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18 이십일장 - 고별,협 성련 (4)
* * *
표정관리는 당연히 쉽지 않았다.
생각하면 할수록 머릿속이 복잡해졌던 까닭이다.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걸까.
차근차근 정리해보려 했지만 잘 될 리는 없었다.
그저 목리원의 답이 파편화되어 어설픈 결론에 다다른다.
자신과 함께 떠나지 않는다.
강호를 떠나려 한다.
오랫동안.
그 말이 왜인지 이별을 고하는 말 같아서,
“…소, 소저?”
눈물이 흘렀다.
주책맞게도.
“소저! 우, 울지 마시오!”
목리원이 황급히 다가와 안절부절못하는 얼굴로 뺨에 손을 얹었다.
초췌한 낯빛이 당황으로 물드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제야 평소 알던 목리원의 모습이 보이는 것이 다행스러우면서도 부끄럽고 미안해서 당화서의 눈시울은 더 뜨거워졌다.
“아, 으….”
황급히 눈물을 닦아보려 하지만 역효과였다.
감정을 추스르려 할수록 야속한 눈물은 더 거세게 샘솟기 시작했다.
“아, 아니오. 소저가 내 말을 오해하고 있는 것 같소. 그러니까 응? 잠시만 진정해보시오.”
목리원이 당화서를 끌어안았다.
단단한 품에 머리를 묻으니 히끅, 소리가 튀어나왔다.
불안감이 있었을까.
아니, 분명 그럴 터다.
목리원이 내내 모습을 보이지 않고 홀로 슬퍼했던 것이, 이번만큼은 기대주지 않은 것이 그와의 거리감으로 화했던 것일지도 몰랐다.
이제야 안심이 되는 우는 거라고.
부끄러운 마음을 애써 달랬다.
“죄, 죄송… 흐끅….”
이리 운 것이 얼마 만일까.
그 어린 날, 만독불침에 이르는 과정이 있던 이후로는 처음이었다.
그날 이후로는 눈물이 다 메말라버린 줄로 알았는데.
‘꼭….’
이 사내의 앞에서는 또 울보가 되어버린다.
“소저….”
울음을 그치는 데는 아주 긴 시간이 필요했다.
*
겨우 당화서를 달랜 목리원은 뒤늦게야 말했다.
“성련문의 비고로 간다는 말이었소.”
어찌 당화서의 눈물이 너무 당황스러워 그 전의 가라앉아있던 기분마저 다 날아간 기분이었다.
문득, 피식 웃음이 흘렀다.
당화서는 아직도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울음기보다는 부끄러움 탓인 듯했다.
“…그렇습니까.”
“스승님을 모셔야 하지 않겠소. 성련문의 문주는 그 시신을 비고에 모신다오. 이왕 가는 길이니, 그곳에서 수련하려 하오.”
앞으로의 계획을 말하던 중, 목리원은 저도 모르게 눈 주변을 쓸었다.
“…이 눈도 어찌해야 할 테니 말이오.”
“아.”
당화서의 눈이 크게 뜨더니 걱정 어린 얼굴로 물었다.
“그 눈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혹….”
“아, 걱정마시오. 눈 색깔은 살의를 멀리하고 수양을 가다듬으면 자연히 빠지게 되오. 스승님께 듣기론 갓난아이 때 붉었던 눈이 시간이 지나며 서서히 까맣게 변했다더구려.”
이번 역시 잘 될지는 몰랐다.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른 까닭이다.
이미 한 번 천살성을 일깨웠다.
그뿐만 아니라, 살기에 취해 검을 휘둘러 몸까지 망친 상황이다.
쉽지 않을 터다.
그리고 해야 할 일은 천살성의 처리 외에도 있었다.
‘비고에 들어가면….’
이 불완전한 초월도 어찌해야만 했다.
목리원 스스로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불완전한 초월의 대가는 혹독했다.
‘몸이 망가지고 있다.’
과연 금기를 어긴 대가라고 해야 할까.
이리 가만히 있는 중에도 시시각각 비대해진 내공이 육신을 좀먹는 것이 느껴지고 있었다.
이미 확장된 기를 다시 틀어막을 수는 없으니, 심과 체의 수련에 전력을 다하는 방향이 옳을 터.
떠오르는 것은 목선오가 죽기 직전 했던 말이다.
-비고로 가거라. 본디 초월에 이른 성련의 제자에게 허락된 것이긴 하나, 원이 너라면 허락해줄지도 모른다.
비고가 허락을 해준다는 말은 아직 의아하지만 목선오가 그리 말한 이유는 분명 있을 터였다.
“아무튼 그래서 떠난다는 말이었소.”
“그랬군요.”
당화서가 손끝을 꼼지락거리는 게 보였다.
망설임이 있는 듯했다.
이윽고 당화서가 말했다.
“언제쯤, 다시 만날 수 있겠습니까?”
목리원은 섣불리 답하지 못했다.
겨우 내뱉는 말은 그랬다.
“잘 모르겠구려.”
기간이 아닌 경지가 목표이기에 목리원도 장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기약없는 기다림을 당화서에게 강요할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당화서의 고개가 들렸다.
목리원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밝게 웃으려 했다.
잘 되었을지는 모를 일이었다.
“혹 내가 하산하게 되는 날엔 말이오. 그땐 소저를 가장 먼저 찾아가겠소.”
다행히, 당화서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
청해의 뒷정리는 어느덧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고 있었다.
이제 큰 집단이 다 빠져 남은 이들이 수습을 하고 있는 와중.
