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225화 (225/334)

EP.226 이부 일장 - 출두, 만남 (6)

* * *

무림맹 어딘가의 암자.

목리원은 반가운 이와 만나 차를 홀짝이고 있었다.

“그래, 7년간 폐관을 했단 말인가.”

“수련에 빠져 있다 보니 어느새 7년이 지나있지 뭐요.”

“그럴 수 있네. 자네 성격이 좀 대쪽 같던가.”

“그리 띄워주지 않아도 되오. 대주.”

맞은 편에 있는 것은 금검 권표월.

맹의 대주 중 목리원과 가장 친했던 사내였다.

그랬다. 목리원은 7년 만에 맹으로 돌아와 과거 인연이 있던 이들을 하나씩 만나고 있었다.

“한데….”

권표월의 시선이 목리원을 위아래로 훑었다.

그러더니 지그시 웃으며 말했다.

“음, 왜인지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군. 조금 더 어른스러워진 느낌이야.”

“7년이나 지났지 않소.”

“7년이 지나도 변치 않는 사람이 있네. 적운대주가 그렇지. 그놈은 언제 철들려나 모르겠더군. ”

골치 아프다는 듯 권표월이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 전에 또 길가던 무인에게 비무를 걸어서 맹을 뒤집은 게 아니겠나. 뒤처리가 얼마나 곤란하던지.”

“한결같은 분이시구려. 한데 그 일을 왜 대주께서 하시는 것이오?”

“아, 이제 대주가 아니라네.”

“응?”

권표월의 얼굴 위로 머쓱한 미소가 떠올랐다.

“하하, 7년이지 않나. 당시의 내가 무엇을 노리고 있었는지 잊은 것은 아니겠지?”

“아!”

순간, 목리원의 눈이 큼지막하게 커졌다.

백검대주 금검 권표월, 7년 전 맹에서 그를 수식하는 또 다른 말이 있었다.

“내각에 들어간 것이오?!”

“감사하게도 내각의 총괄 자리를 얻게 되었네.”

바로 차기 내각주 후보였다. 그리고 권표월은 진짜 내각주가 된 것이다.

목리원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축하하오! 경사가 있었구려!”

“축하받을 일인지는 모르겠군. 워낙에 일이 바빠서 말일세.”

“그래도 꿈을 이룬 것 아니오!”

과연, 7년 전보다 옷차림이나 행동거지가 조금 더 위엄있어졌다 했더니 그런 이유가 있었던 듯하다.

참으로 경사스러운 소식에 괜히 마음이 푸근해진다.

또한 드는 호기심이 있었으니, 목리원은 곧장 질문했다.

“그럼 다른 대주와 단주들은 어찌 지내고 있소? 적운대주님은 여전하시단 말을 들었고….”

“기태운이는 내 보조를 하고 있네. 부내각주 자리에 있지.”

“청룡대주도 내각에 간 것이구려!”

“그렇네, 간발의 차로 내각주 자리를 놓친 게 그리 억울했는지 술만 들어가면 그리 진상을 부린다네.”

“그럼 진원단주는 어떻소?”

“우리의 동강불괴께선 여전히 단주시지.”

“으핫! 수염도 여전하시오?”

“염소 수염이 7년 새 아주 많이 길어졌다네.”

이야기에 물이 오르자 목리원의 얼굴에선 웃음꽃이 떠날 새가 없었다.

그간 맹에서 어떤 일이 있었고, 알던 이들은 어떤 변화를 겪었고 누가 들어오고 누가 떠났는지에 관한 이야기가 한참 이어졌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이야기가 있어 목리원은 조심스레 물었다.

“대… 아니, 내각주.”

“음?”

“…맹주님에 관한 소식은 들은 게 있소?”

현 맹주인 견궐을 말하는 게 아님은 권표월도 알 것이었다.

그는 잠시 씁쓸한 미소를 띠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행선지는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으셨네. 아시잖나. 그분 성격을.”

“그랬구려….”

결국 권표월도 사백운의 소식은 모르는 건가.

아쉬움에 숨을 흘리자 권표월이 말했다.

“그리 걱정할 것 없네. 다른 사람도 아닌 전 맹주님이 아니신가. 게다가 떠나기 전 성대하게 연회까지 치러드렸다네. 그저 쉬고 싶으신 게야. 때가 되면 돌아오실 테고.”

권표월이 목리원의 잔에 차를 더 따랐다.

“그러니 다른 것이나 걱정하는 건 어떤가?”

“으음?”

“청룡 비무회에 참가하러 온 것이 아닌가?”

“아, 그건 그렇소만….”

그 순간 권표월의 얼굴 위로 장난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그럼 만나겠군. 당문주 말일세.”

흠칫, 목리원의 어깨가 떨렸다.

입가엔 삐죽삐죽 미소가 걸렸다.

안 그래도 그 일 때문에 참 고민이 많은 시점이라 목리원의 반응은 꽤나 격렬했다.

입술을 달싹이며 말을 내뱉다 삼키길 반복.

그 끝에서 또 한숨.

“…그렇소, 분명 만나겠지.”

“자네나 당문주나 바로 본선에 진출할 테니 어쩌면 대전 상대로 만날 수도 있겠구먼.”

당화서와 상대로 만난다라….

목리원은 그 장면을 떠올렸다.

모르긴 몰라도, 그리 좋은 그림은 그려지지 않았다.

“아, 이미 만난 것인가?”

“그런 것은 아니오. 아직 소저와는 만나지 못했소.”

