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15 이십일장 - 고별,협 성련 (1)
* * *
누구도 안채에 출입하지 않았다.
대외적으로는 평생 목선오를 뒤따랐던 마일석이 그와의 고별을 준비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다는 명목이었다.
즉, 실제로 고별을 준비하는 것은 다른 이었단 말이다.
“스승님….”
목리원은 물기가 가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눈앞엔 시체나 다름없는 목선오가 잠들어 있었다.
“눈을 뜨셔야지요. 이 못난 제자를 혼내주셔야지요.”
목리원은 목선오의 하나 남은 손을 꼭 쥔 채, 그의 손등에 머리를 묻었다.
움직임 하나하나에 떨림이 묻어있었다.
“저는 어찌하면 좋은 것입니까…?”
갈구하며 묻지만 역시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이리할수록 선명해지는 것은 이별의 가능성이었다.
아니, 목리원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의 예민한 감각은 안채 밖에서 이어지던 대화를 모두 들었으니 말이다.
-…오늘을 넘기지 못할 것이다.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이었다.
한없이 바라고 바란 것은, 무사히 강호행을 마쳐 훌륭한 협객이 된 후 다시 강서성의 그 산골로 돌아가는 것이다.
환히 웃어주는 목선오에게 그간 강호에서 있었던 일을 밤새 들려주는 것이다.
이런 끔찍한 이별은, 목리원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한 종류였다.
“스승님…!”
“원아.”
마일석이 목리원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의 목소리 역시 침잠하게 가라앉아있었다.
마일석은 한참이나 입술을 달싹거렸지만, 결국 말을 내뱉진 못했다.
“…형님을 잘 지켜주거라.”
그리 말하며 안채를 떠나갈 뿐이었다.
*
안채를 나온 마일석은 앞에서 대기 중이던 염소소와 남궁혁에게 말했다.
“자리를 비켜주도록 하지.”
두 사람은 쉬이 수긍했다.
마일석 또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애써 떼어냈다.
목선오의 마지막을 함께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다.
하지만 그 역할이 본인의 것이 아님은 마일석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사제(師弟)간의 연은, 또한 부자(夫子)의 연은 세상에 둘도 없는 유일한 것이라 마땅히 그를 존중해 줄 필요가 있었다.
뻔뻔하게 옆자리에 앉아 괜한 첨언을 더하는 것은 마일석이 아는 무인으로서의 예(禮)에 어긋난 행위였다.
그리 안채를 떠나온 시점이었다.
“걸왕님.”
당화서였다.
복귀한 이후 몸을 쉬지도 않은 것인지, 그녀는 아직 전쟁의 흔적이 몸에 가득한 채로 힘겹게 서 있었다.
“목 소협은 어떻습니까?”
그가 걱정된 듯하다.
마일석은 쓰게 웃었다.
“오늘은 돌아가거라. 원이가 많이 힘들 것이다. 이별을 준비하는 중이니 형님과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잠시만 떨어져있어 주거라.”
당화서의 입술이 달싹였다.
항변이라도 하려는 듯했다.
그러나, 그녀 또한 결국엔 납득한 듯 입을 앙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예.”
그리 당화서가 돌아섰다.
마일석은 숨을 골랐다.
“후….”
한숨이 마일석의 입에서 삐져나왔다.
‘야속하기도 하지.’
인간의 수명이 영원할 수 없어, 또한 삶이란 것이 어찌 될지 알 수 없어 이별이란 것은 참 갑작스럽다.
이리 오랜 세월 강호에 몸담아온 모든 무인이 그것을 알았다.
마일석이 그랬고, 염소소가 그랬고, 남궁혁이 그랬고 그 외의 수많은 무인이 그랬다.
스승과의 이별을 겪은 것이다.
그 순간이 얼마나 아픈지를 아는 것이다.
그렇기에 강호에는 하나의 불문율이 있다.
스승의 마지막을 지키는 것은 자식, 또는 그에 준하는 제자여야 할 것.
떠나는 이의 유지를 이어받을 이어야만 할 것.
그럼에도,
‘너무 이르구나.’
안타까움이 인다.
목리원은 스승과의 이별을 겪기에 너무 어렸다.
나이가 아니라, 그의 성정이 너무 어렸다.
세상을 의심할 줄 모르는 선한 아이로 기른 대가를 이렇게 치르게 된 것이다.
‘형님.’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
당화서는 비틀비틀 침소로 돌아왔다.
몸은 천근만근이고 눈꺼풀은 언제 감겨도 이상하지 않았다.
이제껏 그녀가 두 발로 서있을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은 순전히 목리원을 향한 걱정 탓이었다.
“흐으….”
당화서는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무력감이 인다.
정작 중요한 순간에 그에게 어떤 힘도 되어주지 못한 스스로가 너무 한심하게 느껴진 까닭이다.
그저 마음의 위로라도 되어주고 싶건만, 그조차 쉽지 않다.
아니, 어쩌면 이리 빈손으로 돌아온 것이 다행일지도 몰랐다.
목리원이 그의 스승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는 만큼, 당화서는 그의 마음이 가진 무게도 알고 있었다.
세상이 무너져내리는 기분이겠지.
감히 그 감정을 이해했다는 말조차 죄송스럽다.