“준비는 되었느냐.”
마일석의 물음에 목리원은 관을 고이 짊어진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눈동자를 숨기기 위해 얼굴을 다 가리는 새까만 죽립을 쓴 채였다.
“예, 슬슬 그래야지요.”
“이리 떠나는구려.”
마중을 나온 이들이 있었다.
사백운을 위시한 남은 초월자들, 그리고 당화서였다.
“함께 가지 못해 미안하오.”
“됐다. 알지 않느냐. 형님은 번잡한 것을 싫어한다.”
“그렇긴 하오. 허면 어디에 묻어드릴 생각이오? 혹 나중에 성묘라도….”
“일 없다. 형님께선 성련문의 비고에 몸을 뉘실 테니.”
마일석의 단호한 어조에 그제야 사백운은 안타까움을 토해냈다.
목리원은 감사함을 띄워 올렸다.
구태여 캐묻지 않는 것도, 이렇게까지 기려주는 것도, 고맙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이 마지막이겠구려.”
사백운이 다가왔다.
목리원은 움츠러드는 몸을 애써 진정시켰다.
직후 사백운이 관을 쓸었다.
“편히 쉬시오. 검성께서 이루고자 한 협의는, 분명 우리에게 전해졌소.”
무덤덤하게 말하려는 듯했지만, 그 일이 사백운에게 쉽지 않음은 금방 알 수 있었다.
사백운의 목소리에 물기가 서리기 시작했다.
“…잊지 않을 것이오. 내 생이 다하는 그날까지.”
목리원은 죽립 아래로 사백운의 손끝이 떨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차마 입을 열 수는 없었다.
말을 거는 순간 고개를 들어야 할 것만 같아서.
“잘 보내주길 바라네.”
사백운은 그리 말하고 돌아섰다.
목리원은 겨우 답했다.
“…예, 꼭 그리하겠습니다.”
이어 염소소가 다가왔다.
“멍청한 놈.”
염소소는 회한이 묻은 목소리로 그리 말하곤 돌아섰다.
많은 말을 할 수는 없는 듯했다.
“단단히 묻어주고 오거라.”
목리원은 이번 역시 그러겠노라 답했다.
그러니 남은 사람은 한 명이었다.
“…검치 놈아, 너도 한마디 해라.”
마일석이 남궁혁에게 말했다.
남궁혁은 팔짱을 낀 채였다.
목리원으로선 죽립 탓에 그의 표정까지 볼 수는 없었다.
그저 주변 분위기로 그의 기색이 여느때와는 다름을 짐작할 뿐이었다.
“결국.”
남궁혁의 목소리에 웃음기와 슬픔이 함께 묻어났다.
“한 번도 이기지 못했군.”
남궁혁이 돌아서 떠나갔다.
모든 초월자들이 떠난 자리.
남은 것은 당화서였다.
“이제 진정 가시는군요.”
“둘이 이야기를 할 테냐?”
마일석의 물음에 목리원은 잠시 고민했다.
그러다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말미를 주실 수 있겠습니까?”
“가야 할 길이 멀다. 짧게 하거라.”
마일석이 자리를 비켜줬다.
둘만 남으니 문득 지난 날의 일이 떠올라 목리원은 머쓱함을 띄워 올렸다.
“언제 또 볼지 모르겠구려.”
그리 서두를 띄웠다.
“소저께서도 이루고자 하시는 바가 있는 줄로 아오. 나는 소저가 뜻하는 바를 모두 이룰 수 있으리라 믿소. 소저는 그럴 능력이 있는 사람이니 말이오.”
응원의 말을 했다.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움을 불러일으켰다.
연심은 슬픔이 어느 정도 가신 지금에서야 목리원의 마음을 불편케 했다.
하나, 그런 마음에 어설픈 이별을 해선 안 될 터였다.
“많이 보고싶을 것이오.”
“…!”
당화서의 어깨가 들썩이는 것이 보였다.
하여 목리원은 웃으며 말했다.
“다시 만나는 날 말이오.”
그것은 꽤 오랜 시간, 목리원이 속에 담아둔 말이었다.
“그때 소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소.”
“말이라면….”
“그때 하겠소. 그때. 지금은 아니오.”
목리원은 황급히 몸을 돌렸다.
얼굴이 뜨거웠다.
“가보겠소. 걸왕님께서 기다리실 터이니.”
답도 듣지 않고 목리원은 걸음을 옮겼다.
등 뒤에서 당화서의 목소리가 들렸다.
“기다리겠습니다!”
그에 속이 시큰거린다.
목리원을 걸음을 보채 마일석에게 다다랐다.
“다 됐… 얼굴이 그게 무슨 꼴이냐.”
마일석이 쯧쯧 혀를 찼다.
목리원은 그제야 손으로 얼굴을 매만져, 입꼬리가 올라가 있음을 확인했다.
“띨띨한 놈.”
마일석은 쯧, 혀를 차고 돌아섰다.
“가자꾸나. 중간까지는 함께 해주마.”
“아, 예.”
목선오를 묻는 성련의 비고는 마일석도 갈 수 없는 곳이었다.
비고의 위치는 오로지 성련의 후계자만이 알아야 하는 것이 법도인 까닭이다.
마일석이 중간까지 동행하는 것은 목선오의 관을 목리원이 홀로 짊어지는 상황이 남에게는 이상하게 보일 것을 고려한 것이었다.
목리원은 관을 바로 고쳐 매고 마일석의 뒤를 따랐다.
길고도 혼란스러웠던 청해의 일은, 그리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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