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221화 (221/334)

EP.222 이부 일장 - 출두, 만남 (2)

* * *

묵룡 목리원에 관한 이야기는 우삼도 알 정도로 유명했다.

은거했던 걸왕 마일석의 제자이자 다음 강호의 주인, 혹은 역대 강호에서 가장 강해질 무인으로 평가되는 그 전설적인 후기지수가 아니던가.

정마대전 이후 모습을 숨겼던 그를 산적에게 당하던 중 우연히 만났다.

이 상황이 참으로 믿기지 않았지만, 그의 말이 거짓이라기엔 무력이나, 생김새가 소문으로 듣던 그대로였다.

‘옥면검….’

막 용봉지회에 처음 나섰던 시기 그의 아름다운 외모 때문에 잠시 붙었던 별호라던가.

과연 그럴 만했다.

“구해주셔서 감사해요. 대협. 녹림도들이 정말 무서워서….”

사람을 볼 땐 언제나 눈을 바라보던 교연이 오늘따라 바닥만 본다.

얼굴이고 귀고 목이고 할 것 없이 전부 붉어져있는 꼴이 어찌나 아니꼬운지.

그렇다고 목리원에게 눈총을 주자니 그가 가진 무력이 두렵다.

우삼은 속으로 피눈물을 흘렸다.

목리원은 그런 우삼의 속도 모르고 지그시 웃으며 교연을 상대하고 있었다.

“아니오. 도울 수 있었다니 그저 다행일 뿐이지. 내 녹림도가 이리 활개치고 있을 줄은 몰랐지 뭐요.”

“정마대전 이후 세상이 많이 바뀌었으니까요.”

“그때부터 폐관에 들어갔던지라.”

“아! 대단하세요! 7년간 폐관이라니… 역시 고수는 다르시네요…!”

이거 서러워서라도 폐관해야 하나.

우삼은 생각하다 이내 포기했다.

‘내가 폐관해봐야 방구석 칩거지.’

그런 와중이었다.

“우삼 표사님!”

“예.”

“슬슬 식사 시간인데 혹시 대협 몫을 챙겨주실 수 있나요?”

이제까지 본 중 가장 해맑은 얼굴로 교연이 말해왔다.

우삼은 주먹을 꽉 쥐며 답했다.

“…예, 그리합죠.”

우삼은 터덜터덜 냇가로 향했다.

*

이어진 식사 시간, 그리고 이후도 교연은 목리원의 곁을 맴돌았다.

그런 상황이 한창이던 중, 우삼이 알게 된 것이 있었다.

“그, 음… 힘내라.”

“삼아, 기죽지 말고.”

꼰대 같은 표두와 선배 표사들이 어깨를 치며 위로해준다.

그들은 이미 우삼의 마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상대가, 그….”

“아뇨, 됐습니다.”

우삼은 허허롭게 웃었다.

그렇게 밤이 되었다.

내일도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니 잠들어야 하건만 우삼은 좀처럼 잠들 수 없었다.

속이 심란한 이유였다.

하여 잠든 표사들 사이에서 몰래 빠져나간 그가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인근 숲속.

휘이잉―

발걸음을 옮기던 중 바람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자연적인 소리라기엔 왜인지 이질감이 느껴졌다.

혹시 습격일까? 그렇다기엔 너무 조용한데.

우삼은 호기심과 경계심을 동시에 띄워 올리며 걸음을 옮겼다.

휘이잉―!

소리가 더욱 거세졌다.

그에 마른침을 꼴깍 삼킨 우삼은 수풀 사이를 헤쳐 나간 직후, 볼 수 있었다.

‘아…!’

묵색의 운무 한가운데 사내가 검을 휘두른다.

그것은 달리 말해  땅 위에서 솟아오르는 별들의 춤사위였다.

운무 속에서 아스라이 피어나고 흩어지는 백색의 알갱이들이 너무 눈부셔서, 우삼은 무심코 시선을 뺏겨 버렸다.

