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215화 (215/334)

EP.216 이십일장 - 고별,협 성련 (2)

* * *

꿈일까.

눈을 뜨니 웬 낯선 공간에 함께 있는 것은 목리원이다.

‘분명….’

천마와 마지막 수를 겨루고 있었건만, 그 자리에서 바로 죽을 상황이었건만 어찌 이런 상황이냔 말이다.

목선오는 비현실적인 상황에 잠시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그를 일깨운 것은 다름 아닌 통증이었다.

“쿨럭…!”

기침과 함께 폐부가 조인다. 잘려 나간 어깨가 아팠고, 머리는 어지러웠으며 시야 또한 잘 잡히지 않았다.

아니, 그런 통증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공력이….’

모두 사라졌다.

그저 사라진 게 아닌, 그 그릇이 부서지며 흩어진 터라 갈 곳 잃은 공력이 몸속에서 폭주하며 속을 저미고 있었다.

“스, 스승님!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제가 사람을…!”

목리원이 허겁지겁 자리에서 일어났다.

목선오는 말렸다.

“되었다.”

식은땀을 닦아내 목선오는 말했다.

“되었어. 되었다. 원아.”

겨우내 말하니 그제야 목리원이 조금 진정한 듯했다.

울먹거리는 얼굴이 얼마나 보기 안타까운지, 목선오는 그만 헛웃음을 흘려버렸다.

“무에 그리 울고 있느냐.”

그만큼이나 걱정한 것이겠지.

이제야 눈을 뜬 것에 안도를 표한 것이겠지.

그 모습을 보자 목선오는 문득 죄책감같은 것을 느꼈다.

‘오늘이구나.’

이 목숨이 길게 이어지지 않을 것임은 세상 누구보다 그가 잘 알고 있었다.

겨우 한두 시진을 더 살 수 있을까.

모르겠다.

선천진기를 다 쓴 상황이라, 이 몸뚱어리에 숨을 아직 붙여두는 것은 채 빠져나가지 않은 생명의 찌꺼기였으니 말이다.

목선오는 죽기 전 꼭 알아야 할 일을 물었다.

“전쟁은 어찌 되었느냐?”

“그, 그게….”

히끅대며 목리원이 말했다.

두서없는 말로 내내 이어진 것은 목선오가 쓰러진 이후의 일이었다.

‘다행히 더 사망자가 나오지 않았구나.’

전쟁이 완전한 승리로 끝맺지 못한 것은 안타까웠으나, 당장 피해가 그쳤다는 것에 목선오는 안도를 느꼈다.

그런 중에도 목리원은 계속 말했다.

그의 울먹임은 갈수록 짙어졌다.

주르륵, 목리원이 눈물이 흘렸다.

그 순간 목선오의 시선을 끄는 것은 새빨갛게 달아오른 목리원의 눈동자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공력이 다 사라져 정확한 진단은 불가하나, 확실히 목리원의 기도는 초월의 벽을 넘어있었다.

스스로도 그 기운을 수습하지 못해 불안정한 형태였다.

‘정상적인 방법은 아니었겠지.’

저리 붉은 눈을 보면 천살성이 억지로 이끈 경지였을 것이다.

목리원은 아마, 성련의 금기를 깨어버린 것일 터였다.

못내 속을 시리게 만드는 사실이었다.

어찌하여 그런 선택을 했느냐는 말은 구태여 하지 않았다.

전쟁이란, 그 누구도 어찌 될지 알 수 없는 폭풍과도 같은 것이었으니.

“또….”

목리원의 목소리에 울분이 깃들었다.

거칠게 내쉬는 숨에는 숨길 수 없는 살의가 배어 있었다.

목선오는 그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봤다.

말없이 바라보며 목리원의 얼굴을 망막 위로 아로새기다, 문득 물었다.

“원아.”

흠칫, 목리원이 고개를 들었다.

자신을 바라보며 슬픔을 짙게 만드는 제자에게 목선오는 다시 물었다.

“무엇이 그리 밉더냐.”

무엇이 너를 그리 화나고, 슬프고, 아프게 만들었느냐.

질문하니 목리원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섣불리 말을 내뱉지 못하던 목리원은 고개를 푹 숙이고 그리 몸을 떨다.

“제가….”

가슴을 쿵쿵 쳤다.

“…저 스스로가 너무 밉습니다. 저를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목리원이 기어코 그런 말을 토해냈다.

*

미웠다.

참으로 많은 것이 미웠다.

하나 개중 가장 밉고 못나 보이는 것은 목리원 자신이었다.

“스승님, 저는 참 못난 사람입니다.”

목리원은 꺽꺽 울며 땅에 고개를 처박았다.

“저는 참으로 추악한 사람입니다.”

“…어찌 그런 말을 하느냐.”

“타인에게 엄격하며 저에게 관대한 까닭입니다.”

흐으으, 긴 숨을 내뱉은 목리원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협객이 되고자 했습니다. 세상에 협의가 옳음을 부르짖고자 했습니다. 그리하여 타인에게 용서와 관용을 가르쳤습니다.”

그렇게 타인의 일은 쉬이 말한 주제에.

“그런 주제에, 저는 용서와 관용을 품지 못했습니다.”

목리원의 눈이 질끈 감겼다.

참으로 수치스러운 말이 입을 빌어 나왔다.

“수많은 이들의 죽음은 참을 수 있었습니다. 그저 제가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해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면 되는 일이라 치부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할 수 있었음에도, 스승님의 위험 앞에서는 그리하지 못했습니다.”

목리원은 고개를 들어 목선오를 바로 바라봤다.

“스승님을 잃을지도 모른다 생각한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습니다.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싫다고, 어린아이처럼 떼쓰기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금기를 어겼습니다.

