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227화 (227/334)

EP.228 이부 일장 - 출두, 만남 (8)

* * *

7년 만에 재개된 청룡 비무회.

그리고 구파의 봉문 해제.

애초에 그 두 가지 요소만으로도 전에 없던 열기를 토해내던 비무제에 벽력탄이 떨어졌다.

“묵룡이 돌아왔다!”

공개된 대진표에 적힌 하나의 이름 때문이었다.

묵룡(墨龍) 목리원.

차기 천하제일이 7년의 침묵을 깨고 돌아온 것이다.

그전까지 어떤 사전정보도 없었던 등장이라 목리원과 관련된 소문이 온 사방에 퍼져나갔다.

마침 또 첫 경기, 게다가 대진 상대까지 화제를 몰고 다니기에 충분했다.

“부부싸움이구먼.”

“아암, 7년 전이면 그때가 아닌가. 묵룡이 독라나찰과 내내 붙어있던 시기. 그 뒤로 묵룡은 잠적했고 독라나찰은 내내 독수공방했을 테니….”

“어우, 끔찍하구먼.”

객잔의 누군가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눈을 질끈 감았다.

“나라면 그냥 죽겠네. 하루만 안 들어와도 안 사람이 그리 노발대발하는데.”

“그럼 자네는 독라나찰이 이기리라 보는 겐가?”

“묵룡이 져 준다에 거는 걸세.”

쯧쯧 혀를 차던 사내가 동전 하나를 꺼내 들었다.

“소박맞기 싫으면 져줘야지.”

그의 얼굴 위로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맞은편에 있던 사내는 씨익 웃으며 다른 의견을 냈다.

“이런 순간일수록 가장으로서의 위엄을 보여야 하는 걸세. 나는 묵룡에 걸겠네.”

“그러니까 자네가 노총각인 걸세.”

“뭣이?!”

쿠당탕!

곧장 사내들이 주먹다짐을 시작했다.

껄껄 환호성이 객잔에 가득 들어찼다.

점소이는 울었고, 객잔주는 쓰러지는 와중 구석 자리에 앉아있던 이가 말했다.

“왕삼아, 왔다.”

그는 비장한 얼굴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마주 앉아있던 사내, 왕삼도 고개를 끄덕이며 비장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바로 곽칠과 왕삼.

이 강호에서 당화서 다음으로 간절히 목리원의 복귀를 기다린, 그의 추종자들이었다.

“형님, 우리가 옳았소.”

“그래 삼아. 우리가 옳았다.”

두 사내는 금방이라도 서로를 끌아안을 것처럼 감동한 얼굴을 만들었다.

얼마나 긴 모멸의 시간이었는가.

한때 목리원에 열광하며 수많은 동지와 술잔을 나누던 시기가 있었으나, 그의 침묵 이후 하나둘 추종자가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이젠 둘만 남아 목리원을 기다리는 형국이었다.

사실 이곳에 온 이유조차 ‘목리원이 이번 비무제를 통해 돌아올지도 모른다!’라는 낮은 가능성에 기대는 일이었던 만큼 두 사람의 감동은 더욱 짙었다.

“분명 초월이시겠지?”

“아암! 차기 천하제일이 아니오? 이미 초월에 오르셨을 것이오!”

두 사람의 대화에 열기가 떠올랐다.

와중 곽칠은 눈물까지 글썽이고 있었다.

이유는 하나였다.

‘드디어 다음 내용을 쓸 수 있다.’

그는 목리원의 추종자이기 이전에 강호협객전의 저자였다.

마협의 이야기를 끝으로 붓을 꺾었고, 목리원과의 만남을 통해 다음 이야기를 쓸 용기를 얻은 글쟁이였다.

곽칠의 마음을 울린 것은 다름 아닌 목리원의 이야기, 달리 말해 운명을 헤쳐 나가며 협객으로서 바로 서고자 하는 청년의 이야기다.

한데 그 주인공이 잠적했으니 다음 이야기를 더 쓸 수가 있겠는가?

