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30 이부 일장 - 출두, 만남 (10)
* * *
-심상과 심상을 부딪치는 일은 서로가 품은 광경을 나누는 일이다.
목선오의 말이었다.
-품은 것이 있어야만 하기에, 그것이 타인에게 보일 만큼 간절해야 하기에. 그렇기에 기공은 마음의 공부를 한 이들만이 발할 수 있는 상승의 무공이란다.
언제가 기공이란 무엇인가에 관해 말해주던 목선오는 그리 말을 마쳤다.
-그러니 원아, 상대의 마음을 바로 바라보거라. 그것을 똑바로 마주하거라. 그것이 무인으로서 상대를 존중하는 법이다.
‘예, 스승님.’
마주하고 있습니다.
소저의 마음은 참으로 무겁고, 애절하며, 또한 따스합니다.
목리원은 전신이 뒤틀리는 고통 속에서도 그것을 느꼈다.
독기에 전신이 무너져내리는 기분이 듦에도, 그런 것보다 당화서의 심상이 발하는 풍경이 더욱 선명하게 목리원의 감각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녹색의 꽃이 쉼 없이 피고 진다. 그리하며 매번 다른 독을, 매번 다른 형상을 빚어낸다.
심상은 당화서의 시간이었다.
그녀가 지나왔던 7년 간의 성장이었고, 기다림이었고, 슬픔이었다.
당화서가 기어코 피어낸 심상의 풍경은 그마저도 자신을 향하고 있던 것이다.
굳은 얼굴의 당화서가 보였다.
또다시 몰아치려는 듯 주먹을 말아쥐는 모습이었다.
모든 것을 쏟아내겠다는 각오가 거짓이 아니라는 듯 결연한 얼굴만이 망막에 새겨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알겠소.”
목리원은 응하고자 했다.
뿌드득, 크게 몸을 뒤틀자 척추를 타고 퍼져나온 통증이 머릿속을 새하얗게 만든다. 검을 놓아버리고만 싶은 기분이 일었다.
하나, 그러지 않았다.
그러지 못했다.
목리원은 보여주어야만 했다.
7년은 꼭 필요한 시간이었음을, 당화서의 기다림은 끝끝내 보답받을 기다림이었음을.
스으으으―
운무가 되어 퍼져 나오는 묵색의 기파가 정련된다.
그것은 참으로 고요한 색채를 뽐내며 목리원의 검을 휘감았다.
‘이것을 완성하였소.’
발을 내디뎌 지지대 삼아 허리를 뒤튼다.
뿌드드득 소리와 함께 이는 통증을 눌러내며 검을 앞으로 내질렀다.
그 속도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다.
하나, 거역할 수 없는 흐름을 만들어내며 당화서의 몸을 검 끝으로 이끌었다.
그것은 이제까지 발해왔던 무공과는 달랐다.
스스로와의 싸움을 이어가며, 심상을 풀어헤치고 다시 조립하는 과정을 무수히 반복하여, 강호를 주유하는 협객으로서의 삶을, 그 지향점을 검에 빗대어 새로 정립한 목리원의 심상이었다.
유성칠검과 만련이검을 연구하고 연구해, 비고의 비급으로 둘을 하나로 엮어 만든 번외식이었다.
그리하여 오로지 목리원만이 발할 수 있는 초식이 되었으니 그것을 이름 붙이길.
인력(引力)이었다.
척!
당화서의 목젖 앞에서 검이 멈췄다.
당화서의 움직임도, 목리원의 움직임도 멈췄다.
찰나의 순간, 단 한 번의 수로 비무가 끝을 맺었다.
“이게….”
누군가가 멍하니 소리를 흘렸다.
그는 표정은 참으로 멍했다.
비단 그만 그런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 자리에 있던 대부분이, 또한 ‘나 고수요!’하고 어깨에 힘을 주던 절정과 초절정의 무인들도 그 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극소수만이 저 수의 진의를 깨달을 수 있었다.
“공력을 끊임없이 회전시켜 중심축으로 주변 것들을 빨아들이는 수법이다. 강제력이 있으니 제아무리 느린 속도라 해도 피할 수 없는 것이지.”
관객석 어딘가의 남궁진천이 말했다.
“곤녁?”
남궁영이 고개를 갸웃했다.
남궁진천은 남궁영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목리원을 유심히 지켜봤다.
‘징그러운 놈.’
저것은 통상적으로는 불가능이라 말해야 할 수법이었다.
그저 공력을 주무르는 것만으로도 유형화된 현상을 일으키는 일은 그만큼이나 허황된 면이 있었다.
저것과 그나마 가장 닮은 것이 남궁가의 제왕검형.
기파로 상대의 모든 움직임을 억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닮았다 말할 수 있겠지만….
‘저쪽이 더 어렵다.’
단순히 기로 상대를 옭아매는 게 아니다.
기를 조율하고 통제하며 끊임없는 회전을 만들어내는 것은 제왕검형으로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새삼 남궁진천이 절망하는 일은 없었다.
‘그래, 이 정도는 해주겠다는 것이겠지.’
목리원의 재능은 남궁진천이 가장 잘 알았다.
그를 이기기 위해 누구보다 절치부심해온 남궁진천이기에 알았다.
예상했다.
그러니, 남은 것은 한발 더 나아가는 것뿐이다.
‘초월지경.’
노려볼 만하다.
이제는.
“무, 묵룡! 스으으응!!!”
“와아아아아아!!!”
비무장이 경악의 비명을 토해냈다.
*
첫 비무가 끝을 맺고 나온 대기석.
목리원은 제갈산을 마주했다.
“히야, 아우는 갈수록 괴물이 되어가는구만!”
껄껄 웃는 제갈산의 모습에 목리원은 마주 웃었다.