“음? 길이 엇갈렸나보군. 바로 오늘 맹에서 만났는데 말일세.”

“….”

목리원은 고개 숙여 찻잔을 바라봤다.

작게 파문이 이는 수면을 바라보니 마음이 가라앉는다.

목리원은 아직 당화서에게 할 말을 고르지 못했다.

이리도 긴 기다림을 감내하게 한 그녀에게 어찌 사과해야 할지, 그 말을 고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찾아가려면 벌써 찾아갈 수 있었음에도 아직 다른 사람을 먼저 만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였다.

“…묵룡.”

목리원은 고개를 들었다.

권표월은 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자네답지 않게 뭘 그리 망설이는가.”

차분한 미소였다. 그럼에도 장난스럽고, 또 한켠으로는 진중한 것이 굳이 이르길 응원의 뜻이 담긴 미소일지라.

목리원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얼굴 위로는 머쓱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러게 말이오.”

“자네라면 현명이 헤쳐 나갈 것이라 믿네.”

“응원은 감사하오.”

“뭐, 정 안되면 미남계라도 써보시게. 그 잘난 얼굴 둬서 뭐하나.”

“최후의 방법으로 남겨두겠소.”

목리원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만 가봐야겠구려. 제갈 형과 약속이 있는 터라.”

“그리하시게. 나도 슬슬 업무를 마저 처리하러 가봐야 해서.”

“기회가 되면 또 자리하겠소.”

목리원이 포권을 취했다.

권표월 역시 마주 포권을 취했다.

“다시 만나서 참으로 반가웠네.”

그렇게 재회는 끝을 맺었다.

*

목리원은 그 후로도 맹을 거닐었다.

다행히 건물 자체는 그가 아는 것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다만 보수를 위해 지어진 건물이 더 있고, 폐쇄된 건물이 몇 생겨났다는 정도가 바뀐 점일까.

여하튼 추억에 잠겨 걷길 한참, 목리원은 참 많은 사람을 만났다.

“무무무무무묵룡 대협!”

“진원단주! 듣던 대로 염소 수염이 더 길어졌구려!”

먼저 진원단주 견동을 만났다.

그는 크게 호들갑을 떨며 목리원을 반겼고, 그 수다에 목리원은 한참이나 묶여있어야 했다.

겨우 그를 떨쳐내니 적운대주 강찬이 나왔다.

“묵룡! 돌아왔군! 아니, 이럴 때가 아니지! 재회의 비무라도…!”

듣던 대로 여전한 적운대주가 그만의 방식으로 목리원을 반겼다.

목리원은 부드러운 거절의 말로 비무를 흘려 넘기고, 그를 지나쳐 갔다.

그러자 이어 청룡대주였고, 이젠 부내각주가 된 기태운을 만났다.

권표월이 떠난 백검대를 이끄는 전 부대주를 만났고, 그 외의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렇게 겨우 도착한 곳이 있었다.

‘닫혀 있구나.’

그리운 대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한때 목리원의 또 다른 집이었던 용봉단의 전각이었다.

이대로 돌아갈까.

순간 고민이 떠올랐으나, 동시에 떠오르는 것은 권표월의 말이었다.

-자네답지 않게 뭘 그리 망설이는가.

그 말이 무어라고 떠나려는 발걸음을 붙잡는지.

목리원은 작게 미소를 흘리곤 담장을 뛰어넘었다.

“아….”

조금도 변하지 않은 풍경이 그제야 드리워진다.

정원의 가지런한 나무, 그 사이의 연못.

세 개의 연무장 건물과 그 옆의 숙소, 집무실, 식당.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참 즐거웠던 순간의 기억들이 스쳐 지나감에 목리원은 정처 없이 전각을 걸어 다녔다.

그리하니 깨닫게 되는 것이 있었다.

‘관리가 계속되고 있었구나.’

7년 전 그날 이후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을 용봉단의 전각은 바로 어제 치운 것처럼 깔끔한 꼴이었다.

아마 당화서나 제갈산이 아닐까.

또 떠오르는 얼굴에 목리원은 속이 죄는 기분을 느꼈다.

그래서였을지도 몰랐다.

숙소의 방을 들르고 연무장도 들른 후, 목리원은 무심코 어느 자리를 향했다.

마치 이곳에 살았을 때처럼, 너무나도 당연하게 향한 자리였다.

그곳은 마루였다.

달이 뜨는 시간에 자리 잡고 앉으면, 정면의 연못이 달을 등 위로 새기는 용봉단의 전각에서 가장 분위기가 좋은 마루.

느린 걸음으로 지정석으로 향한 목리원은 그곳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연못을 바라봤다.

-목 소협, 오늘 하루도 수고하셨습니다.

-소저도 수고했소. 여기 앉으시오. 시장하실 듯해 찐 감자를 부탁해왔소.

언젠가의 대화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감에 절로 웃음이 나온다.

그 순간이었다.

툭―

무언가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

감상에 차 있던 목리원은 그제야 인기척을 느끼고 휙!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숨을 멈췄다.

투두두둑―

연이어 떨어져 데구르르 바닥을 굴러가는 것은 감자였다.

그 감자가 굴러온 길을 역으로 쫓으면 새까맣고 찰랑이는 흑발이 바람에 살랑인다.

새하얀 피부도, 그와 대비되는 새빨간 입술도, 그리고 날카롭게 솟은 주제에 한없이 가녀리기만 한 눈매도 여전한 여인이 그곳에 있었다.

“….”

당화서였다.

다음화 보기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