지난 7년은 곽칠에게 단 한 글자도 이야기를 더 이어갈 수 없었던 고난의 시기였다.

그게 끝나니 감동에 몸을 떠는 것이다.

“어서 비무제가 시작되었으면 좋겠구나.”

“형님도 어지간하시구려.”

이젠 곽칠의 정체를 아는 왕삼은 크게 웃으며 호응했다.

왕삼은 곽칠의 강호협객전을, 목리원의 이야기를 응원하고 있었다.

“자, 술잔부터 드시오.”

왕삼이 술잔을 들자 곽칠이 훌쩍대며 잔을 들었다.

그 순간이었다.

“어허, 나만 빼고 너무하는구려.”

얍삽하게만 느껴지는 목소리가 두 사람 사이를 파고들었다.

고개돌린 두 사람은 표정을 구겼다.

“배신자가 왔구먼.”

“그러게 말이오.”

기다란 염소수염과 호쾌한 척하는 미소.

나이대보다 10년은 늙어보이는 노안의 사내는 무림맹의 무복을, 그리고 단주를 상징하는 허리띠를 매고 있었다.

동강불괴 견동.

그는 무림맹주의 손자이며, 진원단의 단주이며, 목리원이 잠적한 지 4년만에 추종자 무리를 떠난 배신자였다.

견동이 비굴하게 웃으며 자리에 앉아 술잔을 들었다.

“어허, 내 본업이 바빠 그랬소. 우리 이렇게 섭섭하게 굴 거요? 나도 묵룡 대협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지 않소?”

“헹! 누구는 안 바빴나.”

“아이구, 우리 곽 형 내 술 잔도 좀 받아주시오.”

견동이 넉살 좋게 곽칠을 대접했다.

왕삼 또한 그 모습에 인상을 풀었다.

아무튼 목리원이 돌아왔고, 그 목리원의 소식을 더 잘 들으려면 견동같은 무림맹의 인사가 필요했던 까닭이다.

“이번만이오.”

“떠난 적 없다니까 그러네.”

세 사내가 잔을 들었다.

“묵룡의 우승을 위하여!”

탁!

잔이 부딪치며 술잔이 너울거렸다.

*

사천당문은 전대 가주와 증진들이 모두 죽어 나자빠지며 세력이 줄어들었다.

사건 이후 정확히 3년.

당문은 줄어든 몸집을 다시 불리기 위해 웅크렸고, 2년 만에 재도약에 성공했다.

그것은 당화서가 초절정이 된 시기와 맞물려 있었다.

가주의 무력, 군소 사업체들을 정리하며 생긴 현금, 그리고 세력을 지배하던 구파의 봉문이라는 우연이 모두 겹치며 생겨난 결과는 경악스러운 정도였다.

역설적이게도, 초월의 가주를 잃은 당문은 존재해 온 이후로 가장 찬란한 황금기를 맞게 된 것이다.

그 부의 흔적은 이곳 무한에 있는 당문의 장원에도 여실히 묻어나고 있었다.

어딜 가도 반짝거리는 물건이나 귀한 그림 따위가 장식되어 있다.

물품들은 장인들이 한땀한땀 섬세함을 담아 만든 것이었고, 연기가 나는 주방에서 만들어지는 음식은 그 한 끼의 가격이 작은 마을을 하루 종일 먹여 살릴 정도였다.

그리도 귀물이 넘치는 장원.

하나, 막상 가주인 당화서가 지내는 공간은 참으로 절제된 장식물만이 존재했다.

어디서나 구할 수 있을 물건이 겨우 몇 점에 옷도 외출이 아닌 이상 한 번 쓰고 버릴 무복만 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가주님, 독기가 새어 나오고 있습니다.”

“안다.”

그녀의 수련법 때문이었다.

당화서는 길게 호흡을 내뱉었다.

그러자 보라색의 운무가 흩어져 나왔다.

“다 새로 갈아 끼우거라.”

