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228화 (228/334)

EP.229 이부 일장 - 출두, 만남 (9)

* * *

공간을 찢어발기는 듯한 함성이 대기실까지 파고들었다.

당화서는 가부좌를 튼 채로 그 울림을 흘려냈다.

마음을 비우는 과정이었다.

몸을 흔드는 모든 외적 요소들을 철저히 배제한 채 명상해야만 보이는 것이 있는 까닭이었다.

몸을 관조하며 띄워 올리는 것은 승산이었다.

‘0할.’

죽었다 깨어나도 목리원을 이길 수는 없다.

그것을 확실하게 느낀 것은 용봉단 전각에서의 만남이었다.

초절정에 오르며 민감해진 감각도, 추격전을 펼치며 느꼈던 압박감도, 거기에 손이 붙잡히는 순간 느껴졌던 공력의 격차도.

모든 것이 패배를 말하고 있었다.

‘초월에 올랐겠지.’

그러니 당화서가 떠올리는 것은 ‘어떻게 패배하느냐’였다.

제아무리 승산이 보이지 않는다 한들 지레 겁먹고 무릎 꿇을 수는 없었다.

그것은 무인으로서도, 또한 돌아오지 않는 사내를 기다렸던 여인으로서도 바람직하지 못한 마음가짐이었다.

“가주님.”

소향의 부름에 당화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본선 개최식은 끝났느냐.”

“예, 이제 가셔야 합니다.”

“그래.”

당화서는 대기실을 나섰다.

등 뒤로 소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원하겠습니다.”

“고맙구나.”

싱긋 웃으며 떠나가 복도를 내내 걷는다.

그리하고서 저 멀리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입구를 향했다.

막 입구를 나선 순간이었다.

“와아아아아아!!!”

대기실에서 어렴풋이 들었던 함성이 전신을 강타했다.

가주로 살아오며 시선을 받아온 7년, 하나 오늘의 비무는 이제까지와는 궤를 달리하는 무게감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그것이 당화서를 흔들지는 못했다.

“독라나찰 당화서!”

심판의 부름에 당화서는 비무대 위로 올라왔다.

직후였다.

“묵룡 목리원!”

“와아아아아아!!!”

함성을 꿰뚫고 비무대 위로 올라오는 사내가 있었다.

당화서는 이제야 그 얼굴을 찬찬히 뜯어볼 수 있었다.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사내였다.

유려한 선과 고운 색채가 주변 모든 색채를 탈색되게 하는, 그런 강렬하고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사내였다.

기억과 달라진 것은 표정과 기색.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았던 목리원은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어른스러워져 있었다.

주변의 환호성에도 자신만을 바라보는 행동이 특히 그러했다.

예전 같았다면 이 환호성에 신나서 해픈 미소나 지었을 것이다.

“긴 말은 하지 않겠소.”

다가온 목리원의 말이었다.

변한 모습이 낯설었으나, 차라리 다행인 일이었다.

이전과 완전히 같은 모습이었다면 추억에 흔들려 마음이 약해졌을 테니 말이다.

“한 수 부탁드립니다.”

당화서는 포권을 취했고, 목리원 역시 포권을 취했다.

그리고 심판이 손을 들었다.

“개(開)!”

비무가 시작되었다.

*

손이 아래를 향하는 순간이 아주 느릿하게 느껴졌다.

날카롭게 벼려진 집중력이 그 모든 순간을 철저히 잡아내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목리원은 볼 수 있었다.

‘독공이구나.’

언젠가, 손에 독기를 모아 그것을 휘두르던 당화서의 독공이 발전했다.

심판의 손이 아래를 향하는 순간부터 당화서의 전신에선 위협적이기 그지없는 독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독공은 일반적인 무공과는 궤를 달리한다.

단순한 초식으로 막아낼 수 없고, 한번 튕겨낸다 하여 끝나는 무공이 아니다.

비무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더욱 치명적인 것이 독공.

섣불리 공격에 내공을 배분했다간 역으로 당하게 되는 것이 독공.

공개적인 비무인 만큼 극독은 사용할 수 없겠으나, 그것이 당화서에게 문제는 아닐 터다.

‘소저의 독공은 알고 있소.’

당화서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독을, 그리고 그 너머의 것을 몸속에서 자체적으로 배합해낼 수 있는 여인이다.

독왕이 그리도 바랐던 독공의 이상이 바로 그녀다.

목숨을 앗아가지 못한다 하여 어찌 방심할 수 있겠는가.

그녀의 독은 목숨‘만’ 해하지 않는 선에서도 끔찍한 위력을 자랑할 것이다.

그러니,

“가만 당하지는 않을 것이오.”

초장에 제압해야 한다.

화아아아악―!

묵색의 기파가 폭풍이 되어 공간을 휩쓸었다.

당화서가 뿜어낸 독이 기류에 흩어졌다.

그 순간, 목리원은 검을 뽑았다.

확실히 당화서가 인지하지 못할 속도로 그녀의 코앞까지 갔고, 휘둘러졌다.

그것은 목리원이 생각하기에 가장 확실히 그녀를 끝낼 한 수였고, 달리 말해 목리원에게만 확실했던 한 수였다.

“예상했습니다. 소협은 첫수에 상대를 제압하는 공격을 즐기니.”

우뚝, 목리원의 몸이 멎었다.

그가 의도한 일이 아니었다.

마비독에 당한 것이다.

‘어느 틈에…?’

삐걱삐걱, 고개가 겨우 위를 향한다.

당화서는 무표정이었다.

“목 소협의 싸움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봐온 것이 저라는 걸 잊으셨나봅니다.”

당화서가 주먹을 말아쥐었다.

그 위로 불길한 녹색의 독기가 맺혔다.