조금도 빠르지 않게, 그렇다고 마냥 느리지도 않게.

조심스럽게 한 발짝씩 노닐 듯 걸음을 옮기는 목리원의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그림과 같았다.

“아….”

우삼이 탄성을 흘린 순간이었다.

우뚝, 목리원의 춤사위가 멈췄다.

“누구시오?”

“으헉!”

우삼은 자지러지게 놀라며 몸을 들썩였다.

뒤늦게 현실로 돌아온 그의 얼굴엔 낭패 어린 기색이 피어났다.

“죄, 죄송합니다! 훔쳐보려던 게 아니라… 그게…!”

고수의 수련 장면을 훔쳐보는 것은 목이 달아나도 할 말이 없는 중죄다.

우삼은 녹림도와 싸우다 죽는 게 아니라, 남의 수련을 훔쳐본 죄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에 눈물이 앞을 가리는 기분을 느꼈다.

눈시울이 촉촉해진다.

이윽고 우삼의 눈이 질끈 감긴 순간이었다.

“아, 표사님이셨구려.”

목리원이 호방하게 웃었다.

“미안하오. 한창 검무에 심취해있었던 터라.”

우삼이 멍해졌다.

“죄, 죄를 묻지 않는 것입니까?”

“내가 어째서 그리해야 하오?”

어째서냐니.

“수련을 엿봤….”

“남들이 다 볼 수 있는 곳에서 검을 휘둘러놓고 책임을 묻는 건 어느 나라 법도요?”

목리원이 무슨 당연한 걸 묻냐는 듯 내뱉은 말에 우삼의 얼굴이 더욱 멍청해졌다.

“…그러네요?”

생각해보니 목리원의 말이 맞았다.

목리원은 웃었다.

“게다가 설령 나쁜 의도로 봤다 한들 상관없소. 초식을 수련한 것이 아니라 그저 검을 휘두른 것뿐이니.”

목리원은 수통을 열어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달빛 아래서, 그의 이마에 맺힌 땀이 은은하게 빛을 냈다.

우삼은 순간적으로, 이 광경을 교연이 못 봐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리 별이 밝은 밤이면 검무를 추고 싶어지오. 내 스승이 생각나거든.”

“아, 걸왕님 말입니까?”

움찔, 목리원의 어깨가 떨렸다.

그는 이내 조금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소.”

목리원이 수통을 내밀었다.

“마시겠소?”

“아, 예….”

우삼이 수통을 받아들자 목리원이 그의 곁에 앉으며 물었다.

“한데 이 시간까지 안 주무시고 웬일이오.”

“그… 잠시 안 와서 나왔습죠.”

“그러시구려.”

목리원이 쿡쿡 웃었다.

“내 당신들을 만나 얼마나 다행인 줄 모르오. 워낙에 길눈이 어두워 어디로 가야 도시에 도착할 수 있을지를 한참이나 고민했거든.”

“모, 목적지가 어딘데 그러십니까?”

“사천, 그곳의 당문으로 가려하오.”

우삼은 ‘아!’하는 소리를 냈다.

‘그러고 보니까…!’

당문의 문주가 목리원과 연인관계라는 소문이 이 강호 전체에 자자하지 않았던가!

우삼의 속에 희망이 피어났다.

설마 대협이라 불리는 자가 외도를 저지르지는 않을 터! 교연과 목리원이 잘 될 일은 절대! 죽어도 없을 테니 말이다!

“사, 사천 좋지요! 당문이라 하면 독라나찰(毒癩羅刹) 대협을 뵈러 가는 것이군요!”

“독라…뭐요?”

아, 7년간 폐관했다고 했었지.

우삼은 헤헤 웃으며 말했다.

“당화서 대협 말입니다! 당문의 문주요! 그분의 현 별호가 독라나찰이십니다! 적을 상대하는데 피도 눈물도 없는 데다, 밥 대신 독을 먹을 정도로 독공에 심취해 계시다 하여 붙여진 별호시지요!”