“꽤 고전했소. 소저의 준비가 철저했더구려.”
비무가 끝나자마자 당화서가 독기를 다 거둬갔으나 뻐근함은 아직 남아있었다.
이런 마음을 먹으면 안 되는 것이겠지만, 독기를 다 거둬갔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감각은 아직 예민했다.
“그래서, 이제 갈 건가?”
제갈산의 물음에 목리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떠올리는 것은 당화서가 비무장을 내려가기 전 건넨 말이었다.
-전각 마루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용봉단의 전각을 말하는 것일 터였다.
“잘 다녀오시게.”
“제갈 형은 어디 있을 계획이오?”
“나야 뭐, 다른 단원들이 다 왔다기에 얼굴이나 보러 가려 하네.”
아, 남궁진천과 혜운, 일운 또한 도착한 듯했다.
그들의 비무는 본선 대진 중에서도 뒤쪽에 있었던 걸 생각하면 꽤 빠른 도착이었다.
“으음, 나도 곧 인사하러 가겠소.”
“그래, 힘내시고.”
제갈산이 어깨를 툭툭 치고 돌아섰다.
홀로 남은 목리원은 숨을 가다듬었다.
이제, 매듭을 풀 때였다.
*
비무장에서 정확히 전각 일곱 개를 지나쳐오면 용봉단의 전각이 있었다.
오늘은 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아마 당화서는 먼저 와있는 것이리라.
목리원은 긴장을 삼키며 전각 안쪽으로 들어섰다.
입구를 지나 복도로, 그곳을 한 번 꺾어 들어가면 바로 마루.
“오셨습니까.”
당화서는 그곳에 앉아 있었다.
시선은 연못을 향하고 있었고, 품에는 찐 감자가 있었다.
오똑한 콧날이나 붉은 입술, 그리고 가지런히 뻗어있는 속눈썹이 특히 도드라지는 옆모습이 낯설었다.
목리원은 그제야 당화서가 항상 자신을 정면으로 바라봤다는 것을 깨달았다.
“앉으시지요.”
“…알겠소.”
목리원은 다가가 그녀의 곁에 앉았다.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였다.
“드시겠습니까?”
찐 감자를 내밀기에 받아들었다.
아직 따뜻한 것이 찐 지 얼마 안 된 감자인 듯했다.
“옛날 생각이 나는구려.”
7년 전이 생각나 말하자 당화서는 답했다.
“예, 그래서 맹에 들릴 때면 언제나 이곳에 왔었습니다.”
그 순간, 당화서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떠올랐다.
이윽고 내뱉어진 말은 목리원의 심장을 옭아매는 말이었다.
“그만큼 목 소협이 그리웠나 봅니다. 저는.”
화아악―!
목리원의 얼굴이 붉어졌다.
너무나도 직설적이고 명확한 말이라 그 뜻을 흘려넘길 수 없는 것이었다.
당화서가 쿡쿡 웃었다.
“그래서, 비무는 어떠셨는지요.”
“조, 좋았소!”
“그리 아픈 게 좋으시덥니까?”
“그게 아니라!”
당황스러워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으으, 하며 머리를 부여잡았고, 이어 목리원은 정리되지 않는 말을 애써 엮어내기 시작했다.
“소저의 무공이 참으로 독특했소. 그 수법이나 연계, 그리고 상대방의 이해를 바탕으로 한 전략이 모두 훌륭했소. 성립될 수 없는 승부를, 소저는 성립시킨 것이오.”
“아하, 애초에 저는 적수조차 아니었다 이겁니까?”
장난스러운 물음이었으나 목리원은 울상이 떠올랐다.
이런 답하기 곤란한 질문만 하는 건 너무한 처사였다.
“소저…!”
“푸흐흐…!”
당화서가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곱게 휜 눈은 이윽고 목리원을 향했다.
“죄송합니다. 이런 건 오랜만이라.”
그 순간, 또 한 번 목리원은 심장이 날뛰는 기분을 느꼈다.
가까이서 자세히 본 당화서의 얼굴이, 그리고 걸린 미소가 참으로 요사스러웠다.
“소협도 대단했습니다. 애초에, 처음 수에 당한 순간부터 어지간한 무인은 손 끝 하나 움직이지 못하고 당했을 겁니다. 그정도로 강한 독을 배합했으니.”
“그런 걸 심은 것이오?”
나름 부끄러움을 숨기고자, 그리고 당한 걸 갚아주고자 말했으나 본전도 못 찾았다.
“그 정도로 끝낸 겁니다. 괘씸죄.”
목리원은 그녀에게 죄인이었다.
달싹달싹, 입술이 우물거리다 이내 한숨을 흘려냈다.
“…미안하오.”
“되었습니다. 이리 봤으니 털어내려 합니다. 게다가 소협의 무공을 정면에서 견식할 수 있는 것도 큰 도움이었고.”
“깨달음에 도움이 됐소?”
“되기는, 무슨 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당하는 순간엔 당황해서 모른다 생각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도 알 수 없는 걸 보면 제 수준에선 이해가 불가능한 수라는 것이겠지요.”
당화서는 감자의 껍질을 까 한 입 베어 물었다.
“그저 목 소협이 어디가서 나자빠져 죽지는 않겠구나 싶어 안심한 겁니다.”
고맙다 해야할지, 또 아니면 다른 말을 해야 할지.
이런 대화가 너무 오랜만이라 목리원은 고민을 떠올렸다.
그러다 이내 당황한 탓에 잊고 있던 사실을 되새겼다.
‘…해야 할 말이 있다.’
당화서에게 말을 전해야만 했다.
그런 약속을, 떠나기 전에 했었다.
목리원은 당화서를 바라봤다.
그녀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한 얼굴로 연못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능청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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