“운기조식은 연무장에서 하면 안 되는 겁니까?”

“거기서 하나 여기서 하나 똑같다. 자는 중에도 독기가 흘러나오니.”

실로 그랬다.

당화서의 몸은 지금 독물이 넘칠 만큼 쌓여 있어 조금만 방심한다면 그 독기에 주변에 있는 것들이 다 녹아내릴 정도였다.

당화서는 언제나 몸에 독을 가득 채워놓고, 살아 숨 쉬는 모든 순간에 그것을 공력으로 흡수하는 수련법을 사용 중인 것이다.

일반적인 무인이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독물을 몸에 담아내는 기간이 오래되었다간, 그 본인이 중독으로 죽어버릴 테니 말이다.

오로지 만독불침의 체질을 가진 당화서만이 이런 수련법을 차용할 수 있었고, 그것이 곧 그녀가 짧은 시간 안에 초절정에 오른 비결이었다.

소향은 한숨을 내쉬었다.

대진표가 나온 이후 줄곧 생각이 많은 얼굴로 수련에 더 목매는 모습이 걱정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말릴 수 없는 이유는 상대가 목리원이기 때문이었다.

‘최선을 다하실 생각이시겠지.’

당화서도 알고 소향도 아는 사실이 있었다.

이렇게 미친 듯이 수련하고 또 수련해 고수의 반열에 들었지만, 그럼에도 목리원은 이길 수 없었다.

차기 천하제일이라는 것은 그런 의미였다.

그런 칭호를 떼어놓고 본다 한들, 그의 검은 그런 검이었다.

절대 무너지지 않는 태생적 강자의 검.

모든 수법을 공으로 돌려버리는 검.

독공이라는 특수성이 있으나, 목리원이 중독에 쓰러지는 것보다 그의 검에 당화서가 쓰러지는 게 더 빠를 것이었다.

“…가주님.”

“안다. 그러니 말하지 말거라.”

“….”

“이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지 않더냐.”

당화서는 고요한 낯으로 말하곤 손을 내밀었다.

“이리 주거라.”

그제야 소향은 들고 온 병을 그녀의 무릎 앞에 차례차례 세우기 시작했다.

그 동작은 빨랐다.

입에 물고 있는 피독주가 슬슬 한계에 달하는 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이것으로 끝이더냐?”

“예, 구할 수 있는 극독 중 가장 조합이 어려운 것들입니다. 들어간 독의 종류도 겹치는 게 하나도 없구요.”

“수고했다. 나가보거라.”

“식사는….”

“이것으로 대신하마. 독물만 먹어댔더니 배가 미어터질 지경이야.”

당화서는 그대로 병 중 하나를 들이켰다.

목울대가 움직였다.

소향은 생각했다.

‘저 독을 해독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당화서의 몸은 걸어 다니는 극독이었다.

그녀는 섭취한 독을 몸속에 저장하고, 나누고 배합하며 매 순간 끊임없이 새로운 독을 만드는 몸이었다.

그런 몸이 7 년 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독을 담아냈다.

이제부터 당화서가 만들 독은 이제껏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독이리라.

‘고생 꽤나 하겠구나.’

이기는 것이야 목리원이겠지만 글쎄.

당화서가 해독해주지 않는다면 목리원은 비무 중 당한 독에 꽤 오랜 시간을 고통스러워해야 할 것이다.

그것까지 떠올린 순간 흠칫, 소향은 몸을 떨었다.

좁아진 눈은 자연히 당화서를 향했다.

‘…설마, 그 목적으로?’

해독 불가능한 독을 몸에 심어 목줄을 채우려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던 소향은 이내 고개를 휙휙 저었다.

‘에이, 설마.’

소향이 생각해도 비약이 너무 심했다.

무슨 이런 생각까지 할까 싶어 소향은 헛웃음을 흘리며 당화서의 침소를 나섰다.

저녁이었다.

비무회 개최 전날은 그렇게 저물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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