당화서는 무릎꿇은 목리원을 일으켜세울 말을 도저히 찾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들어가도 되겠는가.”
순간 남궁진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당화서가 답하지 남궁진천이 문을 열었다.
그 또한 피로가 덕지덕지 묻은 얼굴이다.
당화서는 미안한 마음을 느꼈다.
그녀가 목리원의 걱정에 안채 주변을 서성이던 동안 대신 일을 처리해준 것이 남궁진천인 까닭이다.
“…면목이 없습니다. 고생하셨어요.”
“모든 이가 고생하고 있지.”
남궁진천은 그 와중에도 제 건재함을 드러내고 싶었던 것인지 평소와 같은 어조를 내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나와줘야겠다. 네가 해야할 일이 있다.”
“무엇입니까?”
“원명 대사의 장례.”
아.
당화서는 눈을 크게 떴다.
대체 이게 무슨 정신인가.
스승을 잃은 것은 비단 목리원 뿐만이 아닐진대 단주라는 이름을 달고 어찌 일운을 잊고 있을 수가 있단 말인가.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이기적이고 편협한 마음이, 좁기만 한 시야가 이리 개탄스러울 수가 없었다.
당화서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순간이었다.
“천천히 와라. 단장부터 다시 하고.”
남궁진천이 제지했다.
그제야 당화서는 스스로의 꼴이 말이 아님을 깨달았다.
“…죄송합니다.”
“되었다.”
남궁진천이 돌아섰다.
떠나려는 듯 걸음을 뗀 그는, 직후 세 걸음도 걷지 못하고 다시 멈췄다.
“…그놈은 어떤가.”
당화서에게 물었다.
그놈이 누구인지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런가.”
남궁진천은 중얼거리듯 그리 답하고 한참이나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뒷모습이라 표정은 알 수는 없었다.
그저 느껴지길, 남궁진천의 저런 반응이 당화서가 아는 그와는 다르게 꽤 감상적이라는 것이었다.
“알겠다.”
남궁진천이 느릿한 걸음으로 떠나갔다.
당화서는 그제야 분주히 준비를 시작했다.
그렇게 한 시진 정도가 흐른 후, 당화서가 다시 밖으로 나온 것은 늦은 오후였다.
‘여기겠구나.’
사람이 참 많았다.
모두가 상처입은 몸을 이끌며 모여 있었다.
이번 전쟁으로 희생된 이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온 이들이었다.
참 많은 이들, 그리고 참 많은 고수가 명을 달리했다.
개중엔 언제나 중원의 기둥이 되어줄 것만 같았던, 초월자들이 있었다.
당화서는 한참이나 움직인 후에야 일운을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원명대사의 빈소 앞을 홀로 지키고 있었다.
혼자인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명복을 빌러 온 모든 이들이 섣불리 접근하지 못할 정도로, 일운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색이 험악했다.
당화서는 걸음을 멈춰 세웠다.
평소라면 이만큼 다가올 즘 기척을 눈치채고 고개를 돌렸어야 하건만, 지금의 그에겐 그럴 여유조차 없는 듯했다.
당화서는 미처 일운을 찾지않는 스스로를 또 한 번 질책하며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일운에게 다가갔다.
“일운 스님.”
그제야 일운의 고개가 돌아갔다.
당화서는 그의 표정에 속이 저며지는 기분을 느꼈다.
“…당 시주님.”
그는 울며 분노하고 있었다.
핏발 선 눈과 짓씹는 입술이 참으로 진한 분노를 토해내고 있음에도, 그것보다 뜨거운 눈물이 먼저 들어올 정도로 격렬한 감정을 표출하고 있었다.
“….”
당화서는 조용히 그에게 다가갔다.
*
안채, 목선오가 누워있는 방 안엔 목리원만이 남게 되었다.
“…참 많은 이들이 명을 달리했습니다.”
목리원은 중얼거렸다.
여전히 새빨개진 눈을 하고 있기에 밖으로 나설 수 없다.
차라리 다행인 일이었다.
조금 쉬러 가라고 보채는 이가 없으니 말이다.
“전쟁은 참으로 참혹했습니다. 그 속에 수많은 살의가 있었습니다.”
목리원은 잠든 목선오에게 말했다.
전쟁에 관한 것이었다.
그 순간 느낀 감상에 관한 것이었다.
“한데 그 살의보다 더욱 진하게 느껴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삶을 향한 갈망입니다. 공포였고, 절망이었습니다.”
목리원은 이제야 전쟁이 진정 참혹한 이유를 깨달았다.
그것은 그저 사람이 죽기에 잔혹한 것이 아니었다.
수많은 이들의 신념과, 그로 말미암아 이는 갈등이 어쩔 수 없는 흐름이 되어 사람의 등을 떠밀기에 잔혹한 것이었다.
개인으로선 헤어 나오려 해도 그리할 수 없는 것이다.
도망치기엔 등 뒤에 지켜야 할 것들이 있는 것이다.
“그 한가운데서 저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목리원은 말했다.
그 순간 느낀 것들을 더듬더듬 이어가는 말이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히는 탓에 그런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런 순간이었다.
“으음….”
목선오의 입에서 침음이 흘러나왔다.
“스승님!”
이윽고 목선오의 눈이 느리게 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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