겐 다 계획이 있었다.
*
손을 잡은 채로 전각을 나서는 행위는 낯부끄러웠다.
하여 목리원은 푹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데, 당화서는 한 점의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하는 것인지 당당한 걸음으로 목리원을 이끌었다.
초월에 이른 청력은 그 와중 주변의 소리를 잡아내고 있었다.
“세상에, 그 소문이 사실이었군!”
“두 사람이 약혼한 사이라는….”
“묵룡이 생각보다 숫기가….”
“독라나찰은 여장부….”
말소리가 하나씩 더해질수록 목리원의 얼굴은 더욱 붉어졌다.
당화서는 말했다.
“괘념치 마시지요. 틀린 말도 없잖습니까?”
하나하나 정정이 필요한 사실들 뿐인데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걸까.
목리원은 아직 당화서와 약혼하지 않았다. 고백했을 정도로 숫기가 있었다.
당화서가 여장부임은 공감하지만, 그것말고는 다 틀렸단 말이다.
그에 무어라 항변하기도 전, 제갈 가의 장원에 도착했다.
“아, 목 아우랑 누님이구려.”
제갈산이 나와 있었다.
한데 조금 이상했다.
표정이 어딘가 허허롭다고 해야 할까, 생각이 많아 보인다고 해야 할까.
“제갈 형, 왜 그러시오?”
설마 손을 잡고 있어서 그런가 했는데, 돌아온 답은 달랐다.
“…들어가세나. 보면 알 테니. 남궁 형이 와 있네.”
목리원은 갸우뚱 고개를 기울였다.
남궁진천이 왔다면 제갈산의 성격상 참 반가운 얼굴을 하고 있어야 할진대 어찌 저런 표정인가.
궁금증을 삼키며 장원 내에 들어간 순간, 목리원은 의문의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안녕하십니다! 저는 남궁영입니다! 아빠 딸이야요!”
“내 딸이다.”
“?”
목리원은 눈앞에 드리워진 광경에 머릿속이 아득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
당화서도 마찬가지였다.
다음화 보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