타인의 일엔 냉정하며 스스로에겐 그리하지 못했으니, 이보다 못난 사람이 또 세상 어디에 있겠습니까?

“저는….”

협객을 말할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끝끝내 그 말만은 나오지 못했다.

말을 토해내려는 순간 언어가 갈기갈기 찢어발겨져 파편이 된 까닭이다.

그 파편이 목구멍을 긁어댄 까닭이다.

“끄흐으….”

목구멍이 너무 뜨거워 신음밖에 낼 수 없었다.

아니, 어쩌면 협객의 자격이 없음을 시인하고 싶지 않은 것일지도 몰랐다.

목리원은 끝끝내 이기적으로 구는 제 자신이 용서되지 않았다.

그런 중이었다.

“원아.”

목선오가 거듭 물어왔다.

참으로 부드러운 어조였다.

“무엇이 그리 밉더냐?”

같은 질문을 해왔다.

목리원은 이번 역시 말했다.

“제가 너무 밉습니다.”

“너 하나만 미운 것이냐?”

목선오가 지그시 웃기 시작했다.

“너는 진정 너 하나만이 미운 것이냐?”

그것은 참 따스한 미소라 목리원의 부끄러운 속내를 또 한 번 까뒤집고 있었다.

목리원은 주먹을 꽉 쥐며 고개를 떨궜다.

곰곰이 생각하여 또 답을 내니,

“…마인들이 밉습니다.”

목리원은 목선오를 이리 해한 마인이 미웠다.

제게서 어버이를 앗아간 그들이 미웠다.

이리 수많은 생을 앗아간 그들이 미웠고, 그들과 자신을 엮은 이 천살성이, 운명이 미웠다.

아니, 그걸 넘어 세상 모든 것이 미운 기분이었다.

“너무 미워 용서되지가 않습니다. 모든 것이 너무….”

목리원은 살심을 띄워 올렸다.

위광천의 낯짝을 떠올리는 순간 그 어느때보다 진한 살의가 그의 몸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너무 멀리 와버린 듯했다.

목리원은 도저히 이 살심을 거둘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아니, 용기가 있어도 이리 거대한 마음을 수습할 능력이 없었다.

목리원은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돌아가고 싶은 마음마저도 이내 스러지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원아.”

목선오가 힘겹게 손을 뻗어 목리원의 뺨을 쓸었다.

“그래, 그들이 미운 것이구나.”

그리하며 웃었다.

“그들이 너를 이다지도 슬프게 만든 것이구나.”

목리원은 주르륵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흐르는 눈물이 목선오의 손을 적셨다.

“그럴 수 있다.”

목선오의 손에서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목리원은 그것이 너무 무서워 목선오의 손을 붙잡았다.

꼭 끌어안았다.

“스승님!”

“…그럴 수 있다.”

목선오는 미소를 지우지 않기 위해 애쓰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원아.”

“예.”

“그리도 미운 마음이 있겠지만 말이다.”

“…예.”

“검에 담는 것만은 달라야만 한다.”

흠칫, 목리원의 어깨가 떨렸다.

눈이 큼지막하게 뜨였다.

그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목리원은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너의 검은 다른 걸 담아야 하는 검이다.”

이것은 유언이었다.

“굳게 일어서거라.”

목선오가 말했다.

“아무리 이르고 일러도 모자람이 없으니 또 이르길….”

화인으로 새겨져 지워지지 않을 말 위로, 다시 한번 같은 말을 똑같은 형태로 새겨넣는다.

“협객은, 구태여 가장 어려운 길을 가는 이를 칭하는 말이다.”

목리원의 입술이 앙 물렸다.

“그러니, 원아. 증오는 품에 가두거라. 너를 무릎 꿇리는 감정은 함 속에 고이 담아 불길로 던져버리거라. 타들어 간 증오를 연료로 너는 다시 일어나거라. 또 나아가고 나아가, 증오가 아닌 다른 것을 검에 실어다오.”

더 뜨거워질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워진 속이 목리원의 목을 태우기 시작했다.

“다만, 협의만을 검에 실어다오.”

이어지는 것은 장난스러운 말이었다.

“그것이 성련이 아니더냐.”

그 말이 목리원의 속에 있는 무언가를 자극했다.

“그리해줄 수 있겠느냐?”

목리원은 고개를 떨군 채 아이처럼 울었다.

끝끝내 못난 모습만을 보이는 스스로의 모습이 참으로 부끄러워 울었다.

그럼에도 달래주는 목선오가 너무 감사해 울었다.

그리 울고 난 후에야 고개를 끄덕였다.

“예….”

꼭 그리하겠노라 말했다.

“그래, 원아.”

그제야 목선오는 아주 힘겹게 웃으며 말했다.

“달이 기울지 않았구나. 내 아직은 잠기운이 덜하단다. 그러니 들려다오. 우리 함께 살던 산골을 떠나 네가 보았던 것을, 만난 사람을, 겪은 일들을.”

끝까지 목리원이 아는 모습 그대로, 같은 온기를 품은 채 그를 달래는 목소리로 그리 물었다.

“너의 강호는 어떠했느냐?”

그리 밤이 저물어갔다.

청해 어느 전각엔 이후로도 조곤조곤한 말소리가 얽혀 새어 나왔다.

사내의 눈물기 어린 목소리와, 노인의 웃음소리와, 그것들이 어우러진 고즈넉한 소란이 다 지나가고.

그리 달이 다 기울어갈 때쯤.

“흐으으….”

너무 이른 이별을 맞은 소년의 흐느낌만이, 사라진 것들의 빈자리를 가득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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