‘피해야 한다!’

위기감이 몸을 휩쓸었다.

공력을 억지로 끌어올려 저항.

실패했다.

목리원은 그제야 이 마비독에 은밀한 산공독이 함께 들어가 있었음을 깨달았다.

물론 초월지경에 오른 공력을 다 지워낼 정도는 아니었으나 움직임을 억제하기엔 충분했다.

퍼억!

목리원의 명치에 주먹이 꽂혔다.

“커흡!”

목리원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

다행인 일이었다.

목리원의 몸에 밴 습관까지 없어지지 않은 것은 말이다.

‘도박수가 통했구나.’

목숨을 건 요행이었다.

이 수가 통하지 않으면 그대로 패배할 것을 상정한, 당화서의 혼신이 담긴 수였다.

흩어낼 것을 예상해 바닥에 깔려 움직일 정도로 무거운 독만 골라 그를 휘감았다.

당장 급소를 노려올 것을 가정해 산공독을 함께 배합했다.

그리고 그 움직임의 삐걱거림을 노려 독을 주입했다.

“끄으으…!”

목리원의 얼굴 위로 힘겨운 기색이 떠올랐다.

당연했다.

“고통스러우실 겁니다. 그런 독이니.”

저것은 몸에 그 어떤 치명적인 위해도 가하지 못하지만, 그가 느낄 감각만큼은 몇십 배로 민감하게 만드는 독이었다.

즉, 명치에 닿은 주먹이 그에겐 수십 개의 칼로 쑤셔진 통증으로 화했으리란 말이다.

“아마 움직이는 게 쉽지는 않을 겁니다. 작은 근육의 움직임 하나에도 몸이 비명을 지르실 테니.”

당화서는 자세를 다잡았다.

그녀의 몸 주변으로는 짙은 암녹색의 독기가 너울거리고 있었다.

“한 번 더 갑니다.”

지체하지 않고 그대로 파고들어 목리원의 턱을 노렸다.

목리원은 이를 악 물며 반응했다.

콰아아아앙!

칼등에 주먹이 막혔다.

역시 고통만으로는 그를 막을 수 없었다.

하지만 충격은 축적시킬 수 있었다.

목리원이 한 번 더 힘겨운 숨을 흘렸다.

비무장이 고요해졌다.

그들 모두가 충격에 빠진 것이었다.

‘기세를 몰아야 한다.’

다시 한번 독을 몸 위로 둘렀다.

퍼뜨려 목리원에게 닿게 했다.

이번 역시 움직임을 제약하는 독이다.

어떤 경로로 공격하든 그 경로 자체를 무수히 쪼개 초식을 파훼해버리는 목리원에게 유효타를 먹이기 위해선, 몸이 사고를 따라가지 못하게 억제하는 수밖에 없었다.

콰아아앙!

유효타를 먹였고,

“큭…!”

마찬가지로 유효타에 당했다.

당화서는 고개를 숙였다.

목리원이 뻗어낸 발이 배에 꽂혔다.

그 와중에도 고통을 이겨내며 반격한 것이었다.

“제법…!”

목리원이 씨익 웃었다.

당화서는 눈을 부릅떴다.

“아직 여유로우신가 봅니다.”

“이게… 끝이오?”

도발하는듯한 어조와 함께 묵색의 기파가 공간을 점하기 시작했다.

위험하다.

본능이 그리 말했다.

당화서는 재빨리 몸을 뒤로 물렸고, 그 판단은 옳았다.

화아아아악―!

묵색의 기파 위로 흰색 점들이 발광하기 시작했다.

그 알갱이 하나하나에 담긴 공력은, 그 폭발력은 등골을 섬찟하게 만들 수준이었다.

이윽고 점들이 폭발했다.

콰아아아앙―!

“큽!”

폭발의 범위에서 벗어났음에도 그 여파에 속이 진동한다.

‘유성칠검!’

검성의 무학, 기공의 영역에 걸친 목리원의 절초였다.

본격적으로 기공을 사용하기로 결심한 모양.

옳은 판단이었다.

목리원의 몸을 범한 독은 오로지 감각을 증폭하는데 초점이 맞춰진 독이다.

즉, 공력을 움직여 발출하는 데는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 독이다.

7년 전이었다면 여기서 당화서의 패배가 확정되었을 것이었다.

당화서는 기공을 사용할 수 없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스스스스―

당화서의 몸을 휘감은 독기가 형상을 빚어내기 시작했다.

또다시 짓쳐들어오는 묵색의 운무 속에서, 녹색으로 빛나며 완성되는 형상은,

“…꽃?”

이름 모를 꽃의 형상이었다.

두 개의 기운이 뒤얽히며 바닥으로는 녹색의 꽃밭이, 하늘로는 묵색의 밤하늘이 지어졌다.

목리원의 얼굴 위로 경계심이 깃들었다.

꽃밭이 퍼져나가 가까워질수록 목리원의 얼굴 위론 낭패 어린 기색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겠지.’

무슨 독인 줄도 모르고 맞아줄 수는 없는 상황.

그럼에도 움직임에 동반되는 고통은 부담스러운 것일 터다.

당화서는 내달렸다.

목리원은 결국 몸을 뒤로 뺐으나, 그 움직임은 더디고 불안정했다.

“제게도 7년은 길었습니다.”

꽃이 비무장 바닥을 가득 메웠다.

그 순간 목리원의 움직임이 완전히 정지했다.

당화서는 주먹을 뻗었다.

기공의 첫걸음.

초절정에 들어서는 순간에야 빚어지는 심상의 구현.

당화서의 심상이 만들어내는 것은, 긴 기다림 동안 피고 졌던 화원의 풍경이었다.

꽈득!

목리원의 명치에 주먹이 틀어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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