“…그렇소?”

“예!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말입니다? 정마대전 이후 아주 뼈를 갈고 계시다는 게 아니겠습니까. 뭐라더라… 꼭 다시 만나야 할 사람이 있다는 말을 하고 다니신다는데, 그렇게 무력을 갈고닦아 만날 상대라면 불구대천의 원수가 분명합죠!”

목리원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왜인지 안색도 조금 거무죽죽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우삼은 신나서 그 기색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 그렇구려…!”

“묵룡 대협께선 당문주님을 만나러 가시는 게 맞습니까?”

목리원의 입이 꾹 다물려 버렸다.

우삼은 고개를 갸웃했다.

“…대협?”

“마, 맞소.”

목리원의 입가에 삐걱거리는 미소가 걸렸다.

이 인간이 갑자기 왜 이러나.

‘설마?’

우삼의 눈이 좁아졌다.

지금 당화서의 얘기가 나온 시점부터 갑자기 달라진 기색을 보니 대충 보인다.

‘부끄러움이 많으시구나!’

하기야 무력을 떼어놓고 생각하면 이제 스물다섯.

한창 여인을 알게될 시기 전체를 폐관으로 보낸 인물인데 부끄러움이 많은 게 당연했다.

이런 고수도 인간미가 있구나!

우삼은 작게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뭐, 하나 정보를 드리자면 이 시기엔 당문으로 가도 당문주님을 뵐 수 없을 겁니다.”

“음?”

“곧 청룡 비무회이지 않습니까!”

목리원의 눈이 크게 뜨였다.

잠시 멍해져 있던 그는 이내, “아!”하고 외치며 말했다.

“새, 생각해보니 지금이 그 시기였구려! 청룡 비무회는 재개된 것이오?”

“예! 사실 대협의 반응도 이해가 되긴 합니다. 정마대전 이후 올해로 처음 재개되는 것인지라.”

목리원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렇구려. 그럼 거기에…!”

“당문주님이 이번에 출사표를 던지셨지요. 그뿐만 아닙니다. 이번 청룡 비무회를 기점으로 거대 문파들이 봉문을 푼다는 소문이 자자합니다. 그 검룡도 복귀한다고 하니까….”

“음? 검룡 형은 아직도 검룡 형이구려. 내 분명 헤어지기 전 들은 바로는 비무행을 떠난다 했는데. 무명이 쌓이지 않았나 보오?”

우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비무행을 귀주 쪽으로 간 게 아니겠습니까. 흑도들 영역으로 쳐들어가선 도통 나오고 계시지 않습니다. 살아있다는 것 정도만 드문드문 소문이 들려오지요.”

“…아, 과연.”

목리원이 턱을 쓸었다.

“음, 대충 알겠소. 일단 청룡 비무회를 가면 된다는 말이 맞소? 내 큰 도움을 받았구려! 고맙소!”

목리원이 포권을 취하는 것에 우삼이 화들짝 놀라며 마주 일어나 포권했다.

“아, 아닙니다! 별말씀을!”

이렇게 무공이 고강함에도 겸손할 수가 있을까.

우삼은 저보다 나이가 어린 목리원임에도 존경심을 속에 띄워 올렸다.

그렇게 마주 보던 중, 우삼은 마침 떠오른 것이 있어 말을 내뱉었다.

“혹시 무한으로 행선지를 결정하신 것이 맞습니까?”

“그렇소만?”

“그럼 같이 가는 게 어떠신지요?”

이건 기회였다.

우삼의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을 기회.

“마침 저희 표행의 목적지가 무한 무림맹입니다!”

녹림도가 들끓는 위험천만한 여행길.

목리원과 있으면 목숨 줄 하나는 잘 붙어있을 거란 생각에, 우삼의 속에 간절함이 떠올랐다.

“오, 좋소.”

기도가